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형은 복도 저편에 서 있었고 조영진은 바로 옆에 있었다.허지형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여유롭게 걸어왔다. 구두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그 순간 장기천의 안색이 달라졌다.“허, 허 과장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제가 사인했습니다.”허지형이 장기천의 앞에 멈춰 섰다.“남 선생님이 규정을 위반하고 수술을 집도했다던데, 제가 규정을 위반했다는 말씀인가요?”장기천의 표정이 굳었다.“아니요. 과장님.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과장님께서 사인하신 줄 모르고...”“몰랐다고요?”허지형이 장기천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던데 장 팀장님은 벌써 사람들을 끌고 와서 남 선생님에게 처분을 내리겠다고 하시네요. 장 팀장님, 방금 몰랐다고 하셨는데 그 말은 본인이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일부러 그랬다는 건가요?”장기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과장님, 저는 그저 절차대로 처리한 것뿐이고...”“절차대로 처리했다고요?”허지형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또렷하게 들렸다.“첫 번째,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남 선생님의 면허는 유효합니다. 두 번째, 과장이 승인서에 사인을 했으면 기획조정실의 승인은 필요 없어요. 세 번째, 장 팀장님이 기획조정실 팀장인 건 맞지만 방금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에게 의사 자격을 박탈당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고함을 칠 권리는 없어요.”복도는 멀리서 울려 퍼지는 의료기기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우 고요했다.장기천의 얼마 없는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축축하게 달라붙었다.장기천은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허지형은 고개를 돌려 주변에 모여든 의료진들을 바라보았다.이미 십여 명 넘게 모여 있었고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다들 모였으니 이참에 얘기할게요.”허지형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복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첫 번째, 남 선생님의 진료 데이터는 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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