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全部章節:第 181 章 - 第 190 章

195 章節

181. 누명 아래

월령은 일곱 명패부터 보았다.그 곁에는 피 묻은 군보, 묵련의 베낀 글, 금이 간 가짜 패와 검은 독환이 놓여 있었다.오상궁의 감긴 손목과 연무의 부러진 손도 같은 빛 아래 있었다.향로에서는 침향이 타고 있었으나, 물건들 가까이에는 마른 피와 젖은 볏짚, 의원이 바른 약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일곱 명패에서는 오래 손을 탄 나무 냄새만 났다.철컥.연무가 묶인 손을 당겼다."소녀가 확인한 물건과 사람은 모두 이 자리에 있사옵니다."경화제가 물었다."무엇을 청하느냐."월령은 병풍 아래의 밀서를 보았다.그 곁에 일곱 명패가 있었다.예부의 기록지에는 `심월령의 청으로 섭정왕이 군을 움직였다`는 줄 바로 아래 혼사 답을 적을 빈칸이 남아 있었다.월령은 그 빈칸 위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마지막 명패 뒤의 작은 새를 두 손으로 바로 세웠다.새의 날개 한쪽은 자주 만진 듯 반질거렸다.그 패를 새겨 준 사람은 아직 군량 수레가 몇 대였는지도, 어느 인장이 거짓이었는지도 모를 터였다."죽은 이들의 집부터 다녀오게 해 주십시오."누군가는 오늘 저녁 빈 밥상을 받게 될 터였다.작은 새를 새긴 손은 명패가 돌아오는 까닭부터 들어야 했다.월령의 입술에는 핏기가 옅었으나 젖은 눈동자는 흐려지지 않았다."그 뒤에 제 이름으로 답하겠습니다."경화제의 옥필이 빈칸 위에서 멎었다.월령은 손가락 셋을 포개 일곱 명패 앞에 놓았다."사흘을 청합니다."정전 안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연무가 쇠사슬을 끌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강무진의 피 묻은 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허도겸은 남원 별원과 독고 상단 장부를 적은 쪽지를 접어 옥필 아래 밀었다.쪽지 가장자리에는 장부에서 급히 찢긴 푸른 실밥이 붙어 있었다.독고 상단의 출입란은 어젯밤 한 줄만 비어 있었고, 그 아래 찍힌 창고 인주는 아직 손에 묻어날 만큼 새것이었다.연무의 어깨가 낮게 떨렸다.숙비 뒤에 선 문상궁의 엄지도 소매 안에서 한 번 움직였다.형부 도위는 병부 참의의 빈 출석패를 두 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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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그 아이의 답

위지헌은 월령을 한 호흡 동안 보았다.눈썹 사이가 잠깐 좁아졌다. 다문 입술에도 힘이 들어갔다.이내 그 기색을 지웠다.혼사가 사흘 늦어지는 것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병풍 쪽으로 고개를 느긋하게 까딱였다."그리하겠습니다."월령의 손 안에서 두 돌이 조금 느슨해졌다.경화제의 옥필이 위지헌의 이름 옆에서 멈췄다."기다리겠느냐."위지헌이 다시 고개를 까딱였다.이번에는 턱 끝이 짧게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곧게 다문 입술 끝이 굳었고, 옥대 위에 얹힌 엄지가 은실 구름무늬를 천천히 눌렀다.경화제의 시선이 그 엄지에 잠깐 머물렀다.황제는 옥필을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굴렸다."사흘이 모자라면 닷새를 주마."위지헌의 눈이 천천히 들렸다.경화제는 붓끝을 벼루에 가지런히 고르고 있었다. 입가에만 엷은 웃음이 걸렸다.위지헌의 발끝은 월령 쪽으로 아주 조금 기울어 있었다.그는 발을 바로 놓고 옥대에서 손을 뗐다.당장 데려가고 싶은 열은 손바닥 안에 남았다.정전의 서리 하나가 붓을 들었다가, 적을 말이 없어 다시 내려놓았다.숙비가 눈을 내렸다.위명서의 손안에서 소맷단이 더 깊이 구겨졌다.경화제가 옥필을 내려놓았다."좋다."내관들이 고개를 더 낮추었다.두 거짓 군령은 진북대장군의 장계에서 떨어져 나와 묵련과 오상궁의 진술 아래 봉해졌다.묵련과 동생의 이름에는 황후전의 푸른 보호패가 놓였다.회암역 기록의 빈칸에는 `군량 쉰세 대와 호송군을 구함`이라는 먹줄이 들어갔다.숙비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위지헌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심가 대문의 붉은 봉인에는 거둘 시각이 적혔다.그 아래로 예부와 호부의 인이 나란히 찍혔다.남쪽 별원과 독고 상단 창고에는 검은 봉함패가 내려졌고, 달아난 병부 참의의 초상은 성문 네 곳으로 향했다.연무의 얼굴이 굳었다.오상궁과 연무의 이름은 서로 다른 심문방에 적혔다.오상궁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빠진 듯했다.마지막으로 나라의 조문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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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짐이 아니다

