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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주의》全部章節:第 241 章 - 第 250 章

255 章節

241화. 먼저 켜진, 작은 불빛 (2)

다시 커버를 잡았다.“됐다.”이번에는 빠졌다.내가 아래로 내리자 태준이 커버를 받아 들었다.오래된 전구를 빼고 새 전구를 끼웠다.손끝에 단단히 맞물리는 감촉이 느껴졌다.태준에게서 커버를 받아 다시 끼웠다.이번에는 어렵지 않았다.의자에서 내려온 뒤 전원을 켰다.잠시 후 센서가 움직임을 잡았다.현관이 환해졌다.둘이 동시에 천장을 올려다봤다.“된다.”“그러네.”별것 아닌데도 웃음이 났다.며칠 동안 깜빡이던 불이 멀쩡하게 켜져 있는 것뿐이었다.그래도 조금 좋았다.내가 시작한 일을 끝냈다는 것도,태준이 옆에 있었다는 것도.예전 같았다면 태준이 전구까지 갈았을 것이다.나는 그걸 편하다고 생각했을 테고,아마 고맙다는 말조차 지금보다 쉽게 했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내가 의자 위에 있었고,태준은 아래에서 잡아줬다.같은 사람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우리는 예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서 있었다.그게 싫지 않았다.“고마워.”태준이 나를 봤다.“잘 됐으면 됐지.”“그래도.”센서등이 꺼졌다.태준이 현관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자 다시 불이 들어왔다.그 모습을 보다가 어젯밤 계단에서 나눈 말이 떠올랐다.맛있으면 내일 하나 줘.“잠깐만.”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귤 봉지를 꺼내 하나를 골랐다.어젯밤 먹었던 귤은 생각보다 달았다.현관으로 돌아가 태준에게 내밀었다.“이거.”“귤?”“어제 달면 하나 달라고 했잖아.”태준이 귤을 받아 들었다.“기억했네.”“응.”그가 손 안의 귤을 한번 내려다봤다.“맛있었어?”“달았어.”“그럼 기대해도 되겠네.”“네 것도 달지는 모르지.”“먹어보면 알겠지.”태준이 웃었다.나도 따라 웃었다.아주 작은 약속이었다.계단을 오르다 아무렇게나 나눈 말이었는데,나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그리고 오늘 태준의 손에 귤 하나가 들려 있었다.그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갈게.”“응.”“내일 봐.”“내일 봐.”문이 닫혔다.도어락이 잠겼다.현관에는 조금 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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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짧게 온, 오래 남은 말 (1)

휴대폰이 울린 건 센서등이 두 번째로 꺼졌을 때였다.나는 식탁 위에 놓아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불 잘 켜졌으면 됐어.]태준이었다.전구 하나 갈고 끝난 일이었다.불이 들어왔고, 태준은 내려갔다.그러니 저 말도 그 일만큼 짧았다.그런데 화면을 끄려는 순간,어젯밤 의자 아래에 서 있던 태준이 떠올랐다.내가 커버를 돌리는 동안 등받이를 잡고 있던 손.의자가 조금 흔들렸을 때 힘이 더 들어가던 손.예전의 태준이었다면 아마 먼저 올라갔을 것이다.내가 몇 번이나 해보는 걸 기다리지도 않았을 테고,결국 자기가 하는 게 빠르다며 전구까지 갈았을지도 모른다.그때는 그런 일이 익숙했다.태준이 먼저 하고,나는 옆에서 보거나 필요한 걸 건네는 일.편할 때도 있었고,가끔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빼앗기는 것 같아 답답할 때도 있었다.그래도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그런 것까지 생활이 됐다.누가 먼저 하고, 누가 뒤에서 잡아주는지 따로 생각하지 않는 생활.어젯밤은 달랐다.나는 의자 위에 있었고,태준은 아래에 있었다.내가 해보겠다고 한 일을 가져가지 않았고,필요한 순간에만 의자를 잡아줬다.그리고 오늘은 그 일에 대해 더 말하지 않았다.불 잘 켜졌으면 됐어.그 짧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자기가 도와줬다는 말도 없고,내가 몇 번이나 애를 먹었다는 말도 없었다.그냥 잘 켜졌으면 됐다고 했다.그게 조금 고마웠다.나는 답장을 썼다.[응. 고마워.]보내고 나니 어젯밤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 같았다.그때는 불이 켜졌다는 게 먼저였는데,지금은 그 불 아래에서 내 의자를 잡고 있던 태준이 더 선명했다.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현관은 조용했다.센서등도 이미 꺼져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어둠보다 그 아래에 있던 손이 오래 남았다.⸻다음 날 아침,신발을 신으려고 현관에 서자 센서등이 바로 켜졌다.어제 몇 번이나 고개를 젖혀 올려다봤던 불이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환했다.나는 구두를 신고 일어나 천장을 한번 봤다.불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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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화. 짧게 온, 오래 남은 말 (2)

