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全部章節:第 191 章 - 第 200 章

436 章節

191. 등잔 뒤의 주란

곤원전 문이 닫힐 즈음, 위명서는 삼황자부의 긴 회랑을 걷고 있었다.그를 따라오던 내관이 조심스레 말했다."심 소저께서는 귀가하셨다 합니다."위명서의 발이 멎지 않았다."섭정왕은.""남원 별원에 남으셨습니다."매화가 새겨진 문짝이 쾅 닫혔다.침전 안에서 주란이 등잔 심지를 잘랐다. 짙은 남색 치마와 흰 속적삼 차림이었다. 길게 땋은 머리끝에는 붉은 댕기 대신 검은 끈이 묶여 있었다.그녀가 몸을 낮췄다."저하."위명서는 답하지 않았다. 손에 끼고 있던 옥가락지를 빼 탁자에 놓았다. 딱, 작은 소리가 유난히 컸다.주란이 차를 따르려 하자 그가 손목을 잡았다. 잔이 받침 위에서 달각 떨렸다."나가라."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은 놓지 않았다.주란이 잡힌 손목을 한 번 비틀었다. 위명서의 손가락이 즉시 느슨해졌다."그만둘까."낮게 갈린 목소리였다.주란은 물러나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겼다."제 얼굴을 보십시오."두 사람 사이의 등잔불이 흔들렸다.위명서의 시선이 처음으로 주란의 눈에 닿았다. 주란은 피하지 않았다. 눈꼬리에 바른 옅은 연지가 뜨거운 빛을 받았다.그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흡……."짧은 숨이 맞닿은 옷깃 사이에서 끊겼다. 비녀가 마룻바닥에 또르르 굴렀고, 풀린 머리카락이 위명서의 손등과 주란의 젖은 뺨을 덮었다. 동백기름 향이 뜨거워진 살결 가까이에서 짙어졌다.휘장 고리가 끼익 울렸다.침상 끝이 한 번 밀리고, 숨을 억누른 낮은 탄성이 등잔 뒤로 흩어졌다. 주란의 손톱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위명서가 속도를 늦추자 그녀가 감았던 눈을 떴다."저하."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주란은 그의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돌렸다."여기 계십시오."위명서가 마침내 눈앞의 얼굴을 보았다. 흐트러진 머리 사이로 드러난 이마, 젖은 속눈썹, 이를 악문 탓에 희어진 아랫입술이 보였다. 그는 엄지로 그 입술을 눌러 풀어 주었다.주란이 그의 손가락 마디에 입술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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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잠들지 않은 집

위명서의 침전에서 마지막 불이 낮아진 뒤에도 심가는 조용히 깨어 있었다.대문 안쪽에는 야간 호위 둘이 서 있었다. 칼집 끝이 돌바닥에 닿지 않도록 검은 끈으로 허벅지에 묶은 차림이었다.바깥 골목을 지나던 취객이 담에 손을 짚자 호위 하나가 소리 없이 몸을 돌렸다. 취객은 검은 눈을 마주치고 딸꾹질도 삼킨 채 비틀비틀 반대편으로 사라졌다.은매는 약탕기를 씻었다. 찰랑, 찰랑. 검은 물이 마당의 배수 홈을 따라 흘렀다. 아란의 방에서는 이따금 이불 차는 소리가 났고, 서윤은 잠든 아이의 손에서 꿀엿 부스러기를 털어 냈다.유씨 부인의 방만 문틈이 밝았다.그녀는 작은 탁자 앞에서 오래된 집안 장부를 펼쳤다. 넷째 장과 다섯째 장 사이에 끼워 두었던 붉은 끈이 없었다. 유씨 부인의 손가락이 빈 자리를 한 번 눌렀다.장부 끝에는 남원 별원에 보낸 쌀과 숯, 초의 수량이 해마다 같은 필체로 적혀 있었다. 지난달 기록만 다른 먹으로 덧씌워져 있었다. 유씨 부인은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가 다시 덮었다.바깥 담장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내려왔다.기윤이 창호 가까이 가지 않고 회랑 끝에 섰다."왕야께서 별원의 물건을 확인한 뒤 직접 오신답니다."유씨 부인은 문을 열지 않았다."그분답군.""날이 밝기 전 확인하실 것이 있다고만 전하셨습니다.""월령은 자느냐.""청아가 곁에 있습니다.""그 아이 방문 앞에 사람을 늘리지 마라. 깨어나면 먼저 사람 수부터 셀 테니.""예."유씨 부인은 등잔 심지를 줄였다.남원 별원의 큰방에서는 허도겸이 심가의 옛 인영과 군량패를 나란히 놓고 있었다.얇은 종이 두 장이 등불 아래 포개졌다."가운데 획이 짧습니다."서리가 붓끝으로 두 인영 사이를 가리켰다. 한쪽은 둥글게 닫혔고, 군량패의 것은 손톱만큼 벌어져 있었다.허도겸이 종이를 걷었다."다른 것은.""나무에 밴 검댕은 오래되었으나 인주는 오늘 찍은 듯합니다. 못도 새것이고, 마루는 군량패가 나온 곳만 두 번 닦였습니다."허도겸은 진짜 패의 탁본을 손바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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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한 뼘 안쪽

