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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형수의 밤: Kapitel 211 – Kapitel 220

275 Kapitel

211. 안 자고 있었네

이번엔 질문이라기보다 요구에 가까웠다.서하는 그걸 모르는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건우는 그 짧은 망설임에서, 이 뒤의 이야기가 단순한 설명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쪽에 있다는 걸 먼저 알아차렸다.“여기까지야?”건우가 낮게 물었다.서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오늘은 여기까지라서가 아니라…”그녀는 말을 잇다가, 잠깐 복도 쪽을 봤다.“이건 내가 끊는 게 아니야.”건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복도는 여전히 어두웠고, 방 문은 닫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 안 공기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서하는 다시 건우를 보며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이 끊기는 거야.”그 말이 끝나자마자, 집 안 어딘가에서 아주 작게 소리가 났다.문이 나무틀에 스치는 소리 같은 것.건우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고개가 복도 쪽으로 돌아갔다. 복도 끝, 닫혀 있어야 할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조금 전과는 달랐다. 방금까지 아무도 그 문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서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말했다.“이제 네가 직접 봐야 돼.”그 말은 이전처럼 의미심장한 경고가 아니었다. 도망칠 수 없는 자리에 사람을 세우는 말에 가까웠다. 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천천히 식탁을 돌아 복도로 걸어갔다.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발바닥 아래 마룻바닥의 감각만 유난히 또렷했다.한 걸음, 또 한 걸음.문 앞에 섰을 때,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다는 건 때로 안심이 아니라 더 큰 불안을 만든다. 건우는 문고리를 잡지 않고, 손바닥으로 문을 천천히 밀었다.그리고 그 순간 건우는 처음으로, 그 경계가 실제로 무너지는 장면 앞에 서게 됐다.문이 열리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건우는 손바닥으로 문을 천천히 밀면서도, 이상하게 숨을 더 크게 쉬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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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나라고 확신하고 싶은데

먼저 말을 건넨 쪽은 그녀였다.목소리는 하나의 것이었지만, 그 안에 섞인 결은 단순하지 않았다. 건우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은 완전히 하나도, 완전히 서하도 아니었다. 그 둘 사이 경계가 얇아진 채, 아직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상태.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건우는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너 뭐 하고 있었어.”그녀는 잠깐 창문 쪽을 돌아봤다가, 다시 건우를 봤다.“그냥.”그리고 아주 천천히 덧붙였다.“잘 기억 안 나.”그 말은 지금까지 여러 번 들었던 문장이었지만, 오늘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전에는 그저 불안과 공백의 언어였다면, 지금은 마치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눈치채고 있는 사람의 언어처럼 들렸다.건우는 그제야 한 발 더 다가갔다.“언제부터 여기 있었어.”그녀는 잠깐 눈을 깜빡였다.“모르겠어.”“방금 깬 거야?”이번엔 대답이 조금 늦었다.그 짧은 틈 안에서, 그녀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방금까지 자신이 어떤 얼굴로 서 있었는지, 누구의 의식으로 이 방 안에 있었는지, 그걸 자기 자신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시선이 건우 어깨 너머를 향했다.복도.서하가 서 있을 자리.그 눈빛이 변하는 걸 건우는 분명히 봤다.불안에서 경계로.경계에서 차가운 자각으로.그 변화는 극적이지 않았다.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섬뜩했다.그녀는 건우를 보지 않은 채, 아주 낮게 말했다.“들어왔네.”그 말은 건우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건우의 등 뒤 어딘가를 향한 말.건우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려다 멈췄다. 그러는 사이, 눈앞의 그녀가 아주 천천히 다시 건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는 분명히 달랐다. 같은 얼굴인데, 사람을 보는 온도가 바뀌어 있었다. 그 미세한 차이가 너무 선명해서, 건우는 오히려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서하였다.아니, 정확히는 방금까지 하나였던 얼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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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그날은 지금보다 더 심했어

