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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보스의 은밀한 비밀: Chapter 81 - Chapter 90

129 Chapters

080.

"지금이라도 제대로 안 앉으면 당신들 보스 이 흙바닥에 머리까지 박아야 해요. 그리고 또 토 달면 내가 속옷까지 다 벗길 건데. 알몸으로 혼나는 모습이 보고 싶으신가 봐들." "무릎 꿇고 앉, 앉았습니다. " "자, 잘 앉아있습니다...!" "제대로 보고 있습니다...!" 백도혁을 이 자리에서 '다' 벗길 수 있는 존재. 빌어봤자 더 큰 벌로 되돌려줄 뿐인 사람. 표정도 변하지 않고 말로 언짢아하는데도 소름 끼칠 정도로 두려웠다. 아까 도혁이 뛰어간 후, 기찬이 꼭 사람이 아닌 존재를 보는 것 같다고 했을 때 그 작은 아가씨가 뭐라고 이렇게나 과장을 하나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 시작해, 애기야. 아까 생각한 것보다 두 배는 더 해야겠다." "하나. 주인님, 잘못했습니다."그녀의 말에 도혁은 팔 굽혀 펴기를 하며 숫자를 세었다. 그녀가 시킨 대로 반성의 말도 덧붙였다. 사실 이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의 부하들도 다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그냥 자신들 때문에 보스가 얼차려를 받는다는 그 자체에 아연실색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하가 오기 전에 이 공간은 도혁이 절대적인 존재였고 유일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흐윽... "둘. 주인님, 잘못했습니다." "흑..." "셋. 주인님, 잘못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벌을 받는 도혁의 목소리 사이로 자꾸만 흐느낌 소리가 섞여 들었다. "하으..." "누가 이렇게 자꾸 우는 거야?" 주하의 말에 마당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다시 도혁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 "넷. 주인님, 잘못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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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주하는 부리나케 인사하고 멀어지는 남자들을 보다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잘 지어진 한옥이었다. "사랑채도 볼 수 있어?" "주인님이 못 가는 곳은 없어요. 적어도 이 집에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도혁이 손에 쥐어주는 권력은 너무 커서 가끔 그게 어색할 때가 있었다. 이런 사람을 기합까지 줘놓고 하기엔 늦은 생각인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튼 주하는 이 넓은 한옥을 꼭 제 집처럼 다닐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조금 좋아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디서 머물러?" "본채로 먼저 가실래요?" 오늘 안에는 다 못 볼 것이 틀림없었다. 대문까지 오는 것도 한참이었고, 건물도 많으니까. 안까지 구석구석 보려면 더 오래 걸릴 것이었다. 오늘 집중해서 볼 공간을 골라야 했다. 주하는 꽤 고심 끝에 사랑채를 먼저 보기로 했다. 본채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잠시 구경할 수 있을 테니까. "사랑채에선 뭐 해?" "지금은 회의실로 쓰고 있어요. 응접실도 있고." 주하는 문을 하나 지나자마자 보이는 사랑채에 눈을 반짝 빛냈다. "누마루가 있네." "네. 부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을 내보냈지만, 사랑채는 업무 공간이라 몇 명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도혁과 주하를 보고 그대로 돌이 되어 굳어있다가 도혁의 눈빛을 받고 후다닥 사라졌다. 미친. 보스가 여자를 데리고 왔어! 소리 없는 아우성이 집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지만 주하는 한옥에 푹 빠져서 다른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새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쓱쓱 쓰고 있었다. 도혁은 그런 주하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다니며 사람들을 물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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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