오후 늦게 수정한 시안을 넘기고 잠깐 창밖을 봤을 때,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씩 맺히기 시작했다.아침부터 흐렸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그래도 빗물이 창문을 타고 길게 내려오는 걸 보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날씨가 아니었다.퇴근할 때는 비 안 왔으면 좋겠다.아침에 계단을 내려가며 들었던 태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결국 오네.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모니터를 봤다.잠깐이면 그칠 수도 있었다.그치지 않으면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를 사면 됐다.집에는 투명 우산이 하나 있었지만,아침에 내가 두고 나온 거니까 누구 탓을 할 일도 아니었다.한참 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맞은편 건물이 흐릿하게 보일 만큼 비가 굵어져 있었다.창가 쪽에 앉은 직원이 블라인드를 조금 올리며 말했다.“오늘 비 온다는 얘기 있었어요?”“있었나 봐요.”대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적어도 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아침부터 우산까지 챙길 만큼.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책상 옆에 둔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는 태준의 이름이 떠 있었다.[비 많이 오네.]나는 창밖을 한번 보고 답장을 보냈다.[응. 생각보다 많이 와.]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마우스를 잡으려는데 곧 한 줄이 더 왔다.[우산 없지?]손이 멈췄다.아침에 한 말이었다.계단을 내려가며,그저 그의 손에 들린 우산을 보고 생각나는 대로 했던 말.난 안 가져왔는데.나는 아침의 내가 그 말을 어떤 목소리로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그런데 태준은 기억하고 있었다.[응.]잠깐 생각하다가 한 줄을 더 보냈다.[퇴근할 때 하나 사려고.][그래.]그리고 조금 뒤,[조심해서 가.]나는 그 문장을 읽었다.아침에는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고,비가 오니까 이제는 조심해서 가라고 했다.그 사이에 특별한 건 없었다.태준이 우산을 가져다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내가 기다리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그런 게 오히려 좋았다.내가 우산이 없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비가 많이 오는 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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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 짧게 온, 오래 남은 말 (3)

퇴근할 무렵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건물 1층 편의점에서 투명 우산 하나를 샀다.비닐을 벗기고 밖으로 나서자 빗소리가 바로 머리 위로 가까워졌다.아침에 태준이 들고 있던 것과 비슷한 우산이었다.같은 종류의 우산이야 어디에나 있었지만,괜히 그 생각이 먼저 났다.나는 손잡이를 조금 세게 쥐고 역 쪽으로 걸었다.바람이 불 때마다 빗물이 옆으로 들어왔다.우산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왼쪽 소매가 젖었고,반대로 옮기면 가방 쪽으로 물이 튀었다.혼자 쓰는 우산인데도 비를 완전히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젖은 소매를 손으로 한번 쓸었다.차가운 물기가 손끝에 묻었다.그 순간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태준과 만나던 때에도 비 오는 날은 많았다.우산을 하나씩 들고 나왔는데도결국 하나만 쓰고 걷던 날도 있었고,처음부터 태준 우산 아래로 들어가던 날도 있었다.나는 늘 태준 가까이에 붙어 걸었다.비 때문에 그랬는지,좋아서 그랬는지는 이제 구분도 잘 되지 않았다.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그때는 집에 도착해서 외투를 벗다가태준의 한쪽 어깨가 젖어 있는 걸 본 적도 여러 번 있었다.“너 젖었네.”내가 말하면 태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괜찮아.”나는 그 말을 믿었다.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조금 젖는 것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인 줄 알았고,내가 우산 안쪽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다.초록불이 켜졌다.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나도 우산을 고쳐 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몇 걸음 걷다가 문득 생각했다.비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나는 늘 덜 젖었다.그때는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당연히 우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지금 혼자 우산을 쓰고 걷고 나서야 알았다.우산만의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나는 오른쪽 소매를 내려다봤다.조금 전보다 더 짙게 젖어 있었다.예전 태준의 어깨도 아마 이랬을 것이다.그걸 몇 번이나 봤으면서도나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이상하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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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짧게 온, 오래 남은 말 (4)

