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깨어난 아내는 미련이 없었다: Chapter 1 - Chapter 10

18 Chapters

제1화

하이원이 절친과 함께 서둘러 연회장에 도착하자 시끌벅적하던 홀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하이원이 화라도 내면 괜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휘말릴까 봐 모두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다.하이원의 성격이 얼마나 불같은지는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하씨 집안의 귀한 외동딸로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란 하이원은 제멋대로인 데다 고집도 셌고,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한 번 눈 밖에 난 일이 생기면 울서시 상류층 전체가 알 정도로 크게 뒤집어 놓곤 했다.하이원을 발견한 강언준의 미간이 구겨졌다.“나 따라온 거야? 이제 나한테 관심 없다며. 그런데 몰래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뭔데? 연희와의 관계는 내가 이미 설명했잖아. 연희는...”“알아. 내가 3년 동안 의식이 없었고, 그 사이 네가 나랑 닮은 서연희 씨한테 마음이 갔고, 아이까지 생겼다는 거.”하이원이 말을 끊으며 옅게 웃었다.“아이를 정리하라고 했는데 서연희 씨가 병원에서 사라졌고, 결국 몰래 낳았지. 이미 태어난 아이를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으니 백일잔치까지 연 거잖아. 다 알아.”목소리는 잔잔했다. 분노도 억울함도 묻어나지 않았다.반면 서연희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아기를 안은 채 하이원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죄송해요, 사모님. 정말 사모님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아무 죄 없는 생명을 차마 없앨 수가 없었어요. 저는 신앙이 있어서... 생명을 가진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하이원은 서연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품에 안긴 아기의 뺨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손이 닿자마자 강언준이 거칠게 하이원의 손목을 잡아챘다.“뭐 하는 거야? 내 아들이야. 애는 아무 잘못 없어.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해.”강언준의 부모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래, 이원아. 이건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어. 네가 언제 깨어날지 아무도 몰랐잖니. 우리 집안도 대를 이을 아이가 필요했고.”“아이가 태어났다고 네 자리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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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친구인 한지아를 집까지 데려다준 하이원은 차를 몰아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답장이 도착했다.[일주일 뒤, 구청 앞에서 보자.]하이원은 웃으며 핸드폰을 넣고, 강언준과 5년 동안 함께 살았던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갔다.하이원이 깨어난 뒤에도 집 안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벽에는 8년 전 결혼할 때 찍은 웨딩 사진도 여전히 걸려 있었다.사진 속 하이원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강언준은 자신감 넘치고 눈부시게 잘생긴 모습이었다.두 사람의 결혼은 집안끼리 이어진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이기도 했다.서로에 대한 마음도 있었다. 결혼식 날부터 두 사람은 울서시 상류층에서 부러움을 사는 부부로 불렸다.늘 제멋대로에 거칠기로 유명한 강언준도 하이원을 위해서는 성질을 누를 줄도 알았다.결혼 전에는 유흥업소를 제집처럼 드나들었지만 결혼 뒤로는 발길을 딱 끊었다.집안일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던 하이원도 강언준을 위해서라면 직접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만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손에 물집이 잡힐 만큼 화상을 입었어도 불평 한마디하지 않았다.그 교통사고만 없었다면, 강언준이 하이원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거로 생각해 닮은 여자를 곁에 두는 일도 없었을 테고 두 사람의 관계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지 모른다.생각을 접은 하이원은 이제 이 집 안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정리할 때라고 여겼다.“이모님, 벽에 걸린 웨딩 사진 내려서 버려 주세요.”“사모님, 저 사진 가장 아끼셨잖아요.”“이제 아니에요.” 하이원이 다른 곳을 가리켰다. “저 장식품들도 전부 버려 주세요.”“사모님, 대표님이 사모님께서 의식 없으실 때 집에 자주 안 들어오셨다고 해도 이제 깨어나셨잖아요. 두 분 관계를 다시 회복해 보셔야죠.”