"아아. 뭐... 다음에 기회 되면 한 번 불러줘."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전화 한 통이면 지금도 올 텐데." 정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당장 전화를 걸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정도였다. 권력이라는 게 이렇게 유혹적인 거라니, 지금까지는 미처 몰랐다. 주하는 얼른 노트로 눈을 돌렸다. 태연하게 굴어야만 했다. "응." 그렇게 학문에 깊은 관심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옥을 눈으로 보고, 취향에 꼭 맞는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궁금한 게 생겼다. 졸업반이라서 더 눈이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점심이라도 먹고 계속 보는 게 어때요?" "아. 밥, 먹어야지. 나가서 먹어?" "아뇨. 별채에 식당이 있어요." 식당? 주하는 되묻지 않고 얌전히 도혁을 따라갔다. 가면서 왜 안채를 본채라고 부르는지, 언제쯤 한옥을 완성했는지 같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없었고 그녀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건물들 사이사이가 워낙 넓어서 별채까지 가는 동안 한참 걸렸는데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여긴 또 뭐야?" 족히 서른 명은 앉을 수 있는 식탁과 의자가 한 공간에 놓여 있었다. 여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모습으로. 과 사람들을 데려와서 같이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눈이 돌아가는 공간들 뿐이었다. "한식으로 준비했는데 괜찮아요?" 식당엔 두어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 도혁과 같이 나타난 주하를 보고 인사도 못 한 채 자리를 떴다. 주하는 계속 먹어도 된다고 말할 틈도 없이 사라지는 남자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식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식기들을 보고, 도혁을 다시 바라보았다. 도혁은 아무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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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보스보다도 무서워." "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만식은 인간이 아니라고 덧붙일까 하다가 그건 참았다. 말이라는 게 어디서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는데 함부로 입을 털다가 잘못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미리 말하지 않은 조직원들도 이해가 되었다. 이 바닥에서 혓바닥 잘못 놀렸다가 어떻게 되는지는 뻔하니. "아무튼 개기지 말고, 눈 마주치면 눈 깔고. 뭐 시키면 '네, 알겠습니다.' 그것만 해. 알겠어들?" "놀리는 거구만." "아! 그런 겁니까?" 속을 뻔했잖습니까." 만식은 답답했지만 그 이상 설득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자신이어도 당해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건 어려웠으니까. "다들 목숨이 소중하면 뼈에 새겨......" "분명 박기찬이 뭘 알 텐데." "보스한테 여자 생긴 것 같다고 제일 먼저 말한 것도 그 놈이잖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댔던가, 그런 얘기를 수군거리고 있는 곳에 기찬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만식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털이 쭈뼛 섰다. "보스가, 3분 안에, 허억, 집에서 다 꺼지랍니다... 흐억...!" 만식은 기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정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지금의 도혁은 주하와 같이 있다. 즉, 기찬이 전달한 명령이 보스의 명령인지 주하의 명령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3분이라는 시간이, 보스에겐 그냥 '빨리'라는 상징적인 의미처럼 쓰일지 몰라도 주하가 쓴 거라면 절대로 지켜야만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만식은 '최대한 빨리'가 아니라 '무조건 3분 안에'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다."으응...?"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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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손님맞이를 그렇게 해놓고 무슨 상을 받아?" 급조한 변명이었다.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는, 그런 변명. 오늘은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이건 두 번째 도망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주하는 도망을 선택해버리고 말았다. "아, 니..." 주하가 급조해 낸 변명인지 뭔지, 도혁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상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었으니까.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상이 되돌아오는지 그것만이 궁금했다. "그건, 제가 잘못했는데요-..." 너무 구질구질한가? 도혁은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이미 벌을 받았으니 상이랑은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해봐야 할 것 같은데 입이 열리질 않았다. 주하가 이미 결정한 일을 번복할 리가 없어 보여서. 그렇다면 지금까지처럼 얌전히 고분고분 굴어야 다음 기회가 올 것만 같아서."...알겠어요." 도혁의 수긍에 주하는 몰래 숨을 골랐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섹스쯤이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아무튼 오늘은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아까 문전박대당한 것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기껏 잔뜩 긴장하고 왔다가 열받은 채로 되돌아가면서 섹스 생각을 잊어버렸으니까. "......." 잠시 방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도혁은 자신의 침대 위에 앉은 주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상을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사람 설레게 여기까지 와선 아무렇지 않게 남의 침대에 앉은 건지. 주하의 뒤를 따라다니며 한껏 했던 상상들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억울한 마음이 한 번에 다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기다릴게요." "뭐?" "다음에 상 주실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고요." 아예 주지 않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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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