정전 밖의 햇빛은 눈이 시릴 만큼 밝았다.월령은 계단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긴장이 빠져나간 다리가 뒤늦게 떨렸다. 소매 안의 두 돌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심월령."위지헌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그는 사람들 앞에서 더 다가오지 않았다. 검은 장포가 빛을 먹은 듯 서늘했고, 은실 구름무늬만 어깨를 따라 희미하게 살아났다."숨."월령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후우…."위지헌의 시선이 소매 안에 감춘 손으로 내려갔다.월령은 그 눈길을 따라 천천히 손을 폈다.흰 돌과 검은 돌이 손바닥 위에 놓였다. 살갗에는 둥근 자국 두 개가 깊게 남아 있었다.위지헌의 손이 소매 밖으로 나왔다가 한 뼘 앞에서 멎었다.그 붉은 자국을 제 엄지로 천천히 펴 주고 싶었다.차가운 손바닥을 제 손안에 감추고 입김으로 데우고 싶은 욕망이 목 안을 뜨겁게 태웠다.월령의 아래 속눈썹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그것까지 손등으로 훔쳐 버리고 싶어 손가락이 한 번 움직였다.곁을 지나던 예부 서리가 고개를 더 숙이자 위지헌은 끝내 닿지 않았다.위지헌은 작은 비단 천을 기윤에게 건넸다."받쳐라."기윤이 천을 펼쳤다. 월령은 그 위에 두 돌을 내려놓았다.손이 비자 바람이 바로 닿았다."왕야."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내려왔다."제가 왕야의 곁에 서겠다고 정하면."월령의 말끝이 작게 흔들렸다."왕야께 너무 큰 짐이 되겠습니까."회랑에서는 황후의 행렬이 멀어졌다. 강무진은 일곱 명패를 들고 예부 서리를 따라갔다. 바닥에는 연무의 쇠사슬이 긁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위지헌은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월령만 보았다."짐이 아니다."말보다 숨에 가까운 목소리였다.위지헌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네 마음은 내가 명하지 않는다."그의 손이 다시 올라왔다가, 이번에도 닿지 않았다."네가 오면,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월령의 눈가에 고였던 물기가 아래 속눈썹을 적셨다. 눈동자는 흐려지지 않았다."사흘 뒤에 답하겠습니다.""기다리겠다."그는 더 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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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기윤이 비단의 네 귀를 모았다.세 갈래 화살촉과 두 돌이 한 겹의 천 안에서 서로 닿지 않게 놓였다.위지헌이 손바닥에 묻은 검은 쇳가루를 엄지로 문질렀다."정무에게 기병 이백을 주어라. 회암 옛길과 남원 골짜기를 닫고, 살아 있는 자는 모두 데려온다.""명 받들겠습니다.""화살의 문양은 탁본해 병부와 진북대장군에게 같은 시각에 보내라."기윤이 비단을 품에 넣었다.정전 문 안에서 고 내관이 나왔다."폐하께서 왕야를 부르십니다."위지헌이 다시 계단을 올랐다.햇빛을 등진 검은 장포가 넓은 어깨에서 발목까지 흐트러짐 없이 떨어졌다. 옥대는 곧은 허리를 단단히 감았고, 옥관 아래의 검은 머리카락은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곧은 콧날과 매끈한 턱선이 빛에 선명했다.회랑 끝에서 백자 그릇을 받치던 나인 둘이 몸을 낮췄다.한 사람은 그가 지나간 뒤에야 손에서 미끄러진 옥색 수건을 보았다. 백자 뚜껑이 받침 위에서 달각거렸고, 곁의 나인이 급히 손을 포갰다.위지헌은 돌아보지 않았다.목깃 사이에서 목울대가 한 번 느리게 움직였다. 화살촉을 쥐었던 길고 단정한 손에는 검은 가루와 마른 피가 함께 묻어 있었다.경화제는 정전 뒤 작은 편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탁자 한쪽에는 새로 봉한 밀서함이 놓였고, 그 곁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어보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손을 펴 보아라."위지헌이 손바닥을 보였다.손바닥 한가운데에는 화살촉 끝이 눌린 가느다란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심월령이 사흘을 청했지.""예.""네게 바로 답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사흘 뒤에 답하겠다 했습니다."경화제가 마지막 음절을 마치자마자 대답이 돌아왔다.경화제의 손가락이 밀서함 위에서 멎었다."거절당한 셈이구나.""거절하지 않았습니다."편전 밖에서 늙은 내관이 숨을 삼켰다.경화제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예부가 아우의 혼처를 올리기 시작한 뒤로 여러 해가 지났다.종친의 딸과 문벌가의 장녀, 공주의 벗까지 명단에 올랐다. 어느 집도 난색을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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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같은 흙먼지

