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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의 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21 - チャプター 230

275 チャプター

221. 같은 실수

건우는 그걸 보면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걸 알았다.이번엔 정말로 늦으면 안 되는 단계였다.방 안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무언가 이미 늦어버린 뒤의 공간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손에 들고 있던 약통을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서 작은 흰 알약들이 서로 부딪히며 아주 미세한 소리를 냈다. 별것 아닌 소리였는데도, 이상하게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종류의 소리였다. 약은 늘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을 안심시키는 척한다. 삼키고, 눕고, 자고, 지나가게 만들 것처럼. 하지만 어떤 것들은 시간을 늦추는 대신, 그냥 더 깊이 가라앉게만 만든다.건우는 그걸 지금 손 안에서 너무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협탁 앞에 선 채로 한참을 있다가, 그는 결국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하나는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는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표정은 아까보다 더 지쳐 보였다. 마치 방금까지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다가 결국 손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그런데 더 견디기 힘든 건, 그녀가 자기 상태를 정확히 설명하지도 못한 채 그 피로를 그냥 통째로 버티고 있다는 점이었다.건우는 약통을 손에 쥔 채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다.“이거 언제부터 있었어.”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선이 약통 쪽으로 한 번 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그 짧은 움직임 안에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분명 본 적은 있는데, 그 기억을 자기 것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의 반응. 건우는 그걸 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이건 단순히 숨기는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기 안의 정보가 끊겨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그는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대신 협탁 위에 약통을 올려두고, 바닥에 흩어진 알약들을 하나씩 주워 다시 손바닥에 모았다. 손끝이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 하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말이 없는 건 침묵이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조차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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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숨기지 않을 거야, 너한테도

건우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숨을 골랐다.사실 그는 아직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정확한 병명도, 치료 방법도, 지금 하나를 병원에 데려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었다.더 이상 이걸 하나 모르게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그게 가장 먼저였다.건우는 천천히 그녀 앞까지 다가갔다. 침대 끝에 손을 짚고 몸을 조금 숙이자, 둘 사이 거리가 가까워졌다. 하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 거리 안에서 아주 미세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건우는 그걸 느끼면서도 이번엔 물러서지 않았다.“숨기지 않을 거야.”그가 말했다.“너한테도.”하나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건우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서하한테도.”그 이름이 방 안에 떨어진 순간, 하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확실하게 무너졌다.눈동자가 아주 짧게 흔들렸고,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졌다가 닫혔다. 그 반응은 충격에 가까웠다. 건우는 그걸 보고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 자리까지 왔다는 걸 둘 다 동시에 알게 된 얼굴이었다.하나는 한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서하? 그 사람이 누군데?.”그 질문은 화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었다.오히려 너무 약해서 더 아팠다.자기가 분명 모른 척해왔고, 설명할 수 없어서 덮어두었던 무언가의 이름을 남의 입으로 들었을 때만 나오는 목소리. 건우는 그걸 듣는 순간, 괜히 목 안쪽이 메마르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물러설 수는 없었다.“네가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니잖아.”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설명은 못 해도,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하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대신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은 무너지는 사람이라기보다, 끝까지 못 본 척하던 걸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된 사람에 가까웠다. 건우는 그 짧은 침묵을 기다려주었다. 이번엔 재촉하지 않았다. 이건 답을 캐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같은 진실 앞에 서는 자리였으니까.그리고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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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같은 편

