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1 - Chapitre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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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도복희의 등 뒤에서 최지호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물가에 어린애를 내놓은 사람 같았다.“뭐야아. 저리 가 있어요. 커다란 사람이 옆에서 전등 불빛 다 가리니까 어둡잖아요.”도복희가 웃으면서 장난스레 핀잔을 주었다. 그녀는 손끝이 한참 남는 커다란 고무장갑을 낀 채로 손을 내저었다. 물기가 조금 튀었다.“어? 어, 미안.”최지호는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며 허둥댔다. 물러나서 거실로 자리를 피해주는 그의 얼굴에는 옅은 홍조와 함께 미소도 떠 있었다. 도복희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며 편하게 대해주는 것이 기뻐서였다.깔끔하게 설거지를 마친 도복희는 제 집처럼 냉장고를 열었다. 딸기를 꺼내 채반에 담아 가볍게 헹궈내고 쟁반에 받쳐 거실로 들고 나왔다.“우리 복희, 센스 봐라.”심우주가 가장 먼저 탐스러운 딸기 한 알을 집어들었다. 도복희는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정도쯤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소파가 아닌 테이블 앞 바닥에 앉은 도복희는 작은 과도를 들고 딸기 꼭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손놀림은 꽤 능숙해 보였다. 몇 개를 간단히 다듬더니, 포크로 한 알을 콕 찍어 탁유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강은택에게도 딸기를 꽂은 포크를 내밀었다.“착하네.”탁유환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강은택은 제게까지 그런 호의를 베풀 줄은 몰랐다는 듯 살짝 미간을 좁혔다. ‘나한테 이걸 왜 주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저 팔 아파요. 빨리 받아요.”그러나 도복희의 능청스러운 채근에 강은택도 얼떨결에 그 딸기를 받아들었다.“복희야, 오빠는? 오빠는 먹여줘.”심우주가 실없는 농담을 하자, 최지호가 얼른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사람처럼 재빨리 포크로 딸기를 찍어 그의 입에 물렸다.“알아서 먹어.”그리곤 최지호도 딸기를 먹으며 도복희가 마저 꼭지를 따는 것을 바라보았다.“은장도가 원래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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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력 어때? 어?”“난 처음 4천 점 찍을 때까지 일주일 걸렸는데…….”도복희의 풀죽은 목소리는 오히려 심우주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슬쩍 그를 밀어내고는 게임을 꺼버렸다.“아, 재미없어. 앞으로 테트리스 안 해야지.”“뭐? 야!”  두고두고 놀려 먹을 생각에 신이 났던 심우주가 발끈했다. 그는 도복희의 뜨끈한 핸드폰을 빼앗듯 제 손으로 가져왔다.“비법 알려줄게. 해 봐.”“저도 4천 점 잘 찍거든요?”“에이. 쉽게 하는 방법 알려준다니까?”“훈수 사절!”고전 게임 하나로 아웅다웅하던 둘은 이내 각자의 핸드폰으로 블록 쌓기에 몰두했다.한참 뒤, 심우주는 고득점을 자랑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가 도복희가 잠이 든 것을 확인했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핸드폰을 쥔 채 입을 조금 벌리고 자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 같았다.거실에는 어느새 잠든 도복희와 심우주 둘만 남아 있었다. 심우주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구경하다가 픽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안아서 2층에 데려다 놓으면 깨겠지.”중간에 잠에서 깨어 당황해 소리치는 도복희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으나 심우주는 그러지 않았다. 좀 더 자게 두고 싶어서였다.심우주는 도복희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빼서 카메라를 실행했다. 화면 가득 입 벌리고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이 담기도록 한 장 찍은 뒤, 다시 기기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내일 앨범을 열었다가 바보처럼 자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랄 도복희를 상상하자 즐거워졌다.심우주는 소파 한쪽에 잘 접혀 있던 담요를 펴서 그녀의 몸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 깊게 잘 수 있도록 거실 천장의 밝은 전등은 끄고 은은한 스탠드 조명만 하나 켜 두었다.“……진짜 웃기는 애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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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게, 진짜.”구시렁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강은택의 귓바퀴가 미세하게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심우주는 그 모습을 보고 마구 웃었다. 