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헤어진 지 4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기장님: Kapitel 21 – Kapitel 30

30 Kapitel

제21화

“남 선생님,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여자는 선생님 나이 정도 되면 더 늦기 전에 결혼 서둘러야 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정말 못 갈지도 몰라요. 평생 혼자 살 순 없잖아요? 얼마나 외로워요.”모든 말이 정효민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 말들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와 그녀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정효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도대체 왜!’배진성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정효민의 품에서 현우를 건네받았다.동작은 아주 가벼웠지만 정효민은 배진성의 손이 여전히 차가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정효민을 힐끗 쳐다본 배진성은 눈빛이 겨울 호수처럼 매우 차가웠다.마치 안이 너무 투명해 모든 것을 비출 수 있는 것처럼...“병원으로 가자.”한마디 한 배진성은 현우를 안고 몸을 돌려 먼저 차에 올랐다.정효민은 자리에 선 채 배진성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가로등에 길게 늘어뜨려진 배진성의 그림자가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그 뒤를 급히 따라가자 또각또각 바닥을 두드리는 경쾌한 하이힐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차 안, 정효민은 현우를 안은 채 뒷좌석에 앉아 백미러로 배진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입을 열었다.“남 선생 곁에는 남자가 정말 끊이질 않네. 저 사람 엄청 젊어 보여. 남예린, 생각보다 꽤 대단해.”배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백미러로 정효민을 흘깃 쳐다보았다.그런데 눈빛이...정효민은 배진성의 이런 눈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눈빛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예리한 칼이라면 진작에 이 남자한테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나 잘 챙겨.”배진성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여보!”정효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배진성의 말을 끊었다.“오늘 일,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현우를 안은 손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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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윤산오가 보여준 것은 단톡방 화면이었다. 단톡방에 누군가 영상을 하나 올렸다.영상 내용은 남예린이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웅크려 현우의 등을 두드린 뒤 안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영상은 십여 초 정도로 아주 짧았지만 남예린의 얼굴과 행동이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아주 안정적인 손놀림과 빠른 동작,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덤덤한 표정, 그녀의 프로패셔널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단톡방 메시지는 이미 999개를 넘어 정확한 숫자가 표시되지 않았다.[얼굴도 예쁜데 실력까지 이토록 훌륭하다니! 의사 선생님 최고!]윤산오가 손으로 화면을 내리며 남예린에게 하나씩 가리키면서 보여주었다.[이토록 차분하게 사람을 구하다니, 정말 교과서가 따로 없네!][세상에! 이 선생님이 아이 목숨을 살렸어. 이분 아니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거야!][이 아름다운 의사 선생님은 어느 병원에서 근무해? 나도 진료 예약 걸고 싶어!][와, 정말 멋진데 시크하기까지! 이분과 결혼하고 싶어!][후회돼, 나도 의학 공부할 걸, 흑흑.]남예린을 바라보는 윤산오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남예린이 윤산오의 휴대폰을 밀며 심드렁하게 말했다.“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데.”윤산오가 휴대폰을 치우고 진지한 눈빛으로 남예린을 바라보았다.“예린 누나, 아까 아이를 구할 때 무슨 생각 했어요?”남예린이 잠시 멈칫했다.‘무슨 생각?’아이의 상황을 본 순간, 뇌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손으로 아이 등을 누르고 있었다.“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남예린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평소 응급실에서도 이렇게 해요?”“네, 제 본업이니까요.”윤산오가 잔을 내려놓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남예린을 바라보았다.“정말 대단해요.”남예린은 윤산오의 시선이 조금 불편해 고개를 숙여 다시 연근 조각을 집었다.“예린 누나.”윤산오가 말했다.“저 기억 안 나요?”그 말에 남예린이 멈칫하자 윤산오가 바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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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배진성이 눈길을 주지 않으면 남예린은 그가 일부러 밀당하는 거라고 여겼다.꼬박 2년 동안, 남예린은 당당하게 배진성을 쫓아다니며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았다.“예린 누나?”윤산오의 목소리에 남예린은 하던 생각을 멈췄다.“네?”“또 넋 놓고 있네요.”“미안해요.”남예린이 고개를 숙여 연근을 입에 넣었다.앞접시에 오래 있어 이미 식어버린 연근은 너무 딱딱해 마치 골판지를 씹는 것 같았다.윤산오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새 연근 조각을 집어 냄비에 넣고 살짝 데쳐 건져낸 뒤 남예린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이거 먹어요, 뜨거운 거.”남예린은 그릇 속 연근 조각을 바라보았다.먹기 딱 좋게 익은 데다 금방 꺼낸 거라 뜨겁기까지 했다.“고마워요.”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 윤산오가 남예린에게 드레스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예린 누나, 이런 드레스 입어 본 적 있어요?”사진 속 달빛처럼 환한 흰색 드레스는 옷깃에 은색 자수가 수놓아져 있었으며 치맛자락에는 어두운 무늬의 매화가 새겨져 있었다.하지만 화려하거나 요란한 스타일이 아니라 아주 수수한 디자인이었다.“정말 예쁘네요.”윤산오가 입술을 살짝 달싹였다.‘누나가 입으면 더 예쁠 거예요.’