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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주의》全部章節:第 221 章 - 第 230 章

255 章節

221화. 조금만, 남겨둔 마음 (2)

오전은 빠르게 지나갔다.이미지를 교체하고 문장을 줄였다. 표의 간격을 맞추고, 팀장님이 보내온 수정 의견을 하나씩 반영했다.점심은 우진과 가까운 식당에서 간단히 먹었다.태준은 아직 외부 미팅 중이었다.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이 울렸다.[강태준]미팅 끝났어?시간을 보니 한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응. 방금 들어가는 중.][너는?][강태준]나도 끝났어.[점심 먹었어?][먹었어.][너도 먹고 들어와.]읽음 표시가 뜬 뒤 짧은 답이 왔다.[강태준]알았어.나는 화면을 끄고 우진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좋은 일 있으세요?”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왜요?”“그냥 조금 웃으신 것 같아서요.”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점심 먹어서요.”“아.”우진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밥이 중요하죠.”더 묻지 않는 게 고마웠다.회사로 돌아와 업체 미팅 자료를 확인하고 있을 때 태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노트북 가방을 든 채 팀장님 자리부터 확인한 뒤 자기 쪽으로 걸어갔다.눈이 마주쳤다.태준이 먼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나도 짧게 인사했다.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평범한 인사였다.그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재킷을 벗었다.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잠시 뒤 메신저가 울렸다.[강태준]밥 먹었어.나는 바로 옆자리도 아닌 사람에게 굳이 메신저로 그걸 알려주는 게 웃겼다.[잘했네.]전송하고 나서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예전 같으면 문장을 지울까 고민했을지도 모른다.이번에는 그냥 두었다.답은 금방 오지 않았다.나는 업체에서 보내온 견적서를 다시 확인했다.몇 분 뒤 화면 한쪽에 알림이 떴다.[강태준]응.한 글자뿐이었다.그런데 그 뒤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알 것 같았다.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됐다.오후 미팅은 예상보다 길었다.업체에서는 일정을 이틀 미루고 싶어 했고, 팀장님은 더 늦출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중간 날짜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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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조금만, 남겨둔 마음 (3)

미팅이 마무리된 건 다섯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회의실을 나오자 우진이 의자에 기대어 길게 숨을 내쉬었다.“금요일 오후에 할 회의는 아니었습니다.”팀장님이 말했다.“그러니까 저녁 먹으러 가잖아요.”“회식이 보상은 아닌데요.”“소고기인데도요?”우진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그건 조금 다릅니다.”사람들이 웃었다.나도 노트북을 안고 자리로 돌아왔다.메일 몇 통을 보내고 수정 파일을 정리하니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팀장님이 사무실 가운데에서 손뼉을 쳤다.“오늘은 정말 밥만 먹고 끝낼게요. 다들 정리되면 바로 갑시다.”우진이 나를 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정말일까요?나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가방을 챙기는 동안 태준은 회의실 안에 남은 자료를 정리했다.나는 투명 우산이 없는 책상 옆을 한번 봤다.오늘은 손에 가방만 들려 있었다.그게 오랜만처럼 느껴졌다.회사 앞에서 팀원들과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태준은 내 바로 옆이 아니라 우진과 팀장님 뒤를 걸었다. 나는 다른 직원과 나란히 걸으며 다음 주 일정 이야기를 했다.굳이 가까이 붙지도,일부러 멀어지지도 않았다.사람들 사이에 섞여 걷는 일이 편했다.고깃집은 회사에서 멀지 않았다.금요일 저녁이라 내부는 이미 시끄러웠다. 우리는 가장 안쪽의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팀장님이 가운데 앉았고, 우진은 자연스럽게 불판 가까운 자리를 차지했다.“제가 굽겠습니다.”“오늘도요?”내가 묻자 우진이 집게를 들었다.“제 손으로 구워야 마음이 편합니다.”팀장님이 웃었다.“회사 일도 그 정도로 직접 하겠다고 하면 좋을 텐데.”“그건 협업이 중요하니까요.”나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태준은 맞은편에서 한 자리 비껴난 곳에 앉았다.정면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들면 보이는 자리였다.술을 마실 사람들이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나는 맥주를 반 잔 정도 받았다.태준은 손으로 잔을 가볍게 막았다.팀장님이 물었다.“강 디렉터님은 오늘도 안 드세요?”“네. 오늘은 안 마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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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조금만, 남겨둔 마음 (4)

