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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싱그로운 이슬: Chapter 1 - Chapter 7

7 Chapters

[프롤로그] 한여름, 싱그로운 이슬이 맺힐 때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숲속,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아늑하게 자리 잡은 펜션이 하나 있었다. 은은한 풀 내음과 나무 향이 사시사철 감돌아 이름 붙여진 곳, 바로 '잔향'이었다.이 아름다운 펜션의 주인은 다름 아닌 로엘과 한소연 부부.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터를 잡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연의 절친한 친구인 이은하가 딸 이슬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이안, 이은하 부부 역시 '잔향'에 보금자리를 꾸렸다.두 부부가 한울타리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지도 어느덧 강산이 두 번은 변할 세월. 자연스레 그들의 아이들인 로운과 이슬은 핏줄보다 더 진한 소꿉친구로 자라났다.하지만 이 평화롭고 무해해 보이는 두 가족에게는, 세상에 들켜서는 안 될 거대한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오늘도 위험했어,, 이슬아."펜션 뒤뜰,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이슬의 귓가를 간지럽혔다.목소리의 주인은 로운이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흑발 아래로 흐트러짐 없는 다정한 이목구비. 그는 다정하면서도 매사에 철두철미한 성격 덕에, 제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악마의 팟줄'을 완벽하게 숨기며 살아왔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기 위해 눈동자 색을 숨기는 변장 마법은 그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철저한 규칙이었다.반면, 로운의 눈앞에서 볼을 발갛게 붉힌 채 눈을 깜빡이는 이슬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그치만.......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신이 났는걸."이슬은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만큼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지나치게 다정하고 성격이 덜렁거린다는 것. 이슬은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하거나 신이 날 때마다, 마법이 풀리며 악마의 상징인 ' 붉은 눈동자'를 불쑥 들어내고는 했다.방금 전에도 동네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다 순간적으로 눈이 붉게 변하려는 것을, 로운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슬의 앞을 가로막으며 밀착해 숨겨준 참이었다.주변 사람들은 그저 두 소꿉친구의 달달한 과보호 모멘트인 줄 알고 성화였지만, 당사자들에게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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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싱그로운 첫사랑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름을 만끽했다. 누군가는 서둘러 신발을 벗어 던진 채 바지를 걷어 올리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갔고, 또 누군가는 흐드러지게 피어난 싱그러운 수풀과 나무 열매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신이 난 것은 단연 이슬이었다. "아, 시원해.....!" 이슬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신발을 벗더니, 입고 있던 긴 치마를 허벅지께까지 과감하게 걷어 올렸다. 그리고는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뽀얀 발목과 발을 물속에 퐁당 담갔다. 찰랑이는 맑은 물결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보석처럼 부서졌다. 이슬은 내리쬐는 열기에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치렁한 머리를 묶으려는 듯 입술을 벌려 검은 머리끈을 살짝 앙-하며 다물었다. 그리고 보드랍고 하얀 두 손으로 웨이브진 금발을 한데 모아 높이 올려 묶기 시작했다. 길게 드러난 가녀린 목덜미, 입술에 물린 머리끈, 그리고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칼까지. 푸른 계곡물과 어우러진 그녀의 모든 실루엣이 마치 정교하게 그려진 한 폭의 명화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은 것은 로운이었다. 두근. 두근. 순간, 온몸을 타고 기묘하게 간질거리는 소름이 돋았다. 쿵. 쿵. 쿵.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통제 불능으로 날뛰는 심장 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 박혀 나뒹굴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낯설고 뜨거운 감각에 로운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굳어버렸다. 그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이슬이 고개를 돌렸다. 로운과 시선이 마주치자, 이슬은 특유의 회사한 미소를 싱긋 지어 보이며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리 와서 앉으라는 무언의 손짓이었다. 로운은 제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소꿉친구를 보며, 주뼛거리는 걸음으로 느리게 다가갔다. 이내 로운은 이슬의 바로 옆, 물속에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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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물살 아래 숨겨진 진심

