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정신을 차린 이슬이 힘없이 로운의 이름을 불렀다. 젖은 밤공기를 타고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작고 가냘팠다.
그 소리에 놀란 로운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 이슬을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일렁이는 물기가 달빛을 받아 애처롭게 빛났다. "슬아, 정신이 들어? 괜찮아?" "운아........" "미안해. 내가 바보같이 슬이 너를 다그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전부 내 탓이야." 잠겨 드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잇던 로운은 끝내 목울대에 뜨거운 무언가가 콱 박힌 듯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소중한 존재를 잃을 뻔했다는 강한 공포와 죄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와, 로운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안고 흐느껴 울었다. 단단하기만 하던 그가 제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이슬은 창백한 입술을 끌어당겨 피식,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힘겨운 와중에도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사실 나도 너한테 거짓말했어." "...어? 거짓말?" "어제 여기에서 네가 태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너무 궁금했거든. 근데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드네. 궁금한 게 있었다면 너한테 직접 물어봤어야 했는데.....엣취!-" 말을 이어가던 이슬의 작은 몸이 순간적으로 들이닥친 오한에 사정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독기는 빠져 나갔으나 젖은 몸에 밤바람이 닿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탓이었다. "슬아, 괜찮아? 많이 추워?" "....으 조금.." "이리와, 안아줄게." 덤덤하지만 다정한 그 언어에, 이슬은 몸을 떨면서도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굳게 닫혀있던 심장이 고장 난 듯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로운은 이슬을 조심스레 일으켜 앉히더니, 거대한 날개와 제 넓은 품으로 그녀를 빈틈없이 가두어 안았다. 이슬을 가둔 로운의 단단한 팔에 힘이들어갔다.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로운의 체온과 단단한 고동이 여과 없이 이슬에게 전해졌다. 심장 터질 것 같아 미치겠는데, 뒤에서 안아주는 로운의 태도는 너무나도여유로워 보였다. 서운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와 이슬은 몽롱한 정신 통제력을 잃고 마음속 혼잣말을 덜컥 뱉어버렸다. "으... 역시 나만 좋아하나 봐." "어? 뭐라고?" 로운의 깊고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안 그래도 커다란 그의 체구가 품 안의 그녀를 완전히 집어 삼킬 듯 더 깊숙이 밀착해왔다. 이슬의 새빨개진 뺨에 시선을 고정한 채, 로운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너 좋아해." "........운아?" "친구라는 선이 있어야 널 내 곁에 두고 지킬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널 잃을 뻔하니까 그 선 따위 아무 짝에도 쓸모없더라." 그의 고백은 멈추지 않는 불도저 같았다.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 로운은 이슬의 어깨를 꽉 쥐고 가슴 깊이 묻어둔 진심을 쏟아냈다. "슬아, 7년 전쯤 우리 초등학교 졸업식 날 기억해? 그날 네가 엄마랑 이모가 만들어준 꽃다발을 들고 해맑게 웃던 모습에 반했어. 아주 오랫동안, 내 세상은 온통 너였어." ".........." "좋아해, 이슬." 속삭임과 동시에 로운이 이슬의 입술에 가볍게 제 입술을 맞추었다가 떼어냈다. 아쉬움을 달래듯 이마에 한 번, 귀여운 콧잔등에도 한 번 더 부드러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보물이라도 다루듯 애틋하고 소중함이 가득 담긴 눈빛에, 기어코 평정을 유지하려던 이슬의 입꼬리가 속절없이 위로 치솟았다. "하, 로운........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 "어. 이제 내 마음 안 숨기기로 했거든." "그니까 슬아, 넌 그냥 내 옆에..........." 로운이 무어라 대답할 찰나, 이슬은 그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그의 입술 위로 과감하게 돌진했다. "읍........!" 잠시 놀란 듯 멈칫했던 로운의 뜨거운 숨결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이슬을 덮쳐왔다. 기껏해야 로운이 했던 것처럼 가벼운 키스를 상상하며 맞닿은 입술이었으나, 로운은 그녀를 고이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허리 뒤를 바치고 있던 그의 커다란 손길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이슬의 허벅지 안쪽에 닿았고, 희고 가느다란 그녀의 다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진득하게 얽히는 타액 새로 뜨겁고 가쁜 숨결이 엉망으로 섞여 흘렀다. 벌어진 입술 틈새로 오랫동안 참아왔던 갈증을 사정없이 쏟아붓고 나서야, 젖은 소리를 내며 맞물렸던 입술이 간신히 떨어졌다. "하, 하아.........." "....나도, 나도 로운 너 좋아해." 이슬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늦은 고백을 갈무리했다. 붉은 달빛 아래 달아오른 그녀의 예쁜 뺨을 보며, 로운이 피식 웃어보였다. "나는 사랑해." 능글맞게 대꾸한 로운이 이슬을 더 깊은 곳으로 이끌듯, 다시 한 번 진하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웃옷 사이로 뜨거운 손을 밀어 넣었다. "흐읏........."안녕하세요. 작가 태이해입니다. 