하지만 이 말이 너무 능글맞은 것 같아 차마 겉으로 내뱉지 못했다.“다음 달에 우리 학교에서 이런 디자인의 드레스를 선보이는 행사가 있어요.”윤산오가 말했다.“뉴락 월드에서 열리는데 코스프레도 있고 물건 구매도 가능해요. 뉴락 월드 구경 코스도 있어요. 지금 코스프레 캐릭터 모집 중인데 누나한테 딱인 것 같아요.”“코스프레요?”“네, 그냥 캐릭터 같은 거예요.”윤산오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손과 발을 다 사용하여 제스처를 하며 설명했다.“드레스 입고 유원지를 돌아다니면 돼요. 사람마다 주어진 미션이 있는데 관광객이 누나와 접촉하면 미션이 시작돼요. 누나가 관광객들 테스트할 수도 있고요. 미션 완성하면 상을 주지만 실패하면 벌을 받아야 해요.”“저 그런 거 해본 적 없어요.”“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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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주희선이 잠시 멈칫했다.홍삼차를 내려놓고 정효민을 바라보더니 따지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안 급하다고?”잠시 멈칫하더니 정효민의 손목에 시선이 스쳤다.“그동안 네가 한 행동... 다 이 집안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아니야? 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안 급하다고?”정효민은 손가락이 움찔했다.저도 모르게 소매를 끌어당겨 손목에 난 자해 흉터를 슬쩍 가렸다.하지만 칼날같이 예리한 주희선의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그냥 제 생각에는...”정효민은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진성 씨도 휴가가 곧 끝나고 제 가게도 꽤 바쁘니까, 일단은 좀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아요.”주희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정효민을 살피다가 다시 배진성에게 시선을 돌렸다.배진성은 여전히 등을 돌린 그 자세 그대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오후의 햇살이 배진성의 몸을 비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욱 아리송했다.하지만 주희선은 두 사람 사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래.”자리에서 일어선 주희선은 테이블의 홍삼차 잔을 들며 말했다.“너희들끼리 상의해. 하지만 너무 오래 끌지 마.”그러고는 자리를 떴다.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도 점점 멀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다.거실에는 배진성과 정효민 단둘만 남았다.정효민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한편 창가에 서 있던 배진성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몸을 돌렸다.“잘했어.”정효민이 고개를 들어 배진성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혹시...”참다못한 정효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쥐어짜내는 것처럼 겨우 나오는 듯했다.“내가 진짜로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두렵지 않아?”정효민을 바라본 배진성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으로 이미 대답을 알 수 있었다.배진성은 정효민이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의 행동 하나, 생각 하나 전부 꽉 잡고 있었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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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어떻게 이걸로 나를 협박할 수 있어?”배진성의 말을 끊으며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진 정효민은 곧바로 뒷좌석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다행히 현우는 깨지 않았다.배진성이 정효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뭐 어때서? 나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말투는 아주 아주 담담했지만 듣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했다.조수석에 앉은 정효민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안전벨트를 꽉 움켜쥐었다.고개를 돌려 배진성의 옆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배진성에게는 진짜로 사실을 진술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효민에게 불리한 사실을...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뼛속까지 소름 끼치게 했다.“그냥 혼인신고 하기 싫은 거잖아.”정효민의 말에 배진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칼 같은 남자가 어떻게 할지 너무 잘 알기에 정효민은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하지만 어른들이 내 말을 들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상관없어.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 됐어.”차는 천천히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머리 위에 달이 훤히 떠 있었지만 이 남자의 마음까지는 비치지는 못했다.깊은 마음과 복잡한 눈빛...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진성 씨.”정효민이 무기력하게 입을 열었다.“말해.”“나에 대한 감정, 아직 남아 있긴 해? 아주 조금이라도?”배진성은 여전히 침묵했다.하지만 이건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무서운 침묵이었다. 정효민은 침묵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시렸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남아 있지 않다고 바로 말한 게 아니라면 있는 것이니까...차가 지하 주차장에 멈춰 선 뒤 배진성이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었다.동작 하나하나에 여유로움이 넘칠 정도로 매우 느긋했다.배진성이 차량 앞을 돌아 뒷좌석 문을 열고 현우를 안아 밖으로 내올 때까지도 정효민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현우가 흠칫하며 살짝 놀라긴 했지만 자세를 바꾸더니 다시 배진성의 어깨에 기대어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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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주만호는 뭔가 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그래, 방금 항공 의료센터에도 연락해 놨어. 