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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너무 위험한 여자: Chapter 141 - Chapter 150

188 Chapters

140. 마지막을 보낸 자리, 조용히 남는 마음

아침은 정적 속에서 시작되었다.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조용히 스며들었고, 공기에는 냄새도, 움직임도 없었다.단지 어제의 여운만이 한 겹 얇은 안개처럼 책방 안에 머물고 있었다.이우는 느린 걸음으로 주방 쪽으로 향했다.어제와 같은 찻잔, 같은 물의 온도, 같은 손끝의 무게.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달라져 있었다.무언가를 기다리는 움직임이 아니었고,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손길도 아니었다.단지 오늘 하루를 자신의 온도로 조용히 감싸려는 혼자의 리듬이었다.책상 위엔 여전히 유리가 마지막으로 앉아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펼쳐지지 않은 노트, 반쯤 닳은 펜,그리고 그녀가 자주 쓰던 얇은 손수건.이우는 그것들을 치우지 않았다.그는 그 물건들이 이 자리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그저 ‘지금’ 이대로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랐다.정리는 끝났지만 기억은 아직 마음의 안쪽에서 서서히 정돈되는 중이었다.정오가 지나 햇살이 더 깊어졌을 무렵, 이우는 책방의 불을 켜지 않았다.그는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없고,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도 없고,누군가 문을 여는 기척도 없는 공간.그런 공간 안에서 그는 자신이 지금 유리 없이도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숨을 쉰다는 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어야 한다면, 그는 지금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그날 오후, 이우는 천천히 책장을 정리했다.유리가 좋아하던 시집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두고 한 장 한 장 소리를 내지 않고 넘겼다.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어느 날의 끝은 다른 날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그는 그 문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이 남아 있는지 더 이상 말로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그저 지금 이 자리에 유리가 없는 상태로 자신이 앉아 있다는 것.그 사실만이 가장 확실한 감정의 형태였다.저녁 무렵. 창밖의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이우는 커튼을 젖히지 않았고, 가게 문도 열지 않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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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남은 것들만으로도 하루는 살아지네요

그의 손끝엔 이제 무언가를 꺼내는 힘보다,조용히 남겨두는 감각이 더 깊게 배어 있었다.정오에 그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물의 온도를 느끼고, 찻잎이 풀리는 속도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시간은 더 이상 그에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머무는 결’로만 존재하고 있었다.컵을 내려놓은 뒤 그는 유리의 자리를 바라보았다.빈 의자 위, 조금 바랜 방석과 접혀 있는 손수건 하나.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그것이 그에게 더 잔잔하고, 더 뚜렷한 감정을 남겼다.창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소리는 없었지만, 물방울이 유리창 위로 번져가는 결이 그의 시선을 가로막았다.이우는 그 흐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눈앞이 흐려지는 걸 굳이 닦아낼 이유는 없었다.삶은 언젠가부터 선명한 것보다 조금은 흐릿한 채로 자신을 감싸주는 게 더 편하다는 걸 그는 배워가고 있었다.저녁에 책방 안은 온기보다 그리움이 조금 더 무겁게 깔려 있었다.이우는 찻잔을 다시 들었다.이번엔 조금 마셨고, 그 온기가 식기 전 다시 내려놓았다.유리가 앉던 자리에 자신도 천천히 앉았다.그리고 말없이 손을 뻗었다.손끝은 공기를 잡고 있었지만 그 감각은 분명히 누군가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지금도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요.”그는 혼잣말처럼 중얼였다.소리는 작았고, 그 말은 멀리 퍼지지 않았지만그 순간만큼은 온 방 안이 그 말을 기억하는 듯 잠시 숨을 죽였다.밤이 되었다.이우는 창가에 등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별은 보이지 않았고, 비는 그쳤지만 유리창엔 여전히 젖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그는 손끝으로 창문을 쓸었다.그 흔적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 감촉만은 오래 남았다.유리의 손등, 유리의 손끝, 유리의 마지막 말 없는 인사.모두가 지금 이 방의 공기처럼 조용히 그의 마음 속에 머물러 있었다.그날 밤, 그는 노트를 펼쳤다.페이지는 하얗게 남겨져 있었고 그는 어떤 문장도 쓰지 않았다.단지 한참을 펼쳐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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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마지막 인사, 혼자만의 방식으로

