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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ua Bab 형수의 밤: Bab 201 - Bab 210

215 Bab

201. 신우는 마지막에 알고 있었어

서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한참 바라봤다. 그 시선은 묘하게 느리고 조용해서, 오히려 더 숨 막혔다. 이미 수없이 서로를 봐온 사람들끼리만 가능한 침묵이었다. 설명보다 생략이 많은, 그래도 다 알아듣는 종류의 침묵.그리고 서하는 마침내 아주 낮게 말했다.“같이 있어.”건우는 눈을 좁혔다.“그건 이미 하고 있잖아.”“아니.”서하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옆에 있는 거 말고.”그녀는 한 글자씩 눌러 말하듯 덧붙였다.“도망가지 말고, 끝까지 봐.”그 말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같이 있는 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식탁에 앉고, 같은 복도를 지나고, 같은 밤을 견디는 것. 하지만 끝까지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군가 무너지는 순간을, 누군가 잃어버린 시간을, 누군가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는 얼굴을, 모른 척하지 않고 끝까지 보는 것. 그건 사랑보다도 더 잔인한 종류의 책임일지 몰랐다.건우는 그 문장을 한동안 삼키지 못했다.그러다 아주 늦게, 거의 중얼거리듯 물었다.“너는 그걸 계속 혼자 했어?”서하는 그 질문을 듣고 잠깐 시선을 내렸다.아주 짧은 정적.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네 형도 끝까지 못 봤어.”그 말은 방금까지의 어떤 말보다도 더 날카롭게 꽂혔다.건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무슨 뜻이야.”서하는 이번엔 웃지 않았다.대신 아주 천천히 시선을 들어 건우를 봤다.그 눈빛은 처음으로 조금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기보다 오래 묻어둔 진실을 건드린 사람의 얼굴에 가까웠다.“그 사람이 몰라서 죽은 줄 알아?”거실 안 공기가 순식간에 굳었다.건우는 숨을 멈췄다.서하는 건우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한 글자도 흐리지 않고 말했다.“신우는 마지막에 알고 있었어.”그 한 문장이 떨어진 순간,건우 안의 모든 감각이 동시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무슨 의미인지 곧바로 다 이해되지는 않았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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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마지막으로 본 것

다음 날 아침, 건우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얼굴로 부엌에 나왔다.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맑았지만, 집 안 공기는 이상하게 탁했다. 밤새 창문을 열어두지 않은 방처럼, 무언가가 오래 머물다 간 자리가 아직 남아 있는 느낌. 건우는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병을 꺼내 들고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뻑뻑했는데, 이상하게 정신만은 너무 또렷했다.‘신우는 마지막에 알고 있었어.’서하가 남긴 그 문장은 밤이 끝나도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사람은 정말 위험한 말을 들으면, 처음엔 의미보다 문장 자체가 더 오래 남는다. 그 짧은 말이 어떤 방향으로 사건을 뒤집는지, 어떤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게 만드는지, 머리가 다 따라잡기도 전에 문장만 먼저 몸 안에 박혀버린다. 건우는 생수병 뚜껑을 닫고 식탁에 기대 섰다. 윤신우는 마지막에 뭘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걸 알았다면, 왜 아무도 지금까지 그걸 입에 올리지 않았을까.그때 안방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건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하나가 나왔다.머리를 느슨하게 묶은 채, 아직 완전히 잠에서 덜 깬 얼굴이었다. 회색 반팔 티셔츠에 얇은 가디건만 걸친 차림, 맨발, 손에는 머리끈이 들려 있었다. 너무 평범한 아침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건우를 멈추게 만들었다.오늘의 하나는 어제 낮 약국에서 멈췄던 사람도, 밤에 방 안에서 무너질 듯 앉아 있던 사람도, 그 뒤에 서하로 바뀌었던 사람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 채 아침을 맞은 사람처럼. 하나는 건우를 보자 아주 짧게 웃었다.“일찍 일어났네.”건우는 대답이 반 박자 늦었다.“응.”하나는 부엌 쪽으로 걸어오며 냉장고를 열었다. 그 짧은 동선조차 이상하게 낯설었다.어젯밤의 문장과 지금 눈앞의 평범한 풍경이 하나의 집 안에서 겹쳐 있다는 사실이, 건우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었다.하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며 물었다.“너 얼굴 왜 그래.”건우는 생수병을 내려놓았다.“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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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오늘은 기억이 끊긴 시간은 없어?

