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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주의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30 챕터

2화. 같은 집, 같은 밤

새벽 세 시였다.나는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새 집은 조용했다.조용한데, 편하지는 않았다.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어딘가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벽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배관 소리.낯선 집은 가끔 너무 많은 소리를 낸다.분명 아무도 없는데,자꾸 누가 있는 것처럼.나는 침대 위에서 몇 번이나 자세를 바꿨다.베개가 낯설고,이불 냄새도 낯설고,창밖으로 들어오는 불빛도 낯설었다.그런데 제일 낯선 건 집이 아니었다.내가 아직도 강태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여기서 사는 동안.나 피하려고 애쓰지 마.미친 소리.나는 베개 위로 얼굴을 묻었다.분명 끝난 관계였다.끝내기로 한 것도 나였고,떠난 것도 나였다.3년 동안 나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척 살아왔다.아니.정말 후회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태준을 다시 본 순간부터 그 믿음이 자꾸 헐거워졌다.내가 고른 새 집.내가 다시 시작하려던 공간.내가 아무도 모르게 숨으려고 했던 자리.그 안에 그 남자가 있었다.나는 몸을 일으켰다.목이 말랐다.물이라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주방으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냉장고 안은 거의 비어 있었다.생수 몇 병.편의점에서 급하게 사온 샐러드.뜯지도 않은 우유.나는 생수병 하나를 꺼냈다.차가운 병 표면이 손바닥에 닿았다.그 순간.띠릭.현관 쪽에서 도어락 소리가 났다.몸이 먼저 멈췄다.나는 물병을 쥔 채 현관을 바라봤다.이 시간에?잠깐, 내가 문을 제대로 잠갔나.아니.잠갔다.분명 잠갔다.띠리릭.이번엔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나는 그대로 굳었다.목소리가 먼저 나와야 했는데,생각보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강태준이었다.검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한 손에는 카드키를 들고 있었다.그도 나를 보자 잠깐 멈췄다.“…아.”그 짧은 반응이 더 기가 막혔다.아?지금 이 시간에 남의 집 문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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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가까운 체온, 위험한 선

잠을 거의 못 잤다.정확히는,잠이 들었다가 계속 깼다.눈을 감으면 자꾸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강태준의 손.내 팔을 붙잡던 힘.너무 가까웠던 거리.그리고.선 넘은 건 아직 아닌데.미친 남자.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낮게 욕을 삼켰다.욕을 한다고 잊히는 것도 아닌데,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다.그 말은 자꾸 귓가에 남았다.선 넘은 건 아직 아니라고.그럼 어디까지가 선인데.나는 이불을 걷어찼다.아침 빛이 커튼 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시계를 보니 오전 일곱 시 반이었다.평소 같았으면 슬슬 출근 준비를 시작할 시간이었다.그런데 몸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잠을 못 자서인지,그 남자 때문인지,둘 다인지.알고 싶지 않았다.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차가운 물로 얼굴을 오래 씻었다.눈가가 조금 부어 있었다.울어서가 아니었다.안 잤으니까.그렇게 정리하면 된다.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누르며 거울 속 나를 봤다.괜찮아 보이려고 애쓰는 얼굴.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자 집은 여전히 낯설었다.짐은 대충 정리되어 있었지만,생활의 온기는 없었다.박스 몇 개.아직 자리 잡지 못한 그릇들.식탁 위에 올려둔 계약서 봉투.싱크대 옆에 놓인 생수병.새로 시작하려고 고른 집인데,어딘가 남의 집 같았다.그런데 이상했다.혼자 있는 집인데도 자꾸 강태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현관 앞.주방 옆.욕실 문가.내 팔을 붙잡았던 자리.나는 손목을 내려다봤다.아무 자국도 없었다.그런데 없는 자국이 더 신경 쓰였다.“진짜 미쳤나 봐.”나는 혼자 중얼거렸다.그때 현관 쪽에서 벨 소리가 났다.띵동.나는 그대로 멈췄다.이번엔 도어락 소리가 아니었다.벨이었다.그래도 몸이 먼저 굳었다.아침부터 올 사람이 없었다.이삿짐 정리도 어제 거의 끝났고,관리실에서 연락 온 것도 없었다.나는 조심스럽게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인터폰 화면을 켰다.화면 안에 강태준이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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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흔들리는 숨, 닿을 듯한 거리