드디어 **『싱그로운 이슬』**이 완결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전작 『망각이 낳은 형벌』의 후일담 같은 분위기로, 조금은 가볍고 편안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는 총 6화 정도의 짧은 단편으로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인물들에게 정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분량도 예상보다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싱그로운 이슬』이라는 제목은 남자 주인공 '로운'과 여자 주인공 '이슬'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제목과 웹표지에서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만, 풋풋하고 싱그러우면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한 커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집필한 작품입니다. 오늘부로 『싱그로운 이슬』은 완결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는 현재 연재 중인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에 더욱 집중하며 작품을 이어 나가려 합니다. 그리고 사실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싶은 작품도 하나 있습니다. 우선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싱그로운 이슬』**을 사랑해 주시고 함께해 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글솜씨지만, 앞으로도 더 좋은 이야기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 작가 태이해 드림. 작가 이메일 : taeihae@naver.com 작가 인스타: @taeihae
로운에게 조개껍질을 받으며 눈물 어린 약속을 나눈 지도 어느덧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참으로 정직하고도 정성스럽게 흘러, 어리기만 했던 소년과 소녀를 어엿한 어른의 길목으로 인도했다. 이슬은 제 방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가만히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녀의 하얀 목련 같은 목선 위에는 가느다란 체인에 걸린, 낡았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경질화된 조개껍질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거울 속 조개껍질을 가만히 응시하던 이슬의 눈동자에 아스라한 과거의 조각들이 스쳐지나갔다. 5년 전, 로운의 절박하고도 뜨거웠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직후 이슬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태하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한 걸음 뒤에서, 혹은 짖궃은 장난 뒤에 진심을 숨긴 채 자신을 바라보던 태하. 그 마음을 어렴풋이 눈치챈 이상 더는 그의 절박한 짝사랑을 모른 척 놔둘 수는 없었다. 그것이 친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태하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성의였다. 조금은 쌀쌀했던 가을날, 단둘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이슬은 떨리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제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다. 로운을 향한 제 마음의 크기와, 더는 태하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는 거절의 의사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태하는 슬프지만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날이 서 있던 그의 눈매가 그날만큼은 봄날의 눈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진작 눈치채고 있었어." 태하가 피식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나즈막이 고백했다. "네 시선의 끝에는 항상 내가 아니라 로운이가 있었으니까. 널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 왜 그렇게 네 옆자리를 탐냈는지...." "어쩌면 다 내 가여운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했어, 이슬아. 그리고 내 미련한 마음마저 무겁게 받아들여 줘서 고마워." 참으로 태하다운, 쓰라리면서도 어른스러운 고백이자 사과였다. 그날 이슬은 태하와 참 뜻깊기도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했다. 서로의 앞
갑작스러운 소리에 흐트러진 호흡을 고르던 이슬의 시선이 자연스레 바닥으로 향했다. 은은한 아침 햇살이 비쳐 드는 이슬의 방 바닥 위에서, 낡았지만 맑고 영롱하게 빛을 내뿜는 조개껍질의 모습에 이슬은 의아한 듯 동그랗게 눈을 뜨며 나지막이 되물었다. "운아, 이거........ 소연 이모 꺼 아니야?" "어, 어...? 응, 그렇긴 한데....." 로운은 예상치 못한 소지품의 등장에 몹시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슬은 그저 바닥에 떨어진 조개껍질을 조심스레 주워 올려 이리저리 살필 뿐이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러 겉표면이 조금 닳고 낡았을지언정, 로엘의 푸른 마력이 단단하게 깃든 조개껍질은 여전히 신비롭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근데 다시 봐도 진짜 신기하고 예쁘다. 로엘 삼촌, 그때나 지금이나 은근히 로맨틱하다니까? 보는 안목이 아주 남달라." 이슬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눈을 반짝이자, 로운의 눈동자가 깊게 요동쳤다. 그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저도 모르게 툭, 본심을 내뱉었다. ".....