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60

170 فصول

151. 낭떠러지를 꽃밭으로

잠시 뒤, 심가 남쪽 담장에는 허술한 흔적이 남았다.은매가 급히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도록 머릿수건 한쪽이 기와에 걸렸고, 흙 묻은 작은 신발 자국이 담장 아래에서 바깥으로 이어졌다. 초비는 정무의 보호 아래 서원당 뒤 빈 방으로 옮겨졌다.진짜로 담장 밖으로 나간 것은 낡은 치마를 입은 작은 그림자였다.청아가 아니었다. 은매도 아니었다.기윤이 마련한 왕부의 여자 암위였다.월령은 그제야 처음 그 여인을 보았다.이름은 연조라 했다.키가 작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조금 있었다. 웃으면 평범한 행랑채 계집종처럼 보였지만, 눈빛은 지나치게 고요했다."은매보다 키가 조금 큽니다."월령이 말했다.연조가 고개를 숙였다."발을 접어 걷겠습니다."월령은 잠시 말을 잃었다.청아도 말을 잃었다.윤백이 진지하게 물었다."그게 됩니까?"연조는 그를 보았다."됩니다."윤백은 고개를 끄덕였다."왕부는 배울 것이 많군요."기윤이 낮게 말했다."너는 배우지 마라."연조는 담장 밖으로 사라졌다.그 뒤를 기윤과 강무진이 멀찍이 따랐다.*심가 후원에는 다시 조용함이 내려앉았다.부엌 쪽에서 늦은 설거지 소리가 났고, 행랑채 어디선가 방어멈이 불 단속을 이르는 소리가 낮게 지나갔다. 무서운 밤 위로도 집의 저녁은 저 할 일을 했다.월령은 살구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밤바람이 머리카락을 조금 흐트러뜨렸다. 그녀가 손을 올리기 전에, 누군가의 시선이 먼저 그 머리카락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위지헌이었다.그는 담장 안으로 들어와 있지 않았다. 살구나무 그림자 너머, 문밖 어둠 속에 서 있었다.꽃이 다 진 나무였다.그런데도 그의 시선은 그 나무 아래를, 계절을 잘못 읽은 사람처럼 오래 보고 있었다.월령은 그를 보지 않는 척했다. 그런데도 알고 있었다.그가 보고 있다는 것을.자신이 손을 다치지 않았는지, 숨이 너무 가쁘지는 않은지, 눈빛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그런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왕야."월령은 낮게 불렀다.담장 밖에서 대답이 왔다."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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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연이라는 글자

연조가 나루 쪽 눈들을 끌고 도는 사이, 기윤과 강무진은 배수문 앞에 다시 섰다.물길 아래의 문은 오래전에 버려진 것이었다.녹슨 쇠살 사이로 물이 스미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기윤은 등불을 낮게 들었다.문 안쪽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문선은 생각보다 젊었다.눈 밑이 깊게 패였고, 입술은 피가 마른 듯 검붉었다. 손가락 끝에는 먹물이 배어 있었고, 오른손 중지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글을 오래 쓴 손. 그리고 최근에는, 바늘을 쥔 손.기윤은 그녀의 손부터 보았다."문선."여자가 고개를 들었다."심가에서 왔습니까.""왕부다."문선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녀는 기윤 뒤의 강무진을 보았다.강무진은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쇠살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묵아는 그 옆에서 손을 비비며 문선을 보고 있었다."왕부면…"문선은 숨을 삼켰다."왕야께서도 아십니까.""알아야 할 것은 안다."기윤은 짧게 답했다."말해라. 붉은 함은 왜 미끼지."문선은 웃었다.웃음은 소리 없이 무너졌다."그 함을 심가가 받으면 소문이 납니다. 받지 않으면 삼전하의 체면을 꺾었다고 소문이 납니다. 열어 보면 향낭이 있고, 열지 않으면 향낭은 그대로 혼례의 뜻이 됩니다.""심가가 장부로 나눴다."문선의 눈이 커졌다."장부로요?""문안품으로 적고, 향낭은 따로 봉했다."문선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그 뒤에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 웃음은 조금 달랐다."심월령 아가씨가 하셨군요.""어떻게 아나.""그렇게 할 사람은 그분뿐입니다."기윤은 그녀를 보았다."왜 그리 생각하지.""다른 사람들은 함을 두고 옳고 그름을 말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은 물건을 나누셨겠지요. 약재는 약재로, 비단은 비단으로, 향낭은 향낭으로."문선은 젖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그런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사람도 그렇게 보신다고."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강무진은 이해 못 한 얼굴로도 조용히 있었다. 오늘은 제법 조용했다."누가 시켰느냐."기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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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곤원전 옛 별궁