검은 말의 발굽 아래에서 궁문 밖 돌가루가 튀었다.북영의 문이 열리자 정무가 투구끈을 조이며 계단을 내려왔다. 안장에는 이미 활과 짧은 창이 묶여 있었다. 말 이백 필이 영 안을 가득 채운 채 콧김을 뿜었다. 가죽 고삐와 쇠 재갈이 부딪칠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위지헌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두 장의 패를 던졌다.마구간 쪽에는 주인 없는 말 세 필이 따로 묶여 있었다. 한 필의 안장에는 검붉은 피가 넓게 말라붙었고, 다른 말의 갈기에는 부러진 화살대가 얽혀 있었다. 말은 사람이 다가갈 때마다 흰자를 드러내며 뒷발을 굴렀다.위지헌이 가장 가까운 말의 콧등에 손을 얹었다. 거칠던 숨이 손바닥 아래에서 잠시 가라앉았다. 그는 갈기에 박힌 나무 가시만 뽑아 바닥에 버렸다."회암 옛길은 네가 맡아라. 남원 골짜기에는 오십을 먼저 보낸다."정무가 패를 받아 허리춤에 나누어 찼다."죽은 자는 건드리지 말고, 숨이 붙은 자부터 옮기겠습니다.""삭원의 화살을 지닌 자가 보이면 쏘지 마라.""살려 잡으라는 말씀이십니까.""입을 열게 해야 한다."정무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영문이 다시 벌어졌다. 선두의 말이 땅을 박차자 이백 필의 발굽이 한꺼번에 울렸다. 둥, 둥. 북영의 낡은 기와에서 마른 먼지가 흘러내렸다.위지헌의 검은 말도 그 뒤를 따라 나섰다가 갈림길에서 고삐를 꺾었다.병사들이 저잣길을 가르자 좌판의 등불이 세찬 바람에 한쪽으로 누웠다. 늦은 장꾼들이 벽에 붙어 길을 비켰고, 떡을 찌던 솥에서는 흰 김이 기병의 등 뒤로 길게 찢어졌다.기병이 남문 밖으로 빠져나갈 무렵, 같은 흙먼지가 심가의 남쪽 담 밑에도 길게 눌어붙어 있었다.허도겸은 남원 별원의 문턱 앞에서 신발을 벗었다. 뒤따른 서리 둘이 장부함과 먹통을 들었다. 문을 지키던 늙은 하인이 입술을 깨물며 열쇠를 내놓았다."마지막으로 문을 연 때가 언제요?""사흘 전입니다. 바람이 세어 창을 살폈습니다."자물쇠가 철컥 열렸다.문 안에서는 오래 닫힌 집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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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비어있는 자리