새벽닭이 울기 전, 남원 별원의 쪽문이 조용히 닫혔다.위지헌은 밤새 적은 조사서를 봉해 기윤에게 건넸다.위지헌의 장포 아랫단은 별원의 젖은 흙으로 무거웠다. 옥관 아래 풀린 머리 한 올이 눈썹 가까이 내려와 있었지만 그는 손대지 않았다."깼느냐.""한 번 잠에서 들었다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서원당으로 난 협문은 열지 않았다. 위지헌이 낮은 담을 넘자 장포 자락이 기와 끝을 스치며 낮게 펄럭였다. 회랑을 지나 월령의 방 앞에 선 그는 손을 들고도 곧 두드리지 않았다.문 옆 작은 신발과 아란이 두고 간 헝겊 토끼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장화를 옆으로 옮겨 토끼를 밟지 않게 했다.문 안에서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누구세요."잠에 젖은 목소리였다."나다."짧은 침묵 뒤에 문고리가 움직였다.월령은 밤겉옷의 고름 한쪽을 놓친 채 서 있었다. 풀어 내린 머리카락이 어깨 앞으로 흘렀고, 잠에서 막 깬 눈은 물기를 머금어 유난히 검었다. 한쪽 뺨에는 베갯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희고 매끄러운 얼굴에는 분기 하나 없었다. 젖은 속눈썹 아래의 눈망울만 놀란 빛으로 흔들렸고, 낮에 오래 곡한 눈가에는 가느다란 붉은 선이 남아 있었다. 월령은 몸을 물리는 대신 문을 더 열어 주었다."왕야?"위지헌의 시선이 풀린 고름에 닿았다가 즉시 문밖으로 돌아갔다.월령이 뒤늦게 고름을 묶었다."다친 데는 없으십니까.""없다.""그럼 무슨 일이……."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 딱 한 뼘 안쪽에서 멈췄다.방 안에는 데운 돌과 쑥을 태운 향, 막 잠에서 깬 사람의 따뜻한 숨 냄새가 엷게 섞여 있었다. 베개 옆에는 돌 둘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그가 그것부터 보았다.그러고는 월령의 맨발을 보았다. 차가운 마룻바닥 위에서 발가락 끝이 오므라들어 있었다."신을 신어라."월령이 아래를 내려다보고서야 제 차림을 알았다. 급히 침상 곁의 꽃신을 끌어당기다 머리끝으로 등잔을 건드렸다.위지헌이 등잔부터 바로 세웠다.월령은 급히 빗을 찾다가 탁자 끝의 물수건을 떨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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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손에 주지 않은 것