문선은 고개를 떨궜다."제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왜 도망치지 않았지."문선의 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제 동생이 궁 안에 있습니다."또 가족.기윤은 이제 놀라지 않았다."이름.""문오.""내시인가.""예. 아직 어린 내시입니다. 조계와 같은 방에서 잤습니다."조계.기윤은 퍼즐의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는 것을 느꼈다.문선은 조계를 통해 말을 흘렸고, 조계는 은매를 기억했고, 은매는 월령의 손에 닿았다. 약점으로 묶인 사람들이 서로를 살리는 끈이 되고 있었다."나와라."기윤이 말했다.문선은 고개를 저었다."나가면 죽습니다.""여기 있어도 죽는다.""제 말이 먼저 가야 합니다."기윤은 그녀를 보았다."네 말은 네 입으로 가야 한다."문선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왕부가 저를 살릴 수 있습니까?"기윤은 잠시 침묵했다.거짓말은 쉬웠다. 그러나 위지헌의 사람들은 거짓 안심을 주지 않았다."살리려 한다."문선은 그 대답을 듣고 이상하게 안도했다.확실한 거짓보다 불확실한 진심이 더 믿을 만하다는 것을, 그녀는 궁에서 배웠다.그때 물길 바깥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돌 하나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기윤의 손이 바로 올라갔다.강무진이 묵아를 뒤로 밀었다.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왔다.강무진의 검집이 번개처럼 올라갔다. 화살은 검집에 맞고 물속으로 떨어졌다.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필요한 소리였다."뒤로."기윤이 말했다.문선은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강무진이 그녀를 부축했다."뛰지 마시오. 넘어집니다.""지금 뛰어야…""제가 큽니다. 막겠습니다."너무 단순한 말이었다. 그런데 문선은 그 말에 움직였다.기윤은 등불을 껐다.물길은 한순간 어두워졌다.어둠 속에서는 물소리와 숨소리만 남았다.그리고 칼이 칼집을 벗어나는 소리.문선은 강무진의 넓은 등 뒤에서 숨을 죽였다.싸움은 짧았다.비명이 없었다.물이 두어 번 크게 갈라지는 소리, 젖은 것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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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혼자