예뻐?" "응, 진짜 예뻐." "그럼.... 너 이거 가질래?" "응? 가지라고? 이걸 왜 갑자기 나한테 줘? 이거 소연 이모한테는 세상에 하나뿐인 엄청 소중한 보물이잖아." 이슬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로운은 귓가부터 붉은 기가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젯밤과 오늘 아침까지 이어진 격정적인 정사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이슬의 물음에 쑥스러움이 한꼐에 다다르자, 로운은 온연한 알몸 상태로 제 눈앞에 앉아 있는 이슬의 부드러운 살결이 내심 신경 쓰이는 듯 침대보와 이불을 한꺼번에 끌어 올렸다. 스르륵. 두꺼운 이불을 제 몸에 따뜻하게 감싸 안더니, 이내 이슬의 작은 몸을 제 넓은 품에 빈틈없이 가두어 안았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에 이슬은 기분이 좋은 듯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로운의 품에 갇힌 채, 그의 단단하고 넓은 가슴팍에 제
서로의 가슴에 새겨진 낙인이 허공에서 붉고 푸른 빛을 발하며 공명하자, 방 안의 공기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급격히 뜨거워졌다. 반려의 낙인이 완전히 맞닿는 순간, 이슬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강력한 자극을 느꼈다. 온몸의 신경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발정하듯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 읏.... 로, 로운아...." 이슬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로운의 단단한 두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낙인을 통해 들이닥친 본능적인 갈증은 이성을 마비시키기 충분했다.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몸을 침대 위에서 베베 고던 이슬은, 결국 로운의 커다란 손을 잡아끌어 제 왼쪽 가슴, 잠미 문양이 새겨진 뜨거운 살결 위에 얹었다. 잔뜩 젖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년느 울먹이듯 애원했다. "나, 나 이상해........ 몸이 너무 뜨거워. 어떻게 좀 해줘, 제발....!" 그 애달픈 애원에 로운의 이성 또한 처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평소라면 그녀를 아끼고 배려하려 필사적으로 참았겠지만, 본능을 자극하는 반려의 체취와 자신을 갈망하는 이슬의 흐트러진 모습은 로운의 가슴 속 야성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 단숨에 흥분으로 가득 찬 로운의 눈동자가 한층 더 짙은 붉은빛으로 이글거렸다. "..............슬아. 나 한 번 시작하면 이제 못멈춰." 낮게 가라앉은 맹수의 목소리와 함께 로운이 이슬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동시에 그의 거침없는 손길이 얇은 옷자락을 사정없이 벗겨냈다. 이슬 역시 매달리듯 그의 셔츠를 밀어내며 벗겼고,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남지 않은 완전한 나신 상태가 되었다. 서로의 살결이 빈틈없이 맞닿자, 그들은 마치 굶주린 포식자들처럼 서로의 몸을 거칠게 물고 빨며 탐닉하기 시작했다. 아슬의 목덜미와 쇄골, 그리고 푸른 날개 문양이 새겨진 가슴을 진득하게 핥아 내리던 로운의 입술이 점차 아래로 향했다. 부드러운 가슴살을 지나 배꼽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슬이
문 뒤에서 들려오는 로운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에 이슬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잔뜩 긴장한 채 침대 시트를 꼭 움켜쥐고 있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뱉어냈다. "어....? 어, 들어와."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로운이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방금 전까지 옆집에 누워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차림이었지만, 이슬을 바라보는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이슬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린 채 눈동자만 굴렸고, 로운은 그런 이슬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와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숨결이 어젯밤의 뜨거웠던 온도를 상기시켰다. "몸은.. 좀 어때? 아픈 데는 없고?" 로운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이슬은 온몸의 살결이 다시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온몸이 뻐근해 미치겠다'는 진실을 말할 수는 없어, 이슬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아... 네 덕분에 독도 다 빠진 것 같고." "다행이다." 로운이 옅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결연한 눈빛으로 이슬을 응시했다. 무언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한, 진지하면서도 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로운이 손을 뻗어 이슬이 꼭 쥐고 있던 이불 자락을 조심스럽게 살며시 아래로 내렸다. "슬아. 혹시... 깨어나서 몸에 이상한 변화 같은 거 없었어?" "어? 변화라니?" "....가슴 근처가 아리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는 거야." 이슬은 쿵, 심장이 제 발로 향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셔츠를 내려 확인했던 그 푸르스름한 문양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동그랗게 커진 이슬의 눈동자를 확인한 로운은 확신이 섰다는 듯 제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기 시작했다. "로운...? 갑자기 옷은 왜..!!" 당황한 이슬이 눈을 가리기도 전에, 로운의 셔츠 깃이 양옆으로 벌어지며 그
