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29 فصول

11화

휴대전화 화면을 보는 순간, 박서연은 숨을 삼켰다.[단독] 재벌가 막내아들 조정우, 과거 인기 여배우와 비밀 결혼·출산 의혹.기사 아래에는 어젯밤 병원에서 찍힌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조정우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그 곁에서 자신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그리고 세 사람이 같은 병실로 들어가는 모습까지.사진만 놓고 보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가족이었다.“이게 뭐야?”서연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분장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소속사 대표.매니저.모르는 번호.기자들의 전화까지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잠시 뒤 매니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이 당장 회사로 오랍니다.”“지금?”“네.”매니저는 난처한 얼굴로 창밖을 가리켰다.촬영장 입구에는 이미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카메라와 마이크가 줄지어 서 있었고, 누군가가 서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까지 안쪽으로 들려왔다.서연은 화면을 끄려다 멈췄다.*실시간 검색어 1위.*자신의 이름이었다.그 아래에는 조정우의 이름과 함께 ‘비밀 결혼’,‘출산’, ‘숨겨진 딸’이라는 단어들이 끝없이 따라붙어 있었다.순식간에 세상이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것 같았다.그때 문밖에서 촬영 준비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서연은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오늘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 순간부터 자신은 도망친 사람이 될 것 같았다.무엇보다 지금 이 작품을 놓칠 여유도 없었다.“촬영할게요.”매니저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지금요?”“네.”서연은 거울을 향해 앉았다.부어 있던 뺨 위로 화장이 덧씌워졌다.울고 싶은데도 웃어야 했다.무너지고 싶은데도 카메라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해야 했다.그렇게 촬영장에 들어섰을 때, 윤도운은 이미 자리에 와 있었다.그는 서연을 한 번 바라본 뒤 대본으로 시선을 내렸다.“시작하지.”그 말뿐이었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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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그럼 아이 아빠는 누구입니까?”그 질문이 떨어진 뒤, 기자회견장은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박서연은 마이크 앞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말할 수 없었다.수십 개의 카메라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플래시가 한 번 터질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조여 왔다.이곳에 없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그리고 그 아이의 존재를 아직은 알지 못하는 남자.“개인적인 부분이라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겨우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조정우 씨가 아니라면 다른 남성이 있다는 뜻입니까?”“아이의 친부가 연예계 관계자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박서연 씨, 직접 해명해 주시죠.”질문이 쏟아질수록 서연의 손끝이 점점 굳어 갔다.결국 소속사 직원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문이 닫히자마자 참아 왔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다음 날 아침, 서연은 소속사 대표의 호출을 받았다.책상 위에는 계약서와 몇 장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대표는 그중 하나를 들어 보였다.“광고 세 군데 취소됐어.”서연의 눈이 흔들렸다.“이미 찍은 캠페인도 재논의 들어갔고.”대표는 서류를 넘겼다.“이게 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서연은 말없이 종이 위의 숫자를 바라봤다.위약금.계약 해지.손해배상.그 단어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숨이 막혔다.“대표님.”“이번 작품도 생각해 봐야 해.”서연이 고개를 들었다.“하차하라는 말씀이세요?”“내가 그런 말까지 하진 않았어.”대표는 의자에 기대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제작사도 부담스럽지 않겠어?”서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지금 자신이 붙잡고 있는 작품까지 놓치면 남는 것이 없었다.아이의 병원비도.밀린 생활비도.그동안 어떻게든 버티며 쌓아 온 모든 것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그때 문이 열렸다.조정우였다.“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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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울지 마.”서연은 젖은 얼굴로 윤도운을 올려다봤다.비는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고, 우산 끝에서는 빗물이 끊임없이 떨어졌다.도운의 어깨도 이미 젖어 있었다.그런데도 그는 자신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지 않았다.서연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당신이 뭔데.”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내가 우는 걸 싫어하든 말든.”도운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조금 전 그가 한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네가 우는 모습, 내가 제일 싫어해.그 말을 왜 기억하고 있었는지.왜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냥 가요.”“비 오잖아.”“그래서요.”“집까지 걸어갈 거야?”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도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차문을 열었다.“타.”“안 타면요?”“그럼 여기서 계속 울든가.”서연의 눈썹이 움직였다.“누가 울어요.”“방금 울었잖아.”“그건…….”말끝이 흐려졌다.도운의 입가가 아주 잠깐 움직였다.그 모습이 더 얄미워서 서연은 결국 차에 올라탔다.문이 닫히자 세상과 자신 사이에 벽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차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엔진 소리와 와이퍼가 유리를 훑는 소리만 이어졌다.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서연은 창밖만 바라봤다.얼굴이 뜨거웠다.윤도운 앞에서 울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부끄러웠다.