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찾는 기나긴 길: Chapter 11 - Chapter 20

22 Chapters

제11장

상자의 위에는 눈에 뜨이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쪽지에 적힌 커다란 글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구나린의 범죄 증거]순간 유성준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는 떨리는 두 손으로 상자 안의 물건을 하나하나 꺼냈다. 상자 안쪽을 확인할수록 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만 갔다.유성준의 집,햇볕을 쬐며 졸고 있던 구나린이 급박한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구나린은 미간을 찌푸리고 반쯤 감은 눈으로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은 채 통화 수락 버튼을 눌렀다.“누구세요?”곧 악의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왔다.“유씨 가문 안주인이 되더니 날 잊었나 봐?”휴대폰을 쥐고 있는 구나린의 손이 멈칫했다. 곧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잊어? 내가 어떻게 잊어?”“내가 본 킬러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킬러였는데. 내가 돈을 얼마나 많이 퍼부었는데 사람 한 명 똑바로 못 죽여?”“내가 너였으면 진작 자살했어.”...구나린과 전화 건너편의 사람이 다투는 동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유리문 뒤에 소리 없이 나타났다.새로 피어난 장미도 어둠이 짙게 드리운 유성준의 눈빛을 가리진 못했다.구나린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유성준이 조용히 유리문을 열고 그녀에게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이내 처절한 비명이 유리 온실 안에 퍼졌다.“꺄악!”우르릉!거대한 천둥소리를 동반한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하인들에 의해 급히 구급차에 실려졌다.비가 내리는 밤, 구나린이 흘린 피는 바닥을 적셨고 그 피는 빗물에 쓸려 사방으로 흘러갔다.이내 검은색 구두가 희미하게 남은 혈흔을 따라 저 멀리 사라졌다.유성준의 집에서 벌어진 혼란은 멀리 영국에 있는 신연희에게 미치지 못했다.영국에 도착하고 신 회장 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신연희는 반복해서 자기 몸 상태를 체크했다.남들한테 자신의 몸에 있는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신한 후에야 안심하고 영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지난 생의 일도 이번 생의 과거의 일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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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이러한 사실을 신연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신연희는 지금 줄을 지은 드레스 앞에 서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비록 신 회장이 이미 약혼남을 점찍어두었다지만 영국에 막 도착했을 때 몸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요양에만 집중하느라 아직 약혼남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비록 요양하는 중간중간 약혼남이 따로 사람을 시켜 선물도 보내고 문병을 왔었지만 실제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신연희는 상대방의 사진만 보았을 뿐, 상대의 성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혹시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점이 있을까 걱정하며 신연희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에 유난히 신경 썼다.결국 신연희는 안전한 선택으로 무릎까지 오는 슬리브리스 홀터넥 A라인 원피스를 입었다.컬러는 은은한 핑크로 그녀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돋보이게 했다.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반듯하게 묶어올렸고 마지막으로 수수한 옥 비녀로 포인트를 줬다.웨이터가 열어 준 문 안으로 들어서자 성 안의 통창 앞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는 남자가 한눈에 들어왔다.유성준이 심연 속 얼음이라면 임원훈은 봄날의 햇살 같았다.세상에 아내를 아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게다가 임씨 가문과 같은 가족 관계가 복잡한 집안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며 신연희는 원래 신 회장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데이트를 하기 전에 신연희는 임씨 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기도 했다.임씨 가문의 공개된 자료를 보고 난 뒤 임씨 가문에 대한 신연희의 인상은 한마디로 ‘난잡하다’였다.비록 임원훈의 본가는 대대로 모두 아내를 아꼈다지만 방계 친척의 혼인 관계는 아주 난잡했고 사생아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임원훈 일가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함께 사는 게 지속되면 서로 영향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오늘 신연희는 자기 생각이 짧았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신연희가 착석하자 임원훈이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그는 자기소개를 하며 자료를 그녀에게 넘겼다. 