월령이 먼저 눈을 내렸다.밤겉옷의 고름을 다시 묶는 손이 두 번 미끄러졌다."청아는 가까운 방에서 잡니다.""안다."위지헌의 대답이 지나치게 빨랐다.창호지 너머에서 윤백이 짧게 헛기침했다.위지헌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못 들은 척해라.""무엇을 말씀이십니까."능청스러운 대답이 즉시 돌아왔다.월령의 입가가 떨렸다. 웃음인지 난처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위지헌은 그 작은 변화에서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왕야도 쉬셔야 합니다.""해야 할 일이 남았다.""어제부터 한숨도 안 주무셨잖아요.""누가 그러더냐.""왕야의 얼굴이요."위지헌의 손이 턱 가까이 갔다가 내려왔다. 거울을 확인하는 사람답지 않은 동작이었다.월령은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풀린 머리카락이 무릎 위로 쏟아졌다. 손목은 속적삼 끝에서 가늘고 희게 드러나 있었다."사흘 뒤에 답하겠다 해 놓고, 제가 먼저 왕야를 재우려 드네요.""내게 내리는 명인가.""청입니다."월령이 손끝으로 이불 주름을 폈다. 속눈썹이 빠르게 떨렸다.쑥불이 타닥 소리를 냈다. 월령은 이불 끝을 놓았다가 다시 쥐었다. 위지헌은 문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도 시선만은 그녀의 붉어진 귓불에 남겨 두었다.위지헌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밤새 처음 드러난 웃음이었다.그는 품에서 흰 천을 꺼냈다. 안에는 밝은 속살이 드러난 나무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다.월령이 손을 내밀자 위지헌은 그 손을 보았다.손톱 자국은 옅어졌지만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조각을 월령의 손에 놓지 않았다. 침상 옆 낮은 탁자에 내려놓았다."네 손에 주는 것이 아니다."월령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네 집에 두는 것이다. 날이 밝으면 유씨 부인께 보여 드려라.""이 조각으로 무엇을 하시려고요?"월령이 나무 조각의 새 단면 가까이 얼굴을 기울였다. 송진 냄새가 남아 있었다. 가짜라는 말을 손으로 확인하려는 듯 손끝을 가져갔다가, 끝내 천 가장자리만 눌렀다.위지헌은 베개 옆의 돌 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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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빈 수레가 나간다

동이 트기 전, 남원 별원의 바깥채에 사람이 모였다.허도겸은 밤새 쓴 조사서를 두 벌로 나누었다. 한 벌에는 군량패의 나무와 인영, 새 못과 젖은 마루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다른 한 벌의 첫 줄에는 짧은 문장만 남았다.검은 소매를 입은 내관이 황궁에서 가져온 답서를 내놓았다. 경화제의 어보 아래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정오까지 섭정왕의 처분에 맡긴다.위지헌은 답서를 허도겸 앞에 펼쳐 두었다. 허도겸이 그제야 굳었던 어깨를 조금 내렸다.남원 별원에서 심가의 군량패를 발견함.위지헌이 첫 번째 조사서에 검은 인장을 눌렀다."이것은 폐하께 바로 올려라."허도겸이 두 번째 종이를 보았다."이것도 올립니까.""남문 게시소에 붙인다."방 안의 붓 소리가 모두 멎었다."가짜임을 확인했습니다.""우리는 확인했다."위지헌이 손을 닦았다."저 패를 둔 자는 아직 모른다."정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투구와 어깨에 새벽이슬이 흥건했다."회암에서 세 명을 살려 냈습니다. 한 명은 말을 할 수 있고, 둘은 열이 높습니다.""어느 문으로 들어오고 있지.""남문으로 들이라는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동문으로 돌려 황궁 의관에게 넘겨라. 얼굴을 본 자는 네 사람을 넘기지 마라."정무가 허리를 굽혔다."남문에는 무엇을 들입니까.""수레."기윤이 마당을 향해 손짓했다.검은 포장을 씌운 죄수 수레가 끌려왔다. 바퀴에는 마른 피가 묻어 있었고, 수레 안에는 군복 한 벌과 피 묻은 붕대만 놓여 있었다.허도겸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정오에는 생존자에게 빠진 장부를 보인다고 게시해라.""심가에는 체포령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위지헌이 빈 조사서 한 장을 당겼다.붓이 종이 위를 미끄러졌다. 섭정왕 위지헌. 그 아래에 자신의 사인을 또박또박 남긴 뒤 왕부의 인장을 찍었다."정오까지 심가의 문을 넘는 자는 내 명을 거역한 것으로 적어라."붉은 인주가 종이에 깊이 배었다."그 뒤에도 장부가 오지 않으면요.""황명 지연과 증물 조작의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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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첫 번째 바퀴

