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설산에 꽃이 피기까지 삼백년: Chapter 21 - Chapter 30

41 Chapters

20화 「손」

내가 버린 아이다.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다만 발밑이 꺼졌다. 열아홉 해 연소하로 살아온 바닥이, 통째로."…고개 드세요."사부는 들지 않았다."벌하려면 벌해라. 떠나겠다면 보내주마. 다만 봉인이 다 풀릴 때까지만—""고개 들라고요!"처음으로 사부에게 소리를 질렀다. 단목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을 보자 준비했던 말이 다 흩어졌다. 무릎 꿇은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뭐라고 해주기를 삼백 년 기다렸을 텐데, 나는 —"저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그 말이 제일 잔인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 했다."기억 몇 조각 돌아왔다고 제가 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감꽃 마을에서 앵두랑 자란 연소하예요. 사부님이 기다린 건 그 사람이지 제가 아니고요. 사부님이 사죄할 상대도 그 사람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저한테 무릎 꿇지 마세요. 그건, 그 사람 몫이니까."말해놓고 알았다. 반은 맞고 반은 도망이었다. 그녀는 도망쳤다. 방에서, 설봉에서, 그 무릎으로부터. 뒤에서 사부가 이름을 불렀지만 — 어느 쪽 연소하를 부르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돌아보지 않았다.가슴팍에서 옥패가 덜그럭거렸다. 소(昭). 이제는 그 글자가 무엇인지 안다. 꿈에서 여인이 눈밭에 묻은 것. 반드시 찾으러 올 거라던 것. 사부는 그것을 찾아서 삼백 년을 품고 있다가 —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목에 다시 걸어준 것이다. 그 무게를 생각하면 걸음이 멎을 것 같아서, 그녀는 더 빨리 걸었다.정신을 차려 보니 산 중턱 구름다리였다. 새벽안개가 발밑에서 끓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는데, 다리 한가운데에 사람이 서 있었다.검은 옷. 은사 자수.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남자."울면서 걷는 버릇은 삼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군."연소하는 그제야 제 뺨이 젖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자의 말이 무엇을 전제하는지도."…당신도 알았어요? 처음부터? 다들 알고 저만 몰랐어요?""안 게 아니라 찾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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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균열의 기억」

손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연소하는 올라가던 손을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손으로 위지란의 소매를 밀어냈다."손은 안 잡아요. 진실만 보여줘요."위지란은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처음으로 눈까지 웃는 웃음이었다."…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었지."그는 손가락 끝으로 제 관자놀이를 짚고, 다른 손 끝을 그녀의 이마 앞에 — 닿지 않게 — 세웠다. 기억을 나누는 마교의 비술이라 했다. 보여주는 자의 혼이 깎이는 술법이라는 말은, 나중에야 들었다.눈보라가 밀려왔다. 이번에는 그녀의 기억이 아니었다.삼백 년 전. 마겁의 균열 앞. 열아홉 살의 위지란이 있었다. 지금 같은 검은 옷이 아니라 정파의 흰 무복을 입고, 부러진 창을 쥐고, 전멸한 동문들 사이에 혼자 서 있었다. 하늘이 찢어진 자리에서 검은 것이 해일처럼 쏟아졌고, 소년은 도망칠 다리가 없어서 주저앉아 있었다.그때 여인이 왔다.눈보라를 걸어서, 혼자. 파문당한 죄인의 헝클어진 몰골로. 여인은 소년을 한 번 보고, 균열을 한 번 보고, 소년의 멱살을 잡아 뒤로 던졌다."살아라."그게 전부였다. 여인은 균열 앞에 서서 제 가슴에 손을 얹었고 — 들어와, 여기가 네 뇌옥이다 — 검은 해일이 통째로 여인의 몸속으로 꺾여 들어갔다. 소년은 눈 속에 처박힌 채 그것을 다 보았다. 여인의 몸이 검게 물들고, 희게 바래고, 마지막에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것까지. 전부.기억이 넘어갔다. 선계의 대전. "죄인 연소하가 마겁과 함께 소멸하였다. 선계의 화근이 스스로 멸하였으니—" 발표문을 읽는 장로의 목소리. 소년이 단상으로 뛰쳐나가 악을 썼다. 그 사람이 다 막았다고, 너희가 버린 사람이 너희를 다 살렸다고. 끌려 나가는 소년. 폐문. 축출. 그리고 눈 내리는 산문 밖에 혼자 버려진 소년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지 — 연소하는 보았다. 검은 깃발이 있는 쪽이었다.기억이 끝났다. 삼백 년 치의 겨울이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몸은 그 겨울을 다 산 것처럼 무거웠다.새벽 구름다리 위, 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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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가져가겠다는 말」

