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설산에 꽃이 피기까지 삼백년: Chapter 11 - Chapter 20

41 Chapters

10화 「싹」

그날 밤부터 꿈이 변했다.늘 같은 설산, 같은 눈보라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 꿈속에 사람이 있었다.눈밭 한가운데서 여인이 검무를 추고 있었다. 흰 수련복 자락이 눈보라와 섞여 어디까지가 옷이고 어디부터가 눈인지 알 수 없었다. 초식 하나하나가 눈에 익었다. 낙매. 유설. 몸이 먼저 알던 그 검로가, 꿈속에서는 완성된 모습으로 피고 지고 있었다.검무가 끝나고, 여인이 웃으며 돌아보았다."사부님, 보셨어요? 드디어 됐어요!"꿈속의 연소하는 그 얼굴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는 햇빛에 젖은 것처럼 하얗게 번져 있었다. 다만 목소리 — 그 들뜬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익숙했다. 매일 아침 세숫물에 대고 흥얼거리는 제 목소리와, 똑같았다.그리고 화답하는 낮은 목소리."…보았다. 잘했다, 소하야."잠에서 깼을 때 베개가 젖어 있었다. 슬픈 꿈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눈부시게 행복한 꿈이었는데, 눈물은 꿈의 내용과 상관없이 아주 오래된 곳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소하야. 꿈속의 그 부름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죽은 매화나무 앞에서 사부가 부르던 것과 같은 부름. 백리유음이 불렀다가 황급히 고쳐 부르던 것과 같은 부름. 다들 그녀를 그렇게 부르다 마는데, 정작 그녀만 그 이름의 주인을 모른다."아가씨, 아가씨! 큰일 났어요!"앵두가 문을 벌컥 열어젖힌 것은 그때였다. 큰일이라면서 얼굴은 함박꽃이었다."나무가! 그 죽은 나무가!"마당의 매화 고목 앞에 사부가 서 있었다.연소하는 사부의 그런 얼굴을 처음 보았다. 서리도, 분노도, 어젯밤의 그 아득한 슬픔도 아니었다. 그는 유령을 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본 사람의 얼굴이었다.고목의 가장 높은 가지 끝.삼백 년 동안 시커멓게 말라 있던 그 자리에, 파랗게 물이 오른 싹 하나가 돋아 있었다."세상에. 죽은 나무에도 싹이 트네요?"앵두가 재잘거렸다. 죽은 나무에는 싹이 트지 않는다. 그건 앵두도 알고 연소하도 알고, 이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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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저잣거리의 남자」

"산 아래 다녀와도 됩니까?"의외로 허락은 쉽게 떨어졌다. 봉인을 누르는 데 쓸 약재가 필요했고, 마침 산 아래 운주성에 백년장이 서는 날이었다. 다만 조건이 붙었다."해 지기 전에 돌아온다. 그리고 이것을 지녀라."사부가 건넨 것은 흰 옥패였다. 매화 한 송이가 새겨진, 손때가 반질반질한 옛 물건. 새것만 가득한 설봉에서 처음 보는 낡은 물건이었다."부적 같은 거예요?""…그런 것이다. 몸에서 떼지 마라."받아 들고 보니 옥패 뒷면에 작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소(昭) 한 글자. 물어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사부는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그 등이 어쩐지 '묻지 마라'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어서, 연소하는 옥패를 목에 걸고 옷섶 안에 넣었다. 심장 위에서 옥이 미지근하게 데워졌다. 오래 그 자리에 있던 물건처럼, 이상하게 자리가 맞았다.운주성은 어지러웠다. 사람과 소리와 냄새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앵두는 물 만난 고기였다. 반 시진 만에 앵두는 양손 가득 꿀떡이며 육포며 설탕 조린 산사를 들고 "아가씨, 선계보다 여기가 백배 좋아요"를 연발했다.약재상에서 일이 꼬였다. 주인이 부르는 값이 어제와 다르고, 물건은 하나 남았다는데 뒤에서 웬 손이 불쑥 나와 그 마지막 천년설삼을 집어 든 것이다."이보세요, 그거 저희가 먼저—""흥정이 끝나지 않았으면 임자가 없는 물건이지."돌아본 곳에 남자가 서 있었다.검은 옷에 은사 자수. 저잣거리 한복판인데 그 주변만 소리가 한 겹 걷힌 듯 고요했다. 잘생겼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위험하다는 말이 먼저 오는 얼굴 —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남자였다.그런데 이상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명치 어디쯤이 저릿했다. 사부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저릿함. 그런데 방향이 달랐다. 그쪽이 그리움이라면, 이쪽은 — 미안함에 가까웠다."…양보하시죠. 병자한테 필요한 약재예요.""병자라." 남자가 설삼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봉인을 누르는 데 쓰는 것을 병이라 부르나?"연소하의 등줄기가 얼었다. 손이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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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금기」