위지헌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서리 둘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허도겸은 군량패가 든 상자를 그대로 둔 채 옆으로 물러났다."심 대감의 인영과 닮았습니다."위지헌이 장갑 낀 손으로 상자를 돌렸다.낮은 창에서 들어온 빛이 나무패의 홈을 훑었다. 검은 때는 모서리마다 짙었고 가운데는 옅었다. 붉은 인주만 방금 마른 것처럼 고왔다.허도겸이 서리에게 종이를 내밀었다."보이는 대로 적게."붓끝이 사각거렸다."서쪽 벽장은."늙은 하인이 열쇠 꾸러미를 뒤적였다. 세 번째 열쇠가 들어갔다. 문짝 안쪽에는 장부 다섯 권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위지헌이 눈으로 한 번 훑었다.넷째 권과 다섯째 권 사이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벌어져 있었다.허도겸이 장부를 세지 않고 빈 곳의 너비부터 종이에 재었다."한 권이 빠졌습니다."위지헌은 대답하지 않았다.바닥 한쪽에서 서리가 무언가를 집게로 집어 올렸다. 물에 젖었다가 마른 붉은 실 한 토막이었다. 끝은 검게 탔다.허도겸이 흰 천을 내밀었다."따로 싸게."벽 아래에는 작은 화로가 넘어져 있었다. 재는 비워져 있었으나 놋쇠 테두리에 붉은 섬유 한 올이 눌어붙었다. 서리가 붓으로 떼어 내자 재 냄새 속에서 기름 태운 냄새가 희미하게 일었다.문밖에서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상복 위에 잿빛 장옷을 걸친 월령이 문지방 앞에 서 있었다. 조문길에서 돌아온 얼굴은 눈 아래가 희게 지쳐 있었다. 속눈썹 끝에는 찬 바람을 맞은 물기가 남아 있었고, 단정히 감은 머리에서는 검은 잔머리 몇 올이 뺨에 붙어 있었다.월령의 시선이 상자 안으로 내려갔다.심가의 인장이 찍힌 군량패가 보였다.그녀는 묻지 않았다. 손에 들었던 흰 장갑의 손끝만 천천히 오므라들었다.등 뒤에서 조문용 가마를 받치던 가마꾼들이 일제히 눈을 내렸다. 월령은 그 시선을 느끼고도 장옷을 더 깊이 쓰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문 안의 사람들을 한 번씩 보았다.위지헌이 상자 뚜껑을 닫았다.달칵."안으로 들어가지 마라."월령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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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

월령은 섬돌을 내려가다 한 번 멈췄다.별원의 얕은 처마 아래에 위지헌이 서 있었다. 검은 장포의 어깨에는 북영에서 묻은 흙먼지가 희게 앉았고, 장갑을 벗은 손등에는 마른 피가 가늘게 번져 있었다."왕야."그가 눈만 들었다."다치셨습니까.""내 피가 아니다."짧은 대답 뒤로 바람이 지나갔다. 월령의 장옷 끈이 뺨을 스쳤다. 위지헌이 손을 들자 그녀가 아주 작게 숨을 삼켰다.그의 손은 얼굴에 닿지 않았다. 엉킨 끈 끝만 집어 어깨 너머로 넘겨 주었다."아, 난……."월령이 말끝을 접었다.위지헌은 손을 내렸다. 매끄러운 턱이 조금 굳어 있었다."가거라.""사흘은 아직 남았습니다.""알고 있다.""그러니 조금 덜 못마땅한 얼굴로 보내 주세요."그의 미간에 잠깐 거북한 빛이 스쳤다. 곧 지워졌다. 위지헌은 턱을 한 번 느리게 까딱였다."그리하겠습니다."혼사가 급하지 않은 사람처럼 짐짓 여유로운 목소리였다.가마 문이 닫힐 때 그의 손가락이 옥대 끝을 한 번 세게 눌렀다. 문짝 안쪽에 앉은 월령에게는 보이지 않았다.윤백은 보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마꾼에게 손짓했다.가마가 남쪽 담문을 나서는 동안 위지헌은 섬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누런 비단 휘장이 안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서도 그의 눈은 빈 길 끝에 남았다. 허도겸이 조사서를 들고 다가왔다가 두 걸음 뒤에서 조용히 멈췄다.위지헌이 먼저 안으로 돌아섰다."남은 장부부터 세어라."가마가 움직였다. 덜컹, 낮은 흔들림과 함께 별원의 문이 멀어졌다. 월령의 무릎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데운 돌 둘은 발치의 두꺼운 천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다.한참 뒤 월령이 손을 내렸다.손끝이 주머니 가까이 갔다가 멎었다."윤백."가마 곁을 걷던 윤백이 창 가까이 고개를 기울였다."예, 아가씨.""왕야께서 언제부터 저런 명을 내리셨습니까.""돌을 들지 못하게 하라는 명 말씀이십니까.""예.""아가씨께서 무거운 것을 들고도 무겁다 하지 않으신 뒤부터입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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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밥이 먼저다

