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너무 위험한 여자: Bab 101 - Bab 110

120 Bab

101. 우리, 끝까지 갑시다

밤, 하늘은 어둠 속에서 별빛을 감추고 있었고,골목길에는 가끔씩 자동차 헤드라이트만이 짧은 생명을 빌려주듯 불빛을 남겼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손끝에는 문자 메시지가 켜진 핸드폰,눈동자 안에는 짙어진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이우는 그녀 곁에 와 조용히 앉았다.“혼자 두지 않겠습니다.”짧고 단단한 약속이었다.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다, 눈동자 끝에서 작게 웃었다.“우리, 끝까지 갑시다.”그 말은 둘만 아는 언어처럼 공기 속에 머물렀다.그날 밤, 세상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지만유리와 이우의 마음속에서는 긴장이 느리게 파도를 치고 있었다.창밖에서 바람이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가 짧게, 그러나 반복적으로 들려왔고,그 소리는 마치 다가올 것들의 전조처럼 느껴졌다.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 옆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이미 긴 전장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창가 유리에 서리가 얇게 맺혔다.하늘은 잿빛과 청색이 뒤섞이며 밤과 아침 사이의 경계를 천천히 지우고 있었고,그 경계 위에서 도시도 잠에서 천천히 깨어났다.유리는 창가에 손끝을 올려 차갑게 식은 유리의 감각을 느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그녀의 핸드폰은 침대 맡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그 안에는 어젯밤의 메시지가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로 떠 있었다.‘조유진 씨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짧지만 날카로운 문장은 마음 한복판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아침 햇살은 유리의 방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오며 벽과 바닥을 천천히 물들였다.이우는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며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젯밤… 괜찮았습니까.”그의 물음에 유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익숙한 일이니까요.”그러나 그녀의 목소리 끝에는 익숙함이라는 단어가 담지 못한피로와 떨림이 미세하게 엉켜 있었다.낮, 도시는 완연히 눈을 떴고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과자동차의 경적 소리, 점심을 준비하는 식당가의 냄새가 얇은 층처럼 깔렸다.유리와 이우는 센터에서 나와 근처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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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꺼내지 못한 이름들

늦은 아침의 햇살은 여전히 차가운 공기를 통과해 창문을 두드렸다.빛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고,그 안에서 유리는 커튼 사이로 손끝을 밀어 넣어 천천히 바깥을 살폈다.가게 앞 간판이 하나둘 켜지고, 빵집 앞에는 갓 구운 반죽 냄새가 퍼져나갔다.모두가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지만,유리의 안에서는 어제와 오늘 사이의 공백이 아직 채워지지 않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그녀는 커피를 내리며, 한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켰다.그 속에는 전날 그 남자가 남긴 이름 하나가 여전히 떠올라 있었다.“윤선영.”조유진이 마지막으로 만나려 했던, 그러나 끝내 닿지 못했던 인물.그 이름은 유리에게조차 오랫동안 금기와도 같았다.이우는 그녀보다 먼저 센터에 도착해 있었다.창가에 앉은 그의 앞에는 정리되지 않은 종이들과메모가 엉켜 있었고, 그 가운데 놓인 조유진 이름 세 글자는 어떤 문장보다 선명하게 보였다.유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우는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은 잔잔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어제와 다른 불안이 숨어 있었다.“잘 잤습니까.”짧은 인사였지만, 그 속에는 ‘괜찮았습니까’라는 마음이 겹쳐 있었다.유리는 미소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조유진이 죽기 직전까지 찾았던 사람이 있었대요.”이우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누굽니까.”“윤선영.”유리는 그 이름을 발음하는 데 짧은 망설임도 허락하지 않았다.“그 사람이 마지막 생존자예요.”정오 무렵, 유리는 센터 뒷마당으로 나가 잠시 햇볕 아래 머물렀다.잔잔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나무 위에 남아 있던 잎사귀 하나가 천천히, 아주 조용히 발치로 내려앉았다.이우가 문을 열고 나와 그녀 옆에 섰다.“윤선영… 기억납니다. 그 이름, 우리 집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었어요. 단 한 번, 그러나 모두가 입을 다물던 순간이었죠.”유리는 눈을 감았다.“그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날 병원에서도, 그다음 날에도.”“무엇을요.”“나를요. 그리고… 언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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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듣는 일은 견디는 일