건우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하나는 여전히 손등 위의 그의 손을 내려다본 채 말을 이었다.“서하도… 같이 가야 돼?”그 질문은 너무 이상하고, 너무 슬펐고, 그래서 더 이 작품다웠다.자기 안의 또 다른 얼굴을 남의 이야기처럼 조심스럽게 꺼내는 사람.건우는 그걸 듣는 순간,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는 아주 잠깐 대답을 미루었다가, 마침내 낮게 말했다.“같이 가야 해.”그리고 더 분명하게 덧붙였다.“이제부터는 너 하나만 살리는 방식으로는 안 될 것 같아.”그 말이 끝나자 방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하나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고, 건우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 정적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늦게 도착한 합의 같은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예전처럼 모른 척할 수 없고, 누구 하나만 따로 떼어 살릴 수도 없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일상을 이어갈 수도 없다.그 사실이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이상하게 조금 선명해졌다.건우는 그제야 아주 조용히 말했다.“오늘은 병원 안 갈 거야.”하나가 고개를 들었다.건우는 이번엔 더 또렷하게 말했다.“대신 오늘 안에 다 정리할 거야.”그는 방 안을 한 번 천천히 둘러봤다.약통, 공백, 어젯밤의 흔적, 그리고 지금 하나의 얼굴.“형이 뭘 했는지, 뭘 숨겼는지, 이 약이 뭔지, 왜 상태가 더 나빠졌는지.”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낮게 덧붙였다.“오늘 안에 전부 확인하고… 내일 네 손 잡고 같이 갈 거야.”그 문장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이제부터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선언처럼 들렸다.그리고 건우는 알았다.이게 아마 자기가 형과 갈라지는 첫 번째 선택이라는 걸.거실 공기가 이상하게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건우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식탁 앞에 서 있었다. 아까 방에서 들고 나온 약통은 아직 손에 들린 채였고, 뚜껑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쪽의 알약 몇 개가 아주 미세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별것 아닌 소리였는데도, 지금은 그게 지나치게 또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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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사라지는 쪽으로 가겠지

그 말이 떨어지자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이 다시 약통으로 내려갔다가 천천히 올라왔다. 그 짧은 왕복 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놀람이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되면 피할 수 없는 무게를 받아들이는 얼굴에 가까웠다.건우는 더 돌려 말하지 않았다.“먹었어?”서하는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한 번.”그 대답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건우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언제.”“며칠 전.”그녀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그 태도는 숨기려는 사람이라기보다, 설명을 길게 이어가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어질 걸 아는 사람의 방식에 가까웠다. 건우는 약통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효과 있었냐.”서하는 의자를 끌어 앉지 않았다. 그대로 선 채 식탁 가장자리에 손끝만 얹었다. 손가락 끝에 아주 미세한 긴장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잠깐은 괜찮았어.”그 말은 건우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게 들렸다.‘잠깐 괜찮다.’사람을 가장 오래 망가뜨리는 말은 대개 그런 종류다. 완전히 낫는다는 말도 아니고, 완전히 틀렸다는 말도 아닌, 잠깐만 버티게 해주는 말. 건우는 그걸 느끼고도 성급하게 끼어들지 않았다. 서하는 시선을 떨어뜨린 채, 아주 천천히 말을 이었다.“근데 그게… 하나를 안정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해.”건우는 그 문장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서하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했다.“내가 덜 나와.”그 말이 떨어진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아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형이 선택한 방식.’병원으로 데려가 문제를 정면으로 확인하는 대신, 겉으로 보이는 하나를 더 오래 유지하는 방향. 이상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겉보기엔 조금 더 평온한 상태로 붙잡아두는 방식. 겉으로 보면 더 안전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건우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해결이 아니라,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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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너까지 포함해서

“너까지 포함해서.”그 말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었다. 배제하지 않겠다는 확인이었고, 서하를 ‘없애야 할 변수’가 아니라 함께 데리고 가야 하는 존재로 인정하는 문장이기도 했다. 서하는 그걸 듣고도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한동안 건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나도 알아야 해.”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게 할 거야.”서하는 그 대답을 곧바로 넘기지 않았다.“버틸 수 있을까.”이번엔 건우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잠깐 숨을 고르며 솔직하게 말했다.“모르지.”그 대답이 너무 정직해서인지, 서하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약했고, 체념이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결이었다. 어쩌면 이제야 자기 앞에서 누군가가 확신이 아닌 진짜 말을 하고 있다고 느낀 사람의 반응에 가까웠다.건우는 그 표정을 보다가 아주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래도 이번엔 혼자 안 보낼 거야. 하나도, 너도.”그 문장은 길지 않았지만, 이전처럼 의미심장한 척 세게 던지는 한 줄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늦게 도착한 약속처럼 들렸다. 서하는 그걸 한동안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동작은 크지 않았지만, 그 순간 둘 다 알고 있었다.이건 단순히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었다.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너무 오래 봐온 관계라는 사실과는 별개로,이제부터는 정말로 같은 방향을 선택한 관계가 되었다는 걸.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가 실패했던 자리를 이번엔 넘어서기 위해.그 선택은 달콤하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만큼 무거웠고, 그래서 더 분명했다.건우는 손에 들고 있던 약통을 내려다보다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이번엔 형처럼 안 할 거야.”서하는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다만 그 침묵이, 이번만큼은 부정이 아니라 동의에 가깝다는 걸 건우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거실에 남아 있던 공기가 쉽게 식지 않았다.아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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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둘 다 안 버린다

