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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ua Bab 형수의 밤: Bab 171 - Bab 180

215 Bab

171. 하나가 감당하지 못하는 밤

그 말은 이상하게도, 건우가 예상했던 어떤 설명보다 더 깊게 박혔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건 단순히 정보를 숨기는 사람의 대답이 아니었다. 마치 정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밤이 건우에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건우는 한참 뒤에야 낮게 물었다.“그걸 누가 정해.”서하는 이번엔 거의 숨처럼 말했다.“내가.”짧은 문장이었다.하지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게 들어 있었다.건우는 더 묻지 못했다.왜냐하면 그 짧은 대답 안에서, 서하가 지금까지 혼자 감당해온 밤의 무게 같은 것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명은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더 많은 게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딱 그랬다.거실 안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둘 다 더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그 정적은 비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말이 끝내 문장으로 되지 못한 채 둘 사이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우는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고, 서하도 그 손을 끝내 떼어내지 않았다.그날 밤, 건우는 아주 분명하게 알았다.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하나가 감당하지 못하는 어떤 밤을 대신 들고 있는 존재라는 걸.그리고 더 끔찍한 건, 그걸 알면서도 자기가 이 사람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아침은 늘 잔인할 만큼 평범하게 온다.밤새 어떤 감정이 지나갔든, 어떤 불안이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었든, 해는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떠오르고 방 안으로는 얇은 빛이 들어온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연한 햇빛은 방 안 구석구석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췄고,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물컵과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 어젯밤 대충 벗어둔 카디건까지 전부 너무 익숙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하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몸이 묘하게 무거웠다.잠을 오래 자서 생기는 나른함과는 조금 달랐다. 머리는 맑지 않았고, 어깨와 팔에는 이유 없이 잔피로가 얹혀 있었다. 마치 깊이 잠든 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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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내가 쓴 기억이 없는 문장

그 질문이 머릿속을 스치자 목 안쪽이 서늘해졌다.그녀는 컵을 치우려다가 문득 자기 손목을 봤다. 아주 희미한 자국 하나가 안쪽 피부에 남아 있었다. 누가 세게 잡은 것처럼 선명한 건 아니었다. 그냥 손가락이 잠깐 닿았다 떨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정도의 옅은 붉은 자국. 남이 보면 별것 아니라고 넘길 정도의 흔적이었지만, 하나는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자기 기억 안에는 이 자국이 생길 만한 장면이 없었다.하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문지른다고 해서 흔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대로 두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그 불편함을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너무 사소해서 더 무서운 종류의 위화감이었다.그때, 식탁 아래쪽 바닥에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보였다.처음에는 영수증인 줄 알았다. 그런데 허리를 숙여 집어 들어 보니, 손바닥 안에 접혀 들어갈 만큼 작게 반으로 접힌 메모였다. 종이는 집 안에 늘 두는 평범한 메모지였고,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종이였다.하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천천히 그 종이를 펼쳤다.짧은 문장이 하나 적혀 있었다.'그 애를 믿지 마.'하나는 그대로 굳었다.처음에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기를 거부한 쪽에 가까웠다. 그 문장은 너무 단순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끔찍했다. 그 애가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왜 믿지 말아야 하는지, 누가 이런 문장을 써서 식탁 아래 떨어뜨렸는지. 질문은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질문보다 먼저 그녀를 붙잡은 건 글씨체였다.자기 글씨였다.틀릴 리가 없었다.자음의 각도, 받침을 눌러 쓰는 버릇, 모음 끝이 미세하게 올라가는 습관까지 전부 자기 것이었다. 몇 년째 손으로 써온 문장을 자기 눈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그런데 하나는 이걸 쓴 기억이 없었다.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그녀는 종이를 쥔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을 줬다가, 금세 다시 풀었다. 너무 세게 구기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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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나아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기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는 걸 깨달았다.그 사실이 더 싫었다.하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거의 씹어 삼키듯 말했다.“나한테 지금 무슨 일 있는 거야?”건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하나는 그 얼굴을 보며 아주 선명하게 알았다.건우는 뭔가를 알고 있다.정확히 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 하나를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너, 뭔가 알고 있지.”건우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그 순간 하나는 자기 안쪽에서 이상한 감정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두려움과, 분노와, 설명할 수 없는 배신감 같은 것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 감정이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날것이라서,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더 거리를 벌리고 싶어졌다.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머릿속 어딘가에서, 아주 낯선 감정 하나가 스치듯 올라왔다.'그를 너무 가까이 두지 마.'그건 분명 자기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문장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웠다. 아주 차갑고 단호한 경고 같은 것. 하나는 그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는 걸 느꼈다. 자기 안에서 자기 것이 아닌 어떤 감정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메모보다 더 선명하게 사람을 무너뜨릴 때가 있다.하나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나 이상해.”그 말은 건우에게 한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고백처럼 들렸다.건우는 바로 그녀 쪽으로 다가오려 했다.그런데 하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오지 마.”짧은 한마디.그 말이 떨어진 뒤, 둘 사이 공기가 순식간에 멈췄다.하나 자신도 놀랐다. 건우를 향해 저렇게 날카롭게 거리를 둔 적이 있었던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금 그 말은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마치 원래 자기 안 어딘가에 있었던 말처럼. 그 사실이 소름 끼쳤다.건우는 걸음을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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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오래 본 사람처럼