그 문장은 건우를 완전히 멈추게 만들었다.서하는 늘 하나보다 더 단단하고, 더 선명하고, 더 자각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그래서 건우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서하 쪽이 더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자기 자신조차 자기 경계를 확신하지 못한다고.그건 지금까지 건우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였다.건우는 어느새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 있었다.서하는 그걸 피하지 않았다.둘 사이 거리가 숨이 닿을 만큼 좁아졌을 때, 건우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날도 이랬어?”서하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질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둘 다 알고 있었다.윤신우의 마지막 밤.엘리베이터 앞.삭제된 19분.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건우는 오히려 답을 먼저 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날은 지금보다 더 심했어.”건우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얼마나.”“하나도 불안했고, 나도 흔들렸고… 중간이 더 자주 열렸어.”그녀는 잠깐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건우를 봤다.“형은 그걸 본 거야.”그 문장은 너무 정확해서, 건우는 더 이상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윤신우는 단순히 낯선 얼굴을 본 게 아니었다.하나와 서하가 번갈아 드러나는 그 불안정한 경계 자체를 봤던 것이다.그리고 그걸 본 사람은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건우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선 윤신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피곤했을 형, 처음엔 그냥 하나라고 생각했을 형, 두 번째엔 설명되지 않는 공포 앞에서 잠깐 멈췄을 형. 그리고 결국 그 밤을 끝까지 살아서 빠져나오지 못한 형.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그런데 지금 더 견디기 힘든 건, 눈앞의 사람도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팔을 아주 조심스럽게 잡았다.서하는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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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늦은 사람

병원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 건 건우였지만,정작 그 말을 입 밖으로 뱉고 나자마자 그는 그게 얼마나 늦은 문장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병원 가자.’너무 정상적이고, 너무 상식적이고, 그래서 더 무력한 말.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균열 앞에 서면 결국 가장 평범한 구조를 먼저 떠올린다. 진단, 치료, 상담, 입원. 이름을 붙이면 통제할 수 있을 것 같고, 병명으로 바꾸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방금 전 눈앞에서 본 건우는, 그것들이 과연 지금 이 상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언어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서하는 창가 쪽에 선 채 더 이상 웃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건우의 손이 닿아 있던 팔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마치 자기 몸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 잠깐 확인하는 사람처럼 손끝을 아주 천천히 접었다 폈다. 그 사소한 움직임 하나가 이상하게 더 아프게 느껴졌다. 사람이 무너지는 장면은 늘 극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이다. 말보다 먼저 손끝이 망설이고, 시선이 한 박자 늦고, 자기 몸을 자기 것처럼 쓰지 못하는 순간들이 조용히 쌓이면서.건우는 결국 손을 거두었다.그리고 한참 뒤에야 아주 낮게 물었다.“형이 병원 알아봤어?”서하는 그 질문을 듣고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인 채 건우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 안의 균열을 버티는 쪽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긴장이 눈빛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질문이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윤신우가 마지막에 어디까지 갔는지를 묻는 질문이라는 걸 알아들은 사람의 표정.“알아봤지.”그녀가 마침내 말했다.“그 사람, 생각보다 오래 버텼어.”건우는 그 문장에서 먼저 숨이 걸렸다.생각보다 오래 버텼다.그 말은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너무 잔인했다.윤신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우발적으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마지막 며칠 동안은 이 이상한 상태를 붙들고 어떻게든 해결하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뜻이니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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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형이 처음에 만나러 간 사람

이번엔 서하도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그 한 문장이 둘 사이 공기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지금 이 밤의 대화와 이동과 추적은 전부 하나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 위에서 성립하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말로 꺼내는 순간, 갑자기 너무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일이 되어버렸다. 건우는 자기가 지금 누구와 손잡고 누구를 구하려는 건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 건지 선명하게 자각하게 됐다.서하는 한참 뒤에야 아주 조용히 말했다.“그건 네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 아니야?”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맞았다.’하나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선택은 늘 하나가 모르는 시간대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윤신우도 어쩌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나가 감당 못 할까 봐, 하나가 다칠까 봐, 하나가 알면 더 무너질까 봐. 그래서 혼자 알아보고, 혼자 확인하고, 혼자 결정하다가 결국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스치자, 건우는 갑자기 몸 안쪽이 서늘해졌다.자기가 지금 형이 걸었던 길 위에 똑같이 발을 올리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건우는 문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아주 천천히 말했다.“그래도 오늘은 확인해야 해.”서하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대신 그를 오래 보다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형이 처음 간 곳은 병원이 아니었어.”건우의 손이 문고리 위에서 멈췄다.“뭐?”서하는 창가에서 몸을 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이제 그녀의 얼굴은 다시 조금 달라져 있었다. 방금 전처럼 경계가 흐린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선명한 서하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얼굴. 마치 밤이 깊어질수록 둘 사이 경계가 아니라 둘 다 피로해지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병원 가기 전에.”그녀가 말했다.“형은 먼저 누군가를 만나러 갔어.”건우는 미간을 좁혔다.“누구.”서하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이름은 아니고, 직함 같은 걸 말했어.”그녀는 눈을 감고 그날의 조각을 더듬듯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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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먼저 다녀간 사람

