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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너도 도망갈거지(2)

Author: 도수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0 16:29:56

검은 머리 소녀는 어쨌든 천천히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렘즈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위압감을 줬다. 길게 솟아오른 빌딩은 초승달처럼 반으로 접혀 길게 뻗어있어 위용을 자랑했다.

마리는 그 소년이 이렇게 큰 건물의 주인이라는 게 놀라웠다.

그때에도 재수없는 꼬마라고는 생각했으나, 재수없을 수 있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 곳에 올 수 밖에 없었다. 편지는 당연하게 묻고 있었다. 세로로 길게 읽으면 이랬다. 너도 도망갈거지.

연맹의 경고였다. ‘도’라는 건 엘리를 말하는 것일테다. 그녀를 위해 연맹을 피해가며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려 했던 사람처럼 마리도 혐의로부터 도망을 칠 생각이냐고, 묻는 것이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의 경고가 불쾌했으나 종이를 몇 번 구긴다고 해도 미네르바가 실제로 구겨지는 건 아니니까 마리는 곱게 종이를 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비서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컵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이에도 문으로 몇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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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을 삼킨 소녀   24화 방법(2)

    테오는 한편, 마리가 재판에 참가하게 됐다는 말이 너무도 급작스러워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그 즉시 연맹의 지사로 달려왔다.“아동의 경우 재판일자 확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또 후견인이 있어야 정당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아는데요.”데스크에서 말을 거는 그에게 직원이 죄송하다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해당 사건의 경우 특별수사TF가 꾸려져있어 연령에 상관없이 능력자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라는 본부의 결정이 있었습니다.”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다. 자이온이 다녀가고, 이아고 마르샬라의 죄가 입증됐으면 마리의 죄는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분명 이미 연맹이 그 애 아빠의 시신을 발견했고. 신원 확인도 끝난채로...테오는 자기가 있던 자리에서 생각하다가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누나의 목소리였다.‘아버지시신이 발견됐고, 마리는 혼자 발견됐어. 아이를 맡아줘, 잠깐이면 될거야.’부모님이라 함은 오직 이아고 마르샬라를 포함한 것이다. 당시에는 친자 관계를 명확히 알지 못해 나미엘 마르샬라를 고모가 아니라 친모라고 생각하고 엘 리가 말을 건넸었다. 테오는 그제야 뒷목을 감싸는 싸늘한 기운에 그의 짐작대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연맹은 이미, 마리타를 잡아들이려고 그의 생각보다 훨씬 면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테오는 곧장 렘즈로 돌아갔다. 그가 제일 먼저 만나야할 사람은 정해져있었다. 제레미는 사라진 마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나서부터는 내내 정원만 바라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게 내심 답답했지만 테오는 제레미가 아니고서야 이 문제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일단 그를 설득해보기로 했다.“모함이야. 아버지 시신으로 장난을 치는거라고.”테오가 다짜고짜 하는 말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얼추 짐작했기 때문이다.“그래, 맞을거야. 마리도 그랬어.”그가 마리에게 의심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때 들었던 답을 떠올리고 말한 것이다. 테오는 제레미에

  • 신을 삼킨 소녀   23화 방법(1)

    마리는 남아있는 기억을 토대로 더듬더듬 진술했고, 그때 마리의 이름도 완전해졌고, 이아고의 자식으로 등록됐다. 그들이 가져온 서류로 알 수 있는 건 이아고는 그녀의 아버지지만, 나미엘은 그녀의 고모가 아니다.그제야 밖에서는 그녀를 부르지 말라던 게 기억났다.그리고 때때로 고모라고 부르면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이 생각났다. 그러면, 한자리가 비었다. 그녀의 친모가 없다. 그리고 나미엘은 누군가. 두 가지 의문이 남았다.그때부터 마리는 자기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엘리의 손을 잡고 렘즈에 왔을 때부터 언젠가 재판장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오래 전부터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엘리가 사라지고 테오가 그녀에게 가족사를 묻지 않게 되고 제레미가 겨우겨우 팔에 링거를 끼고 어쨌든 살아남았다. 율리아가 그녀를 위해 휠체어에서 두 발로 일어서 함께 걸어주기도 했다.마리는 다음 할 일을 알았다. 이대로 괜찮은가 생각하면 전혀 아니다.그들의 할 일이 저를 받아주는 것이면, 자신의 할 일은 그녀의 뒤를 따라는 죄의 부산물들을 씻어내는 거였다. 재판에 가자. 가서,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려면 제일 먼저 말해야할 사람은 한 명이었다.미네르바 테일러.마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유리로 사방에 막혀 있는 방이었다. 바깥에서는 보이게 되었지만 안에서는 바깥에서 볼 수 없었다. 감옥보다 시설은 좋았지만 마리는 이곳이 부루가 있던 방을 생각나게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엘레오노라 베버, 누구 덕분에 목숨을 잃은 인재지.”미네르바가 마이크로 빈정댔다. 그 이름을 그가 말할 줄은 몰랐다. 마리는 천천히 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투명한 실루엣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았다.“거짓말하지마, 너 ‘우리들’에게는 관심 없는 거지? 네가 찾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한 것뿐이잖아.”그는 ‘우리들’에 엘 리가 포함된다는 걸 눈치채고 못마땅한 듯 입꼬리를 실