그는 창가에 앉아 한 모금씩 커피를 마셨고, 그 잔은 조금씩 비워졌다.그렇게 비워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는 조용히 남은 하루를 정리해갔다.밤이 되었다. 어둠은 조용했고, 소리는 더디게 움직였다.그는 일지를 꺼내 어떤 문장도 쓰지 않고 그저 첫 페이지를 펼친 채 긴 숨을 쉬었다.페이지는 하얗게 비어 있었지만그 하얀 여백 안에 자신이 견뎌온 하루의 무게가 조용히 머물고 있었다.그는 펜을 들지 않았다.남기지 않아도 남아 있는 것들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날 밤, 이우는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마음속 어디에도 고통도, 회한도 남아 있지 않았다.단지 한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했던 기억,그리고 그 사랑이 삶으로 흘러들어와자신의 하루를 채우고 있다는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말하지 않아도, 기억하지 않아도 감정은 남았다.그리고 그 감정은 이우를 내일로 데려갈가장 조용하고, 가장 확실한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늦은 아침이었다. 햇살은 차분하게 내려와 방 안의 벽과 커튼 사이를 맴돌고 있었고,공기는 어딘가 더디게 움직이는 듯 무게를 가진 채 머물러 있었다.이우는 창문을 열지 않았다.그는 이제 바람이 굳이 들지 않아도 하루가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침대 머리맡에 놓인 책 한 권,책상 위에 비스듬히 기댄 유리의 사진,그리고 더 이상 켜지지 않는 작은 스탠드.그 모든 것들이 아직 이 자리에 있었지만그것이 ‘함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명확했다.그는 오늘,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었다.말로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정오 무렵. 책방 안은 조용했다.그는 평소보다 일찍 서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먼지가 쌓인 책등을 하나하나 쓸어내고,잊고 있던 낡은 메모지를 발견해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그 메모지에는 유리의 필체로 짧은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기억은 흐려져도, 감정은 남아요.’그 말은 이우의 가슴 안에서 천천히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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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너 없이도, 나는 살고 있어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작별할 수 있고,작별한 후에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일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이우는 그 사실을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아침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창밖의 하늘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았고, 빛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유리창을 타고 흘렀다.이우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저 '오늘'이라는 결을 조용히 따라가기 위해서였다.침대 맡엔 여전히 유리가 남긴 노트가 있었다.표지는 조금씩 색이 바랬고,그 위에 놓인 작은 찻잔 코스터는 마치 무게를 가지기라도 한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이우는 손을 뻗지 않았다.지금의 그는 그 자리에 손을 얹는 대신그 자리에 '남겨두는' 방식으로 기억을 다루고 있었다.책방의 불은 이우가 움직이기 전부터 이미 켜져 있었다.밤새 켜진 조명은 이제 무언가를 밝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그저 이 공간이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처럼 존재했다.그는 주방으로 향해 커피포트를 올렸다.물은 천천히 데워졌고, 그 속에서 기포가 피어오르기 시작할 즈음그는 찻잔 두 개가 아닌 오직 한 개만을 꺼냈다.그 행위가 더 이상 특별하거나 고독하지 않았다.이제 그는 누구의 리듬도 아닌 자신의 리듬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정오가 가까워오자 이우는 가게 문을 열었다.열린 문 너머로 들어온 바람은 약간 차가웠지만 불쾌하지 않았다.문 너머로 지나치는 사람들,바쁜 걸음, 짧은 시선들.그는 그 모든 것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일도,자신이 감춰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의식도 그에게는 이제 의미 없는 감정이 되어 있었다.이우는 문을 닫지 않았고, 대신 조용히 창가 의자에 앉았다.그 자리는 예전에 유리가 자주 앉던 자리였지만, 이젠 그의 하루가 놓이는 하나의 작은 시간대였다.“괜찮다”는 말을 그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위로가 목적이었던 적도,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주문이었던 적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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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네가 남긴 속도로 나는 오늘을 걸었어