하이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가사도우미 오자영도 더는 어쩔 수 없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몸이 조금 무거워진 하이원이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순간 강언준이 집에 들어왔다.거친 기세로 들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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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원아!”의식을 잃기 직전, 하이원은 강언준이 달려와 자신을 바닥에서 안아 올리는 모습을 봤다.강언준은 몹시 겁먹고 다급해 보였다.하지만 하이원의 마음은 이미 아무 감각도 남지 않은 뒤였다.다시 눈을 뜬 하이원의 귀에는 훌쩍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아무리 주안이 우리의 아들이라고 해도 사모님은 언준 씨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이렇게 힘들게 만들면 언준 씨도 마음 아프지 않아?”“바보야. 우리 아들 해친 사람은 누구든 가만두지 않아. 이원이도 예외는 아니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래도 안 돼.”하이원이 눈을 떴다. 목은 여전히 따갑고 숨쉬기 힘들었고, 갈증도 심했다.강언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옆에 서 있던 간병인을 바라봤다. “저기요, 물 한 잔만 부탁해요.”“이원아, 깼어?”목소리를 들은 강언준이 간병인 손에 있던 물컵을 받아 하이원의 입가로 가져갔다.하이원은 강언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컵을 직접 받아 단숨에 비웠다.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사모님, 괜찮으세요? 하루 꼬박 의식이 없으셨어요. 언준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주안이 깨어났는데도 보러 안 갔어요.”“다만 다음부터는... 주안이한테 이런 일 안 하시면 안 될까요? 아직 아기잖아요. 사모님 자리를 위협할 아이도 아니고요.”그제야 하이원의 시선이 서연희에게 향했다.깨어난 뒤 실제로 이런 여자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었다.이제 보니 서연희는 정말 자신과 많이 닮았다.다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서연희는 약하고 순한 척하는 모습이 지나칠 정도로 청초해서 오히려 사람을 질리게 했다.어떤 남자들은 저런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했다.청순한 척하면서 사람 마음을 흔드는 타입을 싫어할 남자는 드물다.하이원이 컵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축하금은 호텔 프런트에서 바로 봉투에 넣었어. 프런트부터 엘리베이터, 연회장 입구까지 전부 CCTV가 있어. 내가 꽃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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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사흘 뒤, 하이원은 퇴원했다.한지아가 데리러 왔을 때 강언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강언준은 안 왔어? 갑자기 왜 이렇게 모질어졌대? 예전에 셰프가 네 땅콩 알레르기 있는 걸 깜빡하고 샐러드 소스에 땅콩버터 조금 넣었다가 너 큰일 날 뻔했잖아. 그때 강언준이 주방까지 쳐들어가서 그 셰프를 두들겨 팼는데...”하이원이 말을 끊었다. “다 지난 일이야.”“그래, 그래. 네가 이제라도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기념으로 오늘 밤 내가 루아젠에서 남성 댄서 공연 쏜다!”두 사람이 퇴원 수속을 밟으러 갔다가 마침 계산 창구에 서 있는 서연희를 발견했다.한지아가 비웃듯 말했다. “서연희가 누구 돈으로 병원비 내는지 맞혀 볼래? 당연히 강언준 돈이겠지. 너희 아직 법적으로 정리되기 전인데, 상간녀가 쓰는 돈은 결국 부부 공동생활에서 나온 재산이잖아.”그 말은 공교롭게도 근처에 있던 사람들 귀에도 들어갔다.“서연희가 상간녀래?”“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요즘은 남의 가정 깨고도 저렇게 멀쩡하게 다니네.”“그래서 아들까지 병원 신세인가 봐. 남의 가정 건드린 대가 아니야?”“내가 본처면 남편 재산부터 동결할 거야. 서연희한테 한 푼도 못 쓰게 해야지.”“...”서연희도 모두 들었다.서연희가 몸을 돌렸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사모님, 왜 친구분이 저를 상간녀라고 말해도 그냥 두세요?”“아니야?” 한지아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남의 유부남이랑 아이까지 낳아 놓고 상간녀 소리는 듣기 싫어?”서연희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너무하시네요.”“또 운다, 또 울어. 진짜 연기 하나는 끝내준다.”“지아야, 그만해.”하이원이 친구를 막았다. 서연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일단 집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자. 저녁에 루아젠 가서 같이 한잔해 줘.”...루아젠.하이원은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무대 위에서 흥겹게 춤추는 남녀를 바라봤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마음 한쪽에 번졌다.문득 결혼 전 친구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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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네, 좋아요. 