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여섯 해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도운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그런데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 순간, 그의 시선이 무심코 조수석 쪽으로 향했다.서연의 손이었다.무릎 위에 올려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처음에는 추워서 그런 줄 알았다.하지만 차 안은 따뜻했다.그녀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조차 모르는 듯했다.도운은 한동안 그 손을 바라봤다.무슨 일만 생기면 괜찮다고 말하던 여자였다.혼자서 다 할 수 있다며 자신을 밀어냈고, 아픈 내색조차 쉽게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손끝 하나까지 지쳐 있었다.도운은 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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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어머니가 박서연을 만났다고?”윤도운의 시선이 비서에게 머물렀다.비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정확한 내용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언제.”“박서연 씨가 잠적하기 이틀 전입니다.”도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틀 전.그는 그날을 아직도 기억했다.반지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촬영이 끝나면 서연에게 가서 청혼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그보다 먼저 박서연이 사라졌다.전화는 꺼져 있었고, 집은 비어 있었다.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서연은 돌아오지 않았다.남은 것은 짧은 메시지 하나뿐이었다.우리 그만하자.그것이 전부였다.도운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그날 만난 장소는?”“찾아보겠습니다.”“그리고.”그가 고개를 들었다.“당시 매니저도 찾아.”오래전 박서연의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켰던 사람이 있었다.그녀가 사라지기 전까지 모든 일정을 관리했고, 마지막 날에도 서연과 함께 있었다.며칠 뒤, 도운은 어렵게 그를 만났다.한참 만에 만난 전 매니저는 도운을 보자마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일은 왜 이제 와서.”“왜 아무 말도 안 했습니까?”“뭘 말해요.”“서연이 사라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남자는 시선을 피했다.도운은 그 짧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알고 있었네요.”“아닙니다.”“그럼 왜 눈을 피합니까?”전 매니저의 입술이 굳었다.잠시 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도운의 몸이 굳었다.“누가 시켰습니까?”“이사님.”남자는 고개를 저었다.“그 이상은 묻지 마세요.”“누가 시켰냐고.”“말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도운의 눈빛이 흔들렸다.“누구한테.”그러나 남자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낮게 말했다.“그때 박서연 씨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그 말이 도운의 발목을 붙잡았다.“뭐라고요?”“그 여자.”남자는 잠시 망설였다.“이사님 생각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떠난 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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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오랜만이야, 박서연.”서연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본 채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그때의 약속, 아직 지키고 있는 거지?”고작 두 줄이었다.그런데 그 짧은 문장이 다섯 해 전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그날 이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던 시간이었다.윤도운을 떠나던 날도.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등을 돌리던 순간도.그리고 뱃속의 아이를 혼자 지키겠다고 결심했던 날도.서연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손끝이 계속 떨렸다.이제 와서 왜 다시 나타난 걸까.아니, 정말 그 사람이 직접 보낸 것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그 약속이 깨졌다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었다.윤도운과 다시 만나고 있다는 것.그의 곁으로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그리고 어쩌면 유나의 존재까지.서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그 순간, 병실 안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서연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자신에게는 아이가 있었다.유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다.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유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작은 손이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서연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을 이불 안으로 넣었다.“엄마가 미안해.”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조금 전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공포가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미안함이었다.유나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자신의 과거 때문에 아이까지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한참 뒤, 서연은 병실 밖으로 나왔다.복도 끝에 조정우가 서 있었다.그는 벽에 기대어 서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안 갔어?”“갈까 하다가.”“왜?”정우는 잠시 웃었다.“네 얼굴이 너무 엉망이라.”서연이 피곤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나 괜찮아.”“그 말 좀 그만해.”정우의 표정에서 웃음이 지워졌다.서연도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그런데도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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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강혜원과 윤도운의 열애설은 그날 밤부터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부인하지 않는다는 소속사의 입장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침묵 자체를 인정으로 받아들였다.