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1 - Chapitr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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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쾅― 현관문이 닫히고 거실에는 다시 탁유환과 도복희 둘만 남았다. 탁유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복희는 ‘이 남자의 유일한 적수는 이 집에서 가장 가벼워 보이는 심우주가 아닐까’ 생각했다.“갈 데는 있나.”탁유환이 뱉은 말은 분명 질문이었으나 그는 꼭 다 알고서 말하는 분위기를 풍겼다.“가야죠, 어디든….”도복희는 빠르게 대답했으나 말끝을 조금 흐렸다. 거짓말은 못하는 성정이었다. 그러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한 줌 자존심마저 버리는 일이 되는 것 같아 그러기 싫었다.탁유환은 다른 말이 더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듯 잠시 그녀의 입술을 응시했다. 그리고 도복희가 아랫입술을 짓씹는 걸 보고선 별 반응 없이 시선을 돌렸다. 탁유환은 삭막한 남자들의 집의 분위기를 하루아침에 바꿔 놓은 도복희가 싫지 않았다. 아니,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마음에 들어했다. 귀찮으니 얼른 회복시켜서 내보내라며 혀를 차던 사람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상황만 봐도 마음 바꾼 게 티가 났다.삐리릭― 도어록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강은택이 돌아왔다. 거실에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강은택은 탁유환과 도복희가 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을 충분히 예상하며 집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꼴을 직접 목도하니 생각보다 더 황당해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순간 잊고 말았다.도복희는 빤히 자신을 보고만 있는 강은택에게 뭐라고 인사를 건네야 할까.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다녀…, 오셨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영 틀린 것은 아니나 정답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상황이었다.탁유환은 그걸 듣고 웃음을 터뜨렸고 강은택은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차서 실소했다.“너, 올라가.”강은택은 괜히 엄한 목소리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도복희는 ‘넵’ 하고 빠릿하게 대답한 뒤, 허리에 두른 담요를 팔랑거리며 2층에 있는 게스트룸으로 향했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계단에 꽂힌 시선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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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탁유환은 그새 방으로 들어간 건지, 거실에는 강은택이 혼자 있었다.힐끗. 강은택의 시선이 계단 아래에 선 도복희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한 소리 들을까 싶어 긴장했다.“방에서 잠이나 잘 것이지, 그 꼴로 왜 자꾸 나와.”여전히 허리에 담요를 두른 그녀의 모습을 지적하는 강은택의 말투엔 높낮이가 거의 없었다. 도복희는 그가 배려해 주는 중인지, 구박을 하는 중인지 헷갈렸다.“할 말 있냐.”그의 물음에 도복희는 슬쩍 웃었다. 도로 들어가란 말은 하지 않으니 어느 쪽이든 상관 없어졌다.“혹시 제 면허증이랑 폰 보셨어요?”마치 식구끼리 리모컨 어딨냐 묻는 것만 같은 덤덤함에 강은택이 실소했다.“허.”강은택은 바지 주머니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 있으니, 신분증이 너무도 작아 보였다. 도복희는 그것을 얼른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핸드폰은 혹시….”“그건 안 가져 갔어.”거짓말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강은택은 당황하는 도복희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오히려 물었다.“너 폰 있냐?”도복희는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떡 벌렸다. 턱을 떨어뜨린 채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제가 무슨 원시인이에요?”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톡 쏘아 붙이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강은택은 그녀의 반응이 버릇 없다고 생각하기는커녕 ‘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강은택이 웃거나 말거나 도복희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단 사실에 망연자실하며 두 손으로 제 머리를 쥘 뿐이었다. 골치 아파졌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며, 제 명의도 아닌 핸드폰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저 어디서 치였어요? 거기 혹시 떨어져 있지 않을까요?”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물었지만, 강은택은 고개를 저었다.“없었어.”“으아악.”도복희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렸다.그때, 부엌 안쪽에서 최지호가 제 품에 꽉 찰 정도로 커다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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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씨발, 어디 모자라?”충분히 모욕적인 말이었다. 강은택은 도복희가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기분 나쁜 티는 낼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말없이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사정이 있겠지. 형은 왜 또 말을 그렇게 하냐….”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최지호가 오히려 대신 따져 주었다.최지호는 잠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조심스럽게 소파 쪽으로 다가온 그는 바짝 붙어 앉지는 못하고 멀찍이 앉아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상처받았을까 걱정하는 듯했다.