이우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몸을 일으키며 잠시 손끝을 바라보았다.언제부턴가 하루를 시작하는 기준은 그 손끝이 떨리는지 아닌지였다.오늘은 다행히, 떨림이 없었다.그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찻잔 하나, 작은 물주전자 하나, 두 손으로 잡은 텅 빈 컵의 무게.모든 게 익숙했고, 그 익숙함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 날이었다.책방 문은 열려 있었다.하지만 이우는 간판을 꺼내지 않았다.들어올 손님이 없어도 괜찮았고, 들어오더라도 이 공간이 더 이상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그는 창가의 자리에 앉았다.커튼은 반쯤 젖혀 있었고, 햇살은 들어오지도,완전히 막히지도 않은 채 창틀에서 조용히 부유하고 있었다.그는 손바닥을 그 햇살에 얹었다.온도는 없었지만 빛이 손을 지나가는 느낌은 분명히 존재했다.그는 문득 유리가 이런 말을 했던 날이 떠올랐다.“햇살이 손등 위로 지나가는 기분, 그게 생각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에요.”그 말은 그의 기억 속에 정확한 장면은 없이 남아 있었고,지금 손등 위의 빛을 통해 아주 짧고 또렷하게 되살아났다.정오 무렵. 가게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이우는 찻잔을 닦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행인 몇 명이 지나갔고, 고개를 돌려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그 누구도 문을 열지는 않았다.이제 그는 문이 열리는 것보다닫힌 채로 유지되는 시간이 더 사람다운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닫힌 문 너머에서 자신의 속도대로 하루를 흘려보내는 삶.그건 이우에게 더 이상 회피가 아니었고 하나의 선택이었다.오후에 빛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할 무렵, 그는 책장 앞에 섰다.손끝으로 책등을 따라가며 가볍게 먼지를 털었다.그러다 한 권의 시집을 꺼냈다.유리가 마지막으로 펼쳐 두었던 책. 그는 아무 말 없이 책장을 열고 가장자리 구겨진 페이지 한 곳을 바라보았다.거기에는 연필로 희미하게 줄을 그어둔 문장이 있었다.“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속도를 잃어갈 뿐이다.”그는 책장을 덮지 않았다.그 문장을 천천히 읽은 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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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감정은 아직 이르지만, 분명히 도착해 있다

하루는 늘 같은 결로 시작되었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창밖의 빛은 바닥에 희미한 선을 그었고, 그 선을 따라 먼지가 천천히 흩어졌다.그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그저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모든 것이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이우는 찻잔을 들었다.익숙한 무게, 익숙한 손끝의 감각.그는 오늘도 같은 물의 온도를 맞췄고, 같은 찻잎을 우려냈다.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적어도 겉으로는.하지만 마음 한 귀퉁이,이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감정의 조각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책방은 조용했다. 밖에는 사람들이 오갔고,이따금 누군가 창밖을 들여다보았지만 그 누구도 문을 열지는 않았다.이우는 무심한 듯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눈은 페이지 위를 따라갔지만 머릿속은 그 문장을 붙잡지 않았다.그는 단어를 읽는 대신 문장 사이사이에 숨겨진 여백을 바라보았다.그 여백은 어느 날의 창밖을 닮아 있었다.그리고 그 창밖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처음 본 얼굴이었다.길게 묶은 머리, 회색 코트,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창 안을 바라보던 눈.그녀는 오래 서 있지 않았고, 곧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그녀가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은 잔상은책 페이지보다 훨씬 더 오래 이우의 시야에 남아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었다.늦은 바람이 커튼을 건드렸고, 그 사이로 그녀가 서 있던 자리,정확히 그 자리를 그는 눈으로 더듬었다.아무것도 없었다.그녀의 흔적도, 그녀의 시선도.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의 감정만큼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그는 말하지 않았다.스스로에게도, 그녀에게도.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가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그 물결은 크지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있었다.그는 다시 찻잔을 들었다.잔속의 물이 조금 더 가볍게 흔들리는 걸 느끼며 그 감정이 비록 아직은 이르지만분명히 도착해 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해가 지기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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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더 이상 비어 있지 않다