하. 주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망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해봐도 언제부터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얼굴에 홀렸다는 자각이야 있었지만, 마음까지는 절대 안 주리라 생각했었다. 그야, 자신 같은 대학생쯤은 유희일 것이 뻔한 남자니까. 그녀는 상처받는 건 자신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와 섹스하는 게 두려운 이유도,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인 것 같았다. 한 번 자고 나면 그 고분고분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 사이가 끝나버릴까 봐. 이미 좋아하게 되어버린 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주하는 책상에 머리를 쾅 박으며 엎드렸다. 일단은 이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게 중요했다. 늘 가벼운 척 해대며(분명 첫 만남엔 안 그랬다.) 속내를 숨기고 있는 남자에게, 이런 마음을 들킬 수는 없었다. 분명히 저를 가지고 놀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와의 섹스가 너무 하고 싶은 건 확실하니, 그걸 어떻게든 이용해 보는 게 나을까. "......" 주하는 눈을 감았다. 도망갈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꼬셔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들키지 말고 유지만 하자. 그게 주하의 결론이었다. 과제와 논문 때문에 그 집에 몇 번 더 가기로 했으니, 핑계는 괜찮았다. 사진도 아직 부족하고, 전체적인 구조도 다 파악 못한 데다가, 누마루도 아직 신경 쓰이니까. 심지어 지도교수님도 현장에 다시 다녀오라고 했다. 주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기찬이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나가기 전에 저도 모르게 거울을 한 번 확인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삐져나온 머리마저 조금 신경이 쓰였다. 미친 게 틀림없다니까. 주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모시러 왔습니다."기찬은 이미 주하의 집 앞이었다. 당연하게도 도혁이 데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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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

"오셨어요?" "아. 응." 미치겠네. 안 그래도 잘생긴 남자는, 마음을 자각하고 나니 훨씬 더 잘생겨 보였다. 게다가 눈이 마주치면 항상 저렇게 웃어대니 심장이 주체를 못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막 씻고 나와서 왠지 촉촉해 보이기까지 하니. 망할. 저 인간 때문에 내 눈만 높아져서, 앞으로 어떡하지? 주하는 참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훔쳐본 새ㄲ... 놈들은 다 쫓아낼게요." "놔둬. 궁금한가 보지." 욕하지 말랬다고 말을 정정하는 것마저 기특해 보였다. 인생이 망하려면 이런 식으로도 망할 수 있다는 걸, 주하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 보시려고요?" "사랑채로 가려고." 주하는 자신이 평소와 똑같이 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남자이니 분명 이상하게 굴었다면 물어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엔 없는 것이었다."아. 자리 만들어놨어요." "응. 들었어." 자랑 좀 신나게 하려고 했더니 박기찬 새끼가 선수를 쳐? 도혁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주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그저 싱긋 웃었다. 도혁은 주하에게 잘 보일 생각 밖에 없어서, 그녀가 평소와 다른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주하는 원래도 표정이 많은 편은 아니고 종종 '잘생기긴 했네.'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기에 이상한 것을 눈치채기란 제법 어려웠다. "여기예요." "어... 고마워." 회의실 한 구석도 아니고, 정중앙에 그녀의 자리라고 떡하니 만들어진 곳은,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깔끔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 지난번에 까먹고 안 들고 간 메모 몇 장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노트, 펜, 스탠드 등이 줄 맞추어 놓여있었다.&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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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7.

그때, 주하의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렸다. 주하와 도혁의 시선이 동시에 핸드폰으로 꽂혔다. 저장이 되어있지 않은 번호.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한 번쯤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주하는 한참 내려다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평소라면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았을 텐데, 기분이 묘해서."여보세요?"'오주하 씨? 저 건물주입니다.'건물주? 그런 사람이 왜 전화가 오지?주하는 저도 모르게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도혁이 아무렇지 않게 그 시선을 마주 보았다. 왠지, 지금 이 남자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주하는 짧게 눈짓했다. 도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실을 나갔다."네, 무슨 일이시죠?"'엘리베이터에 공지 붙여놓은 거 보셨죠?'엘리베이터. 공지. 주하는 흰색 종이 한 장을 떠올렸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일 보는 종이지만 처음 읽은 이후로는 눈길도 안 줬던 탓에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났다. 무슨 공사를 한다고 했었던가. 건물 철거.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제법 중요한 내용인데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사 시작 시기가 1월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은 못 했어도 이미 학기는 끝나있을 시점이니까. 그건 졸업반인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네, 봤는데요."'그게 좀 일정이 당겨져서, 나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러시면..."아직 10월. 일주일에 한 번 뿐이라고는 해도 수업이 있고, 과제도 해야 했다. 학교 앞의 다른 원룸으로 가자니 2달만 더 지내면 되는데 1년 계약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다른 곳으로 가자니 어디로 취업할지도 모르는데 대뜸 계약하기도 그렇고. 이 보증금으로 학교 앞 말고 어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시원이라도 가야 하나. 주하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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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8.