도복희는 입을 떼기가 어려운 듯 짧게 ‘쩝’ 하고 입소리를 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며 말문을 열었다.“일자리 구할 때까지 재워 줄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두절돼서 그래요.”그 말에 강은택은 아차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심하게 말했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사실 조금은 상처받았으리란 것도,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단 것도 눈치챘다. 강은택은 어쩐지 입안이 꺼끄러워지는 것 같아 괜히 혀로 입천장을 밀었다.“…미안.”잠깐의 정적 후에 그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강은택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도복희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이 누그러진 듯, 그녀의 표정이 미세하게 풀어졌다.“연락 두절됐다는 사람 누군데. 애인? 친구?”강은택이 불쑥 물었다. 꼭 해결해 주겠다고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그냥 아는 언니인데…, 갑자기 이럴 사람은 아니에요. 뭔가 사정이 생겼을 거예요.”도복희는 ‘그냥 아는 언니’를 대신 변호했다. 강은택이 도복희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도 딱 그거였다. 차라리 죽고 못 사는 애인이나 정말 친한 친구라서 적극적으로 대변해준다면 모를까. 듣자 하니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닌 듯한데, 왜 그렇게까지 믿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름, 나이, 사는 곳.”강은택이 신상을 묻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진짜 이렇게 엿 먹일 사람은 아니거든요.”“아, 누가 족친대? 그냥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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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가.”강은택이 최지호를 돌아보며 짧게 말했다. 최지호는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그가 동행을 요구할 거라고 예상한 듯 묵묵히 겉옷을 챙겨 들며 짧은 외출을 준비할 뿐이었다.“형, 마트로 간댔지. 그럼 내 차 타자.”최지호가 겉옷 주머니에서 잘그랑거리며 차 키를 꺼냈다. 야구모자를 아무렇게나 눌러 쓰며 현관으로 향하던 강은택이 순간 멈칫했다.“야, 설마 그거? 농담하지 마라.”“왜?”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이 동시에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타박타박 작은 발소리와 함께 도복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심우주가 사다 준 네이비 색상의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작을 줄 알았던 옷은 소재 특성상 부드럽게 늘어났다. 몸에 딱 맞게 붙은 니트는 여성스러운 라인의 장점만 살려서 훨씬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포대자루 같은 커다란 원피스가 빗물에 젖어 아무렇게나 들러붙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생각보다 좀 짧네요.”그녀는 어색해하며 원피스 끝자락을 조금 잡아 내렸다. 몸의 굴곡을 따라 천이 당겨지며 생각보다 조금 짧아졌다. 아찔할 정도로 짧은 길이감은 아니었으나 무릎이 완전히 드러나는 기장이었다. 최지호는 말없이 옅게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부담스럽지 않은 조용한 칭찬에 도복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뺨을 붉혔다.말이 없는 건 강은택도 마찬가지였으나 그의 표정은 최지호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분명 심우주의 센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강은택은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담요를 둘러 저 희멀건한 작대기 두 개를 가려 버리고 싶었지만, 각설이 같은 꼴로 마트에 데려갈 수는 없었다.집 밖으로 나온 두 남자는 그녀의 옷차림을 보느라 잠시 잊고 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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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저…, 속옷 사야 되는데요.”그의 표정을 보고서 도복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강은택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었다.“하…….”강은택은 뒤늦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그녀에게 카드를 맡기고 자신은 차에서 기다릴걸.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괜히 매장 안까지 따라 나섰다는 생각이 들었다.“…빨리 갔다 와.”그는 시커먼 카드를 도복희에게 내밀었다. 속옷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니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성 속옷 코너까지 따라 들어갈 수는 없었다.“네!”거절하지 않고 카드를 받아든 그녀가 분홍색 슬리퍼를 신은 채 속옷 매장으로 향했다.도복희가 필요한 것을 사는 동안에 시커먼 옷을 입은 커다란 남자 두 명이 먼발치 떨어져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속옷 코너는 홈웨어 코너보다 깊은 곳에 있어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레이스를 두른 마네킹이 얼핏 보이기도 해서 두 사람은 최대한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형….”“닥쳐.”그때, 강은택의 주머니가 진동했다. 탁유환에게서 온 전화였다.「저녁때가 다 됐는데 밥들 안 처먹고 어딜 갔나.」평소 같았으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애 뭐 필요하대서, 마트에.”강은택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탁유환은 ‘마트’에 갔다는 사실에 주목한 듯했다.「뭐가 필요한데.」“옷.”「옷을 왜 마트에서 사.」