“형.”건우가 낮게 말했다.서하는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여기까지 왔지.”그 문장은 질문이 아니었다.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서하는 짧게 대답했다.“왔겠지.”건우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그 대신 손잡이를 조금 더 세게 잡았다.“그럼 우리도 가보면 되겠네.”그 말은 단순했다.그래서 더 확실했다.서하는 그걸 듣고 잠깐 웃었다.소리는 없었지만,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너 진짜…”말을 꺼냈다가, 끝까지 잇지 않았다.대신 고개를 저었다.“알겠다.”그 한 마디로 충분했다.건우는 더 확인하지 않았다.문을 열었다.바깥 공기가 바로 안으로 들어왔다.조금 차가웠고, 집 안보다 가벼웠다.건우는 한 걸음 밖으로 나갔다.서하는 바로 뒤를 따라 나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그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이상하게 되돌아가기 어려워진 느낌만큼은 분명하게 남았다.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차로 걸어가는 동안, 시선도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이건 선택이 끝난 뒤의 움직임이었다.그리고, 둘 다 알고 있었다.이건 협력이 아니라, 서로를 끌고 들어가는 쪽에 가까운 선택이라는 걸.차 안은 조용했다.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타이어가 도로를 긁는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내비게이션 안내도 일부러 꺼둔 상태였다. 필요 없는 소리는 전부 걷어낸 채, 둘 사이에 남아 있는 건 오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뿐이었다.건우는 앞만 보고 있었다.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손목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건 스스로도 느껴졌다. 속도를 일부러 올리지도, 그렇다고 늦추지도 않았다. 지금은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옆자리는 조용했다.서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거리의 불빛이 유리창에 스치면서, 그녀 얼굴 위로 아주 잠깐씩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 변화가 반복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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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안쪽의 공기

센터라고 불러야 할지, 그냥 오래된 건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그 장소는, 가까이 갈수록 오히려 더 형태를 감췄다. 도로에서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간판 없는 건물 정도로만 느껴졌는데, 막상 차를 세우고 내린 뒤 걸어서 다가가자 이상하게도 시선이 미끄러졌다. 병원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거 공간처럼 생활감이 묻어나는 것도 아닌데, 딱 잘라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애매하다는 건 대개 무해한 인상을 주기 마련인데, 이곳은 오히려 반대였다.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 신경을 긁는 종류의 애매함.건우는 차 문을 닫고 나서도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엔진이 멎고, 차체 안에 갇혀 있던 미세한 진동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바깥 공기가 제대로 피부에 닿았다.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해가 완전히 남아 있는 시간도 아니라서, 건물 외벽에 걸린 그림자들이 지나치게 길게 보였다. 사람의 흔적이 적은 곳은 대개 소리부터 달라지는데, 여기도 그랬다.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건 이 장소와 상관없는 바깥세상의 소리였고, 바로 근처엔 사람이 내는 생활음이 거의 없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도, 휴대폰 붙들고 웃는 목소리도 없었다. 건물은 서 있었지만, 그 안에서 시간이 움직이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서하는 차에서 내린 뒤로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건우보다 반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 거리감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누가 먼저 앞장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끌고 가는 것도 아닌 상태. 같이 걷고 있지만 같은 리듬으로 걷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했다. 건우는 입구 앞에 멈춰 선 채 유리문을 올려다보았다. 안쪽이 전혀 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명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반투명 필름이 붙은 듯 흐릿했고, 실내등도 밝지 않아서 바깥에서 보면 그저 어둑한 윤곽만 겹쳐 보였다.그는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기 전에 아주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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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지나친 평범함의 서스펜스