아란이 월령의 품으로 뛰어들었다."흡."가느다란 탄성이 월령의 목에서 새었다. 작은 몸을 받아 안은 두 팔이 잠깐 흔들렸다. 청아가 얼른 아란의 허리를 받쳤다."아가씨, 아직 몸이 차십니다."아란은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고모의 목을 꼭 끌어안고 귀 가까이에 속삭였다."오늘은 안 울었어요.""누가?""어머니가요. 내일 울겠대요."마루 끝에 서 있던 서윤이 소매로 눈가를 눌렀다."저 아이가 또 없는 말을 합니다."그 곁에서 은매가 약탕기 뚜껑을 열었다. 씁쓸한 당귀 냄새가 저녁밥 냄새 사이로 번졌다."없는 말이면 왜 눈이 붉으십니까.""연기 때문이야.""부엌은 반대쪽입니다."서윤이 은매의 팔을 꼬집었다. 은매가 앗, 하고 웃음을 삼켰다.안방 문이 열렸다.유씨 부인은 허리에 얇은 솜띠를 두르고 있었다. 아직 기력이 다 돌아오지 않았으나 머리는 흐트러짐 없이 빗어 올렸고, 연갈색 저고리 깃에는 작은 매화 수가 놓여 있었다.그녀는 월령의 얼굴을 보고도 별원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밥이 먼저다."낮은 상에는 흰죽과 잘게 찢은 닭고기, 간장에 조린 연근, 소금만 살짝 뿌린 배추가 놓였다. 아란 몫의 꿀엿 하나는 접시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죽 위에는 참기름 한 방울이 둥글게 떠 있었다. 갓 찢은 닭고기에서는 흰 김이 올랐고, 무르게 익힌 연근은 젓가락이 닿자 힘없이 갈라졌다.월령이 자리에 앉자 청아가 젖은 장옷을 벗겼다. 상복의 흰 목깃이 가느다란 목을 감싸고 있었다. 바깥바람에 식은 귓불이 옅게 붉었다.유씨 부인이 죽그릇을 월령 쪽으로 밀었다."먹어라.""어머니, 별원에서…….""숟가락을 들고 말해."월령이 숟가락을 들었다.따뜻한 죽이 입 안에 닿자 굳어 있던 턱이 아주 조금 풀렸다. 그녀는 한 술을 삼키고, 또 한 술을 떴다.누구도 군량패를 묻지 않았다.아란이 꿀엿을 반으로 떼다가 손에 붙였다. 쩍, 소리가 났다."고모도 드실래요?""아란이 먹어.""왕야는 단것을 좋아해요?"상 위의 젓가락 하나가 달각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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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두 개의 돌