그 평범한 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남았다.건우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어젯밤 서하가 했던 말과 지금 아침 하나가 하는 말 사이에 있는 간극을 생각했다. 하나는 늘 건우를 멈추게 하려 했고, 서하는 늘 건우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같은 얼굴인데 방향은 정반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둘이 완전히 분리된 사람이라고는 더 이상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건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을 나섰다.윤신우 관련 자료를 다시 보려면 결국 시작점은 하나였다.아니, 정확히는 윤신우가 죽기 전 마지막 며칠 동안 하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다시 봐야 했다.건우는 형이 죽은 뒤 거의 강박처럼 모아둔 자료 중 일부를 다시 꺼내기 위해, 예전에 잠깐 사용하던 오피스텔형 작업실로 향했다. 엄밀히 말하면 사무실은 아니었다. 검사 준비를 하던 시절부터 책과 자료를 쌓아두고 혼자 정리하던 작은 공간이었고, 윤신우 사건 이후에는 거의 창고처럼 변해버린 곳이었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좁은 책상 위에는 박스 파일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벽 쪽 철제 선반에는 판례집과 노트, 인쇄물, 녹취록, 사건 기사 스크랩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멈춘 사람의 공간답게, 이곳에는 시간이 고여 있었다.건우는 가장 아래칸에 처박아 둔 파일 박스 하나를 끌어냈다.라벨에는 거칠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사망 전 2주 / 신우]그는 바닥에 박스를 펼쳐두고 한 장씩 자료를 꺼냈다.통화 내역, 카드 사용 내역, 차량 출입 기록, 메신저 캡처, 병원 일정표, 회사 회의록 일부. 이미 수십 번은 봤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시선의 방향이 달랐다. 누가 형을 죽였는지가 아니라, 형이 죽기 전에 무엇을 눈치챘는지를 보려고 하자, 같은 자료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건우는 먼저 윤신우의 통화 내역을 다시 훑었다.사망 전 일주일 동안 신우는 특정 번호와 유난히 자주 통화하고 있었다. 그 번호는 이미 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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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삭제된 밤

그날 저녁, 건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정확히는, 바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작업실 바닥에 널브러진 자료들 사이에 앉아 있던 그는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서하의 답장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알아. 근데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빠.’그 문장을 읽은 뒤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같은 방향으로 생각이 밀렸다.윤신우는 하나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그건 이제 거의 확실했다.그런데 ‘알고 있었다.’와 ‘무엇을 봤다.’는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였다.알고 있다는 건 추측이나 패턴 인지일 수도 있다.하지만 서하가 어젯밤 말한 건 그보다 더 직접적이었다.‘신우는 마지막에 알고 있었어.’그 말투는 단순히 눈치챘다는 수준이 아니었다.마치 정말로 봤던 사람을 말하는 방식에 가까웠다.그렇다면 윤신우는 마지막 며칠 사이, 하나 혹은 서하의 어떤 모습을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건우는 책상 위에 흩어진 자료들 사이에서 윤신우 사망 당일과 전날의 동선 정리표를 다시 꺼냈다.이미 수없이 봤던 자료였다.사망 전날 밤, 윤신우는 회사에서 늦게 나왔다.자택 도착 추정 시각은 밤 11시 42분.그 이후부터 새벽 1시 18분까지, 집 내부 동선은 비어 있었다.그 시간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상했다.하지만 당시엔 특별한 증거가 없었다.집 안 CCTV는 없었고, 외부 현관 카메라 역시 결정적 장면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 공백은 그냥 자택 내부의 사적 시간으로 밀려났다.그런데 지금 건우는 그 공백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형은 그 시간 안에 뭔가를 봤다.그게 맞다면, 그 흔적은 분명 어딘가 남아 있어야 했다.건우는 자료 뭉치를 넘기다 윤신우 사건 초기 수사 당시 확보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CCTV 보존 목록을 다시 꺼냈다.그 목록은 이전에도 확인했었다.보존된 카메라는 네 개.지하 1층 입구엘리베이터 앞택배 보관함 앞차량 출입구그런데 그중 하나가,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방식으로 눈에 걸렸다.엘리베이터 앞 / 23:43 ~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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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거울 몰딩 틈에 박힌 조각