누군가가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짧은 머리, 길고 곧은 자세,그는 얼굴을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어제의 그 여자였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그녀는 또 오래 머물지 않았다.이우가 다가갈 틈도 없이 곧 사라졌다.그가 일어섰을 땐 이미 창밖에는 아무도 없었지만유리창 위에 남은 온기 하나가 분명히 그녀의 기척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이우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떠난 사람의 흔적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자신 안에서 일어난 감정 하나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그 감정은 어제처럼 조용했고, 아직 이름 붙일 수 없었지만그는 더 이상 그것을 밀어내지 않았다.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오늘의 마음은 충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오후가 되어가자 이우는 책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오늘따라 손끝이 책등을 오래 더듬었고, 서랍을 여는 소리도 조금 더 느려졌다.그는 무의식중에 조용한 정리를 시작했다.책장 위 먼지를 닦고, 모서리에 놓인 오래된 노트를 서랍 깊숙이 밀어넣었다.그 행위는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를 위한 비움이었다.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그만큼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된 것이다.해가 지기 전, 그는 처음으로 문 앞에 작은 화분을 내놓았다.유리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 단 한 번도 그는 이 공간을 누군가에게 열려 있는 방식으로 꾸며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그녀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없이,그냥 이 계절의 한순간을 누군가와 가볍게 나누는 방식으로 그는 작은 ‘표시’를 남긴 것이었다.그건 그의 마음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는 조용한 징후였다.저녁시간, 책방 안에는 불이 켜졌고,따뜻한 노란빛이 조용히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이우는 한참을 창가에 앉아 있었다.창밖엔 사람이 없었고, 그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조용히 두 손을 맞잡았다.그 손에 스쳐간 감정 하나. 그것을 더 이상 지우거나 삼키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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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조심히 가요