"…가져가요? 마겁을?""봉인째로. 마교의 비술 중에 이혼전정(移魂轉鼎)이라는 것이 있다. 그릇에서 그릇으로 봉인을 통째 옮기는 술법이지. 삼백 년 걸려 복원했다. 이걸 위해서."위지란의 목소리는 장사꾼처럼 담백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세상을 삼키는 겁화를 제 몸에 넣겠다는 말을, 쌀값 흥정하듯 하고 있었다."미쳤어요? 그거 받으면 당신이 어떻게 되는데요.""글쎄. 오래 아프다가, 아주 오래 뒤에 죽겠지."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신 너는 자유다. 봉인도, 문양도, 장로원이 너를 노릴 이유도 사라진다. 그리고 —"그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네 스승도 산다.""…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모르는 얼굴이군. 하긴, 모르겠지. 그 사람이 말할 리 없지." 위지란은 혀를 찼다. 비웃음이 아니라 거의 동병상련이었다. "봉인의 반쪽을 대신 받는 게 어떤 건지 아나. 원래 봉인을 건 자의 혼이 치르던 값을, 남의 혼이 대신 내는 거다. 이자가 붙어서. 네 문양이 꽃잎 한 장 자랄 때마다 그 사람 것은 가지째 자란다. 지금쯤 심장까지 갔을걸."연소하는 열세 번째 밤의 그 팔뚝을 떠올렸다. 만발한 검은 숲. 그리고 눌러 죽인 기침 소리."길어야 일 년."위지란이 말했다. 그 숫자가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일 년. 감이 두 번 익기도 전이다. 삼백 년을 기다린 사람의 남은 시간이 겨우 그거라니."선계 제일검이 일 년 안에 도력이 마르고, 혼이 마르고, 앉은 자리에서 눈처럼 흩어진다. 그 사람은 그걸 알면서 웃으며 네 손목을 잡아주고 있는 거다. 삼백 년 기다린 값을, 일 년으로 치르면서.""그만.""그러니 내게 넘겨라. 그럼 둘 다—""그만하라고 했어요."목소리가 떨렸다. 화가 나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품속의 옥패가 데일 듯 뜨거워졌다 — 그리고 새벽안개가 통째로 갈라졌다.흰 옷자락이 다리 위에 내려섰다."소하야. 물러서라."단목현이었다. 밤새 그녀를 찾아 산을 뒤진 것이 분명한, 눈가에 서리가 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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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돌아가는 길」

