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빛은 평소보다 더 느리고, 더 무겁게,도시의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그 빛은 마치 밤새 머물던 어둠의 가장자리를 억지로 밀어내는 것처럼 느리게,그러나 확실하게 창가에 닿아왔다.유리는 작은 책방 겸 찻집의 창문 너머 그 빛이 천천히 책장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걸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의자를 움직이지 않았고, 커튼을 걷지도 않았다.오늘 하루, 빛과 어둠이 섞인 그 경계 속에서 그저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겁고, 충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이우는 그녀의 옆에서 말없이 주방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따뜻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찻잎이 물 위에서 천천히 풀리는 움직임.그 모든 작은 일상이 그들에겐 이미 말보다 깊은 대화가 되어 있었다.말을 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 그들의 마음이 서로에게 얼마나 가까운지 그저 그런 일상의 조각들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정오가 되기까지 둘 사이에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오가지 않았다.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거나, 거리를 두려는 침묵이 아니었다.그것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말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고 살아온 두 사람이비로소 말이 없어도 존재만으로 충분해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익히고 있는 조용하고 느린 시간이었다.손님이 없는 낮. 조용한 책방 안.바깥의 사람들은 그들 곁을 스쳐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고,그들 역시 이름이 없는 채로 그 공간에 남아 있었다.이우는 한 잔의 차를 조심스럽게 유리 앞에 두었다.그 행동 하나에 그의 오늘 하루의 마음과 숨결,그리고 그녀를 향한 길고 조용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유리는 그 잔을 들고 말없이 향기를 맡았다.그 향기는 복수도 아니고, 상처도 아니고,사랑이라는 이름조차 더 이상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오후가 되자 그들이 익숙해진 그 고요함을 깨는 기척이 조용히 찾아왔다.익숙하지 않은 걸음,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그러나
Last Updated : 2026-08-1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