“우리 아직 안 끝났네.”그 말이 떨어진 순간,나는 문을 닫아야 했다.당장.그런데 손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체인락이 걸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이상하게 너무 가까웠다.태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마치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나는 입술을 열었다가,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끝났다고 말해야 했다.끝났다고,분명히,다시 한 번.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문밖에는 태준이 있었고,문 안에는 내가 있었다.그리고 우리 사이에는아직 끊어내지 못한 말 하나가 남아 있었다.우리 아직 안 끝났네.나는 결국 문을 닫았다.철컥.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내쉬었다.그런데 이상했다.문을 닫았는데도,그 말은 안쪽으로 따라 들어와 있었다.나는 닫힌 문을 노려봤다.“미친 소리.”목소리가 작게 새었다.진짜 미친 소리였다.끝났다.분명 끝났다.내가 끝냈고,그도 붙잡지 않았고,우리는 3년을 그렇게 살았다.그런데 이제 와서.우리 아직 안 끝났네?나는 문 옆에 놓인 쇼핑백을 떠올렸다.아직 복도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두고 가겠다고 했다.버리라고도 했다.그 말을 들었으면 그냥 놔두면 됐다.아침도 먹지 않으면 됐다.출근 준비나 하면 됐다.그런데 나는 현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문밖이 조용했다.태준이 갔는지,아직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인터폰을 확인하면 알 수 있었다.나는 확인하지 않았다.확인하는 순간,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그게 싫었다.나는 억지로 몸을 돌렸다.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다시 현관을 봤다.아.진짜.나는 결국 체인락을 풀었다.다시 문을 열었다.복도에는 태준이 없었다.대신 쇼핑백만 문 옆에 놓여 있었다.토스트.샌드위치.그리고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커피.나는 그걸 내려다보다가, 괜히 더 화가 났다.이런 걸 왜 아직도 기억하는데.사람은 그렇게 쉽게 보내놓고,이런 건 왜 아직까지 남겨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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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들켜버린 거리, 숨길 수 없는 마음

“…뭐야.”낯선 남자의 시선이 내 손끝에 닿아 있었다.강태준의 셔츠를 움켜쥔 내 손.그리고 바로 앞에 선 태준.나는 그제야 내가 아직도 그를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놓아야 했다.당연히.그런데 한 박자 늦었다.딱 그만큼.들키기 충분할 만큼.나는 급하게 손을 뗐다.“아, 아니—”말까지 꼬였다.젠장.왜 하필 지금.현관 앞에 선 남자는 우리를 번갈아 봤다.짧게 염색한 머리.편한 후드 차림.손에는 휴대폰 하나.그리고 이 집이 낯설지 않은 사람처럼 서 있는 태도.그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가 태준을 봤다.“형.”남자가 피식 웃었다.“나 방해했어?”태준의 얼굴이 바로 차가워졌다.“…최도혁.”“와. 이름 부르는 목소리 봐.”도혁이라 불린 남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이었다.오히려 재밌는 장면을 발견한 사람처럼 입꼬리를 올렸다.“아침부터 분위기 살벌하네.”태준이 낮게 말했다.“왜 갑자기 와.”“형이 어제 관리 서류 가져가라며.”도혁은 손에 든 휴대폰을 흔들었다.“연락 안 받길래 왔지.”그는 말을 끝내고 나를 봤다.이번엔 제대로.아까보다 조금 더 길게.“…아.”짧은 탄성이 나왔다.“그 전여친?”순간 복도와 현관 사이의 공기가 딱딱하게 굳었다.나는 표정을 굳혔다.태준의 눈빛도 바로 내려앉았다.“말 조심해.”“왜. 틀린 말 했어?”도혁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그 웃음이 기분 나빴다.사람을 모르는 척하면서,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웃음이었다.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태준은 여전히 문턱 안쪽에 서 있었다.신발도 벗지 않은 채.딱 내가 허락한 만큼만 들어온 거리.그런데 도혁이 들어오면서 그 거리까지 전부 들켜버렸다.도혁의 시선이 현관 바닥을 훑었다.문 앞의 쇼핑백.태준의 신발.내가 서 있는 위치.태준의 셔츠 주름.그는 아무 말 없이도 너무 많은 걸 보고 있었다.“근데 형.”도혁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둘 분위기 뭐냐.”“최도혁.”“아니, 내가 잘못 본 거야?”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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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가까워진 온도, 무너지는 선