첫 번째 바퀴가 별원 문턱을 넘을 때, 쇠테가 돌을 긁었다.끼이익.마른 소리가 아직 잠든 골목을 길게 훑었다. 수레 위 거적에는 오래된 피가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네 모퉁이마다 회암역 군졸의 낡은 띠가 늘어졌다.마부는 등을 구부렸고, 뒤따르는 두 사내는 상여꾼처럼 흰 베를 둘렀다. 생선 좌판을 펴는 여인도, 물지게를 내려놓은 사내도 수레를 한 번씩 보았다.갓 찐 떡의 김과 비린 물 냄새 사이로 탄 피 냄새가 지나갔다. 좌판 아래에서 졸던 개가 코를 들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주인은 목줄을 당긴 뒤 수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아무도 두 번째로 보지는 않았다.처마 밑을 걷던 기윤이 손가락 두 개를 내렸다. 떡집 문간에 앉아 있던 왕부 군사가 막 솥뚜껑을 여는 척했다. 맞은편 약초꾼은 쑥단을 뒤집었다.위지헌은 남문 누각 그림자 안에 서 있었다. 검은 장포 위로 새벽 습기가 얇게 맺혔다. 그의 시선이 수레를 지나 게시판으로 옮겨 가자 정무가 가까이 붙었다."게시문은 세 벌이 베껴졌습니다. 한 벌은 병부로, 한 벌은 삼황자부로 갔습니다. 나머지 한 벌을 든 자가 서쪽 골목으로 움직입니다."위지헌은 턱을 한 번 내렸다.기윤의 손짓이 끝나자 연조가 소리 없이 골목으로 스며들었다.삼황자부의 침전에서는 식어 가는 세숫물 냄새가 났다. 주란은 흐트러졌던 머리를 단정히 묶고 문밖에서 받아 든 종이를 두 손으로 올렸다. 손목 안쪽의 붉은 자국은 소매 속에 가려졌다.위명서는 첫 줄을 읽었다.‘남원 별원에서 심가의 군량패가 발견되었다.’그의 엄지가 젖은 인주 위를 문질렀다. 붉은 빛이 손끝에 묻었다. 어젯밤 구겨진 금침은 아직 펴지지 않은 채였다."주란."주란의 속눈썹이 들렸다. 그가 이름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예, 전하.""이 종이는 자녕궁에 보내지 마라."주란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종이를 접어 등잔불에 대자 가장자리부터 검게 오그라들었다. 위명서는 타는 종이를 보다가 그녀의 손가락에 불씨가 가까워졌을 때에야 잔을 들어 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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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불 붙은 골목

멎은 바퀴 아래로 검은 기름이 흘러들었다.마부가 고삐를 당기는 순간, 장독 하나가 달구지에서 굴러떨어졌다.쨍그랑!깨진 독 안에서 불길이 솟았다. 말이 앞발을 치켜들며 울부짖었다. 흰 베를 두른 호위가 고삐를 낚아채기도 전에 양쪽 지붕에서 화살이 쏟아졌다.타닥, 퍽!첫 화살이 거적에 박혔다. 두 번째는 마부의 어깨를 노렸다. 마부가 몸을 꺾자 화살촉이 모자를 날려 버렸다."불이다!"좌판을 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도기점 어린아이가 깨진 항아리 사이에 주저앉았다. 붉은 불이 기름을 타고 아이의 짚신 앞으로 번졌다.아이의 손에는 아침에 산 엿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놀라 쥔 주먹에서 녹은 엿물이 흘렀다. 어미는 건너편에서 아이의 이름만 되풀이해 불렀다.기윤이 지붕에서 떨어졌다.그는 아이를 겨드랑이에 끼워 내던지듯 약초 좌판 뒤로 밀었다. 뒤늦게 날아온 쇠뇌 화살이 그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흡…!"검은 천이 갈라지고 피가 번졌다. 기윤은 한쪽 무릎을 짚었다가 곧장 몸을 돌렸다. 짧은 칼이 처마 위 궁수의 발목을 베었다.골목의 떡집과 생선 좌판이 동시에 뒤집혔다. 그 아래 감춰졌던 왕부 군사들이 방패를 세웠다. 불붙은 수레를 향해 뛰던 사내 셋이 그대로 방패에 부딪혔다.떡 시루가 바닥에 엎어지며 흰 가루가 불길 위로 날렸다. 뜨거운 떡덩이가 돌바닥을 굴렀고, 군사 하나가 맨손으로 그것을 치워 달아나는 노인의 발을 비켜 주었다.쿵!위지헌은 불길 앞까지 걸어왔다. 검은 장포 자락에 불빛이 일렁였다. 강무진이 그의 앞을 막았으나, 그는 강무진의 어깨 너머로 사람부터 보았다.약초 좌판 뒤에서 아이가 울었다. 어미가 달려와 아이를 끌어안았다. 한 군졸의 소매에는 불이 붙었고, 다른 군졸이 그를 바닥에 굴려 껐다."백성부터 빼라."짧은 명이 떨어졌다.장사꾼 차림의 군사들이 골목 양 끝으로 사람을 밀어냈다.골목 남쪽 끝으로 밀려 나온 사람들 사이에 월령이 있었다.조문 무명을 안은 청아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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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동문의 칼