소매를 걷어 보라는 말에, 사부는 검을 거뒀다.그게 대답이었다. 소매를 걷는 대신 검을 거두고,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는 것. 연소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을 삼키고 위지란을 돌아보았다."오늘은 아무도, 아무것도 안 가져가요. 마겁도, 저도.""소하—""제안은 들었어요. 생각해 볼게요. 근데 지금은 제 발로 돌아갈 거예요. 제 사부랑."위지란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픽 웃으며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단목현을 향한 것이었다."보름 안에 답을 듣지. 아, 그리고 대사존 — 장로원이 연합에 격문을 돌렸더군. 재판이 열릴 거다. 이번에는 태허문 혼자가 아니라 선계 전체가 저 아이를 심판하려 들 거야. 삼백 년 전처럼 등 돌리고 견딜 수 있겠나?"안개가 그를 삼켰다. 온 자리도 간 자리도 없는 사람이었다.돌아가는 길은 길고 조용했다. 사부는 반 걸음 뒤에서 걸었다. 평소에는 반 걸음 앞에서 걷던 사람이. 벌 받는 사람처럼 걷는 그 반 걸음의 거리가, 연소하는 견디기 힘들었다.돌아가는 내내 연소하는 생각했다. 화를 내야 하는데 화가 나지 않았다. 다들 그녀를 위해 죽겠다는 사람들뿐이었다. 사부도, 위지란도, 어쩌면 전생의 그녀 자신도. 이 지긋지긋한 셈법 — 누가 대신 죽을까를 두고 삼백 년을 겨루는 셈법을, 누군가는 끝내야 했다.설봉 마당에 들어섰을 때, 매화 고목의 싹은 어느새 손가락 두 마디만큼 자라 있었다. 앵두가 마루에서 졸다 깨서 "아가씨이!" 하고 달려 나오다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읽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사라졌다. 국수 삶는 소리가 났다. 저 아이의 위로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사부님."연소하는 마당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저 이제 열아홉이에요. 사부님이 삼백 년 기다린 그 사람 나이의 반도 안 되고, 그 사람만큼 강하지도 않고, 그 사람 기억도 조각밖에 없어요. 근데요."그녀는 돌아섰다. 아침 해가 설산 능선을 넘어와 두 사람 사이에 길게 깔렸다."조각만 갖고도 알겠는 게 있어요. 그 사람이 왜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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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고백」

"…죽이려, 했다고요.""그래."등잔불이 흔들렸다. 단목현은 도망치지 않고 그 말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삼백 년을 이 문장 앞에서 서성인 사람의 자세였다."마겁을 담을 그릇의 조건은 둘이었다. 영근이 크고, 도심이 굳고,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 선계에서 둘 — 너와 나. 마기가 네게 스민 것을 안 날, 나는 계산을 끝냈다. 네가 그릇이 되기 전에 마기의 뿌리를 끊는다. 끊는 법은 하나. 뿌리째 — 숙주를 벤다.""….""베고, 마겁이 주인을 잃고 흩어지는 찰나에 내 몸을 열어 옮겨 받는다. 그러면 너는 죽고, 나는 뇌옥이 되고, 문파는 남는다. 그게 그날 밤 내 계산이었다. 검을 들고 네 처소 앞까지 갔었다."연소하는 제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 계산 속에서 이 사람이 저를 어디에 두었는지가 보여서였다."왜 안 하셨어요.""…네가 문을 열었다."그는 그 밤을 방금 겪은 사람처럼 말했다."검을 등 뒤에 숨긴 나를 보고, 너는 웃으면서 — 사부님, 잠이 안 오시면 들어와서 차나 드세요, 했다.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왜 왔는지. 다 알면서 문을 열고, 차를 내리고, 그리고 말했지. '사부님 손에 죽는 건 괜찮은데요, 그럼 사부님이 못 살잖아요. 저는 그게 더 싫어요.'"등잔불이 또 흔들렸다. 이번에는 바람이 아니었다."그날 밤 너는 내게 절을 하고 나갔다. 새벽에 처소가 비어 있더구나. 장로원은 기다렸다는 듯 파문 재판을 열었고 — 나는 알았다. 재판장의 너는 도망칠 시간을 버는 중이라는 걸. 죄를 다 뒤집어쓰고 파문으로 끝나면, 죽이지는 못한다. 파문은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 살길이었다.""다시는 내 앞에 서지 마라."연소하가 그 말을 입에 올리자, 사부는 눈을 감았다."도망가서, 다시는 이 지옥 근처에 오지 말고, 살라는 뜻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방식으로 말했지. 그리고 너는 — 도망치는 대신 균열로 갔다. 내 계산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서. 나를 살리고, 문파를 살리고, 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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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열흘」