  • 신을 삼킨 소녀   22화 그날의 진실

    까맣게 점멸된 의식 속에 소리가 웅웅대듯 귀에 울렸다. 어느새 어려진 기억 속 마리타가 말했다.“오늘따라 고모가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밖에서 고모를 부르면 안 된다. 나미엘이 손수 그러지 말라고 가르쳐줬기 때문이다.오랜만에 시무룩해도 먼저 말을 걸어오는 딸의 목소리을 들은 이아고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한편으로는 나미엘 생각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러나 마리가 먼저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않았으므로 이번에는 그래도 마리를 위해 나미엘을 위하는 시늉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해 아이의 손에 쟁반을 쥐어줬다“방에 들어가 보렴, 내 보물. 고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늘 아침에 따뜻한 차를 드리지 않아서 아직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그날은 그렇게 시작했다. 기분이 안 좋은 거구나. 오늘은 고모의 심사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문을 열었다. 고모는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보통 마리도 아침에 대부분 그렇게 누워 계시는 부분만 보았다. 그러니 오늘은 느끼기로 어째선지 고모가 무언가를 불쾌해하는 것 같았다. 차가 식기 전에 미리 드리고 싶었지만 고모가 주무시는 침대 옆 협탁에만 몰래 차를 두고 나왔다.그녀가 감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감옥이란 호칭 보다는 이아고나 다른 간수들은 보호소라는 말을 쓰라고 했지만 사실 마리에게 그것은 그저 감옥에 불과했다.검고 높다란 벽과 복도와 방을 가른 차가운 쇠창살이 어떻게 감옥이 아닐 수 있을까.슬며시 문을 닫고 달음질치며 나온 마리는 나미엘에게는 저녁에 다시 한번 다가가 차를 받으셨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아고가 꼭 차를 다 마셨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해보라고 했지만,매일 아침 차를 드시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셔서 조금은 얌전해지는 고모가 아닌가. 굳이 마리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면 전부 자기가 차지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그녀는 아빠의 도시락을 들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남청색

  • 신을 삼킨 소녀   21화 너도 도망갈거지(2)

    검은 머리 소녀는 어쨌든 천천히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렘즈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위압감을 줬다. 길게 솟아오른 빌딩은 초승달처럼 반으로 접혀 길게 뻗어있어 위용을 자랑했다.마리는 그 소년이 이렇게 큰 건물의 주인이라는 게 놀라웠다.그때에도 재수없는 꼬마라고는 생각했으나, 재수없을 수 있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이 곳에 올 수 밖에 없었다. 편지는 당연하게 묻고 있었다. 세로로 길게 읽으면 이랬다. 너도 도망갈거지.연맹의 경고였다. ‘도’라는 건 엘리를 말하는 것일테다. 그녀를 위해 연맹을 피해가며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려 했던 사람처럼 마리도 혐의로부터 도망을 칠 생각이냐고, 묻는 것이다.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의 경고가 불쾌했으나 종이를 몇 번 구긴다고 해도 미네르바가 실제로 구겨지는 건 아니니까 마리는 곱게 종이를 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비서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컵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이에도 문으로 몇 사람이 오갔다.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잔뜩 성이 나거나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두 종류였다.마리도 그들을 따라 옷을 잠그고 몇 번 목을 움직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미네르바에게 물어보러 간다던 비서가 다시 돌아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정장을 맞춰 입은 그들은 하나같이 제레미를 구하러 온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보였다. 저런 걸 그들의 ‘연맹’이라고 하는 건가 어렴풋이 마리는 깨달았다.“어서오세요, 마리타.”저번에는 마르샬라더니 이번에는 마리타라고 부른다.마리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렘즈에서 보았던 차분한 초록빛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을 찾으려고 했지만 오늘은 그저 속이 새카만 우두머리가 앉아있을 뿐이었다.저보다 키가 큰 탓에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봐야 했다.나름의 배려인건지 제 자리에 앉은 그가 마리에게도 앉으라고 안내했다. 여기서 벌써 몇 번이나 앉아있는지 알 수 없다.“편지를 읽었나요?”그는 퍽 기대