집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조금 약해져 있었다.계단을 올라 현관 앞에 섰다.도어락을 누르고 문을 열자 센서등이 바로 켜졌다.아침에도 봤던 불인데오늘은 이상하게 하루의 처음과 끝에 모두 태준이 있는 것 같았다.나는 젖은 우산을 욕실에 가져가 펼쳐두고,현관으로 돌아와 코트를 벗었다.오른쪽 소매가 생각보다 많이 젖어 있었다.손바닥으로 눌러보니 차가웠다.비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나는 늘 덜 젖었다.조금 전 길에서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그때는 사랑하는 게 바빠서 몰랐던 것들.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는 게 당연했고,태준이 나를 챙기는 것도 당연했다.아마 태준도 내가 자기 곁에 있는 걸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당연한 건 없어지고 나서야 모양이 보였다.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까지 말할 수 없었다.다만 예전의 우리를 떠올릴 때,좋았던 것까지 일부러 흐리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헤어진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사랑했던 시간이 전부 잘못된 건 아니었다.그걸 인정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나는 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다.현관을 지나려는데 센서등이 꺼졌다.어둑해진 바닥을 보다가 휴대폰을 꺼냈다.오늘 태준에게서 온 메시지를 다시 열었다.[비 많이 오네.][우산 없지?][조심해서 가.]그리고 그 위에는 어젯밤의 말이 있었다.[불 잘 켜졌으면 됐어.]하나같이 길지 않았다.무슨 마음인지 설명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말들이었다.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남는지도 몰랐다.말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은 오히려 피할 수도 있었다.좋아한다거나,보고 싶다거나.그런 말에는 적어도 이름이 있었다.들으면 놀랄 수도 있고,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건네진 말은 달랐다.내가 비를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아침에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집에 가는 길을 조심하라는 인사.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나는 자꾸 그 안에 머물렀다.예전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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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젖은 자국, 남겨둔 자리 (1)

비는 밤사이에 그쳤다.아침에 창문을 열자 젖은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밤새 물을 머금은 아스팔트와 덜 마른 나무 냄새.맞은편 건물 난간에는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도로 가장자리에는 빗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나는 잠깐 창가에 서 있었다.어제 퇴근길에 맞았던 비가 생각났다.오른쪽 소매에 번지던 물기.혼자 쓴 우산 아래에서도 생각보다 자주 젖었던 어깨.그리고 그 뒤에 따라왔던 오래전의 태준.비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나는 늘 덜 젖었다.어제 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된 일이 오늘 아침에도 조금 남아 있었다.창문을 닫고 출근 준비를 했다.욕실에 펼쳐둔 우산은 아직 그대로였다.손끝으로 비닐을 만져보니 거의 말라 있었다.나는 접으려다가 그냥 두었다.어차피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는 충분히 마를 것이다.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나왔다.문을 열자 센서등이 켜졌다.어제 몇 번이나 마음에 남았던 불빛이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현관을 밝혔다.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며칠 동안 붙어 있던 점검 안내문이 보이지 않았다.버튼을 눌러보니 숫자가 바로 움직였다.고쳐졌구나.편해진 건 분명한데,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계단 쪽을 한 번 보게 됐다.어제 아침에는 그 계단에서 태준을 만났다.그 전날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같이 올라왔고.며칠뿐이었는데 그 사이 계단에는 생각보다 많은 게 남아 있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던 일.중간에 잠깐 쉬었던 일.태준이 사는 층을 지나면서 괜히 방화문을 봤던 일까지.나는 혼자 웃었다.엘리베이터가 고쳐져서 다행인데,계단을 쓸 일이 없어졌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계단이 좋아진 건 아닌데.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좋았던 모양이었다.문이 열렸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1층 버튼을 눌렀다.문이 닫히고 숫자가 하나씩 내려갔다.계단보다 훨씬 빨랐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속도인데,오늘은 조금 낯설었다.태준이 사는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나는 별생각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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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젖은 자국, 남겨둔 자리 (2)