손끝으로 눈물까지 훔쳐내더니 도복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을 붙였다.“너 뭐냐, 진짜?”“뭐가요?”도복희가 능청스런 심우주의 말투를 따라 하며 되물었다.“은택이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놈이 너한테 이렇게까지 감겼냐― 이거야.”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도복희는 눈만 꿈뻑거렸다. 그러자 심우주는 ‘됐다, 됐어.’ 하며 그녀의 코를 장난스레 살짝 꼬집었다.“요물이 따로 없다니까.”“아하하….”요물이라는 말에 뜨끔한 도복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행히 심우주는 그녀의 과장된 웃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제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은택이 일을 시켜 준다고 한 건 고마웠지만,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할까봐 내심 조마조마했다.도복희는 벽에 붙은 커다란 달력을 바라보았다. 이 집에 와서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느라 깜빡 잊을 뻔했다. 만월― 보름달이 뜨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원래 계획이라면, 만월이 되기 전에 이 집을 떠났어야 했다. 애초에 도움받기로 한 지인이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것부터가 완전 꼬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빠르게 일자리를 구해서 보름에는 조용히 혼자 숨어서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했어야 했는데.도복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 만월을 보낸 적이 없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녀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무렵부터 엄마는 늘 신신당부했다. 절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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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이 힐끗 방문 손잡이를 향했다. 당장 저걸 열고 나가서 샤워기로 시원한 물을 맞으며 끈적한 몸을 씻어내리고, 또 입을 벌려 물을 마시며 쩍쩍 갈라지는 것 같은 목을 축이고 싶었다.그러다 혹시 누군가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 집 남자들에게 ‘괴물’이라며 손가락질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다. 얼른 고개를 저어 나쁜 생각을 털어내려 애를 썼다.도복희는 결국 방 밖으로 나서는 것은 포기했다. 목 뒤로 침을 크게 넘기며 갈증을 무마해보려 애를 쓰던 그녀는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똑똑―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도복희는 눈을 번쩍 떴다. 얼마나 잤을까. 아직 창이 깜깜한 걸로 봐선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건 아닌 듯했다.똑똑―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얇은 방문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복희야, 자냐?”심우주의 목소리였다.“복희야, 오빠가 순대 사왔어. 간이랑 염통 팍팍…. 푸핫.”반응 없는 문 앞에서도 심우주는 저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묘하게 발음이 뭉개지는 것이 아무래도 취한 게 분명했다.항상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출근하는 심우주는 바(bar)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도복희가 이미 잠든 뒤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막 귀가한 그와 마주친 적은 딱히 없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방문을 두드리는 것도 처음이었다.그녀는 깼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숨소리까지 죽였다. 심우주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조금 더 웅얼거리는 듯했으나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미친놈아, 지금 새벽 4시야.”강은택이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쿵쿵 밟으며 다가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히죽 웃은 심우주가 그 기다란 몸을 주체 못하고 휘청거리며 손을 흔들었다.“은택아, 순대 먹어라.”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로 심우주가 강은택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몸을 기댔다. “아오, 술 냄새. 징그럽게 왜 이래.”강은택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떼어냈다. 