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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14일간의 계약 연애: Capítulo 71 - Capítulo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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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받을 수 없습니다, 회장님."​소율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저와 도현 씨는 아직 약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런 귀한 물건을 받을 자격은…."​"자격을 판단하는 사람은 너냐, 나냐?"​회장의 한마디가 소율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반지를 건네고 무릎을 꿇는 건 도현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놈 몫까지 내가 빼앗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이 브로치의 주인을 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걸 지켜온 내 몫이다. 그리고 후엔 너의 몫이 되겠지."​이 회장은 케이스에서 브로치를 꺼내 소율 쪽으로 내밀었다.​"나는 네게 차도현의 아내가 되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다. 도현이가 무너질 때 붙들어주고, 그놈이 오만함에 눈이 멀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멈춰 세우며, 태성이라는 이름이 잘못된 길로 가면 가장 먼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되어달라는 게야."​회장의 서늘했던 눈빛에 처음으로 깊은 온기가 스며들었다.​"그 고집불통 손주의 목줄을 쥐고도 권력에 취하지 않을 사람. 제 실력으로 도현이 옆에 서고도 필요할 때는 그놈의 품에 기대 쉴 줄 아는 사람.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런 사람은 너밖에 없더구나."​소율의 눈가에 투명한 물기가 차올랐다.​3년 동안 도현을 홀로 바라보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그의 연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히 욕심이라 여겼다. 14일의 계약이 끝나면 모든 마음을 정리한 채 파리로 도망치듯 떠나려 했다.​그런데 이제 도현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사랑을 고백했고, 태성그룹의 절대 권력자는 가문의 미래와 책임을 상징하는 보석을 소율의 손에 직접 맡기려 하고 있었다.​"내 손주를 부탁하마, 소율아."​회장이 처음으로 직함도 성도 떼어낸 채, 소율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렀다.​그 한마디에 소율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기어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소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회장을 향해 깊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네, 회장님."​떨리지만 분명한 음성이었다.​"도현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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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소율은 걱정으로 일그러진 도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쌌다.​"아무 일도 없었어요. 회장님께서 저한테 헤어지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신 것도 아니에요."​"그럼 왜 나한테까지 숨기고…."​"그건 이게 도현 씨를 사이에 둔 협상이 아니라, 회장님과 제가 직접 나눠야 할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소율이 옅게 웃으며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그제야 도현의 시선이 소율의 왼쪽 옷깃으로 향했다.​베이지색 재킷 위에서 타오르듯 빛나는 붉은 루비 브로치.​그것을 알아본 순간, 도현의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이건…."​태성가에서 태어나 자란 도현이 그 브로치를 모를 리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이혜민 회장이 중요한 이사회나 그룹의 명운이 걸린 행사 때마다 반드시 착용하던 물건. 태성가의 실질적인 안주인에게만 전해진다는, 그 어떤 지분 증서보다 상징적인 가문의 증표였다.​"회장님. 설마…."​도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할머니를 바라보았다.​이 회장은 지팡이 손잡이에 두 손을 포갠 채 못마땅한 눈으로 도현을 게슴츠레 쏘아보았다.​"쯧쯧, 그래. 네놈이 파리 시내를 뒤집어엎으며 찾아다니려한 그 여자에게 내가 직접 건넸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정말… 소율이를 태성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신 겁니까?"​"어제부터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소율이 네 옆에 설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충분히 봤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 같은 놈에게 과분할 정도로 훌륭하더구나."