하루의 온기가 조용히 사라지고,햇빛이 남긴 빛무리조차 도시에서 밀려나던 붉고 긴 해거름의 시간이었다.유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걷는다는 행위가 마치 마음속 결정을 한 겹씩 정리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목을 감싼 스카프를 손끝으로 잡아당기며 고요하게 몰려오는 떨림을 다독였다.주머니 속엔 녹음기와 작은 메모지. 그곳엔 질문이 아니라, 이름만 적혀 있었다.윤선영. 오늘은 묻지 않는 날이 아니라, 그저 듣는 날이다.햇살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도시의 표정이 점점 낯빛을 잃어가는 붉고 어스름한 저녁이었다.약속된 장소는 오래된 카페의 뒷자리였다.마주 앉은 남자는 어제와 같은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손에는 유리잔이 들려 있었지만, 입을 대는 일 없이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유리는 그를 마주보며 앉았다.눈빛에는 경계도, 원망도 없었다.그저 오래전 무언가를 다시 꺼내려는 사람의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침묵만이 앉아 있었다.“그날 병원에서, 나는 그녀가 다시 걸어나오지 못할 걸 알고 있었습니다.”남자는 그렇게 입을 열었다.그 목소리는 굳이 낮추지 않았지만, 카페 안의 다른 소음들을순식간에 무력하게 만들 만큼 조용하고 단단했다.유리는 눈을 깜빡였다.“왜요.”남자는 웃지 않았다. 대신 그 질문을 받아들일 준비가이미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다는 듯, 한참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누군가는 죽어야 했거든요. 그 구조 속에선.”그 말은 정확히 유리의 심장을 꿰뚫었다.조유진은 사라질 이름으로 이야기를 마감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선택된 인물이었던 것이다.유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러나 몸 안 어딘가에서 식어가는 피와 함께 묵직한 화가 떠오르고 있었다.하루의 끝자락, 마치 도시 전체가 긴 숨을 토해내는 듯 조용히 내려앉는 희끄무레한 밤이었다.이우는 카페 맞은편 골목에서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약속은 같이 걷되, 그 자리에 함께하지는 않는 것이었다.그녀가 혼자 서 있어야 하는 시간,그걸 이우는 누구보다 존중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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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다시 나를 써 내려가야 한다

하루가 다 저물고, 도시는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듯 깊고 조용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가로등 아래에 남은 빛은 부드럽게 땅을 덮었고,바람은 거리의 구석구석을 지나며 낡은 간판과 얇은 간이문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녹음기를 꺼내 책상 한가운데에 올려두고, 손끝으로 그 표면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그 안에는 윤선영의 목소리가 있었다.그날, 병원 복도에 맴돌던 숨소리처럼 낮고 메마른 음성이, 서서히 그녀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그녀는 도망가려 하지 않았어요. 끝까지 버티려 했습니다.”“그게 오히려, 위험한 일이었죠. 그 사람들은 약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아요.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무서워했어요.”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선택과 후회의 그림자가 고요하게 들어 있었다.유리는 메모지를 꺼내 조용히 단어 몇 개를 적었다.‘침묵한 자들’‘기록되지 않은 거래’‘두려워한 것, 조유진’그녀는 펜을 놓고 잠시 책상 위에 팔을 괴었다.그리고 천천히 머리를 떨구듯 내려앉히며 눈을 감았다.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도시의 등불들만이 살아 움직이는 깊은 밤의 한가운데였다.이우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유리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그 생각이 몇 번이고 손에 쥐어졌다 놓였다.결국 그는 손끝으로 핸드폰을 들어 문자 한 줄을 남겼다.‘괜찮습니까.’짧은 문장. 그러나 그 안에 오늘 하루 종일 그녀를 떠올린 모든 마음이 다 들어 있었다.유리는 늦은 시각에야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잠시, 답장을 보내기보다 그냥 조용히 문자를 바라보았다.“괜찮지 않아도 되죠?”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답장은 없었다. 그 대신, 몸을 일으켜 스카프를 감고 현관으로 향했다.그 시각, 이우는 창가에 기대 커튼을 젖히고 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멀리, 낯익은 걸음걸이가 골목길을 걸어오고 있었다.유리였다.그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말도 없이, 눈빛도 없이. 그저 짧은 바람처럼 두 사람이 마주 섰다.둘은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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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괜찮은 마침표가 되는 법

