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낮부터 꾸물거리더니 결국 참았던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공 살수차가 만들어내는 가짜 비와 하늘에서 내리는 진짜 비가 섞여 촬영장은 온통 축축한 물기로 가득 찼다. 조명기는 빗줄기를 투과하며 몽환적인 빛을 만들어냈고, 스태프들은 우비를 눌러쓴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촬영은 이신이 자객들의 습격으로부터 여주인공인 서윤 공주를 구해내고 빗속에서 처절하게 버티는 장면이었다. 서윤 공주 역을 맡은 배우 채유진은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가냘픈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 그녀는 곧바로 고결한 공주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현준은 검을 고쳐 쥐며 유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무명옷 역시 빗물을 잔뜩 머금어 천근만근 무거웠다. "유진 씨, 많이 춥죠? 이번 컷만 버티면 바로 온열기 넣을 거예요." 현준의 나지막한 위로에 유진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빗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현준의 눈빛은 이미 이신 그 자체였다.유진은 그 서늘하면서도 깊은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힘든 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 "준비됐습니다. 액션!" 류승호 감독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자객 역할을 맡은 스턴트 배우들이 사방에서 튀어 나왔다. 현준은 유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휘둘렀다. 쇳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날카롭게 고막을 때렸다. 현준의 움직임은 갯벌에서 훈련했던 대로 진흙탕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