​도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이 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앞으로 소율이가 너를 버리고 도망갈까 봐 파리 한복판을 미친놈처럼 헤집고 다니지 마라. 그 아이가 달아난다면 네가 부족해서 달아나는 것이니, 그때는 이 할미도 네 편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소율이가 절 버릴 일은 없습니다."​도현이 즉시 단호하게 받아쳤다.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질려 있던 남자가, 루비 브로치 하나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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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당신은 이미 자격을 증명했으니까. 한국에서 내 밑을 3년이나 버텼고, 파리에 와서는 4억 유로짜리 벨에포크 계약을 따냈어. 내가 폭주할 때는 멱살을 잡아서라도 멈춰 세웠고, 회장님마저 수치와 논리로 설득했지."​도현의 입가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깊게 번졌다.​"태성그룹 안주인 자리에 당신보다 완벽한 사람이 있으면 데려와 보라 그래. 내가 직접 기안서부터 검토해 줄 테니까."​"또 일을 그런 식으로 비유하죠?"​소율이 웃으며 도현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하지만 도현은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소율의 허리를 더욱 깊이 끌어안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버렸다.​"그런데 한 가지는 정정해야겠어."​"뭘요?"​"회장님이 당신을 태성가의 안주인으로 먼저 낙점한 건 기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절차가 남았잖아."​도현의 짙은 눈동자가 소율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아직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은 가느다란 손가락.​그의 시선에 담긴 뜨거운 의미를 알아차린 소율의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도현 씨…."​"브로치는 회장님 방식의 승인이고."​도현이 소율의 왼손을 들어 올려 네 번째 손가락 마디에 아주 천천히 입술을 눌렀다.​"내 방식의 계약은 내가 직접 준비할 거야."​낮고 그윽한 목소리가 손끝을 타고 소율의 심장까지 스며들었다.​"이번에는 14일짜리도 아니고, 누가 갑이고 을인지 따지는 웃기지도 않는 계약도 아니야. 당신이 도망칠 기한도, 내가 놓아줄 만료일도 없는 완벽한 종신 계약으로."​소율의 눈가에 남아있던 물기가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그 계약, 조건이 너무 독한 것 같은데요."​"당연하지. 계약 당사자가 차도현인데 허술할 리가 없잖아."​도현이 오만하게 웃으며 소율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올렸다.​"조건은 평생 내 곁에 있을 것. 대가는 내가 가진 모든 사랑. 계약 기간은 무제한. 중도 해지는 절대 불가능."​"아직 정식으로 제안한 것도 아닌데 벌써 조항부터 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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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이혜민 회장이 한소율의 옷깃에 태성가의 루비 브로치를 직접 달아준 날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파리 생활 9개월 차.차도현과 한소율은 이제 태성그룹 유럽 총괄 지사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식 연인이자, 가장 강력한 업무 파트너로 자리 잡아 있었다.출근하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냉철한 본부장과 유능한 기획팀장으로 돌아갔다. 회의 중에는 사적인 호칭을 삼갔고, 상대의 기획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가차 없이 지적했다. 대신 퇴근한 뒤 펜트하우스의 현관문이 닫히면, 하루 종일 눌러두었던 애정과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공과 사의 경계는 분명했다.적어도 두 사람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오전 9시 50분.라데팡스에 자리한 태성그룹 유럽 지사 대회의실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오늘은 프랑스의 유서 깊은 명품 뷰티 브랜드 ‘메종 벨루아(Maison Belloy)’와 합작 사업의 조건을 확정하는 날이었다. 태성그룹의 바이오 기술과 아시아 유통망에 메종 벨루아의 브랜드 가치와 조향 기술을 결합해, 글로벌 프리미엄 스킨케어 라인을 출시하는 대형 프로젝트.예상 연 매출만 3억 유로에 달했다.이미 기본 합의는 마쳤지만, 브랜드 콘셉트와 아시아 지역 마케팅 권한을 두고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다. 오늘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연말 생산 일정은 물론 내년 봄 동시 출시까지 차질이 불가피했다.소율은 회의 자료의 마지막 장을 확인한 뒤 노트북을 덮었다.딥 네이비색 테일러드 슈트와 단정하게 묶은 머리. 