신연희가 궁금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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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그날 밤, 유씨 일가도 구씨 일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구씨 가문은 일을 키우지 않고 잠재우려 했다. 어차피 업계 재벌 중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가문은 없었으니까.구나린의 엄마도 제 손으로 몇 명의 내연녀를 처리했었다. 그래서 제 딸의 이런 악랄한 행위를 그저 ‘극단적이었다’라고만 해석할 뿐이었다.게다가 구나린도 대가를 치르지 않았던가, 뱃속의 아이가 유산됐고 구나린도 유성준의 발길질에 불임이 될 뻔했다.유씨 가문은 유성준과 구나린의 이혼을 고집했다.여러 명을 죽인 살인범을 안주인으로 둘 수 없다는 뜻이었다.두 가문이 치열하게 다투던 때, 경찰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두 가문 사람 앞에서 구나린을 체포해 갔다.하룻밤 사이에 유씨 가문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한때 지극히 서로를 사랑했던 유씨 가문 신혼부부, 지금 아내는 감옥에 가 있고 남편은 입원해 있다.두 가문이 혼란에 빠졌지만 유성준은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유성준은 지금 그저 빨리 신연희를 찾아 사과하고 싶을 뿐이었다.하지만 신연희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신연희를 찾아내라고 보낸 사람은 돌아올 때마다 찾지 못했다는 답뿐이었다.과거 재계를 주름잡던 유성준은 연이은 충격에 결국 몸져눕고 말았다.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영혼 없는 꼭두각시 같았다.이 순간이 되어서야 유성준이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깨달았다.그는 칼잡이가 되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신연희를 지옥으로 떠밀었다.눈을 감을 때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절망에 울음 짓는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절망 어린 그녀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했더라?그녀를 무시하고 믿지도 않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유성준이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눈에 들어온 건 텅 빈 집안이었다.과거 제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여린 그녀는 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제 등으로 폴짝 뛰어오르고 제 이름을 부르곤 했다.그럴 때마다 그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업고 여기저기 걷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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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그렇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파헤칠 겨를도 없이 유성준은 급히 지구 저편의 영국 신씨 가문 별장으로 갔다.당장이라도 신연희를 만나고 싶었다.만나서 지난날 자신의 모든 잘못에 대해 신연희에게 사과하고 그녀의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그런데 영국으로 온 지 보름이 되도록 그는 신씨 가문 별장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다.신씨 가문 별장 하인들이 원수 보듯 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 바보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어쩔 수 없이 유성준은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오늘 드디어 유성준은 신연희를 보았다.그의 눈에 희열이 스쳤다. 급히 차 문을 열고 신연희에게 걸어가며 ‘연희야’하고 부르려는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신연희가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덩치 큰 한 남자가 그녀와 함께 차에서 내렸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남자는 아주 다정한 자세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쿵!유성준이 들고 있던 선물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마음 한구석에서 치밀어 올랐다.“신연희!”저 멀리 익숙한 목소리에 신연희가 얼어버렸다.뼛속 깊이 각인된 공포가 순식간에 신연희의 발끝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사랑하는 구나린이 상처를 입을 때마다 유성준은 늘 이 목소리로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부르곤 했다.품 안에 있는 신연희가 몸을 떨자 임원훈의 눈에 한기가 서렸다.임원훈은 서둘러 신연희의 등을 쓸며 안심하게 하고는 그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차 문을 닫기 전 그는 신연희의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걱정 마, 내가 해결해.”빠르게 몸을 돌린 임원훈은 다가오는 유성준의 얼굴 향해 힘껏 주먹을 내리꽂았다.