점심을 조금 넘겼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업무 메시지인 줄 알고 화면을 켰다가 태준의 이름을 봤다.[이번엔 펼쳐놨어.]아래에는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나는 사진을 열었다.사무실 한쪽인 것 같았다.투명한 우산이 활짝 펼쳐져 있었고,그 아래에는 납작하게 편 택배 상자 하나가 깔려 있었다.구도는 조금 삐뚤었다.우산 끝이 화면 밖으로 살짝 잘렸고,갈색 상자에는 송장을 떼어낸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게 태준답지 않아서 웃음이 났다.일할 때는 선 하나도 반듯하게 맞추는 사람이우산 하나 보여주겠다고 찍은 사진은 생각보다 대충이었다.나는 사진을 조금 더 봤다.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보였던 물방울은 아직 우산살 끝에 몇 개 남아 있었다.지금쯤은 더 말랐을까.화면 아래 입력창을 눌렀다.[이제는 잘 마르겠다.]잠시 뒤 답장이 왔다.[나도 그렇게 생각해.]나는 피식 웃었다.[상자는 어디서 났어?][어제 온 택배.][잘 썼네.]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사진을 봤다.별것 아닌 장면이었다.택배 상자 하나.그 위에 펼쳐둔 젖은 우산 하나.예전의 우리였다면 굳이 사진으로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현관을 지나가다가 봤을 테니까.우산이 펼쳐져 있으면 피해 걸었을 것이고,상자가 바닥에 깔려 있으면 왜 저걸 거기 뒀느냐고 물었을지도 모른다.너무 가까이 있던 것들은 대개 그렇게 지나갔다.지금은 사진 한 장 안에 들어온 태준의 생활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한때는 너무 익숙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조금 떨어지고 나니 새삼스럽게 보였다.어제는 젖은 어깨가 그랬고,오늘은 삐뚤게 찍힌 사진이 그랬다.이미 너무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가끔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완전히 낯선 건 아니었다.오히려 익숙한 것들 사이에내가 모르던 작은 부분이 하나씩 섞여 나오는 느낌에 가까웠다.그런 순간이 싫지 않았다.나는 사진을 닫으려다 한 번 더 봤다.우산 아래 깔린 상자의 한쪽 모서리가 조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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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젖은 자국, 남겨둔 자리 (3)

집에 들어가자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욕실로 갔다.어젯밤부터 펼쳐둔 투명 우산이 그대로 있었다.완전히 말라 있었다.손끝으로 비닐을 한번 쓸어봤다.차갑지도,축축하지도 않았다.나는 우산살을 하나씩 모았다.비닐이 접히는 소리가 욕실 안에서 작게 났다.끈을 둘러 고정하고 나니어제 비를 맞으며 들고 왔던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접은 우산을 들고 나오다가문득 욕실 바닥을 봤다.우산이 펼쳐져 있던 자리에흐릿한 물자국 몇 개가 남아 있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였다.나는 잠깐 쪼그려 앉아 그 흔적을 봤다.아침에는 태준의 우산에서 떨어진 물방울을 봤고,저녁에는 내 우산이 남긴 자국을 보고 있었다.같은 비였다.각자 다른 곳에서 맞았고,각자의 우산으로 피했고,각자의 집에서 말렸다.그런데 오늘 하루는 이상하게 그 우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었다.아침에 아직 젖어 있던 태준의 우산.점심에 받은 삐뚤어진 사진.저녁의 짧은 메시지.우산 말랐어.그럼 접어.별것 아닌 말을 주고받는 동안나는 내 우산도 이렇게 말리고 있었다.함께한 건 아닌데,아주 조금 같이한 것 같은 하루였다.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나는 휴지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마른 자국은 금방 없어졌다.한 번 닦고 나니 우산이 있던 자리가 깨끗해졌다.그런데 비어 있는 바닥을 보니오히려 조금 전까지 무엇이 있었는지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나는 접은 우산을 들고 현관으로 갔다.원래 있던 우산 옆에 새로 산 투명 우산을 세워두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건이었다.그 자리에 우산 하나가 더 생겼다.나는 한 발 물러서서 바라봤다.요즘 내 하루에도 그런 것들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태준에게서 오는 짧은 메시지.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잠깐 기대하게 되는 얼굴.사진 한 장을 보고 웃는 일.마주치지 않으면 아주 조금 아쉬워지는 마음.하나하나는 작았다.작아서 금방 지나갈 수도 있었다.그런데 지나간 뒤에도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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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빈 칸 하나, 남겨진 이름 (1)

