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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태양을 닮은 달: Capítulo 111 - Capítulo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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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나는 귀국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택시에 몸을 실어 회장님 댁으로 향했다.창밖 풍경은 분명 수없이 지나쳐온 익숙한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유리창을 스쳐가는 불빛들이 연이어 흘러가는 동안 머릿속은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처럼 어지럽고, 심장은 알 수 없는 속도로 두근거렸다.잠시 후 익숙한 대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웅장하게 뻗은 담벼락과 정갈히 다듬어진 정원수들, 그리고 밤의 적막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대문. 그 풍경은 변함없었지만, 발끝이 닿기도 전에 숨이 턱 막히듯 목이 뻣뻣해졌다."여기 맞으시죠?"택시기사가 뒷좌석을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네."짧게 대답한 뒤 요금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렸다. 차가 멀어져 가는 소리를 끝으로 주변은 금세 고요에 잠겼다.저택의 묵직한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현관 앞에서는 비서실장이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오셨습니까.""네."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집안으로 들어서자 깊은 정적이 깔린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쪽 익숙한 자리에 회장님이 앉아 계셨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서류가 펼쳐져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나는 허리를 숙였다."다녀왔습니다, 회장님."회장님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나를 바라보시더니 마침내 서류를 덮으며 천천히 고개를 드셨다. 그 순간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물건은?"나는 대답했다."청아 방 금고에 있습니다."그 짧은 대화 뒤 우리는 말없이 청아의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방 안은 오래된 시간이 그대로 봉인된 듯 청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구의 위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소품들, 벽에 걸린 사진들까지. 누군가 매일같이 정성스레 치운 듯 정돈되어 있었다.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그 공기에 휩싸였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책상 서랍을 열고 침대 밑을 살피고 옷장 구석까지 뒤졌지만 금고의 흔적은 보이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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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한참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언덕 위의 납골당이었다. 회색빛 건물은 무겁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사모님은 차에서 내리자 얼굴에 순간적인 당혹이 스쳤다."여기··· 납골당이잖아?"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앞장섰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발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그녀도 그 분위기에 눌린 듯 더 이상 묻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비석들 사이로 걸음을 멈추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기 재욱이가 잠들어 있습니다."내 말이 떨어지자 사모님의 표정이 굳었다. 놀람은 잠깐이었고, 곧 그녀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배우 박재욱?"그녀는 비웃듯 코끝을 씰룩였다."그래서 나에게 또다시 접근한 거야?"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청아는 죽음으로 사죄했습니다. 사모님도 사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잠시 침묵이 흘렀다. 납골당의 적막 속에서 그녀는 가방을 움켜쥔 채 내 앞에 발을 멈췄다가, 천천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사죄? 웃기지 마. 나도 청아를 잃었어!"사모님의 목소리는 떨림 하나 없었다. 오히려 서늘한 단정함이 감돌았다.나는 이를 악물고 한 발 다가섰다."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그러자 그녀는 짧게 비웃으며 시선을 돌렸다."김 실장, 난 이런 자리에 설 마음도 그럴 의무도 없어. 차키 줘. 난 먼저 갈게."그녀는 내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던지고 발걸음을 돌렸다.잠시 후 납골당의 적막을 가르는 차 시동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홀로 남아 무너져 내린 공기 속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끝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몇 달 뒤, 마침내 회장님의 이혼 소송이 열렸다.양측은 각자의 변호사를 대동한 채 마주 앉아 있었다. 회의실 안은 정적에 짓눌려 있었고 공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시선은 마치 창끝처럼 날카롭게 오가며, 작은 기침 소리조차 칼날 같은 긴장을 갈라놓을 것 같았다.먼저 입을 연 것은 회장님이었다."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당신이 나와 헤어지고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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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회장님은 변호사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다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변호사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챙긴 뒤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지자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정적이 깔렸다.이제 둘만 남았다.사모님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길은 회장님을 향했지만, 그 속엔 두려움과 불신이 뒤섞여 있었다.회장님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서울의 도심이 유리창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돌아보지 않은 채였다."수아가 김 실장과 사귀는 거 알고 있어?"낯선 질문이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그녀의 가슴을 베었다."뭐라고요···?"떨리는 목소리가 숨을 겨우 토해내듯 흘러나왔다. 회장님은 그제야 천천히 돌아서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차가웠다. 분노도 아니었고 슬픔도 아니었다. 그냥 차가웠다."수아랑 김 실장 둘은 이미 몸까지 섞은 사이야."사모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런데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엄마가 탐냈다는 걸 알게 되면 과연 당신을 어떻게 볼까?"