마실게요.”서연희는 더 묻지도 않고 술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한 잔, 또 한 잔이었다.“진짜 마시네? 겨우 이 돈 때문에?”한지아가 눈을 굴리며 한마디 더 하려던 때 서연희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쿨럭!”핏방울이 하이원의 옷에도 튀었다.하이원이 미간을 좁히며 상태를 물으려는데 밖에서 누군가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연희야! 괜찮아? 나 겁주지 마!”강언준은 서연희를 끌어안고 테이블 위에 널린 빈 술병을 훑었다.“너희가 연희한테 술 먹였어? 하이원! 연희 예전에 위궤양이 심해져서 천공까지 갔던 거 몰라? 술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야! 연희야, 가자. 바로 병원으로 갈게.”하지만 서연희는 가지 않았다. 한지아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까 약속했잖아요... 이 술 다 마시면 200만 원 주신다고...”한지아는 이런 상황에서도 돈부터 찾을 줄 모느라 말을 잃었다.“사모님, 제가 상간녀인 건 맞아도 언준 씨의 돈은 한 푼도 쓰기 싫어요! 보셨죠? 이 200만 원은 제가 직접 번 돈이에요... 사모님이랑 언준 씨의 부부 재산에서 나온 돈이 아니에요!”“그만해, 연희야.”강언준은 서연희를 안아 들고 한지아를 돌아봤다.“하이원, 너나 네 친구들도 정말 대단하다.”강언준은 그대로 나갔다.강언준 품에 안긴 서연희는 하이원 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승리감이 어린 웃음이었다.한지아가 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이원아. 강언준이 너까지 오해한 거 아니야? 나 때문에 괜히 휘말렸어.”“지아야, 네 잘못 아니야.”하이원은 억지로 웃었지만 마음속 불안은 점점 커졌다.이유는 알 수 없었다. 떠나기 전 강언준이 던진 그 눈빛에 자꾸만 하이원의 가슴이 옥죄었다....그 뒤 이틀 동안 강언준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이혼 절차가 최종 처리되기 하루 전, 결국 일이 터졌다.한지아의 부모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이원아! 지아가 없어졌어. 벌써 이틀째 집에 안 들어와!]하이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머릿속에는 강언준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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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사설 견사?’‘강언준이 지아를 그런 곳에 가둬 놨다고?’한지아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개였다.하이원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일어나 강언준이 던진 열쇠를 집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병실을 뛰쳐나갔다.강언준이 한지아를 너무 쉽게 보내 주는 듯해 보이자 서연희는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언준 씨, 역시 언준 씨한테는 사모님이 제일 중요한 거죠? 사모님 아니었으면 친구도 저한테 그렇게 못 했을 텐데...”“알아.”강언준이 서연희의 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당한 만큼은 반드시 돌려받게 해 줄게.”“이원이 견사에 도착한다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 쉽게 데리고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니까.”서연희는 바로 뜻을 알아들었다.강언준은 하이원에게도 벌을 줄 생각이었다.서연희가 걱정하는 척 물었다. “사모님한테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많이 상처받을 것 같은데...”강언준은 마음이 다른 데로 가 있는 듯 대답했다. “그럼 사람 보내서 막을까?”서연희가 애교 섞인 손길로 강언준의 가슴을 툭 쳤다. “됐어요, 정말...”강언준은 서연희를 안고 웃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사실 하이원을 벌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서연희가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하이원이 혹시 다치더라도 나중에 충분히 보상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이번 일로 어디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인지 알게 해 주고 싶었다....도심 외곽의 사설 견사.하이원이 도착했을 때 한지아는 철창 안에 몸을 웅크린 채 거의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다.철창 밖에는 덩치 큰 셰퍼드 세 마리가 한지아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개들도 오랫동안 굶은 듯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침을 흘리며 신경질적으로 철창 주변을 맴돌았다.한지아는 이미 완전히 지쳐 있었다. 이틀 동안 아무런 음식과 물도 입에 대지 못한 데다 계속 긴장한 탓에 더 버틸 힘이 없었다.“지아야!”하이원이 울면서 가까이 다가가자 한 발 내딛기도 전에 셰퍼드들이 사납게 시선을 돌렸다. 