칼날은 말할 수 있는 사내의 목으로 곧장 들어갔다.수레에 붙어 있던 호위가 손목을 쳐냈다. 날이 빗나가 쇄골 아래를 깊이 갈랐다."악!"붕대를 감은 사내가 몸을 일으키다 약재 궤짝에 머리를 부딪쳤다. 말린 천궁과 황기가 후두둑 쏟아졌다. 회색 옷의 자는 손목이 꺾인 채로 몸을 비틀어 호위의 턱을 찼다.철컥.동문 빗장이 내려왔다. 문 안의 상인들이 한꺼번에 밀리며 비명을 질렀다. 회색 옷은 약재 더미를 걷어차고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었다."살려 줘!""길을 비켜라!"관군이 창을 세웠으나 아이를 업은 여인과 짐꾼들이 엉켜 날을 내밀지 못했다. 회색 옷은 그 틈을 갈라 시장 안쪽으로 달렸다. 벗겨진 신발 한 짝이 문턱 아래 남았다.수레 위에서는 피가 멎지 않았다.왕부 의원이 상처를 누르자 사내의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옆에 누워 있던 생존자 하나가 그의 손을 잡았다.의원은 천을 겹쳐 눌렀다가 약가루를 쏟았다. 흰 가루가 피에 닿자 곧 붉게 젖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뛰던 맥이 한 번 크게 울리고 점점 느려졌다."장목아. 장목아, 눈 떠라."장목의 입술이 달싹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피 묻은 숨이 한 번 새고,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다.그의 손을 잡은 사내가 제 가슴으로 끌어다 붙였다. 다른 생존자는 열에 들뜬 채 눈도 뜨지 못하고 장목의 이름을 따라 중얼거렸다.약재 수레가 동문을 넘은 지 반 각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남문에서 달려온 말이 시장 입구에서 미끄러졌다. 위지헌은 말이 다 멎기도 전에 내려섰다. 그의 뒤로 강무진과 윤백이 따라붙었다.수레 곁 호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전하, 소인이 지키지 못했습니다."위지헌은 그를 지나 수레 앞으로 갔다.장목의 눈은 반쯤 떠져 있었다. 방금까지 맞잡았던 두 손도 떨어져 있었다. 위지헌이 피에 젖지 않은 천을 집어 그의 얼굴 위에 덮었다."이름을 적어라."그는 남은 둘을 보았다. 한 사람은 고열에 떨었고, 다른 사람은 장목의 빈 손을 붙든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둘은 궁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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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마르지 않는 피