그리고 잠시 심우주를 말없이 바라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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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는 동이 튼 뒤에야 잠들었다. 그 바람에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일어나질 못했다. 그녀를 깨운 것은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도 아니고 고소한 밥 짓는 냄새도 아닌 웅성거리는 소리였다.방문 너머 2층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처음에는 잠이 덜 깬 상태라 ‘사람 소리구나’ 하는 것 이외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그 대화 내용도 점점 들리기 시작했다.“어젠 그렇다 치고 오늘도 방 밖으로 한 번도 안 나왔어.”“아, 그래?”강은택의 나직한 목소리와 심우주의 태연한 대답.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으나 무언가 긴장감이 맴돌았다.“너 혹시 애한테 뭔 짓 했냐?”강은택의 말투는 분명히 날이 서 있었다. 그의 의심에 심우주는 코웃음을 쳤다.“하! 뭐라고? 내가 무슨 짓을 해.”“너 어제 방문 두드리면서 난리 쳤잖아. 그 뒤로 애가 안 나온다고.”“…씨발, 그래서 네가 나 붙잡고 방에다 처넣었냐, 안 넣었냐. 그러고 바로 잤잖아. 근데 내가 뭘 해.”심우주가 불쾌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억울함을 넘어 분노한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드문 일이었다.그러나 강은택은 심우주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지 여전히 일말의 의심을 남겨 둔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중을 알아챈 심우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 금방이라도 몸싸움으로 번질 것처럼 위태로운 공기가 그들을 에워쌌다.“새벽에 형들 얘기하는 거 내가 다 들었고, 그 뒤로 우주 형 방 밖으로 안 나온 것도 맞아. 나 깨어 있었어.”최지호가 그 커다란 몸으로 벽을 만들 듯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일촉즉발이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심우주는 제 결백을 증명해 줄 이가 나타나자 억울함이 더해진 듯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짧게 내쉬며 그만뒀다. 강은택이 섣불리 말을 꺼낸 건 사실이지만, 간밤의 자신은 꽤 취해 있었으며 평소 자신의 여성편력도 그런 의심을 만들어내는 데에 한몫 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그때, 현관문 도어록 해제되는 소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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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가 문을 열었을 땐 복도 조명이 꺼져 있었다. 복도에 달린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그녀의 방문 앞에 놓인 것들을 비추었다.진통제 새것, 라벨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 생수 두 병, 작은 초코바 세 개.어린애 하나도 못 지나다닐 정도로 소심하게 열린 문틈 사이로 도복희가 팔을 내밀었다. 허옇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바닥에 놓인 것들을 차례차례 안으로 옮겼다.도복희는 다시 문을 닫고 잘 잠갔다. 침대 위에 전리품들을 내려놓고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제법 오래.생수와 약을 놓고 간 사람은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최지호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초코바를 놓고 갔을 심우주는 미안한 티를 팍팍 냈다. ‘밥은 먹어야지’ 말하던 탁유환의 음성은 다정했고, 어제 새벽에도 오늘 아침에도 그녀의 방 근처를 맴돌던 강은택의 말투는 퉁명스러울지언정 분명하게 걱정이 담겨 있었다.……누구도 억지로 문을 열지 않았다. 나오라고 종용하지도 않았다. 캐묻지도 않았다.도복희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 같아 괜히 한번 ‘킁’하고 소리를 냈다. 별 효과는 없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목구멍이 꽉 막히는 듯 무언가 묵직한 것이 밀려 올라오고 입술 틈에선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생수병의 뚜껑을 땄다. 진통제의 포장을 뜯고 알약을 손바닥에 그러쥐었다. 눈물과 함께 알약을, 물을 목 뒤로 넘겼다.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으며 초코바도 입에 넣었다.결국 그녀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울지 말자. 울지 말자.” 주문처럼 반복했으나 속절없이 손바닥이 젖기 시작했다. 가족을 잃고 몇 년 동안이나, 그 수많은 밤을 혼자 불안에 떨면서 견뎌 왔던가. 이번 만월도 두려웠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음 만월에는 이번만큼 불안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에 오히려 감정이 복받쳤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것이었다....