심가의 처마 밑 등불에는 밤새 세 번 기름을 보탰다.월령도, 유씨도 잠들지 않았다. 서원당 안쪽 방에는 약차 냄새가 고였고, 청아는 문가에서 졸다가도 월령이 움직이면 눈을 떴다."곤원전 옛 별궁이라. 오래 비워 둔 곳이라 들었다."유씨가 낮게 말했다."예."월령은 찻잔을 감싸 쥐었다.손끝의 상처 위에는, 위지헌의 말이 약보다 오래 남아 있었다.내 손을 써라."네가 그 이름에 흔들릴 거라 생각했을까."흔들렸다.가 보지도 않은 이름에 숨이 낮아졌다. 높은 단, 비, 피 냄새. 몸이 마음보다 먼저 알았다."조금은요."유씨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럼 혼자 가지 말거라.""가지 않아야 할까요.""가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가야 하는 것과, 네가 혼자 가야 하는 것은 다르다."위지헌의 말과 닮아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어머니. 제가 너무 많은 사람을 위험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유씨는 오래 집을 지켜 온 사람의 눈으로 딸을 보았다."사람을 위험하게 하는 것은 네가 아니다. 남의 약한 곳을 잡아 흔드는 자들이지."월령의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그러니 죄를 네 품에 먼저 안지 마라. 네 품은 벌써 너무 많은 것을 안고 있다."월령은 대답하지 못했다.문밖에서 정무의 목소리가 들렸다."왕야께서 오셨습니다."위지헌은 서원당 문밖에 서 있었다.옷깃은 단정했으나 눈 밑에 옅은 그늘이 있었고, 감송향 아래로 찬 밤바람 냄새가 섞여 났다."심 부인."그가 예를 갖췄다.유씨는 그를 안으로 들였다."왕야께서 이 밤에 오셨으니, 좋은 소식은 아니겠지요.""문선을 찾았소."월령의 숨이 멎었다."살아 있습니까?""살아 있다."그 한마디에 공기가 풀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서늘했다."다만 삼전하의 새벽 부름은 미끼가 아니다."월령의 손이 찻잔 가장자리를 놓쳤다.찻잔은 넘어지지 않았다. 위지헌의 손이 어느새 받쳐 있었다.그는 찻잔만 잡았다. 그녀의 손에는 닿지 않았다."송구합니다, 왕야.""다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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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그대가 나오는 문 앞에

새벽은 그렇게 열렸다.심가의 대문이 열리기 전, 부엌에서는 작은 주먹밥이 만들어졌다. 청아는 월령이 가마 안에서라도 먹을 수 있게 흰 천에 싸 넣었다.아란은 졸린 눈으로 나와 당과 하나를 몰래 월령의 손에 쥐여 주었다."왕야랑 먹어."월령은 말문이 막혔다.청아가 급히 아란의 입을 막았다."아란 아가씨.""왜? 어제 다음에 먹으라 했잖아."위지헌은 대문 밖에 서 있다가 그 말을 들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기윤이 낮게 하늘을 보았고, 윤백은 들고 있던 물주머니를 두 손으로 더 공손히 잡았다.월령은 당과를 손수건 안에 감쌌다."나중에.""꼭.""응."가마가 움직였다.경안의 새벽거리는 아직 다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죽 끓이는 김과 장터로 나가는 발소리가 골목마다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나라의 큰일은 궁 안에서 결정되는 듯해도 그 무게는 결국 이런 새벽 밥상 위로 내려앉는다는 것을, 월령은 저잣거리의 소리로 배웠다. 쌀값이 오르면 아이들의 죽이 묽어지고, 군량이 흔들리면 북문로의 마차가 멈추고, 황자의 혼사가 소문이 되면 장군가의 딸 이름이 찻집에서 팔린다.무서웠다.그러나 오늘은 그 무서움에 이름이 있었다.곤원전 옛 별궁. 그리고 그 문밖을 지키겠다는 사람.궁문 가까이 이르자 말발굽 소리가 멈췄다.위지헌이 가마 곁으로 다가왔다. 비단 문 너머로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심월령.""예.""손."월령은 잠시 멈칫했다가 손을 내밀었다.그는 이번에도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작은 흰 비단 주머니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가벼웠다."무엇입니까.""바둑돌."월령은 주머니를 열었다.검은 돌 하나. 흰 돌 하나."이걸…"뜻을 묻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는데, 위지헌 앞에서는 자꾸 묻게 되었다."판이 흔들리면 손안에서 굴려라."그는 낮게 말했다."그대가 돌을 놓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월령은 비단 주머니를 감쌌다."왕야는 어디에 놓을까요."지난밤의 질문이 다시 나왔다.이번에는 도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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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너무 깨끗합니다