왼쪽 옷깃에는 이 회장이 건넨 붉은 루비 브로치가 고고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중요한 협상 날마다 반드시 착용하라는 말은 없었다.그럼에도 소율은 오늘 아침 망설임 없이 브로치를 골랐다. 그것은 태성가의 이름을 빌리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도 도현의 뒤에 숨지 않겠다고 이 회장 앞에서 했던 약속의 증표였다.회의실 문이 열리며 메종 벨루아 측 대표단이 들어왔다.그 선두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창업주 가문의 후계자인 이자벨 드 벨루아 백작 부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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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명품은 설문조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이자벨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소비자가 미처 원한다고 말하지 못한 욕망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고, 그 욕망에 가격을 붙이는 것이 명품이죠. 숫자가 창작자의 직관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동의합니다. 하지만 직관이 시장을 모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소율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래서 저희는 원안을 폐기하는 대신, 메종 벨루아의 미학을 살린 대체안을 준비했습니다.”화면이 바뀌었다.서로 다른 피부색과 나이를 지닌 여성들이 파리의 새벽, 서울의 야경, 교토의 햇살 속에서 각자의 얼굴을 드러냈다. 빛의 색은 모두 달랐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의 향수병 같은 유리 용기 안으로 모였다.[각자의 빛은,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된다.]“‘창백한 순수성’이 아니라 ‘각자의 빛’입니다. 제품의 핵심 성분이 피부를 인위적으로 하얗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장벽과 광채를 회복시키는 데 있다는 점도 더 정확히 전달합니다. 세 국가에서 구매 의향이 기존 안보다 평균 24.2퍼센트 높았습니다.”메종 벨루아 측 마케팅 이사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영상 원본과 세부 수치를 받아볼 수 있겠습니까?”“최종 권한 배분에 합의하는 즉시 공유하겠습니다.”소율의 대답은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이자벨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희미해졌다.그때 도현이 입을 열었다.“태성 측 입장은 한 팀장의 제안과 같습니다. 아시아 지역 캠페인의 최종 승인권은 태성이 갖고, 브랜드 고유 자산을 변경할 때는 메종 벨루아의 동의를 받는 상호 승인 방식으로 정리하죠.”“차 본부장님은 한 팀장님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시는군요.”“신뢰가 아니라 검증입니다.”도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한 팀장의 제안은 소비자 조사와 매출 예측으로 검증됐습니다. 더 나은 근거가 있다면 지금 제시하십시오. 없다면 개인적인 감상으로 회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요.”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소율은 테이블 아래에서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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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회의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아시아 지역 캠페인은 소율의 ‘각자의 빛’으로 확정됐고, 양측은 브랜드 사용 범위와 수익 배분까지 대부분 합의했다. 남은 것은 출시 행사의 형식과 계약서의 일부 문구뿐이었다.“오늘 저녁 제 저택에서 메종 벨루아의 겨울 살롱이 열립니다.”이자벨이 마지막 자료를 덮으며 말했다.“본래 사교 행사지만, 주요 주주와 유통 파트너들이 모두 참석하죠. 그 자리에서 합작 브랜드의 첫 티저를 공개한다면 이사회 승인도 빨라질 겁니다.”사업적으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그런데 이자벨이 초대장을 한 장만 꺼내 도현의 앞으로 밀었다.“차 본부장님을 제 파트너로 모시고 싶군요.”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태성 임원들은 일제히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누구도 두 여자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도현은 초대장을 보지도 않았다.“한 팀장이 참석하지 않는 자리에 저도 가지 않습니다.”“실무 책임자까지 동반하는 행사는 아니에요.”“그 실무 책임자가 이 프로젝트의 아시아 전략 책임자입니다.”“공적인 이유인가요, 사적인 이유인가요?”이자벨이 도발적으로 물었다.도현은 대답하기 전에 소율을 바라보았다. 거절은 자신의 몫이지만, 참석 여부는 프로젝트 책임자인 소율의 판단까지 들어야 한다는 듯한 시선이었다.소율은 잠시 계산했다.메종 벨루아의 주주와 유럽 유통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 감정 때문에 포기한다면 이자벨에게 ‘연인의 자격으로 사업을 방해했다’는 명분만 줄 뿐이었다.소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참석하겠습니다.”