삭제된 CCTV 관련 내부 참고 메모가 있었는지,보존 요청이 들어간 적이 있었는지,관리사무소 협조 문건이 남아 있는지.한참 뒤, 아주 얇은 A4 한 장짜리 문서가 파일 사이에서 나왔다.아파트 관리사무소 구두 진술 메모 작성자: 수사관 이xx건우는 종이를 펼쳤다.메모 내용은 짧았다.사건 다음 날 오전, 입주민 측에서 CCTV 상태 문의 1회엘리베이터 앞 영상 오류 관련 먼저 언급‘전날 밤부터 가끔 끊겼다.’고 설명문의자 이름 미상 / 여성 / 입주민으로 추정건우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여성. 입주민으로 추정.그 시점에 그 아파트에서 ‘사건 다음 날 오전’가장 먼저 CCTV 상태를 확인하러 갈 수 있었던 사람.건우는 굳이 이름을 적지 않아도 누가 떠오르는지 알고 있었다.하나.혹은 그 밤의 하나가 아닌 누군가.건우는 그대로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이건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이제는 정말로 물리적인 흔적이 생겼다.윤신우는 귀가 직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뭔가를 봤다그 직후 CCTV 19분이 비었다사건 다음 날 오전, 여성 입주민이 먼저 그 오류를 확인했다이 세 줄만으로도 사건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그리고 그 얼굴은 너무 분명해서, 건우는 오히려 바로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형은 마지막 밤에 뭔가를 보았다.그리고 그걸 본 뒤, 누군가는 그 장면을 없애려 했다.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건우는 작업실을 뛰쳐나오듯 나왔다.머릿속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지금 필요한 건 감정 정리가 아니었다. 확인이다.윤신우 자택 사건 당시,경찰은 집 안을 중심으로만 봤다.하지만 형이 마지막에 본 것이 엘리베이터 앞이었다면,그날 밤의 시작점은 집 안이 아니라 복도와 엘리베이터 앞 동선일 수도 있었다.건우는 바로 윤신우가 살던 아파트로 향했다.이미 출입은 어렵지 않았다.사건 이후 집 자체는 봉인 해제된 지 오래였고, 출입 통제도 느슨해져 있었다.관리사무소 역시 얼굴을 여러 번 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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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같은 식탁

윤신우는 마지막 밤, 정말로 누군가를 보았다.그리고 그 누군가는 하나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건우는 차 안에서 한 번도 음악을 틀지 않았다.신호 대기 중에도 핸들을 쥔 손에서 힘이 잘 풀리지 않았다.지금 자기 손 안에 있는 건 법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단순한 장식 조각 하나. 누구 것인지 단정할 수도 없고,사건과 직접 연결된다고 바로 말할 수도 없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조각은 지금까지의 어떤 문서보다 더 무거웠다.왜냐하면 그건 그날 밤 누군가 거기 있었다는 걸처음으로 손에 쥘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누군가의 그림자가 자꾸 하나와 겹쳐졌다.혹은 하나의 얼굴을 한 다른 누군가와.건우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도 한동안 내리지 못했다.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발신자는 하나였다.메시지는 짧았다.‘언제 와? 저녁 안 먹었지.’그 문장을 보는 순간, 건우는 웃어야 할지 숨이 막혀야 할지 잠깐 헷갈렸다.형의 마지막 밤을 더듬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 자기에게 오는 메시지는 너무 평범한 저녁 안부였다.그 평범함이 오늘따라 유난히 잔인했다.건우는 한참 뒤에야 짧게 답장을 보냈다.‘거의 다 왔어.’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운전석에 앉아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오늘부터는 진짜로, 하나의 얼굴을 예전처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그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집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건우는 잠깐 멈췄다.현관 안쪽으로 저녁 냄새가 아주 옅게 퍼져 있었다. 된장국인지, 아니면 국 끓일 때 나는 멸치 향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누군가 방금 막 부엌에 오래 서 있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 냄새는 별 의미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냥 집 냄새, 저녁 냄새, 사람이 사는 냄새. 그런데 오늘은 그 평범함 자체가 이상하게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신발을 벗으며 거실 쪽을 봤다.부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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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차마 떠올리지 못한 숟가락

