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출장을 떠나는 아침.한소율은 현관 앞에 세워둔 작은 캐리어와 식탁 위의 서류철을 번갈아 바라봤다.사흘치 옷과 노트북, 회의 자료를 전부 넣은 캐리어보다 차도현이 내민 서류철이 훨씬 두꺼웠다. 표지에는 단정한 글씨로 브뤼셀 출장 지원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소율이 첫 장을 넘겼다.파리 북역까지의 이동 경로, 열차 좌석 번호, 브뤼셀 도착 후 이용할 차량과 운전기사의 신원, 호텔 보안 담당자 연락처, 가장 가까운 병원과 약국, 여권 분실 시 대사관 연락 절차까지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비상 연락망은 중요도에 따라 세 가지 색으로 구분됐고, 마지막 장에는 객실 화재 대피로까지 인쇄되어 있었다."...도현 씨.""왜?""저 혼자 보내는 것 맞아요?"소율이 서류철을 들어 보였다."이 정도면 브뤼셀에 지사를 하나 따라 보내는 것 같은데요."도현은 셔츠 소매의 단추를 채우며 태연하게 대답했다."대표 권한을 혼자 주는 거지, 불편까지 혼자 감당하라는 뜻은 아니야.""객실 온도 권장 범위는 왜 있어요?""당신 추위 많이 타잖아.""근처 약국 영업시간은요?""지난번에 진통제 없어서 고생했으니까.""호텔 조식 메뉴에 알레르기 표시까지 붙인 건요?""그건 기본이고."소율은 서류철을 덮었다. 반박하려 했지만, 도현의 얼굴을 보자 말끝이 흐려졌다. 평소보다 십 분이나 일찍 넥타이를 맨 남자는 식탁 옆을 서성이는 동안 벌써 세 번째로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사흘.파리에서 브뤼셀까지 열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거리였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회의가 끝나면 정확히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처음 맞는 떨어진 밤이라 그런지 두 사람 모두 지나치게 침착한 척하고 있었다.소율은 서류철을 캐리어 위에 올려놓고 도현 앞으로 다가갔다."정말 안 따라올 거예요?"도현의 손이 멈췄다."따라오지 말라며.""확인하는 거예요. 호텔처럼 우연히 나타날까 봐.""회의장 근처에 급한 일정은 없어.""근처가 아니라
Last Updated : 2026-08-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