언제든 달려들어서 물어뜯을 듯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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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주안의 상태가 많이 좋아진 뒤 강언준은 서연희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마침 그날은 서연희의 생일이었다. 강언준은 루아젠에 자리를 잡아 서연희의 생일 파티를 열었다.파티 자리에서 강언준은 서연희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기억해. 연희는 내 여자야. 앞으로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마.”“언준이 형, 우리가 형수님을 어떻게 건드리겠냐?”“절대 안 건드리지. 오늘 생일이잖아.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다 시켜. 내가 살게.”“우리는 안 괴롭히는데 하이원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다.”누군가 턱짓으로 조금 떨어진 테이블을 가리켰다.그곳에는 눈에 띄는 미인들만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울서시 상류층에서 이름난 집안의 딸들이었다.눈썰미 좋은 사람이 평소 루아젠에 자주 오던 하이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먼저 알아챘다.“언준아, 새 제수씨 대신 혼내 준다고 원래 제수씨 절친을 손봐줬다며?”“한지아 맞지? 이원 형수님이랑 제일 친한 애잖아. 대단하다. 본인보다 절친 건드리는 게 이원 형수님한테 더 무서운 벌이라는 걸 제대로 알았네.”“됐어. 오늘은 하이원 얘기는 하지 마.”강언준은 친구들 말을 끊고 다시 소파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품에는 서연희를 안고 있었지만 시선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 쪽으로 계속 흘렀다.하이원뿐 아니라 한지아도 보이지 않았다.3년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뒤 하이원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사고 전에는 강언준이 야근으로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거실에 늘 불 하나를 켜 두었다.강언준이 배고프다고 하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하이원은 부엌에 들어가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만들고 그 위에 달걀프라이까지 얹어 줬다.강언준은 하이원이 내려 주는 커피를 가장 좋아했다. 하이원은 매일 아침 30분 일찍 일어나 강언준이 마실 커피를 준비해 놓곤 했다.잠에서 깨면 그날 입을 옷도 침대 끝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정장 셔츠는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고, 거기에 어울리는 넥타이까지 함께 놓여 있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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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누군가 했더니 이원이네 가정 깨 놓은 상간녀였네.”“상간녀 하나 챙기겠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강언준, 진짜 취향도 대단하다.”“서연희가 이원이보다 나은 게 뭐가 있다고 이원이한테 그런 짓을 해?”“뭐라고?”강언준이 그중 한 사람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눈빛이 날카롭게 식었다.“이원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어? 연희한테 사과해.”“싫어. 내가 왜 사과해?”임보라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강언준의 손을 뿌리쳤다. “손대지 마. 더러우니까.”옆에 있던 친구가 임보라를 뒤로 잡아당겼다. “보라야, 그만해. 너까지 지아처럼 되고 싶어?”“난 안 무서워. 지아를 그렇게 만든 인간이니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 치를 거야, 강언준!”화를 참지 못한 임보라가 손을 들어 강언준의 뺨을 치려 했다.서연희가 재빨리 달려들어 강언준을 밀어냈고, 그 손바닥은 그대로 서연희의 뺨에 꽂혔다.“연희야!”강언준이 미간을 좁히며 임보라를 매섭게 노려봤다.“감히 연희를 때려? 죽고 싶어?”“왜? 나도 지아처럼 견사에 처박게?”임보라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언준과 눈을 맞췄다. “다른 사람은 너 무서워해도 난 안 무서워. 내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내가 널 그냥 둘 것 같아?”“임보라 씨, 자꾸 언준 씨가 한지아 씨를 해쳤다고 하는데 뭘 해쳤다는 거죠? 그날 먼저 저를 괴롭힌 건 한지아 씨였어요.”“언준 씨는 저 대신 화가 나서 며칠 견사에 가둔 것뿐이에요. 그 정도 일로 무슨 정의라도 세우겠다고 이러는 거예요?”서연희가 비웃었다. “이제 알겠네요. 다들 귀한 집 딸로 편하게만 살아서 그래요? 견사 같은 곳에서 이틀 지냈다고 세상에서 제일 큰 피해라도 입은 것처럼 구는 거예요?”“미친 여자야, 그 말을 지금도 해?”임보라가 다시 손을 들자 강언준이 옆에서 팔을 막았다.경고가 선명한 눈빛이었다.“임보라! 이원이 친구니까 오늘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주는 거야. 또 손대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쓰레기!”