  • 신을 삼킨 소녀   20화 너도 도망갈거지(1)

    마리는 오랜만에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이 말할 때인 것을 알았다.테오에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그가 계속 궁금해 할테고 가족을 잃은 사람으로서,알아야 마땅하다고.특히 그녀가 능력을 대놓고 쓰게 된 이후부터 내내 입 밖에 내고 싶었을, 그러나 결국 하지 못했을 말을 마리가 먼저 해야 했다.마리가 알겠다고 했고, 테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 뒤가 이상하게 굳어서 잘 돌아가지 않았다. 테오에게 마리가 미소를 지었다.“엘리요 아니면 우리 아빠요?”테오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못했다.전자는 감히 입에 올릴 주제가 못됐고 후자는 생각보다 가볍게 나와서 오히려 그가 가시에 찔린 듯했다.“엘 리가 죽을 걸 알면서 그대로 뒀는지, 아니면 부모님을 내가 죽였는지 뭐 그런 거 아닌가요.”테오는 생각보다 가볍게 돌아오는 답변에 안색이 굳었다.“선생이 상상할 수 있는대로 생각해요.”마리는 테오에게 구실좋은 변명을 덧붙일 생각도 없었다.그러면서도 사실 마리는 더 많이 대답을 하면 렘즈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순간 걱정됐다. 테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엘 리가 오던 그날을 말하는거야?”그 말에 마리가 혼자 웃었다.“글쎄요. 대답하면 믿을 수는 있구요? 재판이 열리면요, 그거면 믿을 수 있겠죠. 그다음에 얘기해요.”재판이니 뭐니 하는 굵직한 말들이 순식간에 그의 귓전을 때리고 지나갔다. 테오가 마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마리가 먼저 산 아래로 내려갔다.허탈해진 그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러 바위에 앉았다.마리의 생각은 전혀 모르는 채로.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마리의 눈에 오늘은 떠나기에 가장 완벽한 날이었다. 테오의 뜻도 알았고, 그가 산에서 혼자 생각에 빠진 지금이라면, 시간이 충분하다. 마리는 짐을 챙겼다.발찌는 미네르바 테일러가 준 열쇠로 순식간에 열렸다. 나가는 동안에도 아무도 그녀의 두 번째 탈출을 몰랐다. 방문을 닫고 다시 긴 렘즈의 오솔길을 지나 그녀는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이번에는 전과

  • 신을 삼킨 소녀   19화 테오도르 베버의 휴가(2)

