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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14일간의 계약 연애: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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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아침부터 열두 개 회사가 변호사를 보냈고, 세 곳은 돈까지 제안했습니다.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태성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어요.""돈으로 파업을 무력화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소율은 준비해 온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 파업 전체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도 없습니다."앙투안의 눈썹이 움직였다."그럼 무엇을 원합니까?""파업 고지 이전에 통관과 배차를 마친 태성 화물에 한해, 48시간의 제한 운송 통로를 승인해 주십시오.""결국 예외를 달라는 말 아닙니까?""조건 없는 예외가 아닙니다. 운행은 연맹이 지정한 노조원만 담당하고, 태성은 대체 인력이나 비노조 차량을 투입하지 않겠습니다. 위험수당과 초과 근무 수당은 전액 지급하고, 운행 횟수와 구간도 연맹이 통제하도록 하죠.""우리가 기업의 위약금을 막아주기 위해 파업 대열에서 사람을 빼야 할 이유가 없군요.""그래서 저희가 그보다 큰 조건을 가져왔습니다."소율이 첫 번째 서류를 펼쳤다.그것은 몇 달 전 파리 운수노조와 체결한 조건부 양해각서와 이행 보고서였다.전동화 모빌리티 전환 과정에서 기존 노조원의 고용을 100퍼센트 승계했고, 자동화 설비가 들어간 뒤에도 인력을 감축하지 않았다. 태성은 약속대로 안전 교육과 전환 배치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근로자 대표가 참여하는 공동 점검위원회까지 설치했다."이게 홍보용 보고서가 아니라는 것은 마르셀 위원장님이 증명해 주실 수 있습니다."마르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태성은 합의한 조건을 모두 지켰습니다. 현장 관리자와 분쟁이 생겼을 때도 한 팀장이 직접 조정했고요.""한 기업이 약속을 지켰다고 해서 연맹 전체의 요구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앙투안은 여전히 냉정했다."맞습니다."소율은 순순히 인정했다."이번 파업의 핵심이 무리한 자동화와 다단계 재하청, 안전 비용 전가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태성이 그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그녀가 두 번째 문서를 밀었다."대신 앞으로 태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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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소율은 허용 물량을 조금씩 좁히는 대신 운행 구간을 늘렸고, 앙투안은 야간 운행의 안전 조건을 강화하는 대신 차량 수를 양보했다. 카미유 이사와 노무사는 합의되는 문장마다 즉석에서 법률 문구로 바꾸었다.오후 1시 46분.마침내 마지막 페이지에 두 개의 서명이 나란히 적혔다.[48시간 한시적 공정 운송 협약]파업 이전에 통관을 마친 태성의 우선 화물 43퍼센트를 연맹 지정 차량으로 반출한다. 대체 인력은 사용하지 않으며, 모든 운송 정보와 수당 지급 내역을 노조에 공개한다. 태성은 향후 유럽 물류 계약에 동일 안전·보험 보장 조항을 의무화한다.파업은 끝나지 않았다.그러나 태성의 막혀 있던 혈관에는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피가 다시 흐를 수 있게 되었다.앙투안이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솔직히 본부장의 연인이 직접 올 거라고 했을 때는, 감정에 호소하러 오는 줄 알았습니다."소율은 합의서 사본을 챙기며 담담하게 답했다."저는 차도현 본부장의 연인이 맞습니다."그녀의 눈빛이 단단하게 빛났다."하지만 이 서명을 받아낸 건 태성그룹 기획팀장 한소율입니다."마르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그 시각, 라데팡스 상황실.도현은 세 개의 화상회의를 연달아 지휘하고 있었다.첫 번째 화면에는 메종 벨루아 이사진과 이자벨이, 두 번째 화면에는 벨에포크 컨소시엄의 주요 유통사 대표들이, 세 번째 화면에는 서울 본사의 재무 담당 임원들이 떠 있었다."파업 종료 시점을 확신할 수 없다면 출시를 미루는 것이 맞습니다."메종 벨루아 측 재무이사가 날카롭게 말했다."불완전한 물량으로 행사를 강행했다가 브랜드 가치만 훼손될 수 있어요.""출시는 미루지 않습니다."도현이 단호하게 잘랐다."아시아 초도 물량의 71퍼센트는 항공 전환이 가능합니다. 나머지는 예약 판매로 돌리고, 국가별 입고 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겠습니다.""71퍼센트라는 수치를 어떻게 보장하죠?"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도현이 화면에 운송표를 띄웠다."브뤼셀 출발 화물기 두 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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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오후 2시 30분.