그날 하루는 이상할 만큼 길었다.하나는 평소보다 더 적게 말했고, 건우는 그런 하나를 대하는 내내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의식할 수 없었다. 아침 식탁 위에서 메모를 펼쳐 보이던 그녀의 손끝, 자기 글씨를 보고도 아무 기억이 없다고 말하던 순간의 얼굴, 그리고 “나 이상해”라고 거의 속삭이듯 뱉어냈던 목소리까지. 그 짧은 장면들이 하루 종일 건우의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그는 여러 번 말을 걸었다.괜찮냐고 묻기도 했고, 병원에 가보자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고,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일부러 가볍게 넘겨보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는 종일 어딘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대답은 했지만 짧았고, 웃는 척은 했지만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렀다. 특히 혼자 있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손목 안쪽을 만지작거리거나, 자기 손글씨를 휴대폰 메모장과 종이 위에 번갈아 적어보며 뭔가를 확인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건우는 그걸 보면서도 끝내 정확한 말을 해줄 수 없었다.정확히는 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 선택이 옳은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나에게 '네 안에 또 다른 인격이 있는 것 같다.'는 식의 말을 꺼내는 건, 상처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맨살 위에 바로 칼을 대는 일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서하를 하나에게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혹은 설명할 자격이 있는지조차.저녁이 지나고 밤이 깊어질수록 집 안 공기는 다시 천천히 무거워졌다.하나는 평소보다 일찍 방에 들어갔다. 피곤하다는 말만 짧게 남기고 방문을 닫았고, 건우는 그 닫힌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거실로 돌아왔다. 어젯밤과 똑같이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두었지만, 오늘의 어둠은 어제와는 조금 달랐다. 어제는 답답함과 예감이 뒤섞인 밤이었다면, 오늘은 이미 무언가를 목격한 뒤의 밤이었다.건우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손바닥을 내려다봤다.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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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나한테만 너무 많이 숨기지 마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건우는 그 안에 섞인 결을 바로 알아챘다. 이건 단순한 안부가 아니었다. 아침에 하나가 어떤 상태였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말투였다. 건우는 그 사실에 괜히 목 안쪽이 바짝 말랐다.“너 기억해?”그가 물었다.서하는 잠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조용히 말했다.“조각조각.”“그 메모도?”서하는 대답 대신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건우는 그 작은 반응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메모를 쓴 게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문장이 왜 남겨졌는지, 적어도 그 방향 정도는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왜 그런 걸 남겨.”건우가 낮게 묻자, 서하는 이번에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한참 동안 건우를 바라봤다.그 시선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단지 익숙한 수준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같은 패턴을 여러 번 봐온 사람처럼, 건우의 표정과 목소리, 지금 이 순간의 호흡까지 전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시선.건우는 그 눈을 마주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서하는 자기를 '처음 상대하는 사람'처럼 보지 않는다.그건 단순히 최근 몇 번 밤을 함께 보낸 정도의 익숙함이 아니었다. 더 오래된 종류의 익숙함, 혹은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거리감이 그 안에 있었다.건우는 낮게 물었다.“너… 왜 가끔 나를 되게 오래 본 사람처럼 말하냐.”서하는 아주 미세하게 눈을 깜빡였다.그 짧은 반응 안에, 처음으로 아주 옅은 망설임이 섞였다.건우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아까도 그랬잖아. 오늘 하루 힘들었겠다, 같은 말.”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가 덧붙였다.“마치 네가 다 보고 있었던 사람처럼.”서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스탠드 조명의 흐린 빛이 그녀의 얼굴 옆선을 따라 흘렀고, 그 아래 드러난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완전히 무감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건우는 그 차분함 아래에서 아주 오래된 피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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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기억하지 못하는 대화