했어.네가 못 들었어.가지 말라고 했어.출근길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버스 창밖으로 익숙한 건물들이 지나갔다.평소 같았으면 출근 시간의 소음에 묻혀버렸을 생각들이,오늘은 이상하게 더 선명하게 남았다.강태준의 목소리.낮고 조용했던 눈.문 앞에 서서 나를 보던 얼굴.나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켰다.별다른 연락은 없었다.그게 당연한데,나는 자꾸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다.기다리는 것도 아닌데.아니라고 생각할수록,손은 더 자주 휴대폰을 찾았다.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3년 전 그날.비가 많이 왔다.그건 기억난다.현관 앞에 세워둔 젖은 우산.내가 들고 있던 가방.끝이라고 말하던 내 목소리.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강태준.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렇게 믿었다.그래야 떠날 수 있었으니까.그가 붙잡지 않았다고 믿어야,내가 혼자 버려진 사람처럼 덜 초라해질 수 있었으니까.그런데.가지 말라고 했어.나는 손끝에 힘을 줬다.기억은 이상하다.분명 내가 가진 것이라고 믿었는데,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흔들린다.그날 정말 내가 못 들은 걸까.아니면.듣고도 못 들은 척한 걸까.회사 앞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도,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다.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천천히 걸었다.아침 공기는 차가웠고,건물 유리창에는 지친 얼굴 하나가 비쳤다.내 얼굴이었다.잠을 못 잔 얼굴.그리고 아직도 흔들리는 얼굴.“한서윤 대리님.”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정우진이었다.같은 팀 선배.늘 단정한 셔츠 차림에,말투도 표정도 적당히 부드러운 사람.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살짝 눈썹을 올렸다.“괜찮아요?”“네?”“얼굴 안 좋아 보여서요.”나는 급히 표정을 정리했다.“잠을 좀 못 잤어요.”“이사 때문에요?”“네. 집이 아직 낯설어서.”거짓말은 아니었다.집이 낯선 건 맞았다.다만 그 집 안에 너무 익숙한 사람이 자꾸 들어오는 게 문제였을 뿐.우진은 걱정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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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편해진 온도, 흐려지는 경계

“그 남자 이름.”강태준의 시선이 내 가방 쪽에 머물렀다.“계속 보이니까 짜증 나.”그 말이 밤공기 속에 낮게 가라앉았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집 건물 앞이었다.퇴근길 사람들은 드문드문 지나갔고,로비 안쪽 불빛은 유리문 너머로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그런데 그 순간,이상하게 주변 소리가 전부 멀어졌다.정우진.방금 전 화면에 떠 있던 이름 하나가이렇게까지 분위기를 바꿔버릴 줄은 몰랐다.나는 괜히 가방끈을 고쳐 잡았다.“…회사 사람이야.”“안 물었어.”“근데 보는 눈이 물어보던데.”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조용한 얼굴.그런데 그게 더 위험했다.나는 저 표정을 안다.강태준은 화가 날수록 더 조용해진다.목소리를 높이지 않고,괜찮은 척하지도 않고,그냥 모든 감정을 안쪽으로 눌러 넣는다.그래서 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왜 그렇게 신경 써.”괜히 차갑게 말했다.태준은 웃지도 않았다.“신경 쓰이니까.”“…….”“네 옆에 다른 남자 있는 거.”숨이 잠깐 막혔다.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헤어진 사이면서.다 끝난 관계면서.그런데도 꼭,아직 자기 사람인 것처럼.나는 고개를 들었다.“태준아.”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우리 지금 무슨 사이인데.”순간 그의 눈빛이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나는 그 흔들림을 보고 나서야,내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웃기지.왜 기다려.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데.태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건물 입구의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며,차가운 바람이 우리 사이로 지나갔다.그리고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그걸 꼭 말해야 알아?”심장이 이상하게 내려앉았다.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말해야 알지.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그렇게 말해야 했다.그런데 목 끝에서 말이 걸렸다.태준은 그런 나를 보다가,짧게 웃었다.전혀 편한 웃음은 아니었다.“됐다.”그가 한 발 물러났다.“괜히 또 몰아붙였네.”그 말에 내가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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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숨기지 못한 질투, 흔들리는 시선