잔을 내려놓을 때 옆에 물컵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아까까지 비어 있던 컵이었다.언제 채운 건지 모르겠지만 맞은편의 태준이 물병을 내려놓고 있었다.눈이 마주쳤다.나는 컵을 살짝 들어 보였다.고맙다는 뜻이었다.태준도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였다.누가 보더라도 같은 팀 사람 사이의 행동이었다.그 정도라서 더 좋았다.고기가 익자 접시가 오가기 시작했다.내 앞에는 소스 종지가 없었다.옆 사람에게 하나 달라고 하려는 순간, 태준이 여분의 종지를 내 쪽으로 밀었다.“여기.”회사 사람들 앞이라 그의 말투는 평소보다 조금 딱딱했다.나는 종지를 받아놓으며 말했다.“고마워요.”“네.”짧은 존댓말이 이상하게 낯설었다.불편하지는 않았다.오히려 우리 둘만 아는 것을 사람들 사이에 조용히 감춰두는 기분이었다.나는 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었다.마주 보는 대신 불판을 봤다.회식은 정말 밥만 먹고 끝나는 분위기였다.팀장님이 프로젝트 마무리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했고, 모두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잔을 들었다.나는 맥주잔 대신 물컵을 들었다.태준도 물컵을 들고 있었다.잔들이 가볍게 부딪혔다.“고생 많았습니다.”“고생하셨습니다.”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섞였다.태준의 목소리도 그 안에 있었다.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회식이 끝난 건 아홉 시가 되기 전이었다.팀장님은 약속대로 2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우진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오늘 팀장님을 다시 봤습니다.”“평소에는 어떻게 봤는데요?”“대답하면 2차 갈 것 같아서 안 하겠습니다.”사람들이 웃으며 식당 밖으로 나왔다.밤공기는 낮보다 차가웠다.비는 오지 않았고, 바람만 조금 불었다.팀장님과 다른 직원들은 택시를 잡으러 갔다. 우진은 버스정류장 쪽으로 향했다.나와 태준은 같은 방향에 남았다.“내일 뵙겠습니다.”우진이 손을 흔들었다.나는 고개를 숙였다.“주말 잘 보내요.”사람들이 흩어진 뒤 태준이 내 옆에 섰다.“지하철?”“응.”우리는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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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조금만, 남겨둔 마음 (5)