그 말도 평범했다.너무 평범해서, 건우는 순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종류의 죄책감을 느꼈다. 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차려두고, 자기가 굶었을까 봐 걱정하고, 혼자 먹게 될까 봐 민망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방금 몇 시간 전까지 그 사람을 사건의 흔적 위에 겹쳐 보고 있었다.그 사실이 너무 더러웠다.건우는 국을 한 숟갈 뜨려다가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하나는 그걸 보고 물었다.“왜, 맛없어?”“아니.”“그럼.”건우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두 개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국을 떠주는 하나의 얼굴.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형이 마지막으로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얼굴.그 둘을 분리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끔찍했다.하나는 그가 대답하지 않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건우야.”건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하나는 이번엔 웃지 않고 그를 보고 있었다.“너 지금 나 이상하게 보고 있어.”그 말은 조용했지만, 아주 정확했다.건우는 곧바로 부정하지 못했다.그 짧은 침묵이 이미 답이었는지, 하나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뭐 때문에.”건우는 바로 말하지 못했다.말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하나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그리고 더 큰 하나는 지금 이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게 될 것 같아서.하나는 그런 건우를 한참 보다가 아주 낮게 물었다.“오늘 뭐 찾았어?”그 질문은 예상보다 더 깊숙이 들어왔다.건우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하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형 관련해서 본다 그랬잖아.”건우는 마른 입술을 한 번 혀로 적셨다.“그냥… 예전 자료 좀.”“그걸 보고 와서 지금 나를 그렇게 봐?”그 말엔 비난도, 분노도, 억울함도 정확히 담기지 않았다.대신 그 모든 감정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채 섞여 있었다.건우는 이번엔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나는 그 침묵을 받아낸 채 한참 앉아 있었다.그리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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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근데 네 눈은 그렇게 안 보여

그 한 글자가 너무 가볍게 떨어져서, 오히려 더 처참했다.건우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하나야, 그건”“됐어.”하나는 그 말을 잘랐다.그녀는 갑자기 화를 내지도 않았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 차분해서, 그래서 더 건우를 당황하게 만들었다.하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국그릇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건우도 바로 따라 일어났다.“내가 할게.”하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아주 가볍게 막았다.“놔둬.”그 말은 크지 않았지만, 그 짧은 접촉 하나에 이상할 만큼 선이 분명했다.건우는 그대로 멈췄다.하나는 접시를 싱크대에 내려놓으며 등을 보인 채 말했다.“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말 안 해도 돼.”건우는 주방 앞에 서서 아무 말도 못 했다.하나는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받았다. 물소리가 너무 생활적이라서, 오히려 지금 이 장면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람 사이가 무너지는 순간도 이렇게 조용할 수 있구나. 접시 닿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그 사이로 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하나는 한참 동안 그릇을 씻다가, 아주 작게 덧붙였다.“근데 네가 나를 그런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그녀는 거기서 잠깐 말을 멈췄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끝내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나 진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그 말은 건우의 가슴 안쪽을 너무 정확하게 찔렀다.그건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었다.하나는 지금 자기 몸 안에서도 길을 잃고 있는데,이제는 건우의 시선 안에서도 길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건우는 그제야 한 발 앞으로 나갔다.“하나야.”그는 아주 낮게 불렀다.하나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건우는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의 어깨를 잡지도 못하고 그저 바로 뒤에 멈춰 섰다. 너무 가까우면 더 상처일 것 같고, 너무 멀면 이미 늦은 것 같아서. 그 애매한 거리에서 그는 마침내 아주 힘겹게 말했다.“나도 지금… 이런 내가 싫어.”그 말은 변명도 아니고 해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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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지워진 자리