예전 같았다면 유성준은 분명 바로 임원훈의 주먹을 피했을 테지만 지금의 유성준은 최근 벌어진 여러 일로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그렇게 임원훈의 주먹을 피할 수 없어 그대로 맞은 유성준은 바닥에 엎어져서 일어나려 해도 일어날 수 없었다.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임원훈은 신씨 가문 집사가 건넨 우산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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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눈앞의 다정한 두 사람을 보자 신 회장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저녁 식사 후, 신 회장은 임원훈과 함께 서재로 향했다.30분 뒤에야 임원훈은 서재에서 나와 신연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신연희는 급히 일어나 임원훈을 배웅해 줬다.분명 처음 만나는 건데도 신연희는 어쩐지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그런데 혹시나 임원훈이 자신을 점잖지 못한 여자로 생각할까 봐 걱정되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런 신연희의 아쉬움과 망설임을 임원훈이 알아챘다.임원훈은 낮게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내일 보자.”신연희의 두 눈이 반짝이며 기쁜 얼굴로 임원훈을 올려다보았다.임원훈의 눈빛에 담긴 웃음기가 더 선명해졌다. 임원훈은 다시 한번 신연희를 안아 주고 나서야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신연희는 임원훈의 차가 거대한 대문에 가려져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이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장 밖, 임원훈은 단번에 먼 구석에 있는 마이바흐를 발견했다.칠흑 같은 차창 때문에 차 안에 있는 사람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손목의 염주를 돌렸다. “사람은 너무 한가하면 안 된단 말이야.”그 후 한 달 동안 신연희와 임원훈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반면 십여 통의 급박한 연락에 서둘러 귀국한 유성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구나린이 감옥에 가긴 했다만 구씨 가문 사람들은 때때로 유씨 가문으로 쳐들어와 소란을 피우곤 했다.곱게 자라 편하게 살아오기만 한 유성준의 어머니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화병으로 입원하고 말았다.유성준의 아버지는 회사로 가는 길에 구씨 가문의 보복을 당해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연달아 터지는 사건 사고에 유성 그룹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문제 때문에 유성준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영국으로 간 유성준은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건 바로 신연희의 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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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유성준은 신연희를 좋아하고 있었다.신연희가 마지막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신연희가 사라진 걸 깨달았을 때, 신연희의 방에서 제게 써줬던 편지와 저를 그렸던 스케치가 사라진 걸 깨달았을 때, 영국에 와서 신연희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봤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연희가 약혼할 때.유성준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쫓아다니던 그 소녀에게 마음을 뺏겼다. 하지만 그 감정을 별나다고만 생각하며 마음속 깊이 억누르기만 했다.몇 번이나 억눌렀음에도 그 감정은 몇 번이고 고개를 들었다.그렇게 지금 이 순간, 사랑이란 그 감정이 모조리 터져 나온 것이다.유성준은 심장이 누군가에게 움켜쥐어지기라도 한 듯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순간 그는 무작정 2층으로 쳐들어가 신연희의 손을 잡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과거의 모든 것은 다 제 잘못이니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하고 싶었다.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유성준은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얼어있었다.새하얀 눈이 유성준의 몸 위로 수북이 쌓였다. 하지만 아무리 춥다고 해도 마음의 시림에 미치진 못했다.그는 자신을 목숨만큼 사랑하던 그 여자가 다른 남자의 곁에 서서 그 남자와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신연희의 눈빛 속에는 그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랑과 설렘이 담겨 있었다.문득 그는 아주 오래 전의 어느 비 오던 밤이 떠올랐다.그날의 비는 지금 내리는 눈만큼이나 거셌다.그날 밤도 오늘처럼 건물 하나, 창 하나 너머였다.그와 구나린이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관계를 맺을 때 신연희는 비바람 속에서 둘을 보며 밤새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날 밤 유성준은 신연희의 눈에 비친 절망이 점점 더 짙어지는 걸 보았다. 신연희는 결국 눈을 감고 쓰러졌었다.지금에서야 그는 그때 신연희의 기분이 어땠을지 느껴보게 되었다.