그곳에 유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자신도 모르게 손끝에 힘을 주었다.돌아오는 길, 그는 유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고 다짐했다.해는 서서히 기울고, 빛이 금빛에서 주황빛으로 바뀌기 시작할 즈음. 유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이우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말없이 조수석 문을 열어 앉았다.엔진이 돌아가는 소리,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음악, 그리고 둘 사이의 침묵. 하지만 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그건 서로를 향한 기다림의 숨결이었다.저녁이 되자, 도시는 하루의 색을 서서히 거두어들이고 있었다.불 켜진 건물 유리창마다 사람들의 일상이 바삐 오갔고,거리의 빛은 하나둘 번지며 긴 하루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유리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우를 바라보았다.“고마워요.”그 말은 짧았지만, 그동안 쌓여온 수백 마디의 무게를 품고 있었다.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핸들을 쥔 손을 살짝 풀었다가 다시 쥐며 그녀를 향해 아주 작게 미소지었다.밤이 내려앉고, 도시가 조용해졌다.그들의 차가 도착한 곳은 작고 익숙한 골목길 끝이었다.내리기 전, 유리는 짧게 물었다.“이우 씨는… 마침표를 어떻게 찍어요?”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마주보았다.“잘 찍진 못하지만, 누군가 옆에 있을 땐 조금은 괜찮은 마침표가 되더군요.”유리는 그 말을 한참 곱씹은 뒤 천천히 미소지었다.그리고 그 미소는 그날 하루의 끝을 조용히 닫아주는 마침표가 되었다.그날 밤, 유리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손끝으로 책상 위의 작은 메모지를 만지작거렸다.그 위에는 또 한 줄의 문장이 새겨지고 있었다.‘이름으로 끝나지 않고, 이야기로 이어지게 하자.’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잠을 청했다.밤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었지만,도시는 더디게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정지된 듯 보였다.가로등 불빛 아래 도로는 텅 비었고,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낙엽이 느리게 뒤척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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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다시 마주하는 상처

햇살이 천천히 도시의 지붕 위를 훑고 있었다.아직 덜 깨어난 빛이 건물 벽을 스치며 조금씩 색을 되찾는 사이,그림자들은 길게 늘어져 밤의 끝자락을 더듬듯 흔들렸다.유리는 센터 문을 열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눈앞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구름들,그리고 바람이 남긴 차가운 감각.그것은 ‘오늘’이라는 하루가 말없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조용한 인사였다.이우는 센터 내부에서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서류를 꽂고, 찻잔을 닦고, 작은 화분에 물을 주는 일.별것 아닌 루틴이었지만, 그에게는 유리와 함께하는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그가 물을 준 화분 옆, 유리가 천천히 걸어와 말을 건넸다.“오늘… 한 명 새로 오기로 했어요.”이우는 고개를 들었다.“어떤 사람입니까.”유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아직 몰라요. 다만 첫 통화에서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어요.”그 짧은 설명만으로도 이우는 그녀가 이미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정오를 넘긴 시간, 햇살은 점점 진해졌고센터 안은 밝음과 조용함이 겹쳐지는 온도로 가득 찼다.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섰다.검은 코트에 짧게 잘린 머리,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예약한 시간 맞죠?”유리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맞았다.“네. 잘 오셨어요.”그 말에는 첫 만남에 건네는 환영보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에게‘다시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듯한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상담실, 유리와 그녀는 마주 앉았다.방 안에는 창문 너머로 불어온 바람이 커튼을 아주 살짝 흔들었고,그 바람이 식탁 위의 종이 한 장을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여성은 말했다.“사람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더라고요.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그 말에 유리는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그 문장이 방 안에 맴돌기를 기다렸다.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맞아요. 아무 일도 없어 보일 때 가장 깊이 부서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그녀의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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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지금 말하고 있으니 충분해요