소율이 상황실로 돌아왔을 때, 그곳의 공기는 아침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화면을 뒤덮었던 붉은 경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각 대응실은 도현이 정한 지휘 체계에 따라 우회 운송을 실행하고 있었다.소율은 곧장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도현과 눈이 마주쳤다."43퍼센트 확보했습니다.""확인했습니다. 브뤼셀 항공편도 두 편 모두 승인 났습니다.""스트라스부르 철도는요?""냉장 컨테이너 열여덟 칸. 당신 계산과 일치해."그 짧은 대화가 전부였다.잘 다녀왔느냐는 인사도, 위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없었다.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도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한국 본사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부터 쓰던 신호였다.'다음 자료.'소율은 기다렸다는 듯 매장별 재고 회전표를 띄웠다."일드프랑스 214개 핵심 매장에 오늘 밤 재고를 먼저 투입하겠습니다. 판매 속도가 예상보다 12퍼센트 빠르면, 내일 새벽 두 번째 재배치를 시행합니다."도현이 표의 남부 지역을 가리켰다."리옹 3번 센터의 화장품 재고를 줄이고 바이오 시약을 늘려.""이미 수정했습니다."소율이 다음 장을 넘겼다."메종 벨루아의 티저 공개 시간을 파리 오후 여덟 시, 서울 다음 날 새벽 네 시로 유지하겠습니다. 물량 부족을 숨기는 대신 '국가별 한정 선공개'로 메시지를 바꾸면 희소성을 살릴 수 있어요.""이자벨 측 승인은?""십 분 전에 받았습니다. '각자의 빛' 캠페인 문구도 그대로 갑니다."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한 사람이 문장을 끝내기 전에 다른 사람이 필요한 숫자를 띄웠고, 도현이 위험을 지적하면 소율은 이미 대안을 준비해 두었다.상황실의 현지 임원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을 잃었다.그들은 파리에서 연인이 된 차도현과 한소율만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관계였다.3년 동안 수백 건의 기획서와 위기를 함께 통과하며 만들어진 호흡.사랑이라는 이름을 얻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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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연말 실적 보고가 끝난 날 오후.상황실로 사용되었던 대회의실에 유럽 지사 임직원들이 다시 모였다.대형 화면에는 '역대 최고 월 매출'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고, 직원들의 얼굴에는 사흘 밤을 거의 뜬눈으로 버틴 피로와 자부심이 함께 어려 있었다.도현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이번 성과는 파업이라는 외부 변수가 만들어준 우연이 아닙니다."그의 시선이 물류, 영업, 법무 대응실 직원들을 차례로 훑었다."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구축해 둔 마이크로 풀필먼트망, 약속을 지켜 얻은 노조의 신뢰, 그리고 사흘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한 여러분이 만든 결과입니다."도현은 마지막으로 소율을 바라보았다."특히... 한소율 팀장은 제한 운송 협약과 우회 물류망을 동시에 확보해 지사가 움직일 시간을 벌었습니다. 이번 성과의 핵심 책임자입니다."박수가 터졌다.소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내 마이크를 건네받고 말했다."제가 협상장에 나가 있는 동안 지사의 모든 의사 결정을 한 방향으로 묶은 분은... 차도현 본부장님입니다. 좋은 경로가 있어도 지휘 체계가 흔들리면 화물은 움직이지 못합니다."소율의 시선이 도현과 맞닿았다."이번 성과는 누구 한 사람의 기적이 아니라, 서로의 빈자리를 정확히 채운 결과입니다."다시 한번 박수가 쏟아졌다.두 사람은 서로에게 공을 넘겼지만, 직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차도현이 없었다면 수십 개의 판단이 하나의 명령으로 모이지 못했을 것이고, 한소율이 없었다면 그 명령이 달릴 길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운 것이 아니었다.각자 완전한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그날 밤.두 사람은 보름 만에 처음으로 자정 전에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현관문이 닫히자 소율은 구두를 벗을 힘도 남지 않은 듯 벽에 등을 기댔다. 도현이 말없이 그녀 앞에 무릎을 굽혀 구두를 벗겨 주었다."본부장님이 이러는 걸 회장님이 보시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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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유럽 전역의 물류망을 마비시켰던 총파업이 끝난 지 정확히 일주일.파리 라데팡스의 태성그룹 유럽 총괄 지사 대회의실에는 평소와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는 서울 본사 전략실과 주요 계열사의 임원들이 화상으로 접속해 있었고, 마호가니 회의 탁자 양옆으로는 파리 지사의 전 부서 책임자들이 빈틈없이 자리했다. 