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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주의》全部章節:第 191 章 - 第 200 章

255 章節

191화. 잡지 않은 손, 남은 비 (5)

나는 라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뜨거웠다.맛있었다.괜히 더 맛있어서 짜증이 났다.[맛있네.]보내고 나서 조금 놀랐다.이걸 왜 보냈지.읽음.답이 한참 없었다.나는 라면을 먹는 척하면서 계속 휴대폰을 봤다.드디어 답이 왔다.[강태준]그 말 좋다.나는 입술을 눌렀다.아주 사소한 말 하나에도 이 사람은 자꾸 좋다고 한다.그게 부담스러운 날도 있고,조금 웃기는 날도 있고,오늘처럼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도 있다.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대신 라면을 마저 먹었다.국물은 조금 남겼다.설거지를 하고, 식탁에 앉아 한참 비 오는 창문을 봤다.오늘은 집 앞까지 왔다.아니, 집 앞 골목 입구까지.태준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들어오려고 하지도 않았다.내가 말하기 전에 멈췄다.그게 좋았다.좋았다는 말을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 안에서만 아주 작게 말했다.좋았어.그 정도는.밤이 조금 깊어졌을 때, 태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강태준]오늘은 여기까지 할게.나는 화면을 보며 웃었다.이제 그는 그 말을 너무 잘 안다.오늘은 여기까지.그 말이 예전에는 끝처럼 들렸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약속처럼 들린다.더 가지 않겠다는 약속.그 자리에서 멈추겠다는 약속.내일을 오늘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약속.나는 답했다.[응.]손이 멈췄다.그리고 하나 더 썼다.[오늘은 고마웠어.]읽음.답은 조금 늦게 왔다.[강태준]나도.잠깐.[강태준]오늘은 그 말까지만 좋아할게.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탁에 엎드렸다.진짜 미치겠다.조금 웃겼고, 조금 울 것 같았다.어쩌면 둘 다였다.창밖에서는 비가 계속 내렸다.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오늘은 집 앞까지 온 사람을 돌려보냈고,생수만 들어달라고 했고,라면에 계란을 넣었고,고맙다고 말했다.정말 별일 아닌 하루였다.그런데 이상하게, 별일 아닌 것들이 자꾸 무거워진다.아니.무겁다기보다 따뜻해진다.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따뜻한 건 오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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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닫힌 문 안에, 들어온 목소리 (1)

일요일은 하루 종일 흐렸다.비는 오다 말다 했다.창밖을 보면 젖어 있었고, 또 조금 지나서 보면 마른 척을 하고 있었다.사람 같았다.괜찮은 척하다가,금방 또 티 나는 사람.나는 아침부터 집 안에 있었다.어제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한 번 더 돌리고, 냉장고 안을 닦았다.별일 아닌 일들을 계속 했다.계속 움직이면 생각이 덜 날 줄 알았다.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냉장고에 계란을 넣다가 태준이 한 말이 떠올랐다.라면 먹을 거면 계란 넣으라고.나는 계란 칸을 닫으며 혼자 작게 웃었다.진짜 별걸 다 기억하게 만든다.식탁 위에는 어제 먹고 남은 컵라면 용기가 없었다.분명 씻어서 버렸는데도, 그 자리에 아직 뭔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태준이 집 앞 골목 입구까지 왔던 일.생수만 들어줬던 일.내가 라면에 계란은 넣겠다고 말했던 일.정말 말도 안 되게 작은 일들.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들이 자꾸 하루의 중심으로 와 있었다.큰 고백도 아니고,손을 잡은 것도 아니고,다시 시작하자는 말도 아닌데.생수.계란.우산.문.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물을 틀었다.손에 묻은 세제 거품이 흘러내렸다.그러다 문득 현관 쪽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삐빅.나는 고개를 돌렸다.도어락이었다.처음에는 누가 온 줄 알았다.가슴이 먼저 내려앉았다.그런데 아무도 없었다.다시.삐빅.도어락 화면에 작은 빨간 불이 깜빡였다.배터리.나는 한숨을 쉬었다.“아, 진짜.”이런 건 꼭 이럴 때 생긴다.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다가, 문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남아 있는 날에.나는 현관 앞으로 갔다.도어락 덮개를 열어보려고 했는데, 손톱 끝만 미끄러졌다.예전에 한 번 갈아본 적은 있었다.언제였더라.생각하다가 멈췄다.그때는 태준이 갈아줬다.당연하다는 듯이.“이건 내가 할게.”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손을 뻗었다.그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옆에 서 있었다.태준이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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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닫힌 문 안에, 들어온 목소리 (2)