도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대신 초대장은 두 장이어야 합니다. 차 본부장은 태성그룹의 대표로, 저는 합작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로 참석하죠.”“제가 차 본부장님의 파트너를 요청한 건데요.”“그분의 파트너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소율이 차분하게 웃었다.“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요.”잠깐의 정적 끝에 이자벨이 초대장 한 장을 더 꺼냈다.“좋아요. 파리의 밤에도 그 자신감을 유지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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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살롱의 전반부는 성공적이었다.소율은 유럽 유통사 대표들에게 ‘각자의 빛’ 캠페인의 핵심을 설명했고, 현장에서 수정한 세부 시안까지 보여주었다. 아시아 시장에 낯선 주주들의 질문에는 소비자 수치와 현지 사례로 답했다. 처음에는 그녀를 도현의 동반자로만 보던 이들의 눈빛이,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공동 사업 책임자를 대하는 태도로 달라졌다.“한 팀장님의 안건이라면 아시아 출시를 앞당겨도 되겠습니다.”메종 벨루아의 최대 개인 주주인 노신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이사회에서 승인에 힘을 보태죠.”“감사합니다. 다만 생산량을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초도 물량의 품질과 국가별 배송 일정을 먼저 확정해야 합니다. 연말 물류가 혼잡한 만큼, 태성의 기존 유럽망과 현지 협력망을 병행하는 안건을 내일 전달드리겠습니다.”“빈틈이 없군요.”“함께 일하는 본부장님께 배웠습니다.”소율이 도현을 돌아보았다.도현은 대화에 끼어들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의 눈빛. 신뢰와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긴 시선이었다.그때 악단의 연주가 느린 왈츠로 바뀌었다.이자벨이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도현에게 다가왔다.“이제 사업 이야기는 충분히 한 것 같군요. 살롱의 주최자로서 첫 곡을 청해도 될까요?”그녀가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다.주변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모였다.도현은 그 손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제 첫 곡과 마지막 곡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그가 소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한 팀장. 춤추시겠습니까?”소율은 도현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기꺼이요, 차 본부장님.”두 사람이 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도현의 한 손이 소율의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단단히 채웠다. 세 박자의 선율에 맞춰 발을 옮기자 남색 드레스 자락이 물결처럼 둥글게 퍼졌다.“춤도 출 줄 알았어요?”“회장님이 어릴 때 억지로 가르쳤어.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라고.”“회장님은 이것까지 예상하셨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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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행사가 끝난 뒤, 검은 세단의 뒷좌석.파리의 황금빛 가로등이 창문 위로 미끄러져 지나갔다.소율은 태블릿으로 내일 수정할 계약 조항을 확인하는 척했다. 옆자리에 앉은 도현의 시선이 벌써 십 분째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만 좀 봐요.”“내 남자라며.”“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내 옷매무새는 당신이 본다며.”“본부장님이 빈틈을 보이면 태성그룹 이미지가 손상되니까요.”“나를 믿지만 이자벨의 판단력은 못 믿겠다며.”“전부 맞는 말이잖아요.”도현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한소율 팀장.”“왜요?”“질투했습니까?”“아, 음……조금요.”예상과 달리 순순한 대답이 돌아오자 도현이 잠시 말을 잃었다.소율은 태블릿을 끄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도현 씨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도현 씨를 자기 것처럼 건드리려는 건 싫었어요.”“소율아.”“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예전에 제가 다른 남자랑 있을 때마다 도현 씨가 왜 그렇게 예민해졌는지.”“그럼 앞으로 내 질투를 전부 이해해 주겠다는 뜻이야?”“그건 아니죠. 도현 씨 건 여전히 과잉이고, 통제 불능이고, 가끔은 재난 수준이니까.”“차별 대우네.”“대신 함부로 비웃지는 않을게요.”소율이 그의 손을 찾아 손가락을 맞물렸다.“좋아하니까 불안하고, 너무 소중하니까 남에게 한 치도 내어주기 싫은 마음이라는 건 알게 됐으니까요.”장난스럽던 도현의 눈빛이 천천히 부드러워졌다.그는 맞잡은 손을 들어 소율의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나는 당신이 질투해서 좋은 게 아니야.”