목소리는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들렸다.건우가 고개를 돌리자, 로비 구석이라고 해야 할지 데스크 뒤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위치에 여자가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직원인지 상담사인지 구분이 안 됐는데, 가까이서 봐도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서른 중반 같기도 하고, 마흔 초반 같기도 했다.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래서 기억에 또렷이 남지 않을 법한 얼굴. 단정한 셔츠에 짙은 재킷을 걸친 차림도 평범했고, 목소리도 높낮이가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나친 평범함이 오히려 더 신경을 거슬렀다. 사람은 보통 자기 감정을 감추더라도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게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흔적조차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여자는 건우를 보고, 이어 서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이 아주 짧게 멈췄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건우는 놓치지 않았다. 확인하는 눈이었다. 누가 왔는지, 어떤 상태로 왔는지, 이미 어느 정도 듣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 건우는 인사 대신 곧바로 물었다.“여기 맞습니까.”여자는 대답 대신 아주 옅은 고개 끄덕임을 보였다.“안쪽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그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 왜 왔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조차 생략돼 있었다. 건우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거나, 혹은 너무 적게 알고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일 테니까.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곳의 태도는 아니었다.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는 그런 건우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먼저 그 침묵을 깬 건 건우였다.“여긴 뭘 하는 데죠.”여자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질문 자체는 단순한데, 지금 그녀가 어떤 말로 대답하느냐에 따라 이 장소의 정체가 달라질 수도 있는 종류의 질문이었다.그런데 그녀가 실제로 내놓은 대답은 예상보다 짧았고, 그래서 더 불편했다.“고르는 데예요.”건우는 눈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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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얼마나 남아 있는가

여자는 그 말에 별 반응 없이 문을 열었다.안쪽에서 흘러나온 공기는 복도보다 더 차갑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더 무거웠다. 건우는 문턱을 넘으면서 이상하게도 형을 떠올렸다. 윤신우가 정말 여기까지 왔었다면, 그도 이런 공기를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아마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런데 형은 결국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건우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방 안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가운데 놓인 테이블 하나와, 그 양쪽에 의자 두 개. 벽은 비어 있었고, 조명은 밝지 않았다. 눈이 조금만 적응하면 불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게 만들 정도로 친절한 빛도 아니었다. 건우는 그 방을 한 바퀴 훑어본 뒤, 결국 의자에 앉지 않았다. 여자가 “앉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자리가 마치 어떤 절차를 시작하자는 신호처럼 느껴져서 쉽게 몸을 낮출 수가 없었다.서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왔지만, 건우와 나란히 서 있지도 않았고, 맞은편 의자에 앉지도 않았다. 테이블에서 한 걸음쯤 비켜선 자리에서 조용히 방 안을 보고 있었다. 마치 누가 먼저 자기 자리를 정하느냐를 보고 있는 사람처럼.여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별다른 권유 없이 테이블 위에 작은 장치를 하나 올려두었다. 손바닥만 한 얇은 기기였다. 병원에서 쓰는 계측 장비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전혀 낯선 모양도 아니었다. 화면은 꺼져 있었고,버튼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심한 생김새가 더 신경을 건드렸다. 과시하려는 장비는 아니었고, 그래서 더 실제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장치를 보다가 여자를 봤다.“이걸로 뭘 본다는 겁니까.”여자는 말수를 아끼는 사람처럼 짧게 대답했다.“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요.”건우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문장인데, 일부러 반만 꺼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누가.”그가 곧바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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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더는 물러서지 않는다

“점점 나오기 어려워지죠.”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서하는 그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히려 건우를 보고 있었다. 마치 그 장치를 통해 자기 상태를 확인하는 것보다, 이걸 본 건우가 어떤 얼굴을 하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은 사람처럼. 건우는 그 시선을 느끼고도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손을 장치에서 뗐다. 화면은 몇 초 더 남아 있다가, 다시 흐릿해지며 처음처럼 의미를 읽기 어려운 상태로 돌아갔다.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그 조용함은 아까와는 달랐다.설명 이전의 침묵이 아니라, 보고 난 뒤의 침묵이었다. 사람은 눈으로 확인한 뒤엔 같은 방식으로 모른 척할 수 없다. 건우는 그걸 너무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이곳은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희망을 주는 곳도 아니다.그저, 누가 더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곳이다.그게 건우에겐 무엇보다 불쾌했다.그래서 오히려 더 물러서기 싫어졌다.방 안에 내려앉은 침묵은 조금 전과는 성질이 달라져 있었다. 아직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이미 서로가 봐버린 것이 있다는 사실이 공간 전체를 눌러두고 있었다. 건우는 장치에서 시선을 떼고도 한동안 같은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떠 있지 않았지만, 방금까지 화면 위에 남아 있던 흐름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쪽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퍼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같은 공간 안에서 계속 경계를 흔들며 자리를 밀어내려는 듯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었다.그는 손을 천천히 내리며 숨을 고른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여자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시선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상태를 확인하는 눈이었다면, 지금은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확인만 하는 눈에 가까웠다. 무엇을 설명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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