박서연도 기사를 봤다.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두 사람이 사귀든 말든 이제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그런데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에도 기사 제목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윤도운.강혜원.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서연은 결국 화면을 꺼 버렸다.그러고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유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오늘만큼은 아이를 꼭 직접 데리러 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촬영이 예상보다 길어졌다.결국 도우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유나 데리고 바로 집으로 와.”통화를 마치기 전까지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걱정하지 마세요.”도우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잘 데리고 올게요.”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유나는 돌아오지 않았다.서연은 처음에는 교통이 막혔나 싶었다.하지만 십 분이 지나고.이십 분이 지나도.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불안해진 서연이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은 몇 번 울리다가 끊겼다.다시 걸었다.이번에는 받았다.“유나 어디 있어요?”“저…….”도우미의 숨이 가빠져 있었다.서연의 얼굴이 굳었다.“지금 어디예요?”“죄송해요.”“유나 어디 있냐고요.”“잠깐, 정말 잠깐 눈을 돌렸는데.”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무슨 말이에요?”“아이가 없어요.”그 순간, 세상의 소리가 전부 멀어졌다.서연은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뭐라고요?”겨우 나온 목소리는 낯설 만큼 떨렸다.“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찾고 있어요.”“어디예요.”“서연 씨.”“지금 어디냐고요!”서연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그녀는 가방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갔다.어린이집 앞에 도착했을 때 도우미는 이미 울고 있었다.“정말 죄송해요.”서연은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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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아저씨…….”유나의 목소리가 윤도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도운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작은 손이 그의 셔츠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겁에 질린 아이의 몸이 가늘게 떨릴 때마다,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뛰던 자신의 심장도 다시 거칠게 요동쳤다.정신을 차려야 했다.아이를 데리고 있던 남자는 경찰이 도착하자마자 붙잡혔다.그러나 도운에게는 그 뒤의 상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유나가 무사하다는 사실.그것 하나만 머릿속을 맴돌았다.“다친 데는 없어?”도운이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유나는 울다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무서웠어.”짧은 한마디였다.그런데 도운의 가슴이 내려앉았다.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등을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이제 괜찮아.”말을 내뱉고 나서야 도운은 멈칫했다.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유나의 엄마도 아니었다.보호자도 아니었다.그저 박서연의 딸일 뿐이었다.그런데 아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촬영을 멈춘 것도.경찰보다 먼저 뛰쳐나온 것도.골목과 공원을 미친 듯이 뒤진 것도.모두 너무 자연스러웠다.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처럼.그게 이상했다.병원으로 옮긴 뒤에야 도운은 겨우 유나를 서연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서연은 아이를 보는 순간 그대로 무너졌다.“유나야.”목소리가 갈라졌다.유나는 엄마를 보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서연은 아이를 끌어안고 연신 이름을 불렀다.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도운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복도로 나왔다.숨이 막혔다.조금 전까지 자신을 붙잡고 있던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도운은 텅 빈 복도를 한참 걸었다.그러다 벽에 기대 선 채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을 켰다가 다시 껐다.그리고 문득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유나의 나이.서연과 헤어진 시점.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날짜를 하나씩 끌어왔다.“말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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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아저씨?”유나의 목소리에 윤도운은 문고리를 잡은 채 멈춰 섰다.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손에 들고 있던 곰인형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도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안 잤어?”“깼어.”유나는 도운의 손을 바라봤다.그러다 곰인형을 발견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거 뭐야?”도운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그냥.”“내 거야?”“아니면 내가 가지고 놀겠냐.”유나가 웃었다.그 작은 웃음에 도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그의 옷을 붙잡고 울던 아이였다.그런데 곰인형 하나에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도운은 곰인형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유나는 곧장 품에 끌어안았다.“고마워.”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도운은 괜히 시선을 피했다.“이제 자.”“아저씨.”“왜.”유나가 곰인형의 귀를 만지작거렸다.“내일도 와?”도운의 눈썹이 움직였다.그는 대답하지 못했다.