“…계속 연락 오네.”강태준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히 가라앉았다.나는 괜히 휴대폰을 뒤집어 쥐었다.방금 전까지 숨이 섞일 만큼 가까웠던 거리.그 뜨거웠던 공기가,정우진 이름 하나로 순식간에 식어버렸다.태준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차가운 얼굴.하지만 나는 안다.저 남자는 진짜 화가 날수록 더 조용해진다.그게 더 무서웠다.“안 받아?”“…업무 연락일 수도 있잖아.”“밤 열한 시에?”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태준은 짧게 웃었다.하지만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회사 분위기 좋네.”“비꼬지 마.”“비꼰 거 아닌데.”“….”“진짜 궁금해서.”나는 답답하게 숨을 내쉬었다.왜 설명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왜 눈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우린 헤어진 사이였다.그런데 자꾸만,강태준 앞에 서면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흔들렸다.진동이 또 울렸다.짧고 선명한 소리.태준 시선이 다시 휴대폰으로 내려갔다.나는 결국 화면을 확인했다.[정우진]— 내일 회의 자료 수정됐어요. 지금 확인 가능해요?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진짜 회사 연락이야.”휴대폰을 태준 쪽으로 살짝 보여주자,그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봤다.그러더니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그래서 더 짜증 나.”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뭐?”“회사 사람인데 밤마다 연락하는 거.”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태준은 그대로 몸을 돌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물병 뚜껑을 여는 손등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저 사람,지금 진짜 화났구나.“강태준.”그가 물을 마시다 말고 나를 봤다.“너 지금 질투하는 거야?”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태준은 물병을 천천히 내려놨다.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응.”숨이 멎었다.나는 눈을 크게 떴다.태준은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엄청.”심장이 이상하게 흔들렸다.왜 저런 말을 저렇게 쉽게 하는 걸까.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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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닿기 직전의 숨, 멈출 수 없는 밤

강태준은 내 몸 양옆으로 손을 짚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숨이 막혔다.너무 가까웠다.나는 소파 끝에 거의 갇힌 상태였다.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몸이 움직이지 않았다.태준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억누르고,참고,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태준아…”내 목소리가 아주 작게 떨렸다.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숨결이 가까워졌다.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나는 본능처럼 손끝으로 소파를 움켜쥐었다.이상했다.무서운데,도망치고 싶은데,동시에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그게 제일 위험했다.태준 시선이 다시 내 입술로 내려왔다.나는 숨을 삼켰다.그리고 그 순간.“나 진짜 많이 참았어.”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태준은 눈을 감지도 않은 채 나를 바라봤다.“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다 끝난 사람처럼 굴었던 거.”숨이 막혔다.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태준 손이 소파 끝을 더 세게 짚었다.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근데 자꾸—”태준 목소리가 아주 낮게 흔들렸다.“자꾸 다른 남자 이름 들으니까 미칠 거 같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우진.그 이름 하나에 흔들리는 강태준을 보는 게 이상하게 가슴 아팠다.그리고 동시에.기뻤다.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정말 끝난 관계라면,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빗소리가 작게 들렸다.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그리고 우리는 너무 가까웠다.“서윤아.”낮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나는 결국 천천히 눈을 들었다.태준 눈빛이 바로 앞에 있었다.위험할 정도로 깊은 눈.그 눈을 보는 순간,심장이 무너졌다.“왜 그렇게 봐…”겨우 내뱉은 목소리였다.태준이 아주 천천히 웃었다.하지만 전혀 편한 웃음이 아니었다.“네가 먼저 흔들었잖아.”“…내가?”“그래.”태준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그리고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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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멈춘 숨, 흔들리는 감정

태준은 한동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내 어깨 가까이에 이마를 기댄 채,거칠어진 숨만 천천히 내쉬고 있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장이 아직도 너무 빨리 뛰었다.닿지 않았다.정말 아슬아슬하게,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이미 모든 게 변해버린 기분이었다.빗소리가 조용히 방 안을 채웠다.태준 손끝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소파 끝을 짚고 있던 손.손등 위로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참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나는 괜히 숨을 삼켰다.그러자 태준이 아주 낮게 웃었다.힘 빠진 숨 같은 웃음이었다.“…진짜 미치겠다.”귓가 가까이 떨어지는 목소리에심장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왜 그런 말 해…”겨우 입을 열었다.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다시.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바라봤다.눈빛이 위험했다.억누르려 하는데,이미 다 드러나버린 사람의 눈.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태준은 놓아주지 않았다.“왜 자꾸 아무렇지 않은 얼굴 해.”“….”“네가 그러면 나만 이상해지잖아.”숨이 턱 막혔다.태준 손끝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이번에는 내 손 가까이.닿지는 않았는데,손끝 온도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서윤아.”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나는 결국 다시 그를 바라봤다.태준은 한동안 말없이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마치 오래 참아온 걸겨우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나 진짜 노력했어.”“….”“다 끝난 것처럼 살려고.”그 말에 가슴이 이상하게 저렸다.태준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안다.한번 마음 정하면 끝까지 버티는 사람.그래서 더 아팠다.“근데 네가 자꾸—”태준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있으니까.”심장이 세게 흔들렸다.같은 집.같은 공간.같은 공기.우리는 매일 너무 가까웠다.헤어진 사람들 같지 않게.나는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그러자 태준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떨어졌다.순간 공기가 무거워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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