가게 불빛이 이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주말에는 뭐 해?”태준이 물었다.“밀린 빨래하고, 장도 봐야 하고.”“쉬는 건?”“그것도 할 거야.”“순서가 마지막이네.”“쉬는 건 계획 안 해도 할 수 있잖아.”“그건 그렇네.”나는 옆을 봤다.“너는?”“집에 있을 것 같아.”“일 안 해?”“급한 건 없어.”“그럼 쉬어.”“너도.”평범한 대화였다.서로의 주말을 묻고,쉬라고 말하는 것.그 말이 전보다 자연스럽게 오갔다.지하철역 입구가 보였다.며칠 동안 매일 같은 자리에서 헤어졌다.처음에는 그 앞에 도착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오늘은 계단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크게 긴장되지 않았다.나는 입구 앞에 멈췄다.태준도 옆에 섰다.“오늘 물 고마웠어.”그가 나를 봤다.“물?”“회식할 때.”“그냥 가까이 있어서 채운 거야.”“소스도?”“그것도 가까이 있었고.”나는 웃었다.“그래.”태준이 입가를 조금 올렸다.“뭘 그렇게 웃어.”“그냥.”“요즘 그냥이라는 말 자주 쓰네.”“편하니까.”나는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다시 그를 봤다.“태준아.”“응.”할 말이 분명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이름을 불렀으니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았다.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주말 잘 보내.”태준은 바로 웃지 않았다.눈가가 천천히 부드러워졌다.“너도.”“밥도 먹고.”“먹을게.”“커피로 때우지 말고.”“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나는 잘 먹어.”“샌드위치 하나 먹은 사람이?”“그건 어제고.”태준이 낮게 웃었다.“알았어. 제대로 먹을게.”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한 칸 내려갔다.“월요일에 봐.”말하고 나니 주말이 조금 길게 느껴졌다.태준은 잠시 나를 바라봤다.“월요일에 보자.”나는 더 머무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뒤에서 부르는 목소리는 없었다.중간쯤 내려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태준은 이미 역 입구에서 돌아서고 있었다.그 모습을 잠깐 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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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조금만, 남겨둔 마음 (6)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열 시가 조금 넘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검은 우산과 투명 우산이 나란히 보였다.며칠 동안 자꾸 들여다보던 물건들이었는데, 오늘은 가방을 내려놓고 그대로 지나쳤다.손을 씻고 물을 한 잔 마셨다.재킷을 벗어 걸어두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강태준]들어갔어?나는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응.][너는?][강태준]나도 방금.잠시 뒤 한 줄이 더 왔다.[강태준]얼굴은 괜찮아졌어?나는 손바닥으로 볼을 짚었다.이제는 뜨겁지 않았다.[응. 바람 맞으니까 괜찮아졌어.][강태준]다행이네.나는 화면을 보다가 천천히 답장을 썼다.[오늘 술 안 마셨지?][강태준]응.짧은 대답 아래 입력창이 깜빡였다.[잘했네.]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잘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말했다.그뿐이었다.읽음 표시가 떴다.답은 조금 늦게 왔다.[강태준]오늘 두 번 들었네.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봤다.[뭘?][강태준]점심 먹었다고 했을 때 한 번.[지금 한 번.]기억하고 있었구나.그 사실이 조금 민망했지만 싫지는 않았다.[그걸 세고 있었어?][강태준]세려고 한 건 아닌데 기억났어.나는 입술을 눌러 웃음을 참았다.이번에는 그에게 그 말을 얼마나 좋아해도 되는지 정해주고 싶지 않았다.기억나면 기억나는 대로 두면 됐다.[그럼 기억해.]보내놓고 나서 나도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답은 금방 오지 않았다.한참 뒤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강태준]응.곧이어 하나가 더 왔다.[강태준]주말 잘 보내.나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답장을 보냈다.[너도.][밥 잘 먹고.][강태준]알았어.[잘 자.][잘 자.]휴대폰을 내려놓았다.집 안은 조용했다.내일 아침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됐고, 출근 가방도 챙기지 않아도 됐다.월요일까지 이틀이 남아 있었다.예전 같으면 그 시간이 멀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지금은 그렇지 않았다.주말을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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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묻지 않고, 기다린 것들 (1)

토요일 오후, 건조가 끝났다는 알림이 휴대폰 화면에 떴다.나는 소파에 누운 채 알림을 확인하고도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이불커버를 꺼내러 지하 세탁실까지 내려가면 되는 일이었다. 몇 분이면 끝나는데 주말에는 그런 일도 자꾸 미루고 싶어졌다.조금만 더 있다가.십 분만 더.그러다 알림이 한 번 더 울렸다.나는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대충 묶었던 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 현관 옆에 둔 빈 세탁 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삐리릭.문이 잠기는 소리가 복도에 짧게 울렸다.금요일 밤, 태준과 마지막으로 나눈 메시지가 떠올랐다.주말 잘 보내.너도.그 뒤로는 연락이 없었다.무슨 일을 하는지, 식사는 했는지, 오늘도 집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태준도 마찬가지였다.월요일이면 다시 볼 테니까.주말 하루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도 괜찮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공용 세탁실 문을 열자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와 따뜻한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안쪽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긴 테이블 앞에서 셔츠를 접고 있던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검은 후드 집업에 편한 바지.회사에서 늘 보던 셔츠와 재킷도 없었고, 머리도 평소보다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었다.손에는 막 접은 회색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태준도 내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편한 바지에 가디건을 걸치고 세탁 바구니를 든 모습이었으니, 나 역시 회사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랐을 것이다.“너도 빨래하러 왔어?”내가 먼저 물었다.“응. 이번 주에 밀린 것들.”나는 그의 바구니 안을 슬쩍 봤다.셔츠와 티셔츠가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회사 밖에서 보니까 좀 낯설다.”태준이 자기 옷차림을 내려다봤다.“많이 달라?”“응. 평소보다 편해 보여.”“너도.”나는 손에 든 바구니를 조금 들어 보였다.“나는 너무 생활적인데.”“세탁실에 왔으니까 이게 맞지.”당연한 말인데 웃음이 났다.“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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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묻지 않고, 기다린 것들 (2)