“아까부터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던데요.”“좋긴 하지.”도현은 뻔뻔하게 인정했다.“하지만 더 좋은 건, 당신이 이제 참지 않고 말해준다는 거야. 3년 동안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혼자 도망갈 계획부터 세우던 한소율이, 수십 명 앞에서 나를 자기 남자라고 선언했잖아.”그의 엄지가 소율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나는 그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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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12월 중순의 파리는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센강 위로 푸르스름한 새벽 안개가 내려앉고, 밤새 내린 눈이 펜트하우스의 통유리창 너머를 희게 뒤덮고 있었다.파리 생활 10개월 차.침실 안의 고요를 깨뜨린 것은 오전 5시 17분, 침대 협탁 위에서 동시에 울린 두 대의 휴대전화였다.위이잉― 위이잉―.먼저 눈을 뜬 도현이 화면을 확인했다. 잠기운이 남아 있던 그의 눈빛이 단 한 줄의 알림을 읽는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긴급: 밤샘 임금·안전 교섭 최종 결렬. 유럽 항만·간선 운송 노동연맹, 금일 오전 6시부터 96시간 총파업 돌입. 르아브르·로테르담 항만 및 프랑스·베네룩스 주요 육상 노선 봉쇄 예정.]전날 밤까지만 해도 파업 개시 시각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노사 간 마지막 교섭이 새벽에 결렬되면서, 유예를 전제로 움직이던 기업들의 화물이 일제히 발이 묶이게 된 것이다.곁에서 몸을 일으킨 소율 역시 같은 보고를 읽었다.불과 몇 초 전까지 한 이불 아래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연인은 사라졌다."현재 유럽 내 이동 중인 태성 화물은?""컨테이너 1,824개. 그중 항만 반출 전 물량이 611개, 간선 트럭에 묶일 가능성이 있는 물량이 907개예요. 나머지 306개는 파리권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에 이미 들어와 있고요."소율은 침대에서 내려오며 머리를 질끈 묶었다."파리 운수노조와 체결한 양해각서는 유효합니다. 도심 배송망은 움직일 수 있어요. 문제는 그 앞단인 항만과 국가 간 간선 노선이에요. 이번 파업 주체는 우리가 협약을 맺은 지역 노조가 아니라 유럽 연맹이니까요.""손실 예상치는?""나흘간 완전 정지하면 직접 위약금만 1,470만 유로. 메종 벨루아 초도 물량의 동시 출시가 무너지면 브랜드 손실은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벨에포크 컨소시엄의 연말 주문도 같이 걸려 있어요."도현은 이미 옷장으로 향하고 있었다."임원 전원 6시까지 비상 소집. 물류, 영업, 법무를 세 개 대응실로 분리해.""차량에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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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도현의 시선이 표의 마지막 열에 멈췄다."32퍼센트.""파리권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에 확보된 재고예요."소율이 곧바로 대답했다."파리 운수노조와 맺은 기존 양해각서 덕분에 도심 구간은 정상 운행이 가능합니다. AI 수요 예측 시스템으로 매장별 재고를 재배치하면 일드프랑스 지역은 사흘까지 버틸 수 있어요.""나머지는?"소율이 리모컨을 눌렀다.유럽 지도가 세 개의 색으로 갈라졌다."메종 벨루아 물량은 부피가 작고 단가가 높습니다. 브뤼셀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화물기 두 편의 귀항편 잔여 슬롯을 확보하면 초도 물량의 71퍼센트를 살릴 수 있어요. 독일과 동유럽 주문은 리옹에서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연결되는 철도망으로 돌리고요.""철도 예약이 막혔다고 방금 보고했습니다."피에르가 끼어들었다."신규 상업 화물은 막혔습니다. 하지만 태성바이오가 장기 계약으로 보유한 냉장 컨테이너 슬롯은 취소되지 않았어요. 시약을 우선 적재하고, 남는 공간에 규정 온도를 충족하는 고가 제품을 함께 실으면 됩니다."소율이 다음 화면을 띄웠다."브뤼셀 항공편도 이미 가예약해 뒀습니다. 최종 승인만 있으면 열다섯 분 안에 확정할 수 있어요."임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율에게 쏠렸다.파업 통보를 받은 지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지역 재고를 분류하고, 항공편의 빈 공간과 장기 철도 계약까지 찾아낸 상태였다.도현은 놀라지 않았다.마치 소율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낼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다음 허점을 짚었다."그래도 전체 물량의 47퍼센트가 남는군.""네. 르아브르와 로테르담에 이미 도착한 화물은 항만 반출로를 열지 못하면 손쓸 수 없습니다.""연맹과 교섭할 창구는?""마르셀 르노 위원장에게 연락했습니다."마르셀은 소율이 벨에포크의 도심형 물류 사업을 추진할 당시, 4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조건부 양해각서를 체결했던 파리 운수노조위원장이었다."이번 총파업에 파리 운수노조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마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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