비로소 그녀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절망을 알게 되었다.성 앞에 서 있는 눈사람과 같은 유성준의 모습은 점차 많은 하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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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그날의 쏟아지던 눈으로 인해 유성준은 다시 고열과 혼수상태에 빠졌다.혼수상태 중에도 유성준은 신연희의 이름을 불렀다.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비서는 인맥을 동원해 병원에 와서 유성준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신연희에게 부탁했다.그러나 비서가 건네받은 건 임원훈이 하인을 시켜 보낸 녹음 펜 하나뿐이었다.고요한 방 안에 유성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다.유성준은 손에 들린 녹음 펜을 한참 쳐다보다가 마침내 버튼을 눌렀다.한동안 잡음이 흐르다가 이내 신연희의 목소리가 유성준의 귀에 꽂혔다.신연희의 말에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구나린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 사과받지 못했겠죠. 사람은 늘 이렇다니까요. 진실이 밝혀지고 가진 걸 잃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하죠. 이런 때늦은 후회 따위 필요하지 않아요. 귀찮아지기만 할 뿐 아무 소용 없으니까 과거의 그런 일들로 계속 유성준 씨와 얽히고 싶지 않아요. 다신 오가지 않고 다신 만나지 않는 것, 이거야말로 유성준 씨와의 가장 좋은 결말이에요.”길지 않은 녹음을 유성준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며 이 녹음이 조작된 흔적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망상을 했다.그러나 유성준은 신연희의 목소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듣자마자 이건 조작된 게 아닌 진짜 신연희의 목소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조작됐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유성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녹음된 그녀의 말에는 증오조차 없었다.그 담담한 말투가 유성준에게 똑똑히 알려주는 듯했다.‘포기해, 너랑 신연희는 이제 끝이야’라고.팟!유성준은 손에 든 녹음 펜을 바닥에 힘껏 내팽개쳤다.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유성준은 가슴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소리를 듣고 달려온 비서는 유성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비서가 입을 떼기도 전에 병상 위의 남자는 소리쳤다.“나가!”병실 문이 다시 닫히고 유성준은 절망에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의 눈에는 후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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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하인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뒤돌아 쌓인 선물을 처리했다.유성준은 선물이 반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속 보내라는 지시만 내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임씨 가문으로만 보내질 줄 알았던 임원훈의 예상과 달리 유성준은 아예 선물을 들고 파티에 나타났다.그건 임씨 가문과 오래 알고 지내던 가문에서 주최한 파티로 신연희가 처음으로 임원훈의 아내로 참석하는 파티이기도 했다.신연희가 입은 빨간 드레스가 임원훈의 앞주머니에 꽂힌 빨간 행커치프와 잘 어울렸다.신연희의 중지에서 반짝이는 25캐럿 루비는 임원훈이 그녀의 25번째 생일 선물로 준 것으로 파티에 참석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그녀가 임원훈의 팔짱을 끼고 등장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물론 구석에 있던 유성준의 시선 또한 사로잡았다.사람들 속에서 밝고 환하게 웃는 신연희를 바라보자니 유성준의 눈빛에는 씁쓸함이 스쳤다.신연희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과거 신연희는 정말 잘 웃는 아이였다.그녀의 웃음은 해피 바이러스처럼 유성준의 기분이 아무리 바닥을 쳐도 그녀의 웃음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그러나 유성준이 신연희의 마음을 거절하고 구나린과 사귄 후로 신연희는 유성준 앞에서 뭘 하든 조심스러워졌다.선물을 든 유성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얇은 선물 박스가 그의 손에 구겨질 뻔했다.이번 파티의 중요 인물인 임씨 가문 안주인에게 하객들은 각자 선물을 건넸다.유성준도 그리로 발을 내디뎠다.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임원훈이 한 발 먼저 신연희를 감싸안으며 2층의 룸으로 향했다.“연희야!”유성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으며 서둘러 쫓아가려 했다.그러나 덩치 큰 보디가드 두 명이 팔을 뻗어 그를 막아 나섰다.임씨 가문의 집사가 유성준의 바로 앞에 섰다.