파업 기간 내내 붉은 경고등으로 도배됐던 유럽 물류 현황판은 오랜만에 안정적인 푸른색을 되찾은 상태였다.누구도 말을 크게 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가 질책을 위한 회의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태성그룹 유럽 지사는 파업이 시작된 직후 대체 운송망을 선점했고, 경쟁사들이 물량을 포기하는 동안 현지 노조와 직접 협상해 핵심 노선을 정상화했다. 출하 지연을 최소화했을 뿐 아니라, 위기 대응 능력을 확인한 신규 거래처들까지 대거 유입됐다.그 결과는 지사 설립 이래 최고 실적이었다.그리고 그 성과의 중심에는 한소율이 있었다.소율은 대회의실 정면을 바라보며 허리를 곧게 폈다. 며칠 만에 겨우 제대로 잠을 잔 얼굴에는 아직 옅은 피로가 남아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탁자의 최상석에는 차도현이 앉아 있었다.칼같이 재단된 다크 네이비 슈트, 오차 없이 맞물린 커프스, 무표정한 얼굴. 파업 현장에서 사흘 가까이 잠을 줄이며 소율과 함께 상황실을 지켰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모습이었다.도현이 손에 든 리모컨을 눌렀다.스크린 위로 최종 성과 보고서가 펼쳐졌다."먼저 이번 비상 대응에 참여한 전 직원의 노고를 공식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각 부서의 초과 근무는 대체 휴가와 특별 수당으로 보상하고, 현지 협력사 인력의 기여분도 동일한 기준으로 정산하십시오."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회의실 구석구석에 닿았다.직원들의 얼굴에 안도와 뿌듯함이 동시에 번졌다. 그러나 몇몇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소율에게로 향했다.소율이 직접 노조위원장을 설득해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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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소율은 환하게 웃으며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시선 한쪽은 자꾸만 최상석으로 향했다.도현은 이미 다음 안건을 확인하고 있었다.입꼬리 한 번 올라가지 않은 완벽한 본부장의 얼굴이었다.회의가 끝난 뒤, 기획팀 사무실은 작은 축제장이 됐다."한 팀장님, 오늘은 저희가 샴페인 준비하겠습니다. 파업 때 못 잔 잠까지 한꺼번에 축하해야죠.""샴페인은 퇴근 후에요.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잖아요."소율의 대답에 쥘리앙이 억울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두 분은 정말 이상한 데서 닮았습니다. 본부장님은 최고 등급을 발표해 놓고 표정 하나 안 변하시고, 팀장님은 상을 받고도 남은 업무부터 찾으시고요.""누가 본부장님과 닮았다는 거죠?""파리 지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분은 사랑하는 방식보다 일하는 방식이 더 무섭게 닮았습니다."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소율도 따라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주 작은 서운함이 남았다.공식적인 평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았다. 도현이 자신의 성과에 연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얼마나 치밀하게 근거를 준비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날 때까지 그 흔한 수고했다는 눈빛 한 번 없었다.지난 일주일 동안 둘은 같은 집에서 지내면서도 거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파업 후속 보고와 손실 정산 때문에 새벽에 들어와 쓰러져 잠들었고, 아침이면 서로보다 먼저 출근하기 바빴다.그토록 큰일을 함께 끝냈는데, 연인 차도현에게 받은 말은 아직 한마디도 없었다.소율은 제 감정이 유치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그때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차도현 본부장: 한 팀장, 최종 보고서 원본을 가지고 본부장실로 오십시오.]축하 메시지를 기대했던 마음이 단번에 실무 모드로 돌아갔다.소율은 보고서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휘유- 역시 본부장님이시네요."쥘리앙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오늘 같은 날도 추가 업무를 주십니까?""그러니까 본부장님이죠."소율은 태연하게 답했지만, 보고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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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회의실에서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던 서늘한 눈빛이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져 있었다."서운... 했어?"정곡을 찔린 소율은 시선을 피했다."아니요.""거짓말.""최고 등급까지 주셨는데 제가 뭘 더 바라겠어요.""한소율."도현이 한 걸음 다가왔다. 