이상한 열흘이었다.열흘 뒤에 선계 전체가 그녀를 심판하러 모인다는데, 설봉의 하루하루는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다. 폭풍의 눈 속 같은 평화. 다들 그걸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어쩌면 알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런 날들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셋 다 알고 있었으니까.첫째 날, 단목현은 그녀에게 검을 새로 맞춰 주었다. 손에 쥐는 순간 알았다. 무게도, 손잡이의 감김도, 전생의 그 검과 같게 벼려진 것이다. "이름을 지어라" 하기에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 "매화검이요." "…그 이름은 이미 부러진 검이 쓰고 있다." "그럼 소매(小梅)요. 작은 매화." 사부는 잠깐 침묵했고, 연소하는 그 침묵이 웃음을 참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둘째 날부터 유설십이식의 남은 초식이 전수되었다. "여섯째부터 열두째까지는 미완이다. 완성하기 전에 그 아이가…" 사부는 말을 삼켰다가 고쳐 말했다. "— 네가, 완성해라. 본래 네 검법이다."여섯째 날 밤, 봉인을 눌렀다. 이번에는 연소하가 조건을 걸었다. "반반이요. 제 쪽에 더 남기세요. 안 그러면 이 손 뿌리칠 거예요." 사부는 거짓말을 했고("그리하마"), 그녀는 그 거짓말을 알았고, 그래서 문양이 잦아드는 내내 사부의 낯빛만 노려보다가 핏기가 가시는 순간 정말로 손을 뿌리쳤다. 처음으로 사부가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반반이라고 했어요." "…그래." "삼백 년 기다렸다면서 일 년 만에 죽을 셈이에요?" 그 말에 사부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위지란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여덟째 날, 앵두가 감을 세 알 얻어 왔다. 어디서 났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고향 맛이에요. 재판인지 뭔지 끝나면 우리 감 따러 가요, 아가씨. 사부님도요. 사부님은 감 먹을 줄 아세요? 씨 뱉는 법은요?" 단목현이 진지하게 "삼키면 안 되는 것이냐"라고 되물어서, 설봉 개파 이래 처음으로 마당에 웃음소리가 났다.아홉째 날 밤, 연소하는 옥패를 사부에게 내밀었다."이거, 그 사람 거잖아요. 눈밭에 묻으면서 — 반드시 찾으러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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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재판정」

"하루 일찍 온 것은."수석장로의 목소리가 진세 너머에서 들렸다."죄인이 마교와 내통한 정황이 새로 확인된 까닭이오. 도주의 우려가 있어 연합의 결의로 앞당겼소이다."구름다리에서의 그 새벽을 누군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연소하는 이를 물었다. 도주라니. 도망칠 생각이었으면 열흘을 설봉에서 검 배우고 감 먹으며 보냈겠는가."제 발로 갑니다."그녀는 포박진이 닿기 전에 먼저 말했다."끌려가지 않아요. 걸어가요. 대신 — 제 몸종은 여기 남고, 제 사부는 제 옆에서 걷습니다. 그게 안 되면 이 자리에서 붙어 보든가요."수천의 검광 앞에서 열아홉짜리가 던진 조건치고는 가소로웠을 텐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녀의 반보 뒤에 선 흰 옷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사존이 탈문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서는 날이었고, 연합의 누구도 그 검의 무게를 시험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공심재판은 태허문 대전에서 열렸다. 아홉 문파의 깃발이 대전 앞에 도열해 있었다.삼백 년 전과 같은 자리라고 했다. 연소하는 대전에 들어서는 순간 그것을 몸으로 알았다. 기억이 아니라 몸이 먼저 굳었다. 무릎 꿇렸던 돌바닥의 냉기, 반원으로 앉은 시선들의 각도, 죄목이 낭독되던 단상의 높이까지 — 꿈에서 수백 번 오던 곳에 생시로 서 있었다.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삼백 년 전에는 단 위에 있던 흰 옷이, 이번에는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반 걸음 뒤도, 반 걸음 앞도 아니라 — 정확히 옆에."죄인 연소하."아홉 문파의 수좌들이 배석한 가운데 수석장로가 죄목을 읽었다."하나. 마겁의 그릇으로서 그 몸에 선계 최대의 화근을 품은 죄. 둘. 마교주 위지란과 내통한 죄. 셋. 전생의 죄인 — 삼백 년 전 파문된 마녀의 환생으로서, 신분을 숨기고 선문에 다시 든 죄.""셋째 죄목은 성립하지 않소."젊은 문파 수좌 하나가 이의를 달았다."환생이 죄라면 윤회하는 중생이 다 죄인이오. 게다가 전생의 그 재판 자체가—""그 재판이 어떻단 말이오?"수석장로의 눈이 번뜩였다.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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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증언」