    테오는 마리가 조용히 침대에 앉아있는 걸 열린 문틈 사이로 바라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그는 아이가 조용한 게 마음에 들었다.서로에게 다가갈 틈이 없었고 사실은 그럴만한 여유도 없는 테오로서는 마리가 가능한 한 조용하게 하루를 보내주기를 바랐다. 제레미가 아이가 조용할 때는 혼자두지 말라는 말을 한 것같기도 했지만 그는 그의 환자가 마음이 불안정해 너무 과하다고 믿었다.이제 열 살이 가까운 나이인데 고작 혼자있는 게 무슨 문제이겠는가.그는 내일 회진을 돌 환자 명단을 책상에서 꺼내 집게로 집고 스케줄과 각종 기구들을 하나씩 꺼내 굳이 소독했다. 헤게와 번갈아가면서 하는 일이고 내일 당번은 헤게였으니 그가 굳이 할 필요없는 일이란 뜻이다.손가락 끝이 뭉특하고 투박한 손으로 그는 계속해서 펜이나 노트 등 자잘한 문구따위를 손에 쥐었다가 풀었다.그러더니 결국에는 졌다는 듯 종이를 대충 구겨 휴지통에 넣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두르는 발걸음에 하얀 가운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 끝, 그 방의 문을 열었다.“왜요.”아이는 반쯤 지루하게 감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서둘러 오느라 헉헉대는 테오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마리는 또 방에서 나오라는 말이겠거니 싶어 침대에서 내려왔다. 테오를 지나쳐 방을 나서려는데 테오가 마리를 불렀다.“마리타.”마리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마저 말하라는 듯 바라보았다. 테오는 그 모습이 제레미를 대할 때랑은 전혀 달라 탐탁치 않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혼자두지 말 것, 조용히 있어도 함께 있어줄 것.아무렇지 않아보여도 그렇지 않은 걸 기억할 것. 그는 제레미와 헤게가 단단히 일러준 말들을 떠올리고 다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같이, 산책 갈까?”마리는 그가 내민 손이 무슨 속셈인가 싶어 한참을 쳐다봤다.곱슬머리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우스워 보이는 의사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제레미 앞에서 팔짱을 끼고 깔끔한 셔츠나 가운에 주름이 갈 일도 없었으리라.

  • 신을 삼킨 소녀   15화 꽃이 폈어

    복도 끝 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비번을 섰던 베버가 제 깍 끝방으로 향했다. 요새 잠잠하다했다.제레미랑 같이 쓰던 방을 분리하자 밤마다 악몽을 꿨다.최근 들어 약이 좀 효과를 보나 했다. 그가 문을 열었을 땐 이미 잠에서 깬 제레미가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래고 있었다.“늦네, 테오.”“제레미.”하고 싶은 말을 눈으로만 담아서 대꾸하는 테오를 제레미가 그냥 지나쳤다.품에 안은 마리가 뒤척였다. 테오가 마리의 머리 위로 자기 가운을 벗어 감싸 줬다.제레미가 못마땅한 듯 가운을 벗기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가운처럼 새

  • 신을 삼킨 소녀   14화 내 보물

    한편 마리는 두 남자가 사라진 후에도 소년이 준 묘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차분하게 가라앉았지만 집요한 눈동자는 연맹의 낙하산이 갖기엔 너무 사연이 많아보였다.그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 돌아갔고 연맹은 뒤로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한 가지만을 제외한다면.우유를 다 마시고 컵을 테이블에 올려둔 마리의 손에 이제는 작은 편지지가 들려있었다. 소년에게서 온 것이다.누구인가 싶어 헤게에게 먼저 보여주니, 이 필기체를 자기가 볼 줄은 몰랐다며 그녀는 내내 소란스러웠다.이상한 글씨는 안 적혀있느냐, 그냥 편지지냐. 폭탄이

  • 신을 삼킨 소녀   9화 연무

    어릴 적에는 잘 숨겼지만 점점 기포처럼 올라오는 의문들을 풀 방법이 없었으므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므로 커지는 방울을 차마 터뜨리지도 못한 채 제 영역을 넓히는 꼴만 지켜볼 까닭이었다.해가 지기 전에 빵집에 간 것은 희대의 성취였다. 초승달을 닮은 빵을 달라고 아까 그 소년을 닮은 여인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넸다. 여인의 손목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파리한 안색을 제외하고는 소년을 닮은 그녀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울 듯 말 듯한 얼굴에 미소라 마리타는 이 사람도 퍽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제레미가 짓는 얼굴과 닮았던

  • 신을 삼킨 소녀   8화 초승달 빵

    어릴 적에 탑에서 긴 머리카락을 내려 탈출했다는 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마리타는 머리를 길렀다. 때로는 여러 작은 동물을 길러 금세 호박 마차를 기다렸다. 또 어떤 시절에는 지느러미는 없으나 힘을 못 쓰는 평범한 사람이 되면 왕자가 저를 데리러 와줄 줄 알았다.그런데 정작 그녀의 왕자는 저 침대에 앓아누워 매일 밀랍 인형같은 얼굴로 겨우 미소나 짓는 사람이었다.그 무렵에 이미 마리는 알았다. 드레스를 입은 공주로서는 이 곳의 담장을 넘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크게 벌린 입안으로 서늘한 가을 공기가 드나들었다. 잔디밭을 밟고 맡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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