설봉에 올라서자마자 사부가 마당에 서 있었다. 해는 아직 있었다. 약조는 지켰다. 그런데 사부의 얼굴을 본 순간 연소하는 알았다. 이미 알고 있구나."옥패를 내라."받아 든 옥패를 그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옥패에 남은 기척을 읽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연소하는 사부의 얼굴에서 처음 보는 것을 보았다. 서리가 아니었다. 그건 활활 타는 것이었다."만났느냐.""…약재상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어요. 위가라고. 근데 사부님, 그 사람 제 이름을—""다시 만나면."그의 목소리가 옥패를 쥔 손마디처럼 하얗게 눌려 있었다."상대하지 말고 즉시 옥패를 부러뜨려라. 내가 간다. 어디든.""그 사람이 누군데요?""알 것 없다.""또!" 연소하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또 그러신다. 알 것 없다. 때가 되면 말해준다. 묻지 마라. 사부님, 저 그 말 들으려고 여기 있는 거 아니에요. 봉인이 뭔지도, 삼백 년 전 제자가 누군지도, 그 남자가 왜 제 이름을 아는지도 — 다 저에 관한 일이잖아요. 제 일인데 왜 저만 몰라요?"침묵. 사부는 대답하는 대신 그 활활 타던 것을 도로 눌러 껐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차라리 화를 내지. 소리를 지르지. 저 사람은 늘 삼키기만 한다."…네가 알면, 다치는 것들이 있다.""제가 애예요?""아니." 그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네가 애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그날 저녁은 각자 먹었다. 앵두가 국수 그릇을 들고 사부의 처소와 그녀의 방을 눈치껏 오가며 "두 분 다 반 그릇도 안 드셨어요"라고 울상을 지었다. 그러고는 연소하 곁에 앉아 제 몫의 국수를 후루룩거리며 세상 진지하게 말했다."아가씨. 저는 글도 모르고 신선 일도 모르는데요. 하나는 알아요. 그분이 말을 안 하는 거는요,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 말을 하면 우는 사람이라 그래요. 우리 마을 대장장이 아저씨가 딱 그랬거든요. 마누라 얘기만 나오면 입을 꿰매요.""…그 아저씨는 왜.""홍수 때 못 구했대요, 마누라를." 앵두는 국물을 마저 마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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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나눠 진 것」