[강태준]비 안 맞았어?나는 현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화면을 봤다.비 안 맞았어?어제는 마트.오늘은 비.정말 날씨로만 나를 부르는 사람.나는 답을 쓰려다 말고, 도어락을 한 번 봤다.그리고 다시 화면을 봤다.[집에 있어.]보냈다.읽음.답이 왔다.[강태준]다행이다.나는 그 문장을 보다가, 괜히 도어락 덮개를 한 번 더 밀었다.안 열렸다.짜증이 났다.[근데 도어락 배터리 갈아야 돼.]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이건 거의 부른 거 아닌가.아니, 그냥 말한 거다.말만.그런데 읽음이 뜨고 나서 답이 한동안 오지 않았다.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몇 초 뒤 메시지가 왔다.[강태준]도와줄까?나는 예상했는데도 숨이 멈췄다.도와줄까.예전 같으면 이미 왔을 것이다.어디야, 하고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내 집을 알았고, 내 비밀번호도 알았고, 내가 막지 않으면 그냥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지금은 물었다.도와줄까.나는 현관문을 봤다.닫힌 문.안쪽의 나.바깥쪽 어딘가의 태준.나는 답장을 쓰지 못하고 한참 있었다.[아니. 해볼게.]보냈다.읽음.[강태준]응.끝이었다.정말 끝.더 오지 않았다.그게 또 묘하게 서운했다.아니,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진짜 왜 이래.나는 휴대폰을 옆에 놓고 다시 도어락을 붙잡았다.덮개가 안 열렸다.검색 영상을 켜봤다.영상 속 사람은 너무 쉽게 열었다.“아래쪽 홈을 살짝 눌러 위로 밀어주세요.”나는 그대로 했다.안 됐다.“살짝”이라는 말이 제일 짜증났다.살짝 해서 되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조금 세게 밀었다.손톱이 걸렸다.“아.”손끝이 찌릿했다.피가 난 건 아니었다.그런데 아팠다.괜히 더 화가 났다.나는 현관 바닥에 주저앉았다.도어락은 여전히 빨간 불을 깜빡이고 있었다.그 작은 불빛이 사람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휴대폰이 다시 울렸다.[강태준]말로만 해줄까.나는 화면을 오래 봤다.말로만.그 말이 이상하게 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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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닫힌 문 안에, 들어온 목소리 (3)

나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태준은 잠깐 말이 없었다.그가 사진을 보는 동안, 나는 괜히 현관 바닥의 먼지를 손끝으로 밀었다.집이 너무 조용했다.이렇게 조용한 집에 그의 목소리가 들어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그때와 달랐다.예전엔 그가 내 집 안에서 걸었고, 옷을 벗어 의자에 걸고, 냉장고를 열고, 내 컵을 찾아 물을 마셨다.지금은 목소리만 있었다.그래서 더 선명했다.“서윤아.”“응.”“아래쪽 말고 오른쪽 옆면에 홈 있을 거야. 손톱 말고, 얇은 카드 같은 거 있어?”“카드?”“응. 손톱 다칠 수 있으니까.”나는 지갑에서 안 쓰는 카드를 하나 꺼냈다.“있어.”“홈에 넣고 살짝 들어 올리지 말고, 밀어. 위로.”“위로?”“응. 힘을 아래에서 위로.”나는 그대로 했다.카드가 미끄러졌다.“안 되는데.”“천천히 해.”“천천히 했어.”“조금만 더.”“이거 부러지는 거 아니야?”“안 부러져.”“네가 어떻게 알아.”“예전에 같은 거 해봤어.”말이 멈췄다.둘 다 알았다.언제였는지.어느 집이었는지.누구 도어락이었는지.나는 카드를 홈에 끼운 채 가만히 있었다.태준도 잠깐 조용했다.그 침묵이 너무 커지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그때랑은 다르잖아.”“응.”태준의 목소리는 낮았다.“그래서 말로만 하는 중이야.”나는 대답하지 못했다.카드를 다시 밀었다.딸깍.덮개가 열렸다.“열렸다.”나도 모르게 말했다.태준의 숨이 아주 작게 풀렸다.“됐네.”“응.”“배터리 빼고 새 거 넣으면 돼.”“건전지 있어.”“같은 방향으로.”“나도 알아.”“알아.”태준이 바로 말했다.“그냥 말하고 싶었어.”나는 웃음이 날 뻔했다.“그런 건 말해도 돼.”“응.”나는 배터리를 하나씩 뺐다.도어락이 짧게 꺼졌다.문득 불안했다.“이거 문 잠긴 거 맞지?”“안에서 하는 거면 괜찮아.”“혹시 안 열리면?”“문 안 열려?”“아니.”“그럼 괜찮아.”나는 새 건전지를 넣었다.방향이 헷갈려서 잠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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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닫힌 문 안에, 들어온 목소리 (4)

