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율 대리."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하게 불리는 이름. 둔탁하게 울리는 남성의 음성은 낮고 명확했다.서울 도심 한복판, 태성그룹 사옥 18층 기획본부 TF팀장실. 유리창 너머로 석양이 지는 도심의 마천루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널찍한 원목 책상 뒤에는 차도현 팀장이 앉아 있었다.칼같이 떨어지는 슈트 핏, 조금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상대를 단번에 압도하는 냉철한 눈빛. 그는 태성그룹 내에서 '걸어 다니는 성과급'이자 동시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AI'로 불리는 인물이었다."네, 팀장님. 부르셨습니까?"소율은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다잡으며 정갈하게 답했다. 그녀의 단정한 슬랙스 차림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3년간 차도현의 완벽주의를 근거리에서 버텨낸 유일한 부하직원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도현은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깊고 그윽한 눈동자가 소율의 얼굴에 정면으로 닿았다. 보통의 직원들이라면 그 눈빛만으로도 절절매며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반성부터 했겠지만, 소율은 익숙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러나 단단해 보이는 표정 뒤로, 소율의 마음속에는 조용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3년이었다. 이 남자의 가장 근거리에서 그가 밤을 새워 만든 기안서를 검토하고, 그가 좋아하는 쓰디쓴 아메리카노의 취향을 맞추며, 그가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나누는 날 선 대화들을 백업해 온 시간이. 그리고 그 3년 동안, 소율이 단 한 번도 이 남자에게 티 내지 않고 차곡차곡 숨겨온 감정의 깊이가 딱 3년이었다.‘차도현을 향한 짝사랑.’그것은 소율에게 지극히 위험하고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스로 완벽한 가면을 썼다.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일절 품지 않는, 오직 능력과 성과로만 대화하는 완벽한 부하직원의 가면. 덕분에 도현은 소율을 기획본부 내에서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로 꼽았고, 소율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자리에 앉지."도현이 맞은편 의자를 턱으로 가
Last Updated : 2026-08-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