건강검진 담당 의사는 내일 오전 회의실에서 자세히 상의하면 돼.”배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맙습니다.”“나한테는 그런 인사치레 안 해도 돼.”주만호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고개를 들어 배진성을 바라봤다.“스케줄 일정은 계속 비워두고 있었어. 검사 빨리 통과하길 바라. 다음 달 근무표에 국제선이 여러 개 있는데 팀 이끄는 거 문제없지?”배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감이 넘쳤다.“당연하죠.”주만호가 웃으며 서류 한 장을 건넸다.“복귀 확인서에 사인해.”확인서를 받은 배진성은 한 번 힐끗 본 뒤 바로 사인했다.펜촉이 종이에 닿을 때 배진성의 손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처럼 안정적이었다.“진성아.”갑자기 입을 연 주만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편안한 얼굴로 물었다.“집은 괜찮아?”“괜찮아요.”“그럼 됐어.”주만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서류를 폴더에 넣었다.“운행 재개하기 전, 며칠 동안은 기숙사에 묵을 거야, 아니면 집에 갈 거야?”“기숙사에 묵을 거예요.”“그래, 항공 의료센터 결과 나오면 나한테 바로 알려줘. 근무표 짜줄게.”배진성이 사무실을 나와 복도에 섰다.창밖은 계류장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여러 대의 비행기가 저녁 노을빛 아래 황금빛으로 물들어 반짝이고 있었다.지상에서 움직이고 있던 정비 요원들 중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배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비행기들을 바라보았다.모두 배진성이 조종해 본 비행기들이라 비행기들의 기종, 성능, 순항 속도와 최대 항속 거리를 두 눈 감고도 줄줄 외울 수 있었다.경원시에서 유럽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이곳에서 미주까지 가려면 어떤 항로를 거쳐야 하는지... 하나하나 너무나도 익숙했다.한참을 서 있다가 몸을 돌려 기숙사 건물로 걸어갔다.지난 수년간,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이곳에서 잠시나마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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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남예린은 고개를 숙여 물을 한 모금 마셨다.몸을 돌리던 순간 뒤에 있던 사람과 거의 부딪칠 뻔했다. 물잔도 같이 흔들리며 손등에 몇 방울 튀자 얼른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고개를 들자 주시윤이 바로 코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남예린은 이 사람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주시윤은 흰 가운 안에 짙은 남색 폴로 셔츠를 입은 채 복도에 서 있었다. 깃은 빳빳이 세운 채 머리는 빈틈없이 잘 정리된 상태였다.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또 잔뜩 긴장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남예린은 지나가기 위해 몸을 옆으로 비켰다.“그래...”바로 그때 주시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남예린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갑자기 나를 거절한 이유 이제 알겠어.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을 노리고 있었던 거네.”남예린은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에 믿기 어려운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시윤을 바라보았다.주시윤이 남예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에는 경멸도 있었지만 마치 대단한 것을 알아챈 듯한 득의양양함이 가득했다.“그래, 이제야 이해가 가.”뭔가 오래된 와인을 음미하듯 말끝을 길게 끌었다.“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겠지.”목소리는 낮았지만 상대방을 깔보는 태도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조심해, 높이 오를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픈 법이야. 너 같은 출신은...”잠시 말을 멈추고 남예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 시선은 마치 자로 재듯 그녀의 얼굴에서 발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왔다.“나 같은 사람과 제일 어울려.”물잔을 쥐고 있던 남예린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허 과장님 같은 상류층에...”주시윤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말투는 마치 멋모르는 아이에게 설명하듯 무심하면서도 심드렁했다.“네가 닿을 수나 있을 것 같아? 상류층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남예린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본인의 능력이 걸맞은지도 생각해 봐야지. 인정할게, 네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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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간호사 스테이션에 있던 유해인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너무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진료 기록부를 안고 서 있는 옆의 인턴은 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복도 저편에서 지나가던 간호사 두 명이 걸음을 멈추고 서로 마주 보며 눈빛만 주고받았다.주시윤은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떨며 얼버무렸다.“너!”“그리고!”남예린이 주시윤의 말을 끊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말투가 어찌나 사나운지 마치 메스가 피부를 스치는 듯했다.“제가 허 과장님 같은 ‘상류층 집안’은 넘보면 안 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 말 잘 들으세요. 첫째, 허 과장님은 제 상사예요. 허 과장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집안 때문이 아니라, 허 과장님의 능력과 인품 때문이에요. 물론... 주 선생님은 이 점을 평생 이해하지 못하시겠죠.”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둘째, 주 선생님이 그렇게 입에 달고 사는 그 ‘계층’은 선생님이 스스로 만든 핑계 아닌가요?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까 그런 걸로 연약하고 열등감 가득한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고요. 