그날 밤, 건우는 일부러 거실 불을 끄지 않았다.천장등 대신 식탁 위 스탠드 하나만 켜두었는데, 그 정도의 빛이면 집 안 전체를 환하게 밝히지는 못해도 적어도 누군가가 지나가며 무엇이 놓여 있는지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낮에 가져온 것들을 전부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프린트한 CCTV 캡처 몇 장, 윤신우 통화 기록 일부, 그리고 작게 비닐에 담아둔 금속 조각 하나. 머리핀 끝 장식처럼 보이는 그것은 너무 작고 가벼워서,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별것 아닌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건우는 그 사소한 조각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증거라고 부르기엔 약했다.우연이라고 넘기기엔 지나치게 정확했다.윤신우가 마지막으로 찍힌 자리.삭제된 19분.그 틈에서 나온 물건.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는 더 이상 ‘확인할까 말까.’를 망설일 단계가 아니었다. 오늘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저 조각의 정체를 확인해야 하는 밤이었다.하나는 저녁 이후 방에 들어간 뒤로 다시 나오지 않았다. 문 아래로 새어 나오던 불빛이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뒤로 집 안은 오랫동안 너무 조용했다. 건우는 소파에 앉았다가 다시 식탁 쪽으로 옮겨 앉고, 물을 마셨다가 컵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계를 보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집 안 공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람이 정말 잠든 집과, 잠든 척만 하고 있는 집은 이상하게 결이 다르다. 그리고 그 둘이 완전히 끊어지고, 다른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드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건우는 그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몇 번의 밤을 지나며 몸이 먼저 익힌 감각 같은 것. 오늘 밤에도 그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집 안에서, 아주 미세하게 바닥이 울렸다. 누군가 복도 끝에서 조심스럽게 체중을 옮길 때만 나는 소리였다. 건우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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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같은 얼굴인데 사람이 다르니까

서하는 식탁 가장자리에 손끝을 가볍게 올려놓은 채,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그날 형이 본 건 한 번이 아니었어.”건우는 그대로 굳었다.“무슨 뜻이야.”“두 번 봤어.”서하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건우는 잠깐 숨을 멈춘 채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단순히 한 번 마주쳤다, 혹은 우연히 이상한 낌새를 봤다 수준이 아니었다.같은 밤,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마주쳤다는 건 그 안에 시간의 틈과 설명되지 않는 변화가 존재했다는 뜻이니까.건우는 손등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다시 물었다.“처음이 하나였고, 두 번째가 너였다는 거야?”서하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처음엔 그냥 하나라고 생각했겠지.”그녀는 아주 천천히 말을 이었다.“늦은 밤에 집 앞에서 마주친 아내였으니까. 피곤했고, 이상한 분위기를 느껴도 그냥 컨디션 탓이라고 넘길 수도 있었을 거야.”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늦게 귀가한 남자가 집 앞에서 아내를 만난다. 그건 분명 이상할 수 있지만, 아직은 설명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그런데“두 번째는.”건우가 낮게 물었다.서하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두 번째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어.”“왜.”“같은 얼굴인데, 사람이 다르니까.”그 문장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더 잔인했다.서하는 더 설명하려는 듯하다가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마치 그날의 공기를 더듬는 사람처럼 아주 느리게 말을 골랐다.“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같은 얼굴이었고, 같은 자리였어. 그런데 말투가 다르고, 반응이 다르고, 자기를 보는 눈이 다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아.”그녀의 시선이 건우를 향했다.“뭔가 잘못됐다는 걸.”건우는 그 말이 몸 안으로 바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사랑하는 얼굴이 낯선 각도로 서 있을 때, 사람은 처음엔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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