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서윤은 그 밤 잠들지 못했다.자녕궁에서 받은 작은 붓은 베개맡에 놓여 있었다. 흰 붓대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떠 보였고, 끝에 매인 금실은 등잔불이 사라진 뒤에도 혼자 빛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다.서윤은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밤새 젖은 살구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멀리 행랑채 쪽에서는 늦게 돌아온 하인이 물동이를 내려놓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런 소리들이 집의 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오늘은 모든 소리가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았다. 마마께서 다시 부르실까.서윤은 붓을 손에 들었다.손바닥에 닿는 붓대는 차갑고 매끈했다. 너무 가벼워서 도리어 무거웠다. 누구도 자신에게 이렇게 곧장 물건을 내려 준 적이 없었다.어머니 한씨는 늘 말했다. 얌전해야 한다고, 월령 언니보다 먼저 나서면 안 된다고, 큰어머니 앞에서는 웃음을 낮추고 대장군 앞에서는 말을 줄이라고 했다. 손님 앞에서는 서두르지 말고, 글씨는 곧게 쓰고, 눈물은 고운 때에 흘려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서윤은 그 말들을 모두 외웠다.외우면 사랑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집 안의 모든 길은 이상하게도 월령에게 먼저 닿았다. 부엌에서 새로 찐 약식도, 포목점에서 들어온 고운 비단도, 친척 어른들의 칭찬도, 심도윤의 짧은 눈길도.월령 언니는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말을 부드럽게 하면 사람들이 더 다정하다고 했고, 눈을 내리깔면 더 가련하다고 했다. 웃지 않아도 품위가 있다 했고, 아파 보여도 마음이 깊다 했다.서윤은 거울 앞에서 그 표정을 몇 번이나 따라 해 보았다.속눈썹을 조금 천천히 내리고, 목소리를 한 치 낮추고, 손끝을 소매 안으로 넣었다. 그런데 같은 표정을 지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말은 달랐다.어린것이 벌써 꾀를 부린다.얌전한 듯해도 속이 많구나.서윤은 붓을 꼭 쥐었다.자녕궁에서는 달랐다.태후마마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글씨를 배웠느냐 물었고, 부끄럽다면서도 손은 곧다고 했다. 그 말
Terakhir Diperbarui : 2026-05-24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