그는 한 걸음씩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발자국 소리가 정적 속에서 또렷하게 울렸다."여전히 엄마로? 아니면 추한 경쟁자로?"그녀의 어깨가 움찔 흔들렸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떨림을 막을 수 없었다. 회장님은 그녀 앞에 멈춰 서서 테이블을 손으로 짚으며 단호하게 내리꽂았다."그러니 수아를 위해서라도 그냥 조용히 사라져."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사모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알았어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목소리가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오히려 그 차분함이 더 쓸쓸하게 들렸다."대신 수아한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마세요."회장님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수아가 엄마를 증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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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저 역시 사모님과 그런 관계를 맺은 이상 수아의 남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사모님은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 안에 여러 감정이 지나갔다. 안도였다가 슬픔이었다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묘한 해방감 같은 것이 번졌다."고마워."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워지네. 회장님이라는 족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실장.""네.""이제 복수는 그만하고 김 실장 인생을 살아.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그 말이 심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언가 오래된 결심이 흔들리는 듯했다. 나는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사모님은 마지막으로 희미한 미소를 남기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잘 지내."나는 그 뒷모습을 눈에 새기듯 바라봤다. ---사모님은 카페를 나오며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어깨가 한결 가벼워 보였지만, 그 뒷모습에는 어딘가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차에 올라탔고, 최 기사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어디로 모실까요, 사모님?""집으로 가게."차는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자 사모님은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풍경을 바라봤다. 초봄의 빛이 부드럽게 차창 위로 흘러들었지만, 그 눈빛은 이미 어디 먼 곳에 닿아 있는 듯했다.그 순간이었다.멀리서 커다란 덤프트럭이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왔고, 최 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체는 이미 정지선 너머로 밀려들고 있었다. 짧은 비명과 함께 세상이 뒤엉켰다."사모님!!"최 기사의 외마디가 터져 나왔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덤프트럭의 거대한 철덩어리가 승용차를 그대로 덮쳐버렸다. 파괴음이 울려 퍼지고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차체는 끔찍하게 구겨지고, 모든 소리는 한순간에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사모님의 시선은 충격의 순간 창밖을 향해 멈춰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저 먼 하늘빛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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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장례가 끝난 후 수아는 그 집을 나왔다.그리고 몇 주가 지나도 그녀는 회사도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퇴근길에 차를 그 집 쪽으로 돌렸다. 벨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현관을 열자 적막이 먼저 밀려나왔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다. 신발장 앞에 택배 상자 몇 개가 뜯지도 않은 채 쌓여 있었다. 그녀의 방 문틈으로 어렴풋한 기척만 새어 나왔다.문을 열었다. 그녀가 침대 위에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수아야!"대답이 없었다.침대 옆에 앉아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무기력한 기운이 그대로 전해졌다."왜 이러고 있어.""······.""밥은 먹었어?"역시 대답이 없었다.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음료수 한 캔과 물 한 병이 전부였다. 싱크대는 말라 있었다. 며칠이 아니라 몇 주였다.무언가 차려주고 싶었지만 차릴 것이 없었다. 나는 물컵에 물을 받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침대 옆 바닥에 상자 하나가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어두워서 보지 못한 것이었다.안에는 여자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날 사모님이 착용한 스카프, 시계...나는 물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그리고 침대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창밖이 어두워지는 것을 지켜봤다.그러다 그녀가 말했다."그냥 이대로 죽고 싶어."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더 무서웠다. 분노도 눈물도 없었다. 텅 빈 목소리였다.나는 그 말을 붙들고 씨름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라는 말도, 왜 그러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설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이미 밤이라 들어올 빛도 없었는데, 그래도 걷었다. 건너편 건물의 불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수아가 눈을 찡그렸다.나는 그 손을 잡았다."일어나.""······.""빨리 일어나."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팔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우리 바다 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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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소극장에 도착하자 좁지만 아늑한 공간이 특별한 공기로 우리를 감쌌다.입구에서 티켓을 건네받은 안내원이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무대와 가장 가까운 앞줄이었다. 지은이는 자리에 앉으며 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배우들이 다 보이겠는데.""VIP잖아."그녀는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는 동안 지은이는 프로그램 북을 펼쳐 읽고 있었다. 나는 그 옆모습을 바라봤다. 오늘 처음 봤을 때의 하얀 원피스가 소극장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또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왜?"