"운아, 너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갑작스럽게 파고든 그녀의 질문에 잔잔하던 호숫가에 돌을 던진 듯, 파문은 로운의 심장까지 거세게 일렁였다. "너......가 아니라 나? 나, 나 누구랑 결혼하고 싶냐고?"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으며 로운은 황급히 이슬과 겹쳐져 있던 손을 떼어냈다.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끝이 저릿했다. 머쓱함에 헝클어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긁적이며 그는 서둘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호수 너머로 길게 늘어진 노을 빛이 눈이 시릴 정도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그냥 물어본 건데." 이슬이 짓궃은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더 다가왔다. 물기가 맺힌 속눈썹 아래로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리고 너, 귀 엄청 빨개졌어." 이슬의 지적에 로운은 홧홧해지는 볼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슬의 심장도 덩달아 불규칙하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닿아있던 손의 온기가 아직도 손등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혹시, 로운이도 나랑 같은 마음인 걸까?' '아니, 그럴리가 없어. 우린 그냥 어릴 때부터 친구잖아.' 이슬이 수줍은 상념에 잠겨 로운의 옆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 찰나였다. 정적을 깨고 귀를 찢는 듯한 경쾌하면서도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운! 이슬! 너네 또 붙어있네. 연애하냐?" 갑작스러운 난입에 로운과 이슬은 동시에 움찔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다가온 태하가 짖궃은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 그런 거 아니거든? 시끄러워 태하야." 로운은 홧홧해진 볼을 애써 감추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물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여전히 오른 열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태하는 그런 로운의 뒷모습을 보며 킥킥거렸다.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 그의 표정에는 단순한 장난기 이상의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이슬 역시 멋쩍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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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잔향의 굴레

"강태하. 선 넘지 마."그 짧은 한마디에는 로운의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태하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호선을 그렸다. 불꽃이 튀는 대치 상황이었지만, 정작 그 불꽃의 원인인 이슬은 당황한 기색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여름날의 평화롭던 호숫가는 그렇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은 태하가 짐짓 아무 일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설 때까지 계속되었다.그날 밤, 집에 돌아온 이슬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자꾸만 낮의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로운과 동시에 나뭇잎을 낚아채듯 잡았던 찰나의 손길. 심장이 터질 듯 쿵쿵거렸던 그 순간의 감각이 생생했다. 그녀는 주머니 속에 챙겨온 그 나뭇잎을 꺼내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었다.문득, 낮의 소란 끝에 로운이 태하의 귓가에 남긴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태하의 그 기분 나쁜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이슬은 결국 핸드폰을 켰다.[강태하. 아까 로운이 마지막으로 뭐라고 말했어?]잠시 후, 화면 위로 태하의 답장이 떴다.[궁금해?ㅋㅋ 그럼 내일 12시까지 창세 영화관 앞으로 와.][뭐? 그냥 알려주면 되지. 치사해 진짜.][아, 참고로 로운한테는 비밀로 하고 와. 잘자라.]태하의 뻔뻔한 태도에 이슬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 수는 없었다. 그녀는 책상에 놓인 나뭇잎을 들어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나뭇잎 끝에 닿는 그녀의 숨결이 떨리고 있었다."여름의 신 화연님, 저의 첫사랑은 이루어질까요?"간절한 속삭임과 함께 나뭇잎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이후 이슬은 침대에 몸을 느른히 기대 누웠고, 이내 그녀의 무거운 눈커풀이 감기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품에 안고 자고 있던 나뭇잎이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곧이어 옅은 연기와 함께 스스로 발화하며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나뭇잎이 타버리고 남은 은빛 잔재가 신비로운 바람을 타고 두 갈래로 나뉘어 허공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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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달콤한 거짓말의 대가