밤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서하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그 움직임은 조용했고, 거의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건우는 그 미세한 기척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오간 말은 길지 않았고, 끝내 분명한 답으로 닫힌 것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몇 마디가 남긴 흔적은 길게 이어진 밤보다 더 진했다. 스탠드 조명 아래서 나눴던 시선, 손등 위로 아주 잠깐 겹쳐졌던 체온, 그리고 끝내 문장으로 다 열리지 않은 어떤 오래된 익숙함까지. 건우는 그 모든 것이 아직도 거실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꼈다.서하는 소파에서 일어나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옷 자락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건우는 그녀가 문 앞에 멈춰 서는 순간, 그 짧은 정지 안에 담긴 망설임까지 알아차렸다. 돌아볼지, 그대로 들어갈지, 혹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더 남길지 재는 사람의 침묵이었다.건우는 소파 끝에 앉은 채 낮게 물었다.“그냥 들어가게.”서하는 문고리를 잡은 손을 멈춘 채, 반쯤 돌아보았다. 어둠이 더 짙은 복도 쪽에 서 있는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건우는 그쪽을 향한 시선만으로도 그녀가 웃는지 아닌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서하는 늘 그랬다. 표정을 완전히 읽을 수 없게 만들면서도, 이상하게 상대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또렷하게 남기는 사람.“안 자?”그녀가 물었다.건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이 상황에 어떻게 자.”서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예전에도 그랬잖아.”그 짧은 한마디가 건우의 가슴 안쪽을 가볍게 긁고 지나갔다.예전에도. 그 말은 둘 사이에 이미 지나간 수많은 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불러냈다. 혼자 감당하겠다고 버티는 건우와, 그걸 비웃는 척하면서도 끝내 옆에 남아 있던 서하. 사건 자료를 같이 보다가 해가 뜬 적도 있었고, 아무 대화도 없이 같은 공간에서 새벽을 버틴 적도 있었다. 싸우듯 말을 주고받다가도 어느 순간 둘 다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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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커피 냄새와 이상한 잔흔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잠깐이라도 자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너무 많은 생각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머릿속까지 멈추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더 많았다. 서하가 “예전에도 그랬잖아”라고 말할 때의 목소리, 하나가 아침에 메모를 쥔 채 자기가 이상하다고 말했던 얼굴, 그리고 둘 다 같은 입술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바라보던 순간들까지.건우는 그 생각 속에서 아주 늦게 잠이 들었다.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꽤 올라와 있었다.처음에는 자기가 어디서 잠들었는지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소파 등받이에 목이 어색하게 꺾여 있었고, 몸 여기저기가 뻐근했다. 그는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실은 완전히 아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은 밤의 그림자를 거의 밀어냈고, 어젯밤 켜둔 스탠드 조명은 여전히 불이 들어온 채였다.그리고 식탁 쪽에 하나가 서 있었다.하나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있었다. 머리는 느슨하게 묶여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어젯밤보다 훨씬 흐렸다. 밤이 다 빠져나간 얼굴. 건우는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안도보다 더 큰 피로를 느꼈다.하나는 컵을 들고 뒤돌았다가, 소파에서 막 일어나는 건우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여기서 잤어?”그 말투는 완전히 하나였다.건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잠깐 졸았나 봐.”하나는 컵을 내려놓고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걱정도 있었고, 어딘가를 더듬는 듯한 낯선 공백도 있었다.“왜 그렇게 자.”“너는.”건우는 무심한 척 되물었다.“괜찮아?”하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아주 잠깐 식탁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건우를 봤다.“잘 모르겠어.”목소리가 낮았다.건우는 가슴 안이 묘하게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어젯밤 서하가 들어간 뒤, 오늘 아침의 하나가 어떤 얼굴로 나올지 그는 이미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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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늦게 오는 사람