아침에 냉장고를 열었다가문쪽 칸에서 시선이 멈췄다.저당 라떼를 넣어두던 자리였다.며칠 전에는 같은 병 두 개가 나란히 들어 있었는데,지금은 비어 있었다.나는 물을 꺼내려던 손을 잠깐 멈췄다.라떼 하나 없는 게 특별할 건 없었다.마시고 싶으면 다시 사면 되는 일이었다.그런데 비어 있는 칸을 보고 있으니며칠 전 태준과 마셨던 라떼가 먼저 생각났다.덜 단 게 낫다고 했던 말.다음에는 자기가 사겠다고 했던 태준.나는 생수병을 꺼내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탁.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간단히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왔다.현관 센서등이 켜지고,문을 닫자 복도는 조용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에는 태준을 만나지 않았다.어제는 그의 층에서 문이 열렸는데오늘은 숫자만 빠르게 지나갔다.1층.문이 열렸다.나는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비가 그친 지 이틀째라아침 공기에는 이제 축축한 냄새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며칠 동안 젖어 있던 길도 완전히 말라 있었다.역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이 보였다.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유리문 너머 냉장고에 익숙한 병이 눈에 들어왔다.저당 라떼.나는 몇 걸음 지나쳤다가 돌아섰다.문이 열리며 작은 멜로디가 울렸다.냉장고 앞에 서서 라떼 하나를 집었다.차가운 병 표면이 손바닥에 닿았다.진열대 아래 붙은 작은 가격표에 1+1이라고 적혀 있었다.나는 같은 병을 하나 더 꺼냈다.두 병을 손에 들고 계산대로 갔다.바코드가 두 번 찍혔다.삑.삑.편의점을 나오자 조금 전보다 햇빛이 밝아져 있었다.나는 라떼 두 병을 한 손에 들고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하나는 지금 마시면 되고,다른 하나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다.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그런데 휴대폰을 꺼냈다.메신저를 열자 최근 대화 위쪽에 태준의 이름이 보였다.강태준.나는 잠깐 그 이름을 보다가 입력창을 눌렀다.[혹시 너 출근했어?]답장은 금방 왔다.[아직. 지금 엘리베이터 앞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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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화. 빈 칸 하나, 남겨진 이름 (2)

나는 손에 든 병을 한번 흔들었다.“나도 해보는 중이야.”말하고 나서야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태준이 나를 봤다.“뭘?”나는 잠시 생각했다.정확히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생각났다고 해서 모른 척하지 않는 것.주고 싶은 게 있으면 괜히 이유부터 찾지 않는 것.그런 것들.“그냥.”나는 앞을 보며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거.”태준은 잠깐 말이 없었다.“그래.”조금 뒤에 그가 덧붙였다.“그랬으면 좋겠어.”나는 옆을 봤다.태준은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그 말을 하고도 나를 살피지 않았다.나는 다시 길을 봤다.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내가 무엇을 해보는 중인지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오늘 아침에는 라떼 하나를 건넸고,태준의 이름을 먼저 눌렀고,지금은 같이 걷고 있었다.그 정도면 충분했다.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태준이 들고 있던 라떼 병을 봤다.내가 조금 전에 건넨 것.별것 아닌데그의 손에 들려 있으니 괜히 한 번 더 보게 됐다.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사람들이 움직였다.우리도 함께 길을 건넜다.역 입구가 가까워질수록아침의 짧은 시간이 끝나가는 게 느껴졌다.매번 비슷한 곳에서 헤어지는데도오늘은 조금 달랐다.우연히 만난 아침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았다.내가 먼저 태준에게 연락했고,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고,그렇게 여기까지 같이 걸었다.역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태준도 따라 멈췄다.“여기서 가면 되지?”“응.”나는 태준의 손에 든 라떼를 다시 한번 봤다.“진짜 천천히 마시겠네.”태준이 웃었다.“그러려고.”나도 웃음이 났다.몇 초쯤 그대로 서 있었다.아까 했던 말이 다시 마음에 남았다.나도 해보는 중이야.괜히 너무 많은 걸 말한 건 아닐까 싶다가도,이번에는 지우고 싶지 않았다.태준이 그 말을 크게 만들지 않았으니까.나는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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