문이 닫힌 뒤에도, 월령은 돌아보지 않았다.돌아보면 문밖의 사람이 먼저 생각날 것 같았다.손안에서 흰 돌과 검은 돌이 작게 부딪쳤다. 그 소리에 기대어, 그녀는 별궁 안을 보았다.바닥은 깨끗했다. 창살에는 거미줄 하나 없었다. 그런데 공기에는 오래 닫힌 방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너무 자주 쓸어 낸 방. 숨겨 둔 것을 자주 꺼내 보는 방.그대는 사람을 보거라.위지헌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월령은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보아야 할 것은 셋이었다.웃고 있는 위명서. 소매 안에 손가락을 접은 문상궁. 그리고 붉은 천이 덮인 의자. 사람은 아니었으나, 누군가의 손이 오래 얹혀 있던 물건이었다."무엇이 그리 궁금하십니까."위명서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비단 자락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월령은 속눈썹을 얕게 내리며 반걸음 물러섰다. 물러난다는 뜻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느리고 공손한 걸음이었다."예부 서리와 허 낭중은 어디에 계십니까.""오는 중입니다.""그럼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습니다."월령은 그 말대로 발끝을 문턱 가까이에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문상궁의 눈빛이 조금 움직였다."심 아가씨는 오늘도 서두르지 않는군요.""새벽에 걸음하게 하셨으니, 전하를 기다리시게 하는 일이 마음에 쓰여 그렇습니다."말은 공손했다. 발은 그대로였다.월령은 문상궁을 보았다.숙비의 상궁이 왜 이 자리에 있는가. 그 물음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내려앉았다. 숙비의 사람을 이 자리에서 몰아세우면, 예를 먼저 잃는 쪽은 자신이었다.문상궁이 고개를 숙였다."숙비마마의 명으로 별궁의 옛 물건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명은 어젯밤 내려졌습니다."어젯밤.삼전하의 부름도 어젯밤이었다.월령은 그 두 개의 어젯밤을 나란히 놓아 보고,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기다리는 사이, 하나만 묻지요."위명서가 말했다."심 아가씨는 숙부를 믿습니까."손안에서 흰 돌이 검은 돌을 가볍게 쳤다.믿는가.위지헌이 문밖을 지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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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예

"아바마마께서 은밀히 내리신 밀서가 나왔습니다."위명서의 목소리는 다시 부드러워졌다."숙부는 오래 숨겼지요. 어마마마께서는 그것을 보셨고, 예부는 절차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심 아가씨는 아직 답하지 않았습니다.""정전에서 말씀드렸습니다.""절차를 말했지, 마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월령의 숨이 가늘어졌다."혼사는 마음만으로 정하지 않습니다.""그 말이 참 슬프군요."위명서는 정말 슬픈 사람처럼 말했다."나는 심 아가씨가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위험한 목소리였다.알아본다는 말. 다르다는 말. 말해도 된다는 말.예전의 월령이라면 그 말에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의 월령은 그 말 아래 놓인 손을 보았다. 마음을 말하게 한 뒤, 그 마음의 주인이 되려는 손."소녀는 아직 어리고, 어린 마음은 결정에 늘 미숙합니다. 부모님과 윗분들의 뜻에 따르려 합니다."허도겸의 눈썹이 작게 올라갔다."그 윗분들 중에 숙부도 있습니까."답하면 안 되는 물음이었다.월령이 침묵하는 사이, 별궁 앞 돌계단에서 낮은 발소리가 멈췄다."섭정왕 전하께서 드십니다."문이 열렸다.위지헌이 들어섰다.방 안의 온도가 한 치 내려갔다. 검은 장포의 어깨에는 새벽의 찬 기운이 묻어 있었고, 옥대와 검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큰 체구가 문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별궁의 낡은 공기가 눌렸다.그의 시선이 먼저 사람들의 자리를 갈랐다. 위명서, 문상궁, 예부 서리, 허도겸, 붉은 천, 닫힌 안쪽 문.마지막에야 월령에게 닿았다.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는 데에는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짧은 눈길이었으나, 월령은 그것만으로 그가 방 안의 위험을 다 세었음을 알았다.그리고 그 눈길은 거두어지기 직전, 잠깐 느려졌다.밤을 새운 그녀의 눈 밑을 본 사람의 속도였다.월령은 밤새 조여 있던 숨이 어디쯤에서 풀리는지를 그제야 알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보다, 그 사람이 같은 방 안에 서 있다는 사실이 먼저 어깨를 내려 주었다.예부 서리 하나가 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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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제가 보겠습니다