태준은 접던 옷을 다시 테이블 위에 놓았다.나는 내 건조기 번호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얼굴 가까이 올라왔다.안에는 잘 마른 이불커버가 크게 엉켜 있었다.끝부분을 잡아당기자 한꺼번에 따라 나왔고, 아래쪽이 바닥에 닿을 듯 흘러내렸다.나는 급하게 바구니를 발로 가까이 밀었다.“태준아, 잠깐 이것 좀 잡아줄 수 있어?”태준이 바로 다가와 바구니 양쪽을 잡았다.“이쪽으로 더 가져갈까?”“응. 조금만 앞으로.”그가 바구니를 받쳐주는 동안 이불커버를 전부 꺼냈다.따뜻한 천이 바구니 안으로 수북하게 떨어졌다.“됐다.”나는 마지막으로 건조기 안을 확인했다.뒤쪽에 양말 하나가 붙어 있었다.“이건 왜 꼭 마지막에 나오지.”태준이 건조기 안을 들여다봤다.“끝까지 남아 있고 싶었나 보네.”예상하지 못한 말에 웃음이 났다.“그런 말도 할 줄 알아?”“나를 너무 재미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어?”“조금은.”“생각보다 심하네.”태준도 웃었다.크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웃는 얼굴이었다.나는 양말을 바구니 안에 던졌다.“고마워. 혼자 꺼냈으면 바닥에 닿았을 것 같아.”“이 정도는 같이 하는 게 빠르지.”태준은 바구니에서 손을 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그가 마지막 셔츠의 소매를 안쪽으로 접었다.나는 이불커버를 바구니 안으로 조금 더 밀어 넣으며 그의 손을 바라봤다.“빨래 되게 잘 접는다.”“자주 하다 보니까.”“셔츠는 다 직접 세탁해?”“소재 따라 다르지. 맡기는 것도 있고, 집에서 하는 것도 있고.”“나는 네가 전부 세탁소에 맡길 줄 알았어.”태준이 고개를 들었다.“나도 빨래는 해.”“알아. 지금 보고 있으니까.”“그전에는 몰랐고?”나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직접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예전에 함께 있을 때도 태준은 자기 일은 알아서 해내는 사람이었다.옷을 언제 세탁하고, 어떻게 접고, 무엇을 직접 하고 무엇을 맡겼는지까지 관심을 둔 적은 많지 않았다.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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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묻지 않고, 기다린 것들 (3)

태준은 마지막 셔츠를 바구니에 넣었다.“너는 이불커버 안 접어?”“집에 가서 바로 씌울 거야.”“그게 더 빠르겠네.”“접었다가 다시 펴는 게 더 귀찮잖아.”“그건 맞아.”태준은 내 방식을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각을 맞춘 그의 빨래와 아무렇게나 들어간 내 이불커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서로 너무 달라서 오히려 웃겼다.세탁 정리를 끝내고 나니 벽 쪽에 붙어 있는 음료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다.“여기 커피도 있었네.”태준도 내 시선을 따라 자판기를 봤다.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메뉴는 두 가지뿐이었다.“마시고 갈래?”그가 물었다.나는 벽에 붙은 시계를 봤다.서두를 일은 없었다.“너도 마실 거야?”“응. 빨래도 끝났으니까 잠깐.”“그럼 나는 라떼.”태준이 카드를 꺼내 자판기에 댔다.“내가 살게.”“다음에는 내가 사.”그가 나를 한번 봤다.“다음도 세탁실에서?”“그건 모르지.”기계 안에서 종이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커피 마실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잖아.”“그럼 다음에는 서윤이가 사는 걸로.”“기억해둬.”태준이 라떼를 뽑아 내게 건넸다.“고마워.”따뜻한 컵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생각보다 훨씬 달았다.얼굴을 찌푸리자 태준이 물었다.“왜 그래?”“너무 달아.”그도 자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자판기 라떼가 원래 좀 달지 않나.”“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바꿔 마실래?”나는 그의 아메리카노를 봤다가 고개를 저었다.“그건 너무 쓸 것 같아.”“그럼 방법이 없네.”“그냥 마셔야지.”우리는 세탁실 한쪽의 작은 의자에 앉았다.각자의 바구니는 발밑에 두었다.태준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잠시 건조기 쪽을 봤다.나는 단 라떼를 천천히 마셨다.주말 오후에 공용 세탁실에서 태준과 커피를 마시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좋은 카페도 아니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없었다.계속 돌아가는 건조기와 희미한 세제 냄새뿐이었다.그런데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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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묻지 않고, 기다린 것들 (4)