밤이 깊은 뒤에야 청아가 월령의 비녀를 뽑았다.검은 머리카락이 사락,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상복을 벗고 엷은 살구빛 속적삼만 입은 월령은 낮보다 더 가늘어 보였다. 목 뒤에는 온종일 비녀에 눌린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청아가 동백기름을 한 방울 손바닥에 비볐다.빗이 머리끝까지 내려갈 때마다 은은한 윤기가 번졌다."아프시면 말씀하세요.""괜찮아.""오늘만 세 번째 괜찮다고 하셨습니다."청아는 빗을 내려놓고 월령의 손목을 감쌌다.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월령의 손목 안쪽에는 조문 때 감았던 삼베 끈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청아는 따뜻한 수건을 길게 접어 그 위를 덮었다. 수건에서 쑥 삶은 냄새가 났다."따뜻한 것을 가져올게요.""발치에 있어."천 주머니 안에서 돌 둘이 나왔다. 하나는 둥글고, 하나는 모서리가 조금 깨져 있었다. 낮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월령은 한동안 그것을 보았다.청아가 화로 가까이에 돌을 놓았다."왕야께서 보내셨습니까."월령이 대답하지 않자 청아도 다시 묻지 않았다.마당에서는 은매가 약탕기를 씻고 있었다. 물이 놋그릇에 찰랑거렸다. 아란은 꿀엿을 쥔 채 잠들었고, 서윤은 그 손가락을 하나씩 펴 엿을 떼어 냈다.유씨 부인의 방에는 등잔이 꺼지지 않았다.유씨 부인은 딸의 빈 죽그릇을 한동안 곁에 두었다. 서랍 깊은 곳에서 심가의 옛 인장첩을 꺼내고도 펴 보지 않았다. 붉은 비단 표지 위에 손만 얹은 채 담장 너머 말소리를 들었다.집 안 누구도 별원의 군량패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담장 밖에서는 기윤이 회랑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윤백이 낮게 말했다."왕야께서는?""별원에 계신다.""벌써 두 시진째입니다.""허도겸이 장부를 세는 동안 정무의 보고도 기다리고 계신다."윤백이 쳐다보자 기윤은 입을 다물었다.담 밖 골목에는 엿장수가 버린 나무 막대와 말라붙은 과일 껍질이 굴러다녔다. 기윤이 발끝으로 그것을 담장 그늘에 밀었다. 왕부의 호위 둘은 행상 차림으로 맞은편 폐점포 안에 앉아 있었다."조용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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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유자향이 남은 소매

남원 별원의 불이 꺼지지 않은 시각, 청화각의 등잔에는 붉은 비단 갓이 씌워져 있었다.혜귀인 류담희는 얇게 저민 유자를 꿀에 담갔다. 옥색 치마 위로 연분홍 저고리가 부드럽게 포개졌고, 느슨히 올린 머리에는 진주잠 하나만 꽂혀 있었다. 목덜미 곁으로 짧은 잔머리가 보송하게 떠 있었다.경화제는 비스듬히 기대어 그녀의 손을 보았다."한 조각도 짐에게 주지 않는구나."담희가 유자 한 점을 집어 들었다."폐하께서는 신첩이 먹으려는 것만 탐내십니다.""그러니 맛이 있지."그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경화제가 유자를 받아 물자 꿀 한 방울이 긴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담희가 비단 수건을 찾기도 전에 그가 젖은 손끝으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눌렀다."읏, 차갑습니다.""유자는 따뜻했다.""폐하의 손이 차가우신 겁니다."담희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감쌌다. 희고 말랑한 손가락 사이에 황제의 손마디가 묻혔다. 경화제의 눈가에 짙은 웃음이 번졌다.그가 팔을 벌리자 담희는 익숙하게 그 안으로 몸을 기댔다. 풍성한 치맛자락이 용포 무릎 위에 부드럽게 눌렸다. 경화제는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를 감싸고 진주잠 아래 드러난 목덜미에 코끝을 잠시 묻었다.담희의 숨이 간지럽게 웃음으로 흩어졌다.휘장 밖에서 고 내관이 헛기침했다."폐하, 섭정왕부의 봉함이 도착하였습니다."경화제의 시선이 담희의 얼굴에 한 번 더 머물렀다.그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고 일어났다. 담희는 붙잡지 않았다. 무릎을 모아 앉은 채 붉은 진주잠만 바로 꽂았다.밀서는 청화각 밖에서 열렸다.경화제의 입가에 남았던 웃음이 천천히 지워졌다."곤원전으로 간다."황후 하문정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화안공주의 봄 예복에서 풀린 금실을 살피던 손이 문밖의 발소리에 멎었다. 병풍 곁 작은 함에는 요절한 대황자의 돌옷이 접혀 있었다. 황제가 들어서자 그녀는 바늘을 천 위에 눕히고 일어났다.황후의 머리에는 장식이 없었다. 검은 머리만 낮게 틀어 은비녀 하나로 고정했고, 자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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