“아니.”내가 말했다.“손 보여주는 게 싫다기보다.”뒷말이 너무 어려웠다.나는 현관 바닥에 앉아 손끝을 내려다봤다.“지금 집이라서.”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조금 더 작게 말했다.“화면 켜면, 네가 여기 보는 것 같아서.”말하고 나서 숨이 막혔다.너무 정확했다.태준은 한참 뒤에 말했다.“응. 안 볼게.”목소리가 이상했다.참는 소리였다.“보고 싶은데.”그가 덧붙였다.나는 눈을 감았다.정말.이 사람은 이제 숨기지를 않는다.“근데 안 볼게.”그 말이 뒤따라왔다.그래서 더 아무 말도 못 했다.나는 현관 벽에 등을 기댔다.“그 말은 좀 크다.”“알아.”“알면서 해?”“응.”“왜.”태준은 잠깐 조용했다.전화 너머로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차 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그는 밖에 있는 걸까.차 안일까.집일까.나는 묻지 않았다.“안 보고 싶다고 하면 거짓말이라서.”태준이 말했다.나는 입술을 눌렀다.“그렇다고 다 말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응.”“근데 말했네.”“응.”“진짜…”말이 끝나지 않았다.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그런데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답답한데 싫지는 않았다.이 표현은 이제 너무 많이 써서, 나도 내가 지겨울 지경이다.그래도 사실이었다.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오늘은.”내가 말했다.“목소리까지만.”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응.”그가 말했다.“목소리까지만.”나는 현관문을 봤다.닫힌 문.그 안쪽에 앉아 있는 나.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 태준.그리고 문 안에 들어온 목소리.오늘의 허락은 그 정도였다.몸은 아니고,손도 아니고,시선도 아니고.목소리.나는 손끝으로 도어락 덮개를 한번 눌렀다.잘 닫혔다.“끊을게.”내가 말했다.“응.”태준은 더 붙잡지 않았다.그게 이상하게 아쉬워서, 내가 또 말했다.“도와줘서 고마워.”“응.”“근데 다음부터 이런 일 있다고 바로 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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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닫힌 문 안에, 들어온 목소리 (5)

나는 침대 끝에 앉았다.창밖에는 다시 비가 시작되고 있었다.정말 끈질기다.비도,이 감정도.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그리고 결국 하나 더 보냈다.[오늘은 목소리까지만.]읽음.태준의 답은 조금 늦었다.[강태준]응.잠깐.[강태준]그 정도로 있을게.나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그 정도.그 말이 이제 우리 사이에 자주 놓인다.처음에는 선 같았는데, 요즘은 길처럼도 보인다.좁고, 느리고, 자주 멈추는 길.그래도 완전히 끊기지는 않는 길.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문은 잠겨 있었다.그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그리고 이상하게, 문 안에 남은 목소리 하나가 나를 덜 외롭게 했다.그게 조금 무서웠다.무서운데,오늘은 싫지 않았다.⸻【태준의 속마음 34】도어락 배터리 이야기를 듣자마자네게 가고 싶었다.어디야.갈게.기다려.그 말들이 먼저 떠올랐다.예전의 나는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그게 걱정이고,사랑이라고 믿었다.하지만 오늘은 물었다.도와줄까.네가 아니라고 했고,나는 멈췄다.맞는 일이었는데도 쉽지는 않았다.차 키를 들고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남았다.아직도 네 집으로 가는 길을 안다.골목 모퉁이와 건물 입구,엘리베이터 옆 거울까지.너는 비밀번호를 바꿨고,나는 이제 그 번호를 모른다.모르는 게 맞다.그래서 오늘은 가지 않았다.대신 물었다.말로만 해줄까.네가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받았다.네 목소리가 들렸다.나야.당연히 너인 줄 알면서도그 말이 좋았다.네가 스피커를 켜자내 목소리가 네 집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예전에는 내 몸이 그 안에 있었다.네 컵을 쓰고,네 소파에 앉고,아침이면 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그 모든 것이 당연했다.오늘은 목소리 하나도 조심스러웠다.그게 지금 우리에게 맞는 거리였다.너는 내 설명을 듣고도어락 덮개를 열었다.잘했어.그 말을 하자 네가 멈췄다.나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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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화. 들여보내지 않은 밤, 남겨둔 목소리 (1)