어느덧 동이 트기 시작했다. 도복희는 잠들지 못했다. 커튼 사이로 하늘의 색깔이 짙은 네이비에서 회청색으로, 서서히 달궈지며 살구빛으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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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틀어박힌 도복희를 걱정하는 남자들의 목소리로 집 안이 소란스러웠던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강은택의 표정이 꼭 자세처럼 떨떠름했다. 기다림에 지친 듯 벌떡 일어나 계단 쪽으로 향하려는 찰나였다. 바닥을 울리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2층에서 내려온 도복희는 산뜻한 하늘색 셔츠에 클래식한 베이지색 스커트를 입은 모습이었다. 옅게 미소 짓는 얼굴은 꼭 ‘저 어때요?’ 묻는 신이 난 아이 같았다. 그러나 강은택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출근하는데 뭔 치마.”“저 뭐 페인트칠 하러 가요?”“비누칠은 하겠지. 바꿔 입어.”강은택의 단호한 음성에 도복희가 살짝 토라진 듯 ‘칫’ 소리를 냈다.“칫?”강은택은 그녀가 낸 소리를 흉내내며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아주 편하지?”“아니에요!”괜한 으름장에 도복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잠시 후, 편안해 보이는 긴 데님 팬츠로 바꿔 입고 내려온 도복희의 모습을 보고서 강은택은 그제야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집 앞 담장 아래에 짙은 회색빛의 SUV가 서 있었다. 도복희가 부딪친 바로 그 차였다. 그 사실을 운전석 문을 열고 나서야 떠올린 강은택이 잠시 멈칫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지만, 그녀가 이 차를 타길 꺼려한대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그러나 도복희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오르고 재빨리 안전벨트를 착용할 뿐이었다. 그녀보다 늦게 차 문을 닫은 강은택이 곧장 출발하지 않고 빤히 도복희를 보았다.“…너 아무렇지도 않아?”“예? 뭐가요?”도복희는 그 큰 눈을 꿈뻑거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어느 차에 부딪친 건지 모르는 거였네.’깨달은 강은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다.”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구도심 철물거리의 어느 누리끼리한 상가 건물 앞. 도복희는 차에서 내려 그 3층짜리 건물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가스콘 용역’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강은택은 도복희에게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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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저씨세요.”“…옆집 아저씨라고?”“네.”도복희는 어째서 자신의 입에서 ‘옆집 아저씨’라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오, 그래요?”어쩐지 그 거짓말이 통했다는 것이었다. 김미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의심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의외라고 느낀 정도로 보였다. 도복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김미나는 제 책상에 놓인 물티슈를 두어 장 북- 북- 뽑더니, 당연한 제 할 일이라는 듯 빈 자리의 의자와 책상을 문질러 닦았다. 의자에 남은 물자국은 그녀가 책상을 닦는 사이에 사라질 정도로 금방 말랐다.“앉아요.”도복희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의자에 앉았다. 김미나는 낡은 철제 캐비닛을 열더니, 빼곡하게 꽂혀 있는 파일들을 손끝으로 쭈욱 훑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몇 개를 골라내기 시작했다.탁― 제법 묵직한 소리와 함께 도복희의 앞에 종이 뭉치가 놓였다. 김미나는 손바닥을 탁탁 털더니, 자신의 뒤에 있는 옅은 회색의 복합기를 가리켰다.“서류 중에서 너무 구겨졌거나 찢어진 게 있으면 새로 뽑으면 돼요. 복사기는 쓸 줄 알죠?”김미나의 물음은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단 그저 당연한 것을 확인한다는 듯한 어조였다. 그러나 도복희의 입에선 냉큼 ‘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입이 동그랗게 오므라들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도복희가 조금 머쓱해하며 입을 열었다.“쓸 줄 몰라요. 그런데 한 번만 알려주시면 금방 배워요!”복사기 사용 방법을 배우는 사람 치고는 열정이 조금 과한 눈빛이었다. 김미나는 입을 벌리며 웃음을 터뜨렸다.“푸하! 좋아요. 한 번만 알려줄 거예요.”그녀는 도복희를 복합기 앞으로 이끌어 복사 버튼을 가리켰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이 이어졌다. 도복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심히 듣더니, 김미나의 설명이 끝나자 잽싸게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방금 들은 것을 간단히 적어두는 성의까지 보였다. 