월령은 숨을 멈추지 않았다.이번 생에는, 늦지 않는다.손안의 흰 돌을 한 번 굴렸다."전하.""말하십시오.""이 글은 너무 완벽합니다.""완벽하면 죄가 사라집니까.""아버지는 손가락 둘을 잃으신 뒤로, 급한 군보에서 긴 획이 끝까지 가지 않습니다. 전장의 글에는 늘 한 획이 모자랍니다."월령은 서신을 보았다."이 글은 끝 획이 모두 곧습니다."허도겸이 서신 가까이 다가갔다. 예부 서리도 몸을 낮췄다."그리고 이 종이는 너무 새것입니다. 옛 별궁에서 나왔다 하셨는데, 장마를 한 번도 먹지 않은 종이 냄새가 납니다.""맞습니다. 오래 닫힌 방에 있던 종이가 아닙니다."허도겸이 가장자리를 살피며 말했다.예부 서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문상궁의 시선이 서신과 월령 사이를 한 번 오갔다. 소매 안의 손가락이 하나 더 접혔다.위명서는 말없이 월령을 보았다.그 눈에서 처음으로 흥미가 걷혔다. 그 자리에 경계가 들어섰다."심 아가씨는 아버지의 글을 잘 아는군요.""아버지의 글들이 좋아 자주 보았을 뿐입니다."조심스러운 대답이 방 안에서 오래 울렸다.무서웠다. 다만 그 무서움이 이제 그녀를 물러서게 하지는 못했다."끝났느냐."위지헌의 낮은 물음이 방 안을 눌렀다. 그 안에는 참는 기색이 있었다.위명서가 천천히 웃었다."아직입니다. 숙부께서 직접 보셔야 끝납니다."그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아바마마의 밀서가 진짜라면, 숙부는 심 아가씨를 정비로 맞으셔야 합니다. 심가의 글이 역모라면, 숙부는 역적의 딸을 감싼 것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오늘 답을 하셔야겠지요."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월령은 위명서를 보았다.그의 시선은 이미 저를 지나가 있었다. 문가의 검은 장포에, 처음부터 그 자리에 두려던 것을 이제야 올려놓은 사람의 눈으로.붉은 함이 실려 오던 날의 소란도, 향낭 속의 다정한 글씨도, 그 시선 앞에 차례로 다시 놓였다.월령의 손안에서 흰 돌이 멈췄다.앞으로 나서기 전, 월령은 반 호흡만 문가를 보았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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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숨을 참지 말거라