마르지 않은 피가 염방의 푸른 물 위로 떨어졌다.회색 옷의 사내가 천을 널어 둔 장대를 밀쳤다. 젖은 무명이 길을 가로막으며 윤백의 얼굴을 덮었다. 윤백은 칼로 천을 찢고 그대로 달렸다.어깨에서 흐른 피가 옆구리까지 내려와 있었다.사내가 염료 통을 걷어찼다.철퍽!짙은 쪽물이 바닥을 덮었다. 윤백의 발이 한 번 미끄러졌다. 사내는 담을 짚고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품에서 꺼낸 비수가 뒤로 날아왔다.윤백이 고개를 틀었다. 칼날이 뺨을 스치고 기둥에 박혔다."윽."그는 멈추지 않았다.시장 큰길에서는 위지헌의 말이 젖은 좌판을 뛰어넘었다. 사람들이 길을 열기도 전에 강무진이 앞에서 짐수레를 밀어냈다. 정무는 반대편 골목으로 말을 몰았다.과일 광주리가 뒤집혀 푸른 살구가 말발굽 사이로 흩어졌다. 위지헌은 고삐를 들어 말의 앞발을 틀었고, 길바닥에 주저앉은 장사꾼은 구르듯 벽 아래로 피했다. 그의 놀란 숨 위로 말굽이 두 번 세차게 울렸다.도망자는 염방 지붕 끝에서 뛰어내려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윤백도 같은 끝에서 몸을 던졌다. 착지하는 순간 발이 젖은 돌을 밀어 무릎이 바닥을 쳤다. 푸른 물이 소매까지 튀었다. 그는 칼집을 짚고 다시 일어났다.*같은 시각, 심가 대문 앞으로 형부의 사람이 왔다가 돌아갔다.정오까지 심가의 문을 넘는 자는 섭정왕의 명을 거역한 것이 된다 하였다. 문서를 든 손이 문턱 앞에서 멎었다가 물러났다.월령은 그 손이 돌아서는 것을 대문 안에서 보았다.멀리 저잣거리 쪽으로 연기가 한 줄 올랐다. 그가 지금 저 안에 있었다.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 심가가 흔들리면, 그가 몸으로 사 준 반나절이 헛것이 된다. 월령은 놀란 아란의 손을 잡고, 여느 날처럼 천천히 마당을 걸었다.걷는 뒷모습이 흔들리지 않아야, 문밖의 눈들도 셈을 멈춘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위지헌의 시선이 빈 지붕을 훑었다. 골목 왼쪽에는 문 닫은 쌀전, 오른쪽에는 낡은 소금 창고가 있었다. 처마 끝에 엎드린 기윤이 손바닥을 아래로 눌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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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낡은 소금 창

무너진 문짝 위로 불붙은 종이가 날렸다.강무진의 방패가 첫 칼을 받아 냈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왕부 군사들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소금 자루가 터지고 흰 가루가 연기 속으로 피어올랐다.칼 하나가 방패 가장자리를 타고 미끄러져 강무진의 뺨을 스쳤다. 가느다란 피가 턱까지 흘렀다. 그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방패로 상대의 가슴을 밀어 벽에 박았다."엎드려!"창고 일꾼 둘이 바닥에 몸을 붙였다. 칼을 든 사내가 그중 하나의 목을 잡아 일으켰다. 윤백이 던진 단검이 사내의 손등을 꿰뚫었다."악!"인질이 굴러 나왔다. 강무진이 그를 발로 밀어 방패 뒤에 넣었다.위지헌은 화로 앞으로 걸어갔다. 반쯤 탄 장부 한 권이 불 속에서 오그라들고 있었다. 그가 장갑 낀 손을 넣자 불이 소매 끝을 물었다.천장에서는 불붙은 볏짚이 떨어졌다. 정무가 칼집으로 쳐 냈으나 한 조각이 위지헌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강무진이 손으로 털어 내는 사이에도 그는 화로 안쪽의 표지를 잡아당겼다."전하!"정무가 물을 끼얹었다. 치익 소리와 함께 검은 장갑이 수축했다. 위지헌은 장부를 놓지 않았다. 젖은 표지가 갈라지고 속장 몇 장이 손 안에서 살아남았다.회색 옷을 벗어 던진 자가 뒤문으로 달렸다. 기윤이 피 묻은 어깨로 문을 막았다. 사내의 칼이 다시 들렸으나, 기윤의 발이 무릎 뒤를 걷어찼다.쿵.윤백이 팔을 비틀어 등 뒤로 묶었다. 사내의 허리에서 태의원 목패와 죽은 의원의 호적지가 함께 떨어졌다.안쪽 방에서 비단 관모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수염 없는 중년 사내 하나가 창문을 넘으려다 강무진에게 붙잡혔다. 그의 도포 안쪽에는 내수사 출입패가 달려 있었다.정무가 패를 뒤집었다."주내관입니다."주내관은 입을 다문 채 화로를 보았다. 불길이 바닥의 기름을 타고 기둥 아래까지 갔다.그때 아래에서 나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우두둑.소금 자루를 쌓아 둔 바닥 한쪽이 꺼졌다. 묶여 있던 사내와 일꾼 하나가 함께 구덩이로 미끄러졌다."사람부터 빼라."군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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