햇살은 도심 위를 부드럽게 쓸고 있었다.밤새 쌓인 먼지를 밀어내듯,거리는 서서히 제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고,차가운 공기 끝에서 봄의 기척이 아주 미세하게 섞이기 시작했다.유리는 센터 안에서 창을 열고 있었다.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그 안에 실려 들어온 냄새는 어디선가 익숙한 감정을 건드렸다.책상 위에는 전날 상담이 끝난 메모가 정리되어 있었고,그 옆에 놓인 노트 한 권에는 누군가 남긴 글이 조심스럽게 적혀 있었다.‘그때,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그 문장을 바라보는 유리의 시선이 천천히 어딘가로 꺾여갔다.기억 저편, 잊은 줄 알았던 장면 한 조각이 물속에서 부유하듯 떠올랐다.이우는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오늘은 유리가 먼저 도착했고, 그는 한 발 늦은 출근길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었다.그는 매일 아침 유리와 나눌 말보다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듣고 있었다.센터 안으로 들어선 그는 유리의 등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오늘은 어떤 하루입니까.”유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조용한 하루가 될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네요.”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온함과 동요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정오가 가까워지자 센터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오늘의 내담자는 조용히 걸어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예약한 사람입니다.”유리는 그를 안내하며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그의 걸음, 말투, 고개를 숙이는 방식.무언가,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였다.상담실 안, 남자는 조심스레 말했다.“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무서워졌어요.”“그 순간, 멈춰 있었던 나 자신이 지금도 싫습니다.”유리는 그 말에 작은 진동처럼 몸을 떨었다.그 말은 예전, 조유진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말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살고 싶었어. 근데 움직이질 못했어.’그녀는 그날, 언니가 아닌 자신을 먼저 용서하지 못했던 그 밤을 고스란히 떠올렸다.상담이 끝난 뒤, 유리는 책상에 혼자 앉아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한 장면을 되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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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

새벽이었다. 밤과 아침의 경계가 엷게 뒤섞인 하늘 아래,도시는 아직 스스로를 깨우지 못한 채 긴 숨을 참고 있는 듯 고요했다.가로등은 하나둘 꺼지고 있었고,골목 벽에 기대어 있던 어둠의 잔해들이 조금씩 색을 잃고 사라지고 있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손에는 오래된 종이 파일이 들려 있었고,그 표지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글씨가 얇게 번져 있었다.‘조유진. 생전 기록.’오늘, 그녀는 한 사람의 생을 말로 정리하기 위한 자리에 나선다.그 이름을 다시 꺼내기까지 백 번쯤 마음을 접었고, 그보다 더 많이 눈을 감았다.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아침이 차분하게 센터 안을 채우고 있었다.햇살은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았고,따뜻함보다는 선명함을 품은 채 유리의 뒷모습을 조용히 비추었다.이우는 한쪽에서 마이크와 녹음기를 점검하고 있었다.오늘 그녀의 말들이 어느 누군가에게작은 조각으로라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조심스럽게 손끝에 닿아 있었다.그는 유리의 옆에 와 앉았다.“준비되셨습니까.”유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아니요. 그런 건… 아마,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겠죠.”그 대답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다짐보다 더 깊은 감정이 묻어 있었다.정오 무렵, 기록을 위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녹음기의 빨간 불빛이 깜빡였고, 공기 중에는 긴장과 정적이 얇게 깔렸다.유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조유진. 제 언니였고…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습니다.”그 첫 문장이 공간을 울렸다.그녀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누구보다 정직했다.그녀는 조유진이 남긴 메모, 마지막 상담일지,그리고 병원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까지 하나하나 정리된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그 말들 속에서 한때 세상에서 지워졌던 이름이 다시 생의 중심으로 걸어나왔다.중간중간, 유리는 몇 번이고 숨을 골랐다.단어가 입술 끝에서 맴돌다가 그대로 멈춰 설 때면, 이우가 눈으로 그녀를 지지했다.말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오후, 녹음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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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다시 그녀의 이름으로