자녕궁에서 쓰는 내지의 금선.예부 밀서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빛이었다."허 낭중.""예.""이 종이는 호부 장부에 오른 종이가 아닙니다. 금선이 있습니다."월령은 종이를 들어 빛에 비추었다. 희미한 금빛이 살아났다.한 이름이 혀끝까지 올라왔다.월령은 그 이름을 도로 삼켰다. 말하는 순간 칼끝이 되어 저에게 돌아올 이름이었다.문상궁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말해지지 않은 이름을 알아들은 얼굴이었다.월령은 문상궁을 보지 않았다."별궁에서 나온 물건이라면, 이 종이가 어느 손을 지나왔는지만 확인하면 될 듯합니다. 보관 장부와 수리 장부, 오늘 봉함한 시각이 서로 맞으면 됩니다."침묵 안에서 바깥의 바람 소리가 들렸다."저는 아직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습니다."월령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하지만 제 집안의 죄를 남이 정하게 두지는 않겠습니다."위지헌의 눈빛이 조용히 깊어졌다.위명서는 웃지 않았다.그때 별궁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그럼 네가 정해 보거라."모두가 돌아보았다.숙비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지팡이 위의 손은 차가웠고, 옥반지가 새벽빛에 희게 빛났다."심월령. 그 종이를 든 채 자녕궁으로 오너라."묻고 싶은 말이 목 안까지 올라왔다. 월령은 속눈썹을 내리며 삼켰다. 명은 이미 내려진 뒤였다."그리고 섭정왕께서는 잠시 궁문 밖에 계셔 주시지요."위지헌의 눈빛이 한순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숙비는 그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이 문 안의 답은, 이번에는 그 아이가 직접 들고 나오게 하겠습니다."위지헌은 물러서지 않았다. 따르지도 않았다.그 한참 동안, 그의 엄지가 검집 끝을 한 번 느리게 쓸었다. 무엇인가를 눌러 두는 손이었다.그리고 첫 돌을 놓듯, 낮은 목소리가 침묵 위에 놓였다."좋다."별궁 안쪽의 숨이 낮아졌다."다만 종이는 지금 열지 않는다. 예부가 봉하고, 봉한 시각을 적어라."예부 서리가 급히 붓을 들었다."비녀함도 함께 묶어라. 매듭은 새것으로 하지 마라. 손댄 것이 있으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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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고모님

자녕궁의 문은 안에서 닫혔다.월령은 문지방을 넘는 순간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빗장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소리는 작고 정확했다. 한 번. 그리고 멎음.손안에는 흰 돌과 검은 돌이 있었다. 한 손바닥 안에 있으면서도 섞이지 않았다. 다만 손금 위에서 서로의 온도만 조금씩 옮겼다.자녕궁의 안쪽은 바깥보다 어두웠다. 창은 높았고, 빛은 바닥에 닿기 전에 휘장에 한 번 걸렸다. 향은 무겁지 않았다. 무겁지 않아서 오래 남는 향이었다.외문 안쪽에는 작은 향안이 있었다. 위에 놓인 것이 없어서, 오히려 눈에 띄는 상이었다."자녕궁에 드는 봉서는 먼저 향안에 올려 기록하겠습니다."노은 내관의 말은 공손했다. 공손해서 거절하기 어려웠다.월령은 바로 손을 놓지 않았다.예부 서리 둘이 뒤에서 숨을 죽였다. 허도겸은 장부를 가슴 가까이 안고 있었다. 문상궁은 이미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선 뒤였다.그 짧은 틈에, 월령은 봉서를 향안 위에 올렸다.노은 내관이 붉은 끈과 봉한 시각을 적었다. 예부 서리도 같은 시각을 다시 적었다."문상궁께서도 함께 적어 주십시오."월령이 말했다.문상궁의 어깨가 움직이지 않았다."곤원전 옛 별궁에서부터 함께 오셨습니다. 이 길에 계셨던 분입니다."기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상궁이 먼저 말했다."적어라."그제야 예부 서리의 붓이 다시 움직였다.먹이 마르기도 전에 노은 내관은 봉서를 두 손으로 들어 월령에게 돌려주었다. 향연은 봉서에 닿지 않았다. 그러나 옅은 냄새가 붉은 끈 근처에 남았다.월령은 그것을 맡았다. 맡았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안쪽 방에서, 문상궁은 숙비의 오른편 뒤에 섰다. 채운 상궁이 찻잔을 가져왔고, 묵련 나인은 낮은 책상 앞에서 붓을 들었다. 예부 서리 둘은 낮은 자리에 무릎을 꿇었고, 붓과 부본을 든 손이 자꾸만 바뀌었다.누구도 편하지 않았다. 자녕궁은 사람을 앉혀 두고도 서 있게 만드는 곳이었다.숙비의 왼편 조금 뒤에는 어린 여인 하나가 서 있었다.자녕궁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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