소율이 뒤로 물러서기도 전에 그의 팔이 허리를 감싸 끌어당겼다. 단단한 가슴에 몸이 맞닿는 순간, 지난 일주일 동안 애써 눌러두었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회의 내내 나만 쳐다봤잖아.""평가 내용을 들은 겁니다.""내가 웃어주길 기다린 얼굴이던데.""자신감이 지나치시네요."도현의 입꼬리가 마침내 느리게 올라갔다.그 미소 하나를 보자 소율은 더 억울해졌다. 아까 직원들 앞에서는 그토록 무정하더니, 이제야 사람이 된 얼굴이었다."회사에서 공과 사를 구분해 달라고 한 건 소율이 너였어.""제가 언제 축하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공식 포상은 끝났어."도현이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며 얼굴을 가까이 기울였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귓가를 뜨겁게 스쳤다."이제 내 방식의 포상이 남았지."소율의 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무, 무슨 포상인데요?""집에 가면 알게 될 거야.""미리 알려주시면 안 돼요?""안 돼. 기다려."도현의 시선이 소율의 입술에 잠시 머물렀다. 금방이라도 키스할 듯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가 돌연 몸을 떼자, 소율은 허탈하게 눈을 크게 떴다."하- 지금 일부러 그러신 거죠?""회사 안에서는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며."태연하게 되받아치는 남자의 얼굴이 얄미웠다.소율은 도현의 넥타이를 홱 잡아당겨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굳은 도현을 남겨둔 채 한 걸음 물러섰다."이건 특별성과 포상에 대한 선지급입니다."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짙어졌다."한소율.""아직 회사 안이에요, 본부장님. 공과 사를 구분하시죠.""끄응."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소율은 웃음을 참으며 먼저 빠져나갔다. 뒤따라 나온 도현은 낮게 헛웃음을 흘렸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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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두 사람은 며칠 만에 처음으로 휴대전화도 노트북도 없는 저녁을 먹었다.식사가 끝나자 도현은 소율을 소파에 앉히고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소율의 눈이 순간 반짝이자 그가 선을 그었다."보석 아니야.""...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표정이 다 말했어."상자 안에는 손목 보호대와 온열 패치, 작은 마사지 오일이 들어 있었다. 파업 기간 내내 노트북을 붙들고 직접 현장을 오가느라 소율의 오른쪽 손목이 붓는 것을 도현은 놓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도현이 소율의 손을 제 무릎 위에 올렸다. 따뜻하게 데운 오일을 손바닥에 문지른 뒤 손목부터 천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아프면 말해.""괜찮아요. 시원해요."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뻣뻣해진 근육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소율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도현의 시선은 중요한 계약서라도 검토하듯 진지하게 소율의 손목에 고정돼 있었다."그런데 오늘 회의 평가에는 오류가 하나 있었어요.""무슨 오류?""제 공로를 너무 크게 잡았어요. 대체 노선을 즉시 승인하고 본사 책임까지 전부 감수한 건 도현 씨였잖아요.""승인할 안을 만든 건 너였어.""현장 임원들을 통제하지 못했으면 제 협상도 소용없었어요.""노조위원장을 설득해서 시간을 벌지 못했으면 통제할 현장도 사라졌겠지.""그러면 절반씩 나눠요.""안 돼.""왜요?""이번 성과의 최소 칠십 퍼센트는 네 몫이야.""그건 과대평가예요. 오십일 퍼센트는 도현 씨 몫으로 하죠."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왜 내가 오십일 퍼센트지?""본부장님이시니까 체면은 세워드려야죠.""한소율 팀장. 지금 공식 평가에 이의 신청하는 겁니까?"갑자기 딱딱해진 존댓말에 소율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역할극이 시작됐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네, 본부장님. 평가 기준이 불공정합니다.""기각하겠습니다. 최종 승인권자는 접니다.""그럼 인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겠습니다.""인사위원회 개최 전에 합의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도현이 손목을 주무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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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입술을 포갰다. 가볍게 닿았다 물러날 생각이었으나 도현의 손이 뒷목을 감싸는 순간 계획은 무너졌다. 입술이 비스듬히 맞물리고, 뜨거운 숨이 뒤섞였다. 