"오늘 좀 늦었네요?"짐을 싸다가 쓰러지듯 잠든 탓에 늦잠을 잤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기력도 없었고. 하지만 주하는 티 내지 않았다. 그냥 좀 바빴다고 둘러댔다. 아침부터 할 일이 뭐가 있어서 바빴는지, 도혁은 물어보지 않았다. 주하는 다시 물어보지 않는 도혁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평소처럼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 정중앙에. 어느새 놀랍도록 익숙해져 있었다. "점심은 이따 여기서 먹을 거죠?""응."사실 지금도 배가 고팠지만 그 또한 내색하지 않았다. 아침 같은 건 안 먹는다는 것쯤, 도혁도 잘 아는 일이니까. 노트북을 열어서 이것저것 타이핑을 시작하니 도혁이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멀어진 건 아니었다. 그는 항상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곤 했으니까. 처음엔 부담스럽던 그 시선도 지금은 회의실의 자리만큼이나 익숙했다. 아무렇지 않게 과제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책상에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커피나 과일, 과자, 빵 같은 것들이었다. 도혁이 가져오는 건 아니고, 누군가가 준비를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게 다 그의 명령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고마워."무심한 인사였다. 눈길 한번 안 주는. 주하는 하는 일에 집중하다가 쳐다도 보지 않고 종종 입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쨌든 그녀가 먹으니까. 여기선 커피가 얼마냐는 둥 따지지 않으니까. 일부러 고급 원두만 골라서 썼다. 그녀는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롤케이크가 한 조각에 얼마인지 안다면 먹지 않을 테니까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다. 괜히 시선을 뺏었다가 쓸데없는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물어보면 거짓말 따위 못 할 것이 뻔해서. 그래서 그는 그 무심한 인사가 좋았다.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평범하게. 도혁이 집에 가려는 주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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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9.

오와 열을 맞추고,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조직원들을 보며 주하는 조금 부담스러워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들은 굉장히 긴장한 채로 서서 오로지 주하만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도혁이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이 조직의 보스가 누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 뭐... 당분간 좀 신세 지겠습니다. 오주하입니다."사실 요즘 자주 들락날락했던 터라, 다들 주하를 꽤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잠깐이라고 해도) 정식으로 함께 살게 되었으니 인사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도혁의 말에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말씀 편하게 하십쇼!""저희가 뭐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주...인님...이라고 부를 순 없을 것 같고..."'주'까지만 말했는데도 눈을 부라리는 도혁 때문에 부하 한 명이 우물쭈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딜 감히 그 호칭을 부르려고. 그런 눈이었다. 주하는 도혁이 옆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았지만 내버려두었다. 그래도 나름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일 텐데 괜히 부하들 앞에서 그의 자존심을 더 긁지는 않으려고. 게다가 오늘은 정말 전체 다 온 것 같고. "말은 편하게 할 생각은 없고요. 뭐. 아무렇게나 부르시면 됩니다. 주인님이란 호칭은 하지 말고요. 애기도 아니고, 그렇게 부르시면 좀... 징그러울 것 같아서."그들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애기'란 호칭이 그녀의 입에서 진짜로 나오자 조금 웅성거렸지만 금세 잦아들었다. 그 와중에 주하가 주인님 호칭을 허락하지 않자 뿌듯해하는 도혁은 덤이었다. "호, 호칭을 정해주시면 저희가 조금 더 편하게......가 아니라... 정중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하는 수십 개의 눈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도혁을 보기로 하고, 시선을 돌렸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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