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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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마시던 강은택의 시선이 문득 거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는 도복희에게로 향했다. 저 커다란 소파가 전부 비어 있는데, 굳이 차갑고 딱딱한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강은택이 손에 생수병을 쥔 채 거실로 나왔다. 타박타박 맨발이 마루를 디디는 소리가 선연했다. 그는 뚱한 얼굴로 도복희를 내려다보았다.“...…왜 거기 있어.”갑작스러운 물음에 도복희가 고개를 처들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네?”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 물은 것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강은택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그녀가 앉은 바닥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다시 물을 들이키며 부엌으로 가 버렸다. 친절하게 덧붙이는 설명 따위는 없었다.도복희는 조금 멍한 얼굴로 제 주위를 둘러보았다.여기.바닥?……거실?잠깐의 고민 끝에 도복희는 해석을 마쳤다. 알아차렸다는 듯 작게 탄성을 뱉었다.“아아.”거실에 있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객식구인 자신이 거실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깨끗한 곳에서 먹고 자고 씻게 해주는데, 그깟 눈칫밥이 대수냐 싶었다.도복희는 서운함 따위 느끼지 않았다. ‘끙차’하며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계단을 오르려다 잠깐 멈췄다. 눈에 띄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도복희는 계단 한 칸에 올려놓았던 발을 다시 마루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현관 밖으로 향했다.현관문 옆에는 건물 외벽에 바짝 붙인 플라스틱 박스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한 박스에는 똑같은 투명한 생수병이 잔뜩, 다른 박스에는 소주병이나 잼이 담겨 있었을 빈 유리병 따위가 들어 있었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분리수거함이었다. 영 정리를 안 하는 편도 아닌 모양인데, 또 그렇게 열심히인 것도 아닌지 계단 한쪽에는 찌그러진 음료캔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기도 했다.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도복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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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유환은 무채색의 신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작은 초록빛을 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귀한 걸 다 주네.”탁유환은 피식 웃었다. 도복희는 그의 반응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더니, 흙이 묻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손 씻어야겠다….”그녀는 혼잣말을 하며 1층 욕실로 향했다.이내 수도꼭지에서 물 졸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콧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사 없이 그저 ‘음, 음―’같은 허밍뿐이었지만, 경쾌한 멜로디는 그녀의 기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아…. 뭔 아침부터 누가 이렇게 노래를 불러.”가장 늦게 일어난 심우주가 계단을 내려오며 장난스런 타박을 허공에 던졌다. 마침 손을 씻고 욕실에서 나오던 도복희가 그와 딱 마주쳤다.“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헙….”심우주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으나 도복희는 그제야 자신이 무심결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단 사실을 자각했다. 약간의 창피함이 그녀의 뺨에 번졌다.“죄송해요.”도복희가 머쓱한 얼굴로 사과하자 심우주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에 꽂아주었다.“그래서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데?”부드럽게 넘어가려던 심우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은택이 들으라는 식의 혼잣말을 뱉었다.“애 하나 들어왔다고 집이 이렇게 시끄러워질 일인가.”“이제야 좀 사람 사는 집 같은데, 왜.”탁유환이 보고 있던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도복희는 그들과 심우주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봤다. 심우주는 흥미롭다는 듯 의견이 부딪치는 두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고, 최지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무표정하게 주스를 마시며 핸드폰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도복희는 조용히 소파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얌전히 있기로 다짐했다. 혼난 아이처럼 바르게 앉아 무릎에 말아쥔 손을 가지런히 올리고서, 조용히 베란다 창쪽을 응시했다.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맑았다.평화로운 것도 잠시, 그녀의 시선이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담벼락 위에 앉은 파랑새에 꽂혔다. 눈이 반짝였다. 얌전히 있기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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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천국. 구인구직 앱이었다.도복희는 능숙하게 지역을 ‘해원시’로 설정하고는 구직 조건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고졸 이상, 경력 무관, 성별 무관. 아주 평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역 설정만으로는 몇백 건이 뜨던 공고가 그녀가 적용 버튼을 누르는 순간, 두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도복희는 목록을 꼼꼼하게 훑었다. 카페, 편의점, 식당 등. ‘아무거나’ 하려면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겠으나…. 