오후에 두 사람은 함께 책을 정리했다.별다른 대화는 없었고, 이우는 그녀에게 책의 위치를 따로 설명하지도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정돈한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였고,그 조용한 공조 속에서 이우는 더 이상 ‘함께 있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그는 그 느낌을 무겁게 다루지 않았다.대신 그 조용함을 하나의 감정처럼 천천히 끌어안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그럼, 오늘은 이만 갈게요.”이우는 잠시 망설였다.그리고 마침내, 짧게 대답했다.“…조심히 가요.”그 말은 오래 미뤄왔던 ‘첫 문장’이었다.그는 오늘 처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말을 꺼냈다.그 말은 작고,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하나의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밤에 비는 멈췄고, 창밖의 공기에는 습기가 조금씩 걷혀 있었다.책방 안에 남은 온기와 그녀가 앉았던 의자의 결,손끝에 남은 미세한 감정.그 모든 것이 이우의 오늘을 조용히 바꿔놓고 있었다.그는 일지를 펼쳐 다시 한 문장을 남겼다.‘나는 오늘, 처음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그 문장은 짧았지만, 지금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기록은 그의 다음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천천히 마음 안에서 번지고 있었다.비가 지난 다음 날의 아침은 어디선가 조용히 깨어난 듯 고요했다.구름은 걷혔고, 햇살은 먼지를 덮지 않은 창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었다.이우는 늦게 일어났다.몸을 일으키는 속도는 느렸고, 침묵은 여전히 방 안에 머물러 있었다.하지만 어제와는 달랐다. 무언가 조금 풀려 있었다.그리고 그 풀림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었다.그는 스스로에게 그것이 온기였음을 인정하고 있었다.책방의 문을 열었다.이우는 오늘도 창가에 화분을 내놓았다.햇살은 그 화분 위로 가만히 내려앉았고,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의 손길 같았다.그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빈자리가 외롭지는 않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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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밤에 불은 꺼지지 않았고, 일지는 펼쳐지지 않았다.이우는 손끝으로 탁자의 나무결을 오래도록 쓸었다.손끝의 감각이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조금 더 천천히 걸어야 한다.’그는 오늘, 온기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온기를 지켜야 한다는 또 다른 의지를 품었다.그것이 사랑일지, 단지 마음의 연약한 감정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는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다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아침 시간. 빛은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다.그 밝음은 찬란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면 위에 내려앉은 먼지처럼 조용히 이우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그는 눈을 떴지만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몸을 일으키기까지의 시간은 감정이 안으로 가라앉는 서서히 식는 물의 시간과 닮아 있었다.지켜야 한다는 감정은 소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무게로 다가왔다.그는 지금 마음을 품고 있었다.그리고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책방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이우는 오늘 커튼을 전부 걷지 않았다.어느 구간은 바깥을 향해 열어두고, 어느 구간은 스스로의 결심처럼 조용히 가려두었다.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건 언제나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덮는 일과 함께였다. 그는 이제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마음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정오 무렵. 그녀가 찾아왔다.그녀는 변함없이 편안한 웃음을 지었고, 이우는 그 웃음의 결을 조금 더 천천히 받아들였다.두 사람은 함께 앉았고, 함께 책을 넘겼다.하지만 이우의 시선은 책장보다 창밖을 더 자주 바라보았다.무엇이 올지 모른다는 예감은 때로는 근거 없는 것이지만,그 예감이 어느 순간 구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우는 알고 있었다.그녀는 자주 웃었고, 말수가 적은 이우의 말에 오히려 더 오래 귀를 기울였다.그가 말하지 않는 순간에 그녀는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고, 그 이야기들 안에 크게 부풀지 않은 온기가 머물렀다.그녀의 말이 이우에게 닿는 방식은 소리보다 숨결에 가까웠다.그리고 그 숨결은 그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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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감정은 조용히 삶 안으로 들어온다

책방 문은 열려 있었지만 커튼은 여전히 반쯤 드리워져 있었다.그는 더 이상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었다.그의 마음은 지금 하나의 문턱에 서 있었다.그녀를 향한 감정은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하지만 그 자람을 성급히 꺼내 놓을 수 없었다.왜냐하면 그 감정은 아직 부서지기 쉬운 무언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정오 무렵. 그녀는 오지 않았다.이우는 괜찮았다.그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그는 오히려 자신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감각에 더 놀랐다.기다림이라는 건 생각보다 조용하게,그리고 어느 순간엔 당연하게 찾아오는 것이었다.그는 찻잔을 들고 창가로 걸었다.그녀가 서 있던 자리, 어제의 손길이 머물렀던 곳.그곳은 여전히 그녀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오후시간. 그는 책을 정리하다 말고 자리에 앉았다.자꾸만 그녀의 말투가 떠올랐다.말끝에 머물던 망설임, 어떤 단어를 쓰기 전에 입술 위에 잠깐 떠 있는 숨소리.그것들이 지금 그의 귀 안에서 천천히 울리고 있었다.그는 펜을 들었다. 일지를 펴지 않았다.그저 책상 위 메모지에 한 글자씩, 마음의 무게만큼 꾹꾹 눌러 적었다.‘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곧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그 글을 적고 나서 그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해가 지기 전, 그녀가 왔다.이우는 미리 문을 열어두지 않았고, 그녀는 조용히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짧은 인사, 짧은 눈맞춤. 그 순간, 이우는 무언가를 삼켰다.그건 말이기도 했고, 감정이기도 했으며, 고백이 될 수도 있었던 무엇이었다.하지만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 마음은 지금 너무 조심스러웠고,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더 정직한 감정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한동안 책을 정리했고, 이우는 책상 뒤에서 그 손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그 손끝의 흐름, 책을 잡는 힘, 고개를 숙이는 방식.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조용히 감쌌다.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자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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