밤은 어제보다 더 빨리 내려앉았다.해가 완전히 기운 뒤부터 집 안 공기는 조금씩 조용해졌고, 저녁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동안에도 말의 수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나는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다. 밥을 덜어 건우 앞에 놓아주고, 별 의미 없는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건우가 대답하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척도 했다. 겉으로만 보면 특별히 이상한 저녁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모든 장면 위에 아주 얇은 막 같은 것이 씌워져 있는 느낌이 있었다.말과 말 사이가 미묘하게 길었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평소보다 짧았으며, 무언가를 하다가도 문득 멍해지는 순간이 몇 번씩 있었다. 하나는 스스로도 그걸 의식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고, 그 애씀은 오히려 건우 눈에 더 또렷하게 들어왔다.건우는 모른 척했다.정확히는 모른 척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지금 이 집 안에는 건드리면 바로 금이 갈 것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나의 불안, 서하의 침묵,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자기 자신의 시선까지. 어설프게 말 한마디를 잘못 꺼냈다가는 겨우 유지되고 있는 이 기묘한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 같았다.결국 저녁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고, 하나는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방으로 들어갔다.“좀 피곤해서.”문을 닫기 직전 그녀가 남긴 말은 짧았고, 건우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붙잡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거실은 더 넓고 더 비어 보였다. 그는 한동안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가 결국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둔 채 소파로 돌아왔다.거실은 어제와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조명은 희미했고, 식탁과 소파 사이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으며, 커튼 틈 너머의 밤은 창문을 검게 덮고 있었다. 건우는 일부러 천장 등을 켜지 않았다. 집 안이 밝아지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더 또렷한 형태를 갖게 될 것 같아서였고,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이 어둠 정도는 있어야 지금의 밤을 버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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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넌 항상 늦게 온다

가볍게 던진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건우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결을 곧바로 알아챘다. 이건 안부를 묻는 사람의 어조가 아니었다. 이미 대충은 보고 있었고, 그럼에도 직접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건우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봤잖아.”서하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다 본 건 아니야.”그 말에 건우는 피식 웃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피로와 짜증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어디까지 봤는데.”서하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마치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점심 먹다가 젓가락 놓친 거.”건우는 웃음기를 거두었다.그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일이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젓가락이 식판 위로 툭 떨어졌던 일. 별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누구한테 꺼낼 이유조차 없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하는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건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너,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야.”서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짧게 웃었다. 비웃는 것도, 기분 좋게 웃는 것도 아닌, 이미 대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설명해주진 않겠다는 식의 반응.그 표정이 건우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해서 답을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건우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하나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이번에는 서하도 웃지 않았다.“오늘도 그랬고.”짧은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그 침묵이 괜히 더 거슬렸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사람 앞에 서면, 사람은 이상하게 목소리부터 조금 더 날카로워진다.“너 다 보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하는데.”그 말이 생각보다 조금 더 거칠게 튀어나왔다.서하는 그제야 시선을 건우에게 제대로 맞췄다. 어둠 속에서도 그 눈빛만큼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차갑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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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모르는 편이 나은 밤

서하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손을 펴지 못했다.방금 전까지 그 안에 남아 있던 차가운 체온이 아직도 손바닥 안쪽에 얇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손목을 붙잡았을 때마다 늘 비슷한 감각이 남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오래 갔다. 차갑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종류의 온도였다. 열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오래 식지 못한 무언가가 천천히 굳어버린 듯한 감촉. 건우는 소파에 앉은 채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가, 결국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뒤로 기댔다.스탠드 조명 아래 드리운 그림자가 천장 가까이 길게 번져 있었다.시간은 이미 새벽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고, 집 안은 다시 아주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밤의 정적은 끝났다는 느낌보다, 아직 어딘가가 덜 닫혔다는 쪽에 가까웠다. 방금 끝난 대화 역시 그랬다. 말은 분명 오갔는데, 정작 중요한 건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열리지 않은 게 아니라 열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닫혀 있는 건지도 몰랐다.건우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대화의 내용보다 서하의 말투였다.“넌 항상 나중에 알아.”“늦게 와.”“네가 와야 했던 곳.”짧은 문장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에 붙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처음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말하는 방식. 그 익숙함이 자꾸만 건우의 신경을 긁었다.그는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가, 결국 다시 몸을 일으켰다.물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너무 선명해져서, 오히려 더 피곤해질 것 같았다.그가 식탁 쪽으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복도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건우는 그대로 멈췄다.그 소리는 문이 완전히 열리는 소리도, 발소리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방 안에서 잠깐 움직였다가 멈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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