로운에게는 '이슬의 단짝 친구인 수경을 만나러 간다'는 뻔한 거짓말을 남겨두고 나온 길이었다. 거짓말을 뱉어내던 순간의 죄책감은 극장에 들어서기 무서운 속도로 휘발되어 버렸다. 이슬은 매장 한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기둥 옆에 서서 초조하게 발끝을 톡톡 거렸다. 더운 날씨 탓인지 뺨이 화끈거렸다. 로운 몰래 태하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의 심장을 주체할 수 없이 뛰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기다렸을까, 등 뒤에서 공기를 긁는 듯한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아, 많이 기다렸어?" 이슬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웅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평소와 다르게 말끔한 차림의 태하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언어에서 그녀는 어딘가 이질적인 감정이 몸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태하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슬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늘 딱딱하게 성을 붙여 부르거나, '이슬'이라고 불러도 자신에게 거리를 좁히지 않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슬이' 라니.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낯섦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 그리고 짜릿한 긴장감이 온몸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슬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고개를 살짝 가누며 물었다. "....왜 나한테 슬이라고 불러?" 그 질문에 태하는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피식 입매를 비틀어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에는 평소의 그의 모습 대신, 어딘가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분위가가 깃들어 있었다. "왜? 나는 부르면 안 돼?" 태하는 이슬에게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빨리 오라는 듯 길고 곧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손짓 하나에 이슬의 발걸음이 자석에 이끌리듯 그를 향해 움이지려던 찰나였다. 지잉- 지잉-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이슬의 핸드폰이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자신에게 연락을 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로운뿐이었다. 죄책감이 다시금 가슴을 쿡쿡 찔렀다.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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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심장이 말하는 거짓말

"어...? 어, 마음에 들어."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갑작스레 훅 끼쳐온 태하의 낯선 분위기에 이슬은 묘한 의아함을 느끼며 자리에 착석했다. 이내 묵직한 체향을 풍기며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 태하가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타이밍 좋게 상영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이내 거대한 상영관 안의 조명이 일제히 소등되며 스크린 위로 서늘한 빛이 내려앉았다. 어둠이 밀려오자마자 스크린 화면에 온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기 시작하는 이슬. 그리고 그런 이슬의 옆모습을, 태하는 조금의 숨김도 없이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이미 안다. 그녀의 옆자리는 이미 자신이 아닌 로운의 것이라는 걸. 그녀의 세상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계곡 바위 위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꼭 쥐고 있던 그 다정한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치솟아 오른, 질투라고 부르기도 구질구질한 감정이 결국 로운을 도발하게 만들었고, 끝내 영문도 모르는 그녀를 이렇게 제 곁으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참 짜치다, 강태하.' 스스로가 한없이 안쓰럽고 한심하면서도, 눈앞의 하얀 얼굴을 볼 때마다 왼쪽 가슴 깊은 곳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온전히 제 몫의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그 따가울 만큼 집요한 시선을 느낀 것일까. 이슬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태하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가 소리 없이 입모양을 벙긋거렸다. -왜? 그 순진하고 단순한 의문에 태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아득해졌다. '네가 좋아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라는 진심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이내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감정을 감추었다. 대신 앞에 놓인 카라멜 팝콘을 하나 집어 들어 달콤한 알맹이를 그녀의 입속으로 쏙 밀어넣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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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지독한 속앓이

"어? 뭐라고......?" 이슬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다. 로운에게 가지 말라고 낮게 읊조리는 태하의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투명한 눈물이 차올라 톡 하고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물기가 어려 있었다. 늘 여유롭던 그의 얼굴에 난생 처음으로 떠오른 간절함이자, 처절한 애원이었다. 하지만 이슬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태하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피식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의 위태로움은 환상이었다는 듯, 그는 순식간에 특유의 나른하고 여유로운 자태를 뽐내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장난이야, 장난. 뭘 그렇게 놀래?" "아....어, 응..." "가자. 사람들 다 빠졌어." 태하는 멍하니 굳어 있는 이슬의 어깨를 툭 치며 한 걸음 앞서 걸어 나갔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해 보였지만, 굳게 다물린 입술 끝은 미세하게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멀어지는 그의 등 뒤를 바라보며 이슬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방금 전 귓가에 닿았던 그의 숨결과, 미친 듯이 요동치던 심장 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했다. 가슴 속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태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이슬의 마음을 짓눌렀다. '정말 장난이었을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써 심호흡을 한 이슬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그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의 뒤를 쫓는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실타래 같았다. 이슬을 제치고 앞질러 가던 그 역시 잠시 상념에 빠졌다. 돌이켜보면 이슬은 항상 그랬다. 자신이 한 걸음 다가가면,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히 한 걸음 멀어지는 야속한 친구였다. 소꿉친구인 로운과 대화를 나눌 때는 아무런 허물도, 벽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조잘거리던 아이가, 유독 자신이나 다른이들이 다가와 대화에 끼게 되면 귀신같이 입을 다물었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곤란한 표정으로 뒤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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