방 안은 약 냄새가 났다.새것만 가득한 설봉에서 두 번째로 발견한 오래된 것 — 구석의 약탕관은 손잡이가 닳아 있었다. 삼백 년쯤 쓴 물건처럼."손목."들어서기 무섭게 떨어진 말이었다. 연소하는 잠자코 손목을 내밀었다. 일곱 장이 된 검은 매화 위로 사부의 손이 덮였다.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고, 문양이 잦아들고 — 거기까지는 지난번과 같았다.지난번과 다른 것은 시간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사부의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등잔불에 비친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밀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눈앞에서 보였다."사부님, 그만—""움직이지 마라."일각. 이각. 문양이 다섯 장으로 줄어들었을 때, 그의 손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그리고 단목현은 — 선계 제일검은, 그대로 옆으로 무너졌다."사부님!"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팔로 바닥을 짚고 버티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목소리만은 끝까지 평온하게."…기력을 조금 썼을 뿐이다. 물러가라.""이게 조금이에요?""물러가라 하였다.""싫어요."연소하는 물러가는 대신 약탕관을 집어 들었다. 부엌에서 앵두를 깨워 불을 지피고, 서랍에서 낮에 사 온 약재를 — 천년설삼이 아닌 그냥 설삼을 — 꺼내 썰었다. 손이 저 혼자 움직였다. 몇 첩을 달여야 하는지, 불이 얼마나 세야 하는지, 물어본 적도 배운 적도 없는데 손이 알았다. 이제는 이런 일에 일일이 놀라지도 않았다.약이 달여지는 동안 앵두가 부뚜막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물었다. "아가씨, 근데 약 달이는 법 언제 배웠어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설삼은 씨를 발라야 쓴맛이 덜하다는 것도, 사부가 쓴 것을 못 먹는다는 것도 — 아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있었다. 누구의 기억인지 모를 기억이 손끝마다 배어 있었다.약사발을 들고 돌아왔을 때, 사부는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줄 알았다. 그래서 보았다.흘러내린 소매.그 아래 드러난 손목 안쪽에 — 검은 매화가 피어 있었다.그녀의 것과 똑같은 다섯 꽃잎. 아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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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같은 이름」

"그걸 걱정해 주는 것이냐.""지금 웃음이 나와요?"연소하는 정말로 화가 났는데, 화를 내면서도 알았다. 이 사람은 지금 저 물음 하나가 삼백 년 치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다는 걸."질문은 제가 했어요. 이 봉인 다 받으면 사부님 어떻게 되냐고요.""…아무렇게도 되지 않는다. 내 그릇은 네 것보다 깊다.""거짓말.""거짓말이다."너무 순순히 인정해서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단목현은 식은 약사발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 어쩌면 삼백 년 만에 —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봉인은 본디 두 쪽으로 나뉘어 있다. 반은 네 몸에, 반은… 다른 곳에. 네 쪽이 흔들릴 때마다 다른 쪽이 대신 받는 구조다. 저울과 같지. 한쪽이 가벼워지려면 한쪽이 무거워져야 한다.""그 다른 쪽이 사부님이고요.""지금은.""지금은? 원래는 아니었어요?""원래는," 그는 약사발을 내려놓았다. "봉인을 건 사람의 몫이었다.""삼백 년 전 그 제자."침묵이 긍정이었다. 연소하는 바짝 다가앉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답에 가까워질수록 무서운데, 멈출 수가 없었다."그 사람이 왜요. 왜 자기 목숨을 걸고 이런 걸 만들어요.""마겁이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막으려고. 선마대전의 끝에 균열이 열렸다. 마겁 — 세상을 삼키는 겁화다. 막을 방도는 하나뿐이었지. 살아 있는 그릇에 가두는 것. 영근이 크고, 도심이 굳고, 제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릇에." 그의 목소리가 한 겹 낮아졌다. "선계 전체에서 그 조건에 맞는 자는 둘이었다. 나와, 그 아이. 그리고 그 아이는 — 나에게 상의도 없이, 제 단전을 뇌옥 삼아 마겁을 가두고, 봉인의 대가를 제 혼으로 치렀다. 그래서 그 아이의 혼은…."그는 거기서 멈췄다. 부서졌다, 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 아이는, 스스로를 지불했다.""문파를 팔아넘긴 마녀라면서요. 소문은.""소문은 소문이다.""사부님이 파문하셨다면서요."이번 침묵은 칼로 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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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지워진 기록」