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오늘 일은 끝났다.유나는 무사했고, 서연도 곁에 있었다.그런데도 아이가 기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쉽게 등을 돌릴 수 없었다.“일단 자.”유나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곰인형을 꼭 안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도운은 병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그리고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유나의 실종 사건은 결국 언론에까지 흘러 들어갔다.기사 제목에는 박서연의 이름과 함께 윤도운의 이름도 언급됐다.‘윤도운, 전 연인 박서연의 딸 직접 구조.’‘유명 배우 윤도운, 아동 실종 사건에 직접 뛰어든 이유는?’기사들은 순식간에 퍼졌다.박서연의 과거.조정우와의 관계.유나의 친부를 둘러싼 추측까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촬영장 분위기도 어수선해졌다.서연은 대기실에서 휴대전화를 꺼 버렸다.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그날 오후, 촬영장에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서미란이었다.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스태프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모였다.고급스러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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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이번엔 아이까지 있으니, 값을 더 쳐줘야겠지?”서미란의 손끝에서 봉투가 천천히 서연 쪽으로 밀려왔다.두툼했다.봉투 하나가 테이블 위를 스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서연의 기억도 다섯 해 전으로 돌아갔다.그때도 이런 식이었다.윤도운의 어머니는 자신을 불러냈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돈을 내밀었다.도운과 헤어져 달라고.그의 인생에 더는 나타나지 말라고.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은 임신 사실까지 알게 됐다.혼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더 무서웠던 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그래서 도망쳤다.도운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그의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지도 묻지 못한 채.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서연의 시선이 봉투에서 천천히 올라갔다.“이거 가져가세요.”서미란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뭐라고?”“필요 없어요.”“5년 전에는 받았잖아.”“그때는 제가 어렸으니까요.”서연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그대로 서미란 앞으로 밀어놓았다.“겁도 많았고.”한때는 이 사람의 말 한마디가 자신의 인생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혼자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다.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을.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그리고 이제는 자신 하나만 책임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서미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박서연.”“5년 전에는 지킬 게 없어서 도망쳤어요.”서연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가 지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죠.”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유나의 얼굴이 떠올랐다.병원 침대에 누워 곰인형을 안고 있던 아이.자신을 보자마자 엄마라고 부르며 울던 작은 얼굴.“그런데 이제는 달라요.”서미란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이제는 지킬 게 있어서 도망치지 않습니다.”그 순간이었다.건물 모퉁이 너머에서 걸음을 멈춘 사람이 있었다.윤도운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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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그날 사모님이 시킨 건…… 그것 하나가 아니었어요.”그 말을 남긴 남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서연의 친구가 몇 번이나 뒤를 따라붙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못할 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친구는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그리고 곧장 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방금 그 사람 만났어.”촬영 준비 중이던 서연이 대본에서 시선을 들었다.“누구?”“5년 전에 서미란 여사 옆에 있던 비서.”서연의 손끝이 멈췄다.친구는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뭔가 더 있어.”“무슨 말이야?”“그날 네가 사모님을 만난 날.”친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 사람이 그러더라. 사모님이 시킨 게 하나가 아니었다고.”서연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다섯 해 동안 자신은 하나의 사건만 기억하며 살아왔다.윤도운의 어머니가 자신을 불렀고.돈을 내밀었고.도운에게서 떠나라고 말했다.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더 있었다면.그날 이후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 중 일부가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더 알아봐.”서연이 어렵게 말했다.“응?”“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누굴 만나는지.”“서연아.”“나도 알아야겠어.”그녀는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내 인생에서 뭘 빼앗겼는지.”그날 이후.박서연의 이름은 전혀 다른 이유로 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며칠 전 촬영했던 장면이 SNS에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억울한 누명을 쓴 여자가 자신을 짓밟은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무너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짧은 영상은 순식간에 수백만 조회 수를 넘겼다.댓글도 쏟아졌다.‘박서연 연기 왜 이렇게 잘해?’‘이 장면 보고 소름 돋았다.’‘하차 얘기 나오던 배우 맞아?’‘다음 화 기다리는 중.’그리고 그 반응은 실제 일로 이어졌다.한동안 끊겼던 광고 제안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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