로운은 조개껍질의 꺼칠한 표면을 매만지며 미소지었다. 사실 이 조개껍질은 로운의 어머니, 한소연 여사가 남편인 로엘에게 받았던 프로포즈의 증표였다. 당시 인간 세상에 잘 모르던 로엘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다가, 유독 예쁘게 빛났던 조개껍질을 발견하고는 제 마력을 쏟아부어 단단하게 경질화시킨 뒤 소연에게 건넸던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력으로 단단해진 껍질도 겉면이 조금 닳고 빛이 바랬지만, 소연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런 소연이 어느 날, 아들 로운이 이슬을 바라보는 애틋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눈치챘다. 그 눈빛에 담긴 깊은 연정을 단박에 알아챈 소연은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제 생애 가장 소중한 보물 1호인 조개껍질을 로운의 손에 쥐여주며 속삭였다. "로운아, 사랑은 타이밍이야. 이때다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네 마음을 고백하렴." "엄마, 이건.........." "엄마가 주는 선물, 네가 나중에 정말로 평생을 함깨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프로포즈할 때 주렴." 당황해하는 로운의 머리를 소연은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장난스레 윙크했다. "엄마 보물 1호지만, 우리 아들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줄 수 있어. 우리 아들 파이팅!" "엄마... 진짜 고마워요."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난 로운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조개껍질을 빤히 바라보았다. "후우.... 이제 막 스무 살인데 프러포즈는 너무 부담스러워하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린 로운이 껍질을 소중하게 서랍에 넣어두는 그 시간, 옆집 이슬의 방에서는 이슬이 찌푸린 미간을 부여잡고 눈을 떴다. "아이고, 허리야..........." 이슬은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극심한 근육통과 하체에서 밀려오는 묵직한 둔통에 신음했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몸이 이 지경인지 흐릿한 머리를 굴리던 이슬은, 이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버렸다. 어젯밤 깊은 계곡 속에서 로운과 나누었던 거칠고도 격정적인
"어...? 어, 마음에 들어."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갑작스레 훅 끼쳐온 태하의 낯선 분위기에 이슬은 묘한 의아함을 느끼며 자리에 착석했다. 이내 묵직한 체향을 풍기며 그녀의 바로 옆자리에 태하가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타이밍 좋게 상영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이내 거대한 상영관 안의 조명이 일제히 소등되며 스크린 위로 서늘한 빛이 내려앉았다. 어둠이 밀려오자마자 스크린 화면에 온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기 시작하는 이슬. 그리고 그런 이슬의 옆모습을, 태하는 조금의 숨김
로운에게는 '이슬의 단짝 친구인 수경을 만나러 간다'는 뻔한 거짓말을 남겨두고 나온 길이었다. 거짓말을 뱉어내던 순간의 죄책감은 극장에 들어서기 무서운 속도로 휘발되어 버렸다. 이슬은 매장 한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기둥 옆에 서서 초조하게 발끝을 톡톡 거렸다. 더운 날씨 탓인지 뺨이 화끈거렸다. 로운 몰래 태하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의 심장을 주체할 수 없이 뛰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기다렸을까, 등 뒤에서 공기를 긁는 듯한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아, 많이 기다렸어?" 이슬은 저도
"강태하. 선 넘지 마."그 짧은 한마디에는 로운의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태하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호선을 그렸다. 불꽃이 튀는 대치 상황이었지만, 정작 그 불꽃의 원인인 이슬은 당황한 기색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여름날의 평화롭던 호숫가는 그렇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감은 태하가 짐짓 아무 일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설 때까지 계속되었다.그날 밤, 집에 돌아온 이슬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자꾸만 낮의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로운과 동시에 나뭇잎을 낚아채듯 잡았던 찰나의
"운아, 너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갑작스럽게 파고든 그녀의 질문에 잔잔하던 호숫가에 돌을 던진 듯, 파문은 로운의 심장까지 거세게 일렁였다. "너......가 아니라 나? 나, 나 누구랑 결혼하고 싶냐고?"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으며 로운은 황급히 이슬과 겹쳐져 있던 손을 떼어냈다.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끝이 저릿했다. 머쓱함에 헝클어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긁적이며 그는 서둘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호수 너머로 길게 늘어진 노을 빛이 눈이 시릴 정도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뭘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