우연이 아니라면 기록이 있을 것이다.태허문 장경각(藏經閣)에는 개파 이래 모든 기록이 있다고 했다. 입문록, 파문록, 선마대전의 전공록까지. 직전제자의 신분패로는 삼 층까지 출입할 수 있었고, 삼백 년 전 기록은 이 층이었다."아가씨, 우리 이러다 들키면 어떻게 돼요?""들킬 게 뭐 있어. 출입패 있잖아.""근데 왜 자꾸 뒤를 보세요?"장경각은 먼지와 오래된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일 층은 공용 경전이라 제자들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이 층은 비어 있었다. 서가 사이를 걸을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도 발이 먼저 알았다. 몇 번째 서가에서 꺾어야 하는지, 사다리가 어디 세워져 있는지. 앵두가 "아가씨 여기 와보셨어요?" 하고 물었고, 연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와본 적 없다. 이 몸으로는.선마대전 연간의 서가는 금방 찾았다. 전공록, 순직록, 입문록 — 그리고 파문록. 파문록만 유독 손때가 없었다. 삼백 년간 아무도 펼치지 않았거나, 펼치는 것이 금지됐거나.삼백 년 전 그해의 파문록을 펼친 연소하는, 숨을 멈췄다.먹이었다. 새까만, 완강한 먹.한 장이 통째로 먹으로 지워져 있었다. 이름도, 죄목도, 판결도. 종이가 상하지 않게 공들여, 그러나 한 글자도 살아남지 못하게 철저히. 앞장과 뒷장도 마찬가지였다. 그해의 입문록에서도, 전공록에서도, '대사존의 직전제자'가 있어야 할 자리마다 검은 먹칠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이상해요." 앵두가 소곤거렸다. "지울 거면 장을 찢지, 왜 먹칠을 해놨을까요?""…찢으면 없던 일이 되니까."연소하는 먹칠 위를 손끝으로 쓸었다.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건 은폐가 아니다. 찢어버리라는 명을 받은 누군가가, 차마 찢지는 못한 것이다. 여기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은 남겨 둔 것이다."찾는 것이 있느냐."서가 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수석장로였다. 지팡이를 짚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자리에 서서. 앵두가 연소하의 등 뒤로 숨었다."…삼백 년 전 기록을 보고 있었습니다.""보이더냐?""지워져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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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제안」

"떠나라니요.""말 그대로다. 조용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특히 네 사부에게는."수석장로는 서가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위압이 걷히고, 그 자리에 아주 늙고 지친 노인 하나가 남았다."오해하지 마라. 이 늙은이는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야. 무서운 게다.""…제가요?""삼백 년 전에 우리는 하늘이 내린 검재 하나를 마녀로 몰아 죽였다."노인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사실로서 말했다. 연소하는 숨이 막혔다. 문파를 판 마녀. 소문의 판이 뒤집히는 소리가 들렸다."그 아이가 마겁을 제 몸에 가둔 것을, 잠식이라 불렀지. 문파를 지킨 것을, 배신이라 불렀어. 왜인 줄 아느냐? 마겁이 어디서 새어 나왔는지가 밝혀지면 안 됐거든. 장로원 몇몇의 금단 수련 — 그 구멍을 덮으려면 죄인이 필요했다. 마침 마기를 두른 계집이 있었고.""그걸… 그걸 알면서 지금까지—""알면서 삼백 년을 살았지. 다들 늙었고, 몇은 죽었고, 산 것들은 그 일이 무덤까지 가기만 빌고 있다. 웃기지 않으냐? 그 아이 하나 지운 값으로 태허문은 삼백 년을 무사했다. 선계 제일 문파라는 간판도, 저 대전의 위엄도, 다 그 위에 서 있는 게야. 헌데 늙으니 알겠더구나. 무덤까지 가져갈 짐은, 무덤이 가까워질수록 무거워져." 노인의 눈이 번들거렸다. "한데 죽은 계집이 돌아왔단 말이다. 같은 얼굴, 같은 인장, 같은 검로를 끌고. 대사존은 삼백 년을 그 강가에서 기다렸다지. 무엇을 기다렸겠느냐? 제자가 보고 싶어서? 아니야. 그 사람은 갚을 날을 기다린 게다. 그리고 빚을 갚는 날은 — 빚을 지운 놈들이 갚음을 당하는 날이지.""사부님은 그런 분이—""그런 분이 아니다?" 노인이 처음으로 웃었다. 마른 웃음이었다. "배사례 날 보았잖느냐. 네게 사슬이 떨어지는 순간 대전이 통째로 얼었다. 아이야, 그 사람이 삼백 년 동안 왜 폐관에 있었는지 아느냐? 자비로워서가 아니다. 나오면 — 우리를 다 죽일 것 같아서, 스스로 갇힌 게야."연소하는 대꾸하지 못했다. 노인의 말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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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계율당」