“유 대표님,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사모님께 무슨 짓을 하셨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임 대표님께서 과거 일로 유 대표님을 매장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이미 체면은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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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이러한 파티장에서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신연희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임원훈은 입구마다 많은 보디가드를 배치해 두었다.혹시라도 유성준이 쳐들어올까 봐.그런데 예상외로 유성준은 나타나지 않았다.집사의 보고를 들은 임원훈은 놀라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집사에게 사람을 시켜 계속 지키고 있을 것을 요구했다.이번 신연희의 생일 파티는 유난히 성대하게 치러졌다.임원훈은 영국 내의 모든 광고판에 생일 축하 영상을 띄웠을 뿐만 아니라 성 둘레에 불꽃을 가득 배치해 신연희가 촛불을 부는 순간 터지도록 준비했다.게다가 성 전체를 신연희가 좋아하는 각종 꽃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다.하객들이 보내온 생일 선물은 산처럼 쌓여 임원훈이 신연희를 위해 특별 주문한 성 모양의 케이크만큼이나 높았다.생일 파티 절정의 순간, 신연희는 임원훈이 수억 원을 들여 산 ‘트루 러브’ 목걸이를 착용했고 임원훈과 함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촛불이 꺼지는 순간, 성 밖 하늘 가득 불꽃놀이가 시작됐다.그 불꽃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오래도록 하늘을 수놓았다.하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신연희와 임원훈은 파티의 호스트로 성의 대문 앞에서 하객을 배웅했다.신연희가 뭐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하늘 위로 갑자기 수많은 드론이 떠오르더니 빛을 내며 여러 모양을 만들어 냈다.신연희는 본능적으로 옆에 서 있는 임원훈을 바라보며 또 그가 준비한 것이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임원훈은 고개를 저었다. 신연희를 위해 따로 드론 쇼를 준비하긴 했지만 지금은 시작할 타이밍이 아니었다.바로 그때 아직 떠나지 않은 하객들이 갑자기 감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세상에, 너무 예뻐요!”“누군가한테 고백하는 모양 같은데요?”“정말 로맨틱한 아이디어네요!”그 말을 듣자 신연희와 임원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무의식적으로 하늘 위의 드론을 바라보았다.보면 볼수록 드론이 이루는 모양이 낯익다고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신연희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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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유성준은 임원훈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임원훈은 자제력을 잃고 몇 번이고 주먹을 유성준에게 내리꽂았다. 달려온 집사가 말리지 않았다면 유성준은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임원훈은 제 손에 난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땅에 널브러져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남자를 냉랭하게 내려다보았다.“대체 연희가 얼마나 싫으면 이렇게 매번 상처를 주는 거야!”“오늘 연희의 생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지 알아? 네 그 잘난 드론 쇼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 거고 그 사람들이 연희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긴 하냐고!”“연희가 세상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아야 속이 시원하겠어?”“그... 그게 아니라...”유성준은 몸부림치며 바닥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입을 여는 순간 피가 먼저 비집고 나왔다.그 순간 임원훈이 유성준의 가슴을 걷어찼다.“입 다물어. 유성준, 잘 들어. 연희만 아니었으면 네가 영국에 발붙이던 그날 내가 너 죽여버렸을 테니까.”임원훈의 발길질에 유성준은 완전히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임원훈은 그 자리에 서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오늘은 연희의 생일일 뿐만 아니라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기도 해!”윙윙유성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유성준은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무슨 힘인지 유성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임원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어떻게 애를 임신시켜! 연희가 얼마나 어린데!”임원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데려온 경호원에 의해 유성준이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다.“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고? 연희는 날 사랑하고 나도 연희를 사랑하니까! 우리 같이 아이를 키워나갈 거니까!”“그러는 넌 어떻게 몸도 안 좋은 연희를 냉동창고에 가둘 수 있었지? 또 어떻게 죽도록 연희를 때릴 수가 있었냐고!”“신씨 가문에서는 연희를 돌봐달라고 했는데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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