이번엔 통화.사망 나흘 전 오후 5시 12분.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11분 42초.사망 사흘 전 오전 10시 03분.같은 번호로 다시 7분 08초.그리고 사망 이틀 전 오후 2시 19분.이번엔 윤신우가 직접 그 번호가 남긴 문자 링크를 열어본 흔적이 있었다.건우는 바로 번호를 추적했다.처음엔 광고 대행 번호나 상담 연결 번호처럼 보였지만, 검색을 한 단계 더 타고 들어가자 낯익은 단어가 튀어나왔다.한림심리안정센터건우의 손이 멈췄다.센터장.방금 전 서하가 흘린 단어와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그는 곧바로 홈페이지 캐시를 열었다. 오래된 상담센터 페이지였고, 대외적으로는 직장인 스트레스, 외상 후 불안, 수면장애, 가족상담 등을 다루는 민간 심리상담 기관으로 보였다. 병원은 아니지만, 병원으로 가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익명으로 문의하기 좋은 종류의 곳.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홈페이지 상단에 대표 상담자 이름 대신 ‘센터장 김○○’이라는 표기가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이제 퍼즐이 조금 맞아들기 시작했다.윤신우는 병원에 바로 가지 않았다.먼저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누군가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고,아마 그다음 단계에서 병원이나 다른 조치를 고민했을 것이다.건우는 더 아래로 내려가 윤신우 캘린더 임시 저장 파일을 열었다.그리고 거기서 짧은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금요일 7:30 / 김 센터장 / 하나 얘기 정리그 문장을 읽는 순간, 건우는 마치 누군가에게 가슴 한가운데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하나 얘기 정리.’그 다섯 글자가 너무 인간적이어서, 너무 처참했다.윤신우는 그날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미리 정리하려 했던 것이다. 하나가 이상하다고, 가끔 기억이 비고,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그런데 이걸 병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그걸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전에, 자기 혼자 먼저 말이 되게 정리해보려 했던 사람의 흔적.건우는 모니터를 오래 보지 못하고 잠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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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형은 죽었습니다

사람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처음부터 가장 큰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대개는 이런 식으로, 아직 완전히 병이라고 인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곳부터 찾는다.건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문이 열리자 복도는 놀랄 만큼 조용했다. 흰색 벽, 회색 바닥, 그리고 너무 과하지 않게 놓인 화분 몇 개. 센터 유리문에는 반투명 시트지가 붙어 있어 안쪽이 완전히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 작게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기억할 수 없는 불안도, 설명할 수 없는 피로도 상담이 필요합니다.”건우는 그 문장을 한참 쳐다봤다.기억할 수 없는 불안. 설명할 수 없는 피로.그건 광고 문구였을 뿐인데, 이상하게 하나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윤신우도 이 문구를 봤을까.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조금이라도 안심했을까. 적어도 여기까지 오면 누군가 자기 말을 “이상하다”고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그 생각이 들자 건우는 괜히 목 안쪽이 메말랐다.그는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센터 안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은은한 방향제 냄새와 낮은 볼륨의 클래식 음악이 섞여 있었고, 접수 데스크 뒤쪽 벽에는 상담 일정표와 자격증 액자가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오전 첫 시간이라 그런지 대기실은 비어 있었고, 접수대 안쪽에 앉아 있던 직원이 고개를 들어 건우를 봤다.“예약하셨어요?”건우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아니요. 예약은 안 했고… 김 센터장님 계신가 해서요.”직원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건 당연했다. 이런 곳은 갑자기 찾아온 낯선 사람에게 바로 상담자 이름을 열어주지 않는다. 특히 건우처럼 얼굴에 잠도 못 자고 예민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직원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상담 관련 문의시면 먼저 접수 도와드릴 수 있는데요.”건우는 바로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상담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그럼 왜 왔냐는 다음 질문이 따라올 테니까.그는 최대한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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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배신처럼 들릴까 봐 무서워서