허공에서 고민하던 손끝이 검색창에 ‘숙식 제공’을 입력했다.목을 쭉 빼고 그녀가 하는 것을 지켜보던 최지호는 ‘숙식 제공’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쓰여 고개를 돌려버렸다. 괜히 궁금해했다. 처음부터 보지 말걸. 그는 조금 후회했다.도복희는 또 한참 공고를 들여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단번에 딱 들어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결국 일부 조건을 포기하고 몇 개의 공고를 골랐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포스트잇에 하나씩 옮겨 적기 시작했다.전혀 관심도 없는 것처럼 신문만 들고 있던 탁유환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핸드폰을 들고서 종이에 따로 메모를 하는 도복희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별 바보를 다 보겠다’고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됐다. 잘 썼어요. 고마워요.”꼼지락거리며 열심히 따라 쓰던 도복희가 싱긋 웃으면서 최지호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아가.”“네?”“핸드폰이 없나.”“…네. 얼마 전에 잃어버렸어요.”덜렁대는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으나, 퍼붓는 빗속에서 쓰러졌던 그녀의 사정을 떠올리면 한마디 하기도 애매한 것이었다.“쯧.”탁유환은 짧게 혀를 차기만 했다. 그리고 읽고 있던 신문을 접어서 테이블에 내려두고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아가, 옷 갈아입어라. 핸드폰 사러 가게.”그의 말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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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유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화면을 툭툭 건드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어. 급하게 연락해서 미안한데.”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익숙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느긋한 말투였다.“애 옷 좀 입혀야겠다. 빨리 볼 수 있는 곳으로 두 군데 정도만 알아봐주면 좋겠군.”전화기를 든 탁유환의 시선이 흘끗 도복희에게 머물렀다.“그래. 여자애. 대충……,”그녀를 응시하던 탁유환이 뭔가 가늠하는 듯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스무 몇 살.”대충 스무 몇 살인 여자애. 역시 도복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어쩐지 매우 성의 없게 느껴지는 설명이었다. 탁유환은 몇 마디 더 나눈 뒤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까딱- 턱끝으로 현관 쪽을 가리켰다.“가지.”도복희는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차고에 세워져 있던 탁유환의 SUV는 투박한 강은택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휠까지 새까만 차는 온통 각진 형태라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인상과 잘 어울렸다.조수석에 앉은 도복희는 안전벨트를 당겨 매고 얌전히 창밖을 보았다. 앉으면서 저절로 당겨 올라간 원피스 아랫단 덕분에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운전석에 앉은 탁유환의 시선이 문득 그 허여멀건한 살갗에 닿았다.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글로브 박스를 열어 무언가 뭉툭한 덩어리를 툭- 그녀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작게 접힌 담요였다.“엇…. 고맙습니다.”그녀의 말에 탁유환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도복희는 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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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팅룸으로 들어가서 갈아입으려는 도복희의 앞을 탁유환의 커다란 손이 가로막았다.“그냥 그거 입고 움직여.”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섰다. 자신이 올 만한 곳이 아니라는 듯 두리번거리는 도복희를 두고, 탁유환은 곧장 매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행거 앞에 선 그의 손끝이 큰 고민 없이 티셔츠 하나를 툭- 건드리고, 셔츠를 툭- 건드렸다. 옷을 고른다기보다는 훑어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간결한 움직임이었다.“이 애기 사이즈 맞게 주시고.”탁유환은 몇 벌을 추려 그대로 직원에게 넘겼다. 그는 그제서야 도복희를 돌아보았다.“아가.”“네?”“신발 골라야지.”탁유환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등을 캐주얼화가 진열된 코너로 떠밀었다. 새하얀 조명 아래에 다양한 색상의 운동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도복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둘러보다가 하얀색 스니커즈 앞에 멈춰 섰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실루엣에 가벼워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한참 바라보다 문득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공이 몇 개야?”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복희는 제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 번 가격표에 붙은 숫자를 읽었다.“헐….”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신발 하나 가격이라곤 믿기 어려운 숫자였다.“아가, 가격 보라곤 안 했어.”“…….”“디자인 보고 골라야지.”탁유환은 너무도 태연하게 말했다.“…헛.”도복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비싸다고 말해 봤자 그는 또 시큰둥하게 무슨 상관이냔 식으로 반응할 것이 뻔했다. 그래. 애초에 돈을 쓰는 기준 자체가 다른 사람이다.“이게 마음에 들어요.”도복희는 결국 가격은 못 본 척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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