며칠 동안 업무에 쫓겨 서로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갈증이 늦게 터진 둑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도현은 소율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머금었다가 놓아주었다. 다시 각도를 바꿔 깊숙이 파고드는 키스에 소율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움켜쥐었다. 단단히 조여 있던 넥타이가 손끝에 걸렸다.소율은 매듭을 느슨하게 풀어내며 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이것도 포상에 포함돼요?""아니."도현의 입술이 턱선을 따라 내려왔다."이건 내가 받는 포상이야."목덜미의 여린 피부에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소율이 고개를 젖히자 도현은 쇄골 위를 오래 어루만지듯 입 맞췄다. 치아가 아주 약하게 스친 자리마다 붉은 열기가 번졌다.그의 손이 허리선을 따라 올라와 홈드레스의 가느다란 어깨끈에 걸렸다. 당장이라도 끌어내릴 수 있는 거리였지만 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두워진 눈으로 소율을 올려다보며 낮게 물었다."여기서 멈출까? 피곤하면 말해."도현의 몸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욕망과 달리,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손길은 억지로 침착했다.소율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느슨해진 넥타이를 양손으로 잡아당겼다. 입술이 다시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끌어내린 뒤 또렷하게 대답했다."싫어요. 오늘 포상, 끝까지 받을래요."도현의 눈동자에서 마지막 이성의 빛이 끊어졌다.도현은 소율을 안아 들고 소파에 눕혔다. 놀란 숨이 웃음으로 변하기도 전에 입술이 다시 겹쳤다. 홈드레스의 어깨끈 하나가 느슨하게 흘러내리고, 그의 입술은 드러난 어깨와 쇄골을 천천히 따라갔다."예뻐."그 짧은 감탄이 노골적인 말보다 더 뜨거웠다.소율은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손끝이 드러난 가슴을 따라 내려가자 도현의 복부가 단단하게 긴장했다. 소율은 느슨해진 넥타이를 완전히 풀어 소파 아래로 떨어뜨리며 장난스럽게 올려다봤다."포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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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도현의 입술이 소율의 이마에, 눈가에, 마지막으로 입술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급하게 빼앗는 키스가 아니었다. 긴 파업과 불면의 시간을 씻어내듯 다정하고 깊은 입맞춤이었다. 밤이 깊어진 뒤, 두 사람은 침실의 커다란 창 앞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에펠탑의 불빛이 센강 위로 길게 번졌고, 열린 창틈으로 늦은 여름의 서늘한 바람이 얇은 커튼을 흔들었다. 소율은 도현의 팔을 베고 누운 채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평온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도현이 소율의 손가락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다 문득 입을 열었다. "협상장에 네가 혼자 들어간 날." 소율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네." "밖에서 기다리는 세 시간이 내 인생에서 제일 길었어." 도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소율의 손을 감싼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파업이 절정에 달했던 날, 노조 측은 외부인이 대거 동행하면 대화를 거부하겠다며 실무 대표 한 명만 협상장에 들여보냈다. 도현은 끝까지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맞섰지만, 소율이 현지 실무와 노조 요구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이유로 직접 나섰다. 그날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도현의 얼굴은 분노와 불안으로 굳어 있었다. "무서웠어요?" "미칠 것 같았어." 그가 숨김없이 인정했다. "협상이 실패할까 봐가 아니야. 네가 험한 말을 듣거나, 안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바로 들어가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 문을 부수고 들어가고 싶은 걸 수십 번 참았어." "그래도 기다려줬잖아요." "네가 믿어달라고 했으니까." 도현은 소율의 손을 들어 입술에 댔다. 깊은 눈동자에 아직 가시지 않은 두려움이 비쳤다. "하지만 다음에도 그렇게 보내줄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해." 소율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손바닥으로 도현의 뺨을 감쌌다. "다음에도 보내줘요." 도현의 미간이 즉시 좁아졌다. "싫어." "방금 장담 못 한다면서 벌써 거절이에요?" "솔직하게 말한 거야." "저도 솔직하게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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