그 문장은 너무 건조해서 오히려 더 무거웠다.건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그리고 형이 마지막에 뭘 하려 했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게 지금 살아 있는 사람한테도 필요해요.”김 센터장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그는 건우를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아주 조용히 물었다.“윤신우 씨가 누구 얘기를 하셨는지… 알고 오신 겁니까.”건우는 대답 대신 턱을 아주 조금 당겼다.김 센터장은 그걸 보고 짧게 한숨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그분은 예약 없이 처음 전화하셨습니다.”그가 말했다.“굉장히 급한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인지 바로 설명은 못 하셨어요. ‘이상한데, 제가 과민한 건지 모르겠다’는 식으로만 말씀하셨죠.”건우는 손에 쥔 컵이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너무 윤신우다운 문장이었다.바로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먼저 자기가 과민한 건 아닌지부터 확인하려는 사람.김 센터장은 잠깐 기억을 더듬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처음엔 부인의 상태를 말씀하셨습니다.”건우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어떤.”“기억이 비는 시간대가 있는 것 같다고요. 평소와 말투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 있고, 다음 날 본인은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걸 병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김 센터장의 말은 조용했지만, 건우의 가슴 안쪽을 한 줄씩 눌러 내려갔다. 윤신우는 정말로 이걸 해결하려 했다. 단순한 공포나 혐오가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더듬더듬 말로 바꾸려 했던 사람처럼.“형이… 직접 왔어요?”건우가 물었다.김 센터장은 고개를 끄덕였다.“한 번.”“한 번만요?”“원래는 다음 주에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그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건우는 마치 누군가가 눈앞에서 문을 닫아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다시 보기로 했는데.다음 주가 있었는데.그 약속이 있었는데.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너무 잔인했다.건우는 목 안쪽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며 겨우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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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남겨진 시간

건우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어젯밤 방 안에서 봤던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하나와 서하의 경계가 너무 조용하게, 너무 인간적인 방식으로 흔들리던 장면.그건 병명 하나로 묶기엔 너무 아팠고,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너무 명백했다.김 센터장은 마지막으로 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윤신우 씨는 마지막 상담 때, 다음번엔 꼭 부인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습니다.”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그런데 못 왔죠.”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방 안을 오래 맴돌았다.건우는 그 순간, 형이 이 방을 나설 때 어떤 얼굴이었을지 처음으로 아주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조금은 안도했을 수도 있고, 조금은 더 무서워졌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그는 너무 늦었다.그리고 그 늦음이 지금 자기 앞에 다시 같은 얼굴로 서 있다.건우는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김 센터장도 따라 일어나지는 않았다.대신 그를 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였다.“윤신우 씨는 잘못한 사람이라기보다…”그는 말을 끝까지 곧바로 잇지 않았다.“너무 늦게 믿은 사람이었습니다.”건우는 그 말을 들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은 형에 대한 설명이면서 동시에 지금 자기 자신을 향한 경고처럼 들렸다.센터를 나왔을 때, 건우는 바로 차로 향하지 않았다.건물 입구 앞에 잠깐 서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방금 들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정리하려는 쪽에 가까웠다. 윤신우는 병원으로 직행하지 않았고, 먼저 상담센터를 찾았으며, 하나를 데리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까지 잡았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그 단순한 흐름이 너무 선명해질수록, 건우는 이상하게 발걸음을 바로 떼지 못했다.‘‘늦어서.김 센터장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계속 귀 안쪽에 남아 있었다. 늦어서 실패한 사람. 그 문장은 형을 설명하는 동시에, 지금 자기 발밑에도 같은 선이 깔려 있다는 걸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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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형, 여기까지 했구나

“하나야.”건우가 불렀다.하나는 바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대신, 아주 늦게 정말 반 박자 이상 늦게 시선이 올라왔다.그 눈이 건우를 향했다.익숙했다.그런데 어딘가 맞지 않았다.건우는 그걸 설명할 수 없었지만,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이건 단순히 피곤하거나, 잠을 덜 깬 눈이 아니었다. 초점이 맞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눈이었다.“언제 일어났어.”건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나는 잠깐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그 사이에 아주 짧은 공백이 생겼다.“나… 방금?”대답은 질문처럼 들렸다.건우의 심장이 아주 느리게 내려앉았다.“방금?”그가 되묻자, 하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아니, 모르겠어.”그녀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시간이… 좀 이상해.”그 말은 이미 몇 번 들었던 종류의 문장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이전에는 기억이 안 난다는 쪽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시간 자체가 끊어져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건우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더 들어갔다.“오늘 뭐 했어.”하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이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침대, 협탁, 바닥, 커튼, 창문. 마치 처음 보는 공간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아니면 자기 기억이 맞는지 현실을 다시 맞춰보는 사람처럼.“기억이 안 나.”그녀가 결국 말했다.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그 순간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건우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작은 알약 통이었다.뚜껑이 열려 있었고, 안에 들어 있던 약 몇 알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건우의 눈이 순간 굳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쪽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알약을 하나 집어 들었다. 하얀색, 타원형, 표면에 아주 작게 영문이 새겨져 있었다. 일반 진통제나 감기약처럼 보이지는 않았다.“이거 뭐야.”건우가 낮게 물었다.하나는 그제야 그쪽을 봤다.그리고 아주 짧게, 정말 짧게 눈이 흔들렸다.그 반응 하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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