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다 읽었어?""아니. 오빠가 계속 보길래."나는 시선을 무대로 돌렸다. 지은이는 피식 웃더니 다시 프로그램 북으로 눈을 내렸다.잠시 후 조명이 서서히 낮아졌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극장이 고요에 잠기는 순간, 지은이는 프로그램 북을 접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집중하는 자세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무대로 시선을 옮겼다.커튼이 오르며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섰다.남자와 여자였다.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이야기였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남자와, 그 남자를 기다리다 지쳐가는 여자. 그 장면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무대 위 여자 배우가 감정을 억누른 채 말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데..."남자 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를 바라봤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관객석이 조용했다. 옆에서 지은이가 숨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그때였다.팔꿈치 받침대 위에 놓인 그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를 향한 채 손끝을 가볍게 오므리고 있었다. 연극에 빠져든 채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손이었다.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손끝이 그녀의 손등에 닿는 순간 지은이의 몸이 미세하게 굳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지은이는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귀가 조금씩 붉어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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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용히 로비로 내려왔다. 지은이는 로비 한쪽 소파에 가볍게 몸을 기댔고, 나는 프런트 데스크로 걸음을 옮기며 직원을 바라봤다. "방 하나 부탁드립니다."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단단하게 울렸다. 직원은 세련된 미소를 지으며 남은 방을 확인했고,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이 잠시의 정적을 은근하게 메웠다. 키카드를 건네받고 돌아서는 순간 지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소파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방금 전 라운지에서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더 솔직하고 더 조용했다. 나는 그녀에게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지은이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얹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긴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자." 그녀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옆모습을 바라봤다. 붉은 립스틱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라운지에서 위스키를 마실 때 그렇게 됐을 것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는 함께 안으로 들어섰고, 문이 닫히자 좁은 공간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남았다.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 손을 잡고 있었다. 지은이도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상해." "뭐가." "저게 나야?" 나는 거울 속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보여?" "모르겠어. 그냥 낯설어. 근데 나쁘지는 않아."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지은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손가락을 더 끼워 넣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조용한 복도가 펼쳐졌고, 카펫이 발소리를 삼켰다. 방 앞에 멈춰 서며 키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대자 초록 불빛이 켜지며 딸깍 소리가 울렸다. 나는 문을 열고 먼저 들어서며 지은이를 돌아봤다. 그녀는 문 앞에 서 있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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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오늘은 그룹의 향방을 가를 경영전략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회장님은 오랜만에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회의실은 이미 각 계열사의 사장단과 주요 임원들로 가득 차 있었고, 묘한 긴장감이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온 매출 실적과 각 사업부의 주요 현황 보고를 마쳤다. 슬라이드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나로 옮겨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목이 바짝 말랐지만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게 마음을 다잡았다. 보고가 끝나자 회의실은 정적에 잠겼다가, 그 침묵을 깨듯 회장님이 테이블 위 서류를 천천히 덮으며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올해도 수고 많았어요. 하지만 이 정도 성과에 만족해선 안 됩니다. 특히 태양전자, 내년엔 반드시 세계 1위를 탈환해야 합니다." 태양전자 대표가 몸을 곧추세우며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다음 지시를 내리셨다. "내년 CES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신제품 공개는 김수아 부회장이 하도록 하세요." 그 순간 회의실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모든 시선이 일제히 수아에게 쏠렸다. CES 무대는 단순한 기술 발표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 시장에 회사의 미래 비전을 각인시키는 상징적 무대였다. 매년 회장님이 직접 맡아오셨던 자리를 이제 부회장이 대신한다는 것은 단순한 권한 위임이 아니었다. 경영 승계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몇몇 사장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눈빛 속엔 불안과 경계, 그리고 미묘한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회의가 끝나자 회장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수아 부회장 그리고 김 실장. 잠시 내 방으로 따라오게." 수아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 회장실의 묵직한 문이 닫히자 안에는 바람 한 점조차 스며들지 않는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아의 시선은 바닥에 붙은 듯 내려앉아 있었고, 그 표정은 결심과 긴장 사이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회장님은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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