"소사존은 자리에 앉으시오. 지금은 죄인의 재판 중—""삼백 년 전 마겁은 균열에서 저절로 새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백리유음의 첫 문장이 수석장로의 제지를 갈랐다. 대전이 통째로 얼어붙었다."선마대전 말기, 장로원 일부가 금단의 속성법(速成法)을 수련했습니다. 승선에 조급해진 노장로들이 마기를 정제해 도력으로 바꾸는 사술에 손을 댔지요. 그 정제로(精製爐)가 깨지며 균열이 열렸습니다. 마겁은 — 태허문 안에서 태어났습니다.""허튼소리! 증거가 어디 있소!""제가 증거입니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제 옷깃을 풀어 어깨를 드러냈다. 쇄골 아래 — 오래된 화상처럼 검게 눌어붙은 흉터가 있었다."정제로가 깨지던 날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심부름으로 불려 갔다가 보았고, 데었고, 입막음으로 이 흉터와 소사존 자리를 받았습니다. 사백 년을 이 흉터를 감추고 살았습니다."대전의 술렁임이 파도가 되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시는 말하지 못할 사람처럼."마기가 처음 스민 것은 연 사매가 아니라 정제로를 지키던 장로들이었습니다. 사매는 그들을 치료하다 마기를 나눠 받았고 — 장로원은 제 죄를 덮을 죄인이 필요했고 — 마침 대사존의 유일한 제자가, 젊고, 배경 없고, 마기를 두르고 있었지요. 재판은 반나절 만에 끝났습니다. 증인은 채택되지 않았고, 변론은 금지되었으며, 저는—"목소리가 처음으로 무너졌다."저는 그날 재판정 세 번째 줄에 앉아서, 전부 알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매가 끌려 나가며 저를 봤을 때 —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것이 제 죄입니다. 오늘 증언으로 씻으려는 게 아닙니다. 씻어지지 않는 것을 압니다. 다만 같은 재판이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열리는 것은, 살아서 볼 수가 없습니다."그녀는 연소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아홉 문파의 수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사매. 그때 침묵한 죄, 사백 년 늦은 사죄를 — 받아 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이번에는, 내가 네 곁에서 말하게 해 다오."대전은 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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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그릇」