월요일 아침은 조용했다.며칠 동안 창문을 두드리던 비가 그쳐 있었다.알람을 끄고도 잠시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본 건 현관 쪽이었다.도어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에 붙어 있었다.어젯밤 내가 배터리를 갈았다.태준은 전화기 너머에서 배터리 덮개를 여는 법과 방향을 알려줬고, 나는 몇 번 헤맨 끝에 제대로 끼웠다.굳이 통화까지 해야 했나 싶다가도,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는 빨랐다.문을 열어줬다면 더 빨랐겠지만.어젯밤에는 그러지 못했다.그렇다고 다음에도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다.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현관으로 갔다.도어락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렀다.삑.불이 정상적으로 들어왔다.잘했어.어젯밤 태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한번 문지르고 욕실로 들어갔다.도어락 배터리 하나 바꾼 것뿐인데, 아침부터 이러는 내가 우스웠다.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내가 직접 했고,막히는 부분에서는 도움을 받았다.그걸로 됐다.출근 준비를 마친 뒤 현관문을 닫았다.삐리릭.잠금음이 평소보다 또렷하게 들렸다.나는 한 번 뒤를 돌아봤다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회사에 도착하니 사무실은 이미 어수선했다.월요일 아침답게 전화가 이어졌고, 팀장님은 회의실에서 누군가와 큰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다.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금요일 야간 촬영 자료 정리.외부 공유용 사진 선별.내부 보고서 수정.다음 주 제안서 초안.해야 할 일이 쌓여 있었다.촬영팀에서 보낸 압축 파일을 내려받아 놓고 커피를 가지러 탕비실로 갔다.머신에 컵을 올리고 버튼을 누르자 뒤에서 문이 열렸다.돌아보지 않았는데도 누군지 알았다.태준이었다.“커피 마셔?”그가 물었다.“응.”태준은 선반에서 컵을 하나 꺼냈다.“아침은?”“먹었어.”나는 커피가 내려오는 걸 보다가 덧붙였다.“라면은 아니고.”말하고 나니 굳이 왜 말했나 싶었다.태준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계란도 안 넣었겠네.”“그 얘기 아직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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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들여보내지 않은 밤, 남겨둔 목소리 (2)

그가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눌렀다.나는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만졌다.“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어제는 어려워했잖아.”“처음이니까 그렇지.”“그래도 결국 네가 했네.”그 말이 듣기 싫지 않았다.예전 같으면 태준은 내가 헤매는 걸 보다가 직접 가져갔을 것이다.나는 괜찮다며 버티다가 결국 맡겼을 테고.어젯밤에는 달랐다.태준은 전화기 너머에 있었고, 나는 내 손으로 끝냈다.그렇다고 혼자 한 것도 아니었다.“전화 안 했으면 건전지 반대로 넣었을지도 몰라.”내 말에 태준이 컵을 들며 대답했다.“그럼 다시 알려줬겠지.”“두 번 전화했겠네.”“받았을 거고.”나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태준은 대단한 말을 한 사람처럼 굴지 않았다.그냥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래서 나도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커피 식겠다.”“그러네.”나는 탕비실 문을 열었다.나가기 전,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어제 고마웠어.”대답은 바로 들리지 않았다.두 걸음쯤 옮겼을 때 낮은 목소리가 따라왔다.“별말을.”나는 그대로 자리로 돌아왔다.다운로드는 끝나 있었다.촬영 폴더를 열어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비에 젖은 유리창.바닥에 길게 번진 조명.어두운 벽과 실루엣.사진 속 밤은 실제보다 더 고요해 보였다.몇 장을 넘기다가 손이 멈췄다.유리 안쪽에 서 있는 내 모습이었다.얼굴은 빗물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윤곽만 남아 있었다.그날 나는 잠깐 흔들렸고,태준은 유리문 앞에 멈춰 있었다.사진에는 나만 있었다.그래도 태준이 어디 있었는지는 기억났다.사진 바깥.유리 너머의 내가 바라보고 있던 쪽.“그 컷 괜찮죠?”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우진이었다.“아, 네.”“분위기 좋아요. 얼굴이 잘 안 보여서 더 좋고.”“얼굴이 안 보여서요?”“너무 설명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눈이 가요.”우진은 사진을 한 번 더 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나는 파일명을 확인했다.night_glass_07.너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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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들여보내지 않은 밤, 남겨둔 목소리 (3)