“오늘은 일 안 해?”내가 물었다.“오전에 조금 했어.”“주말까지?”“급한 것만.”태준이 나를 봤다.“너도 어젯밤 늦게 메일 보냈잖아.”“그건 퇴근 전에 쓰던 거 마무리한 거야.”“아홉 시 넘어서 왔던데.”“시간까지 봤어?”“수신 시간에 뜨잖아.”나는 컵을 내려다보며 웃었다.“그렇긴 하네.”“오늘은 일 안 하고?”“빨래 끝내고 장 보러 가려고.”“저녁거리?”“응. 냉장고가 거의 비었어.”“뭐 해먹게?”“아직 안 정했어. 가서 보고.”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물 사야 해.”“또?”“또라니.”“며칠 전에도 생수 샀잖아.”“그걸 기억해?”“편의점까지 같이 갔으니까 기억하지.”태준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이번에는 큰 걸 사야겠다.”“들고 올라오기 귀찮다고 작은 것만 사는 거 아니야?”“어떻게 알았어?”“그럴 것 같아서.”“맞아.”이번에는 내가 맞혔다.괜히 기분이 좋아졌다.“나도 이제 조금 아네.”내 말에 태준이 조용히 웃었다.“원래 많이 알았어.”그 대답은 과하지 않았다.우리는 오래 만났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았다.그 사이에 달라진 것도 많았고, 새로 알아야 할 것도 생겼을 뿐이었다.나는 라떼를 한 모금 더 마셨다.여전히 달았다.“다음에는 덜 단 걸로 마셔야겠다.”태준이 내 컵을 봤다.“편의점에 저당 라떼 있던데.”“알아. 전에 마신 거.”“그걸로 마실 걸 그랬네.”“그러게.”나는 종이컵을 손끝으로 천천히 돌렸다.“다음엔 그걸로.”태준은 잠깐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음엔 덜 단 걸로.”그 말을 나누고도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지지는 않았다.다음이 언제인지 정하지 않았고, 무엇을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또 커피를 마실 일이 생긴다면 다른 라떼를 고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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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묻지 않고, 기다린 것들 (5)

태준은 남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나는 라떼를 끝까지 비우지는 못했다. 컵 바닥에 조금 남은 채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결국 남겼네.”태준이 말했다.“너무 달았어.”“다음에는 안 남길 만한 걸로 골라야겠네.”“네가 고르게?”“같이 보면 되지.”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나는 잠깐 태준을 봤다.그도 말을 되돌리지 않았다.“그래.”짧게 대답하고 바구니를 들었다.세탁실 문이 열리며 다른 입주자가 들어왔다. 우리는 자리를 비켜주고 밖으로 나왔다.태준도 자기 바구니를 들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란히 버튼을 기다렸다.“이불커버 무겁지 않아?”“조금. 그래도 괜찮아.”“집에 가면 바로 씌우게?”“미루면 오늘 안 할 것 같아서.”“그럴 수 있지.”“너는 빨래 바로 정리할 거야?”“아마.”“아마?”“커피 마셔서 잠깐 쉬고 싶어졌어.”나는 웃었다.“너도 미룰 때 있네.”“나도 사람이라니까.”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우리는 각자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태준이 자기 층 버튼을 누른 뒤 내 쪽을 봤다.나는 내 층을 눌렀다.엘리베이터가 위로 움직였다.좁은 공간 안에 따뜻한 세탁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먼저 불이 들어온 층에서 태준이 바구니를 들었다.문이 열렸다.“커피 잘 마셨어.”내가 말했다.“너무 달았다며.”“그래도 네가 사줬잖아.”태준이 문 밖으로 한 걸음 나갔다.“다음에는 덜 단 걸로.”“응.”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다음에는 내가 살게.”문이 닫히기 직전, 태준이 작게 웃었다.“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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