붉은 빛이 소매를 찢고 나왔다.금제였다. 그것도 사람의 수명을 통째로 태워 쓰는 종류의 — 노인은 처음부터 살아 돌아갈 셈이 없었던 것이다. 재조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끝나는 목숨. 그 목숨의 마지막 불꽃으로 파쇄인(破碎印)이 허공에 그려졌고, 연소하는 제 단전이 통째로 움켜쥐이는 것을 느꼈다."컥— 흡, …."무릎이 꺾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손목의 검은 매화가 미친 듯이 피어났다. 일곱 장. 열 장. 스무 장. 봉인의 문이 안팎에서 동시에 뜯기고 있었다."멈추시오! 여기서 그릇을 깨면 마겁이 그대로 터져 나오는—""터지지 않소. 흩어지지." 노인의 얼굴이 타들어 가며 웃었다. "주인 잃은 마겁은 힘이 반감하오. 반감한 것쯤은 연합의 힘으로 조각조각 나눠 봉하면 되오. 계집 하나의 목숨값으로 선계가 사는 것이오. 삼백 년 전에 이미 증명된 셈법이—"셈법은 끝나지 못했다.흰 그림자가 노인과 그녀 사이를 갈랐고, 파쇄인의 붉은 빛이 반 토막 났다. 삼백 년 만에 뽑힌 부러진 검 — 매화검의 반쪽이, 사람의 수명을 태운 금제를 종잇장처럼 베어낸 것이다.그러나 반 박자 늦었다.파쇄인의 조각이 이미 그녀의 단전에 박혀 있었다. 봉인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연소하는 몸 안쪽에서 들었다. 대전의 천장이 — 아니, 천장 너머의 하늘이 — 소리 없이 금이 갔다.그리고 검은 것이, 양쪽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그녀의 손목에서. 그리고 하늘의 금에서. 안과 밖이 서로를 부르며, 삼백 년 전 닫혔던 문이 양쪽에서 열리고 있었다. 대전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수좌들이 제자들을 물리고, 진법이 겹겹이 펼쳐지고, 누군가는 벌써 도망쳤다."소하야. 나를 봐라."사부가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시야가 검게 물드는 와중에 그 얼굴만 희게 남았다."버틸 수 있다. 내가 반을 받는다. 너는—""안 돼요."그녀는 사부의 손목을 잡았다. 소매가 흘러내렸다. 검은 숲이 이제 손등까지 내려와 있었다."사부님 그릇은 이미 다 찼잖아요. 더 받으면 죽어요. 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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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이번에는」

"셋?""이혼전정은 그릇 하나에 다 넣는 술법만이 아니다. 나누는 술법이기도 하지." 위지란이 소매를 걷었다. "마겁을 셋으로 가른다. 나는 마교의 교주다 — 마기라면 평생 다뤄온 몸이니 삼분지 일쯤은 그릇 노릇을 하지. 네 스승의 남은 그릇에 삼분지 일. 그리고 네가 중심을 잡는다. 봉인을 건 본주(本主)니까.""셋으로 갈라도," 단목현이 말을 잘랐다. "중심을 잡는 자가 대가를 문다. 그 대가는—""혼이지. 삼백 년 전처럼." 위지란이 마주 잘랐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거다, 대사존. 대가를 셋이 나눠 물면 혼이 부서지지는 않아. 깎일 뿐. 산술은 간단해. 셋이 조금씩 죽거나, 하나가 다 죽거나."하늘의 금이 우지끈 넓어졌다. 시간이 없었다. 연소하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삼백 년을 강가에 앉아 있던 사람과, 삼백 년을 걸어 다닌 사람. 한 사람은 그녀 때문에 살았고 한 사람은 그녀 때문에 죽으려 했고, 지금 둘 다 그녀 곁에서 죽을 자리를 다투고 있었다."…조건 있어요."그녀가 말했다."아무도 다 안 죽어요. 조금씩만 죽어요. 약속 안 하면 저 혼자 해요.""약조하마." "약조하지."두 목소리가 겹쳤고,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봤고, 연소하는 이 와중에 웃음이 났다.셋은 갈라진 하늘 아래 삼각으로 섰다. 위지란이 이혼전정의 진을 그렸다 — 제 피로, 바닥에, 망설임 없이. 단목현이 부러진 매화검을 진의 북쪽에 꽂았다. 삼백 년 만에 검이 주인 곁에서 울었다. 연소하는 중심에 서서 소매(小梅)를 뽑아 들었다."봉인의 결은 검로를 따른다." 사부가 말했다. "유설십이식. 여섯째부터는—""미완이죠. 알아요."그녀는 눈을 감았다. 꿈속의 여인이 눈밭에서 추던 검무. 조각난 기억들. 그리고 열아홉 해 — 감꽃 마을에서, 앵두와, 부지깽이를 쥐고 자란 손. 전생의 검이 여섯째 초식에서 멈춘 것은 그 초식의 끝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여섯째 초식. 눈이 내리고. 일곱째. 내린 눈이 쌓이고. 여덟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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