앵두가 끌려간 것은 그로부터 겨우 닷새 뒤였다.수석장로가 말한 보름의 반도 지나기 전이었다. 경고가 아니라 예고였던 것이다. 본문 주방에서 독초가 나왔고, 그것이 하필 앵두의 국수 항아리에서 나왔고, 계율당은 반나절 만에 앵두를 잡아갔다. 설봉으로 소식이 올라온 것은 해가 진 뒤였다.연소하는 사부를 기다리지 않았다.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침 사부는 봉인 후유증을 다스리러 폐관에 든 날이었고, 방해하면 주화입마한다 했고 — 무엇보다 이것은 그녀의 사람의 일이었다. 수석장로의 예고대로였다. 저들이 원하는 건 앵두가 아니라 그녀다. 미끼를 물면 함정이고, 물지 않으면 앵두가 죄를 뒤집어쓴다. 어느 쪽이든 앵두 혼자 얼음 뇌옥에서 밤을 보내게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검을 내렸다.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계율당 뇌옥은 본문 북쪽 끝, 얼음 바위를 파서 만든 곳이었다."직전제자시라도 아니 됩니다. 계율당의 영역—""비켜주세요.""저항하면 저희도—"무사들의 창이 교차하며 길을 막았다. 연소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낙매(落梅).몸이 기억하는 검은 사람을 베지 않고도 길을 열 줄 알았다. 꽃잎이 지듯 검광이 흩날렸고, 창 여덟 자루가 손잡이만 남기고 눈처럼 잘려 내렸다. 무사들이 제 빈손을 내려다보는 사이 그녀는 그 사이를 지나 걸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무서웠다. 그런데 발은 멈추지 않았다. 뇌옥 안쪽에서 앵두의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아가씨?! 아가씨 오지 마요, 이거 함정이래요! 저 잡아가면서 지들끼리 그랬어요, 미끼라고—"알고 있었다. 함정인 것도, 미끼인 것도. 검을 든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뇌옥 앞마당에 계율당주와 무사 서른이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것을 본 순간, 확신이 되었을 뿐이다."직전제자 연소하. 계율당 습격, 본문 무사 상해 — 현행이다. 포박하라!"서른 자루의 검이 일제히 뽑혔다. 연소하는 검을 고쳐 쥐었다. 서른은 무리였다. 몸이 아무리 기억해도 그릇이 아직 못 따라갔다. 알면서도 물러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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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삼백 년 전과 똑같이」