임보라가 차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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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임보라가 떠난 뒤에도 강언준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서연희는 점점 더 어두워지는 강언준의 표정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이 일이 이렇게 빨리 강언준 귀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강언준이 내가 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쩌지?’“사람 보내서 알아봐.”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친구들이 다급하게 말을 돌렸다. “언준아, 이러고 있을 때냐? 제수씨에게 생일 파티 해 준다며. 케이크도 안 잘랐고 술도 몇 잔 안 마셨잖아.”“한지아 팔이 진짜 뜯겼다고? 그런 큰일이 있었으면 소문이 하나도 안 날 리가 없잖아.”“설령 크게 다쳤어도 요즘 의료 수준이면 재접합 수술할 수도 있잖아. 아까 하이원 친구들이 너랑 제수씨 기분 망치려고 일부러 과장한 거 아닐까?”“...”친구들이 말을 이어 가는 동안 서연희는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말을 보탤수록 실수할 가능성만 커진다는 걸 알아서 일단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강언준은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케이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조용히 술만 계속 들이켰다.핸드폰을 열어 하이원과 나눈 대화창을 띄웠다.마지막 메시지는 벌써 보름 전이었다.그마저 강언준이 먼저 어디냐고 물었던 내용이었고 하이원은 답하지 않았다.강언준은 임보라의 말이 사실이 아닐 거라고 다시 생각했다.평소 하이원의 성격대로라면 한지아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벌써 자신을 찾아와 난리를 쳤을 터였다.그런데 텅 빈 대화창을 보고 있으니 왜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운지 알 수 없었다.강언준은 자판 위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몇 글자를 적었다.[어디야?]보내지는 못했다.지운 뒤 다시 썼다. [한지아 팔 다쳤다던데, 진짜야?]마음에 들지 않아 또 지웠다.다시 입력하려던 때 서연희가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언준 씨, 그만 생각하고 케이크 좀 먹어요.”“미안.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강언준은 잔에 남은 위스키를 한 번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블랙카드 한 장을 서연희 앞에 놓았다.“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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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하이원 말이야. 하이원 SNS 봐.”친구가 핸드폰을 강언준 눈앞에 내밀었다. 혹시 제대로 못 볼까 봐 게시글 문구까지 크게 읽어 줬다.“앞으로 남은 날들도 잘 부탁해.”“밑에 사진도 봐. 두 사람이 구청에서 혼인신고 접수한 서류를 같이 찍었잖아.”“설마 가짜 아니야? 오늘 언준이 여기서 새 제수씨의 생일 챙겨 주는 거 알고 일부러 다른 남자랑 결혼한 척 사진을 올린 거 아닐까?”“...”강언준은 게시물을 보고 있다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친구의 핸드폰을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갑작스러운 격분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친구는 산산조각 난 자기 핸드폰을 보며 울상이 됐다.“그거 내 폰인데...”“언준 씨...”서연희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모님이랑 언제 이혼 신고한 거예요? 난 왜 아무것도 몰랐어요? 친구들 말처럼 저한테 주려고 준비한 서프라이즈였어요?”강언준이 서연희를 돌아봤다.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나도 알고 싶어.”‘언제 이혼이 끝났다는 거야?’강언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원과 이혼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혼 처리가 끝났다는 게 말이 될 리 없었다.강언준은 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루아젠을 나갔다.서연희가 뒤따라 나왔지만 이미 떠나버린 강언준은 보이지 않았다.서연희는 분한 듯 발을 굴렀다. “하이원, 진짜 강언준이랑 끝난 거면 좋겠네. 아니면 나도 절대 가만 안 있어!”...운전기사는 곧장 차를 몰아 강언준을 집까지 데려갔다.문을 열고 들어간 강언준은 집 안을 샅샅이 둘러봤다.언제부터인지 하이원의 물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슬리퍼도, 좋아하던 쿠션도, 늘 쓰던 컵도 없었다. 손에 익었다며 아끼던 커피 도구 세트까지 자취를 감췄다.집 안을 훑어본 강언준이 버럭 소리쳤다. “집에 사람 없어? 이원의 물건은 다 어디 갔어?”오자영이 황급히 달려와 공손히 답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일부는 버리셨고 나머지는 직접 가져가셨어요. 어디로 옮기셨는지는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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