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뒤에도 도시는 완벽히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도로는 한산했지만, 신호등은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며 붉고 푸른 빛을 반복해내고 있었다.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를 조금 더 붙잡고 있는 사람들처럼.유리는 상담센터의 외벽 앞에 서 있었다.손에는 얇은 명판 하나가 들려 있었고,그 위엔 그녀가 처음으로 혼잣말처럼 꺼냈던 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조유진 상담소.’그녀는 조심스레 그것을 문 옆에 부착했다.찰나의 순간. 손끝이 떨렸고, 가슴 언저리 어딘가가 묘하게 저릿했다.하지만 그 떨림은 더 이상 망설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이제, 그 이름을 가릴 필요가 없는 시간이었다.이우는 센터 안에서 작업 중인 명함 뭉치를 정리하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새 로고, 새 종이 질감,그리고 ‘조유진 상담소’라는 문구가 작고 단단하게 인쇄되어 있었다.그는 명함을 한 장 뽑아들어 조용히 미소지었다.이 공간은 이제 누군가의 죽음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누군가의 살아 있음을 증명해줄 장소가 될 것이다.다음 날 아침, 햇살은 묘하게 부드러웠다.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이 겹치는 계절의 빛은창문 틈으로 들어와 센터 구석구석을 조용히 어루만졌다.유리는 새 명판을 확인한 뒤 이우에게 커피를 건넸다.둘의 손끝이 잠시 스쳤고,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마음의 속도가 조절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맙습니다.”유리가 말했다.이우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날의 감사는 말보다 눈빛이 먼저였고, 둘의 사이에는 이미 말 없이 주고받는 문장이 익숙해져 있었다.정오가 가까워지자 첫 내담자가 들어섰다.새 간판을 본 사람일까. 그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유리는 그를 맞으며 살짝 웃었다.“여기는,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리예요.”그 말은 단지 안내 멘트가 아니었다.그녀 자신에게, 그리고 이우에게도 여전히 매일 되새기는 문장이었다.해가 기울 무렵, 이우와 유리는 센터 옥상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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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기억에서 말로, 말에서 기록으로

“당시… 그 친구가 뭘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진실을 접했는지 저희는 불안했어요.제가 그 불안을 어떻게든 누그러뜨리려 했던 것뿐입니다.”말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리는 그 조각난 문장들 속에서 이미 한 가지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누군가가 유진을 무서워했고, 또 누군가는 그 무서움을 조율하는 척하며 결국 등을 돌렸다.그 이름을 불렀던 사람들은 많았지만,그 목소리 속에 진짜 사랑이 담긴 사람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창밖에서 고요하게 흐르던 저녁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남자가 돌아간 뒤, 유리는 녹음기를 켰다.방금 전 대화를 그대로 담아낸 기록. 그 안에서 유진의 이름은 무수히 반복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부른 목소리는 단 한 번도 진심을 건드리지 못했다.그녀는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이건, 유진의 목소리가 아니야.”이우는 센터 뒷마당에 나와 있었다.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작은 공간에 조용히 서 있던 그에게 유리가 다가왔다.“거짓말은, 시간이 지나도 소리가 안 바뀌네요.”그 말에 이우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목소리는… 말 안에 있지 않잖아요. 그 사람의 행동 안에 있죠.”유리는 그 말에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리고 조용히, 자신에게 말하듯 말했다.“언니가 남긴 행동들을 내가 대신 말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게 아마, 제일 정직한 복수가 되겠죠.”그날 밤, 센터는 조용했고, 유리는 책상 위에 녹취록을 정리하고 있었다.그 옆에, 조유진의 손글씨로 된 오래된 메모 한 장이 있었다.‘나는 사라질 수 있어도, 말은 남는다.’유리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그리고 조용히 한 줄을 덧붙였다.‘그러니 나는, 그 말을 지켜낼 것이다.’해가 떠오르기 전, 도시는 바람으로 먼저 깨어나 있었다.창밖으로 흘러드는 공기는 밤의 끝을 간신히 붙잡은 듯차고 얇았고, 구름은 햇빛이 닿기도 전부터 회색빛 속에서 조용히 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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