설봉으로 돌아온 밤, 앵두는 연소하의 이불 속에서 딸꾹질을 하다 잠들었다. 겁에 질린 것치고는 "뇌옥 밥은 진짜 최악이에요, 제가 다 고쳐주고 싶었어요"라고 투덜댈 기운은 남아 있었다.잠이 오지 않는 것은 연소하 쪽이었다.입가에 피를 묻힌 사부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폐관을 깨고 왔다. 봉인의 후유증을 다스리다 말고. 그게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제는 그녀도 안다. 사과를 해야 하나, 고맙다고 해야 하나,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내야 하나 —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물을 뜨러 나온 참이었다.사부의 처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담청색 옷자락이 마당을 가로질렀다.백리유음이었다. 이 밤에, 소리도 없이 설봉에."…기어이 일을 벌이셨더군요."문은 닫혀 있었지만 밤의 설봉은 고요했고, 목소리는 얇은 문풍지를 그냥 지나왔다. 연소하는 물그릇을 든 채 기둥 뒤에 멈춰 섰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말이 발을 묶었다."탈문 선언이라니요. 장로원이 지금 뭐라고 떠드는지 아십니까? 대사존이 마녀의 환생에게 홀렸다, 삼백 년 전에 끝냈어야 할 일을 마저 끝내야 한다 — 벌써 선계 각 문파에 격문을 돌리자는 말까지 나옵니다.""돌리라 해라.""사존!"찻잔 내려놓는 소리가 유리처럼 날카로웠다. 늘 물처럼 고요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물결쳤다."어쩌시려고요. 정말 선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시게요? 그 아이 하나 때문에?""그때도 같은 말을 들었지.""….""문파를 생각하라고. 대의를 생각하라고. 제자 하나 때문에 태허문을 위태롭게 할 셈이냐고." 사부의 목소리는 낮고,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문파를. 대의를. 율법을. 생각해서 — 그 아이를 재판정에 세웠고, 파문첩에 인장을 눌렀고, 등을 돌렸다.""사존, 그건—""유음아."이름이 불리자 문 너머의 숨소리가 멎었다."삼백 년 전과 똑같이 하라는 거냐. 지금."긴 침묵이 흘렀다. 기둥 뒤의 연소하는 물그릇이 떨리는 것을 두 손으로 눌렀다. 재판정. 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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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내가 버린 아이」

눈보라 속에 그녀가 서 있었다.연소하이면서 연소하가 아닌 여인. 흰 수련복에 검은 마기를 두르고, 재판정 한가운데 무릎 꿇린 채. 꿈에서 수백 번 오던 곳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 여인의 눈 뒤에 있었다. 여인이 보는 것을 보고, 여인이 삼키는 것을 삼켰다.죄목이 읽히고 있었다. 마기 잠식. 문파 반역. 한 글자도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하면 물어올 것이다 — 마겁이 어디서 새어 나왔느냐고. 그 답의 끝에 문파가 무너진다. 사부가 평생을 바친 문파가. 그러니 삼킨다. 삼키고, 대신 마지막으로 한 번만.사부님, 저를 보세요.단 위의 흰 옷은 돌아보지 않았다. 파문첩에 인장이 눌렸다. 다시는, 내 앞에 서지 마라. 그 목소리가 얼마나 공들여 평평한지 — 여인은 들었다. 들어버렸다. 아, 이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평생 후회하겠구나. 그러니 내가 웃어야 하는데. 마지막이 빚이 되면 안 되는데.여인은 웃으려 했다. 웃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장면이 부서지고 눈보라가 다시 몰아쳤다. 이번에는 설산이었다. 균열 앞. 하늘이 찢어진 자리에서 검은 것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인은 그 앞에 혼자 서서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들어와. 여기가 네 뇌옥이다. 검은 것이 여인의 몸속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고, 여인은 비명 대신 이를 악물고 — 마지막 순간, 품속에서 흰 옥패를 꺼내 눈밭에 묻었다. 매화 한 송이가 새겨진, 뒷면에 소(昭) 자가 있는.찾으러 오실 거예요. 그 사람은, 반드시."—소하야!"눈을 떴다. 제 방이었다. 새벽빛. 흐트러진 이부자리. 그리고 침상 곁에 앉은 채 밤을 새운 것이 분명한 사부가, 그녀의 한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늘 얼음장이던 그 손이 지금은 그녀보다 뜨거웠다."…사부님.""정신이 드느냐. 어의(御醫)를—""재판정이요."사부의 손이 멎었다."돌바닥이 차가웠어요. 죄목은 두 개였고, 저는 한마디도 변명 안 했어요. 파문첩 인장 소리가 나고, 사부님이 등을 돌리셨어요. 저는 그때 —" 목이 메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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