그렇게 하면 본인이 정말 못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주시윤은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렸다. 분노와 수치심에 손을 들어 남예린을 향해 삿대질했다.“남예린, 네 주제 좀 알고 떠들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하지 마. 네 출신이 어떤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제 출신이 뭐가 어떻다는 거죠?”남예린이 주시윤을 바라보았다.“저희 부모님은 중견기업 직원으로 일하며 평생 성실하게 살아오셨어요. 누구 물건 훔치거나 빼앗은 적도 없고요. 저는 제 성적으로 의대에 합격했고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으며 제 능력으로 해외 연수 기회도 얻었고 귀국 후에는 대학병원에 입사했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고 한 단계 할 단계 제 실력을 쌓으면서 위로 올라왔어요. 모두 내 힘으로 이룬 건데 제 출신이 어떻다는 거죠?”조용했던 복도에서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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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때 배진성은 이렇게 생각했다. 관계라는 것이 결말을 보지 못한다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하지만 결국 시작하고 말았다.허지형이 배진성을 한 번 힐끗 보더니 한마디 물었다.“남 선생님이 어떻게 했는데?”허지형과 눈을 마주친 배진성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빛 깊은 곳에 웃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남예린에게 관심 있어?”허지형은 대범하게 인정했다.“저렇게 재미있는 여자라면 관심 없는 게 이상하지.”배진성의 시선이 또다시 복도 끝으로 향했다.남예린은 이미 그곳에 없었지만 배진성은 그녀가 아직 거기에 있는 듯 그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봤다.“내가 이 일을 시작한 첫 해, 심해시에서 합동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어. 보름 동안 연속으로 비행하다가 과로로 위장병이 났지. 남예린에게는 말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나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꼬박 36시간 타고 왔더라고. 밤이 되어서야 내가 있는 기숙사 아래에 도착했는데 그날 날씨가 영하 10도였어. 심해시에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이었지. 그래도 어떻게든 날 만나려고 아래에서 40분 동안 서 있었어.”배진성의 목소리는 약간 메마른 듯했다.“내가 달려갔을 때 남예린은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어. 무릎을 껴안은 채 얼굴은 빨갛게 돼서 동상이 걸릴 정도였지. 그런데도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어. 그 미소, 아직도 머릿속에 새긴 듯 남아 있어... 그때 남예린이 손에 보온 도시락을 들고 있었어. 그 안에 따뜻한 죽이 담겨 있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바깥에서 나를 기다렸는데도 죽은 여전히 뜨거웠어. 나중에 알고 보니, 몸을 웅크린 이유가 자기 몸으로 죽이 식는 걸 막기 위해서였어. 정말 바보 같은 여자지...”배진성은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었다.“보온 도시락을 내게 건네며 다 마시면 바로 가겠다고 했어. 훈련 절대 방해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기숙사로 데려가려 했지만 남예린이 기어코 거절하더라고. 자기가 관리인한테 물어봤대, 여자는 남자 기숙사에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면서 절대 안 들어가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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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허지형은 뭔가 말하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배진성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배진성이 건넨 서류를 받아 펼쳐 보자 지정한 의사 란에 예상했던 이름이 시야에 들어왔다.[남예린.]다시 서류를 덮고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잘되길 바랄게.”배진성이 허지형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야?”허지형은 고개를 저을 뿐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조금 전 주시윤이 남예린의 몇 마디에 얼굴이 얼마나 하얗게 질린 채 자리를 떴는지 너무 똑똑히 봤다.그래서 물러설 줄 모르는, 경계심이 전혀 없는 전 남자친구도 주시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스스로 무덤을 파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아무것도 아니야.”허지형이 서류를 배진성에게 돌려주며 말했다.“이만 가 봐.”사무실로 돌아간 허지형은 문을 닫고 창가 앞에 섰다.아래층에서 남예린이 당직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바람에 흰 가운을 날리며 걷는 뒷모습은 정말 날렵하기 그지없었다.이토록 이성적이고 시크한 모습의 남예린과 배진성이 말한 사랑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소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아 한참을 바라봤다.‘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던 걸까...’당직실.근무표를 받은 남예린은 잠시 멈칫했다.여러 번 체크하며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님을 확인한 후 근무표를 들고 조영진을 찾아갔다.“조 과장님, 이게 뭐예요? 저더러 오후에 병원 건강검진센터에 가서 네이션항공 기장 건강검진을 하라고요?”키보드를 두드리던 조영진은 남예린의 말에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남예린에 대한 조영진의 태도가 예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다.얼마 전까지 못마땅한 듯 깔보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다. 혹시라도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봐...“네. 위에서 내려온 지시예요. 네이션항공은 정부가 투자한 대기업이에요. 네이션항공 기장이 우리 병원에 와서 건강검진 하겠다는데, 이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왜요? 뭐 문제라도 있어요?”남예린이 근무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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