김미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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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가 끝난 후, 강은택은 2층으로 도복희를 데리고 올라갔다. ‘가스콘 심부름센터’라는 작은 나무 팻말이 걸린 사무실. 스위치를 눌러 전등불을 켜자 형광등이 윙― 하고 울었다. 1층의 용역 사무소도 충분히 어수선했으나 김미나가 매일 출근하며 기본적인 청소는 했으니 지저분하진 않았다. 그러나 2층에는 군데군데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강은택은 말없이 자기 책상으로 가서 주머니에 든 차 키를 툭 내려놓았다. 평소처럼 담배를 꺼내 물고 찰칵― 라이터에 불을 켰다가, 담배에 옮겨 붙이기 직전에 이 공간에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하나 더 있단 것을 자각했다. 도복희는 벽에 걸린 액자 속의 허가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은택은 물었던 담배를 그냥 내려놓았다.“청소도구는 화장실 옆 창고에 있다. 쓰레기봉투는 필요하면 편의점에 가서…. 아니다. 그냥 1층에 가서 받아.”“네!”“저기 있는 캐비닛은 열지 말고.”“네!”강은택은 어쩐지 물가에 애를 내놓는 기분이 들었다. 열일곱 살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해 온 도복희는 빠릿하고 꼼꼼한 편이었다. 자랑으로 들릴까봐 남들에게 말하진 않지만, 어디 가서 일 못한단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그녀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강은택에게 도복희는 대책 없이 해맑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여자애였다.창고에서 몇 가지 쓸 만한 청소도구를 찾아낸 도복희는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 털기부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시들해진 화분에 물을 주고, 커피 자국이 남은 테이블도 닦았다. 캐비닛을 열지 말라고 했으니 캐비닛의 겉면과 손잡이만 박박 닦았다.강은택은 할 일이 있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이따금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도복희를 힐끔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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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본능이었다. 도복희는 재빨리 출입구 쪽으로 뛰어가 전등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잠금 장치를 돌릴 때 손이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캐비닛 옆 벽에 납작하게 몸을 붙일까, 아니면 책상 아래에 몸을 숨길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한 도복희는 혹시 저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발이 먼저 움직였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발은 빨랐다. 도복희는 화장실 옆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작은 창고에 몸을 욱여넣었다. 강은택처럼 체구가 큰 성인 남성이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그녀는 몸집이 작았다.문 아래의 작은 틈으로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비집고 들어온지라 뒤에선 아마 청소도구일 무언가가 등을 찔렀다. 쿰쿰하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런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사무실 출입문이 부서질 듯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온 신경은 바깥으로 쏠렸다. 다른 자잘한 것들은 더 이상 느껴지지도 않았다.“잠겼네.”“창문 열려 있고, 안에 선풍기도 돌아가는데.”쾅― 문을 걷어차는 듯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도복희는 울음이 새어 나갈세라 손으로 입과 코를 세게 틀어막았다.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수년 전, 세상에 서로뿐이던 세 가족의 행복이 박살나던 순간. 도복희가 엄마와 오빠를 잃은 날이었다.보름달이 뜨면 하얀 꼬리가 돋아나는 그녀의 비밀. 그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종족, ‘흰꼬리족’의 고유한 특성이었다.옛날 이야기에 종종 등장하는 구미호. 흰꼬리족은 그 구미호족의 방계쯤 되는 종족이었다. 인간의 간을 취하는 구미호와는 다르게 흰꼬리족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대에 와서 절멸한 구미호족과는 다르게 흰꼬리족은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흰꼬리족은 다들 흩어져서 조용히 살았다. 도복희는 같은 종족인 엄마, 오빠와 함께 ‘희산’이라는 지방의 작은 산촌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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