다섯 시가 조금 넘어 팀장님이 단체방에 메시지를 올렸다.[오늘은 정리되는 대로 퇴근하세요. 금요일 촬영까지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가방을 챙기다 문득 창밖을 보았다.비는 오지 않았다.우산도 필요 없었고,무거운 짐도 없었고,도어락도 멀쩡했다.태준과 함께 걸을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나는 가방끈을 어깨에 걸었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태준이 먼저 서 있었다.통화를 끝낸 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나를 봤다.“퇴근해?”“응.”“나도.”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안에는 다른 직원 두 명이 타고 있었다.태준은 내 옆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 섰다.거울처럼 비치는 문에 우리 모습이 잡혔다.나는 앞을 보고 있었고,그는 내 뒤쪽에 있었다.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1층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먼저 내렸다.건물 밖으로 나오니 젖은 보도에서 비 냄새가 올라왔다. 비는 멎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태준이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지하철 타지?”“응.”“그럼 조심해서 가.”태준이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생각보다 먼저 입이 열렸다.“태준아.”그가 멈췄다.나는 괜히 건물 앞 도로를 한번 바라봤다.“역까지 같이 갈래?”태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놀란 눈으로 나를 보는 바람에 괜히 민망해졌다.“싫으면 말고.”“싫은 게 아니라.”그가 짧게 웃었다.“내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어.”“늦었네.”“그러게.”태준이 내 옆으로 돌아왔다.“가자.”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비가 오지 않으니 우산도 없었다.두 사람 사이를 가려주던 것도,괜히 가까이 서 있을 핑계도 없었다.팔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걷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어깨가 닿을 듯하다가 다시 떨어졌다.우산 아래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나는 가게 앞에 켜진 간판들을 보며 걸었다.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은 이유 없는데.”나는 옆을 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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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들여보내지 않은 밤, 남겨둔 목소리 (4)

태준은 나를 보다가 다시 앞을 봤다.“그래.”“그게 끝이야?”“더 말하면 네가 후회할 것 같아서.”“그건 또 어떻게 알아.”“모르겠어. 그냥 그런 것 같아서.”나는 피식 웃었다.“이번에는 틀렸어.”태준이 다시 나를 봤다.“후회 안 해?”“아직은.”“그럼 다행이고.”기뻐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전에는 그런 얼굴을 보면 모른 척했다.오늘은 그냥 봤다.“좋아하긴 하네.”내가 말하자 태준이 웃었다.“그건 숨길 생각 없어.”“그래 보여.”“너무 보여?”“조금.”태준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그 정도는 괜찮았다.신호등 앞에 도착했다.빨간불이었다.차들이 젖은 도로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나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아침 일이 떠올랐다.“아까 도어락 확인했을 거라고 했잖아.”“응.”“네가 맞혀서 조금 놀랐어.”“싫었어?”나는 잠깐 생각했다.“싫다기보다는… 네가 아직도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할까 봐.”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차 한 대가 물기를 튀기며 지나갔다.“그렇게 생각 안 해.”그가 말했다.“아는 것도 있고, 이제 모르는 것도 많아.”나는 태준을 바라봤다.“모르면?”“물어봐야지.”“내가 대답 안 하면?”“기다리고.”담담한 말이었다.잘 보이려 애써 만든 대답처럼 들리지 않았다.그래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낫겠다.”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길을 건넜다.태준은 예전처럼 내 팔을 잡아끌지 않았다.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내 옆에서 보폭을 맞췄다.횡단보도를 거의 건넜을 때 그가 말했다.“그래도 하나는 알아.”“뭔데?”“네가 예전이랑 똑같지는 않다는 거.”“뭘 보고.”“오늘 네가 먼저 같이 가자고 했잖아.”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그걸로 사람을 판단해?”“오늘은 그것만 볼게.”“단순하네.”“복잡하게 봤다가 많이 틀렸으니까.”이번에는 웃지 못했다.태준은 자책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그저 이미 지나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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