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9

29 فصول

21화

“결과는… 무조건 ‘아니다’로 나와야 해요.”통화가 끝난 뒤에도 강혜원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창밖으로 스쳐 가는 불빛이 차창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친자 확인 검사.그것만 막으면 됐다.유나가 윤도운의 아이가 아니라는 결과만 나오면,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도운이 박서연을 의심하는 일도.그 아이에게 이상할 만큼 마음을 쓰는 일도.더 이상 계속될 필요가 없었다.강혜원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상대가 약속한 돈과 처리 방법을 다시 확인하자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실수하지 마세요.”그리고 전화를 끊었다.며칠 뒤.친자 확인 검사가 진행되는 병원.박서연은 유나의 손을 꼭 잡고 접수처 앞에 서 있었다.유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엄마.”“응.”“우리 왜 병원 왔어?”서연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네 아빠가 누구인지 확인하러 왔다고?네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사람이 정말 네 아빠인지 확인해야 한다고?“검사 하나 하러 왔어.”결국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안 아파?”“조금만 참으면 돼.”“그럼 나 울어도 돼?”서연은 애써 웃었다.“울어도 돼.”유나가 작게 웃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서연의 가슴이 아려 왔다.아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그런데 어른들의 욕심과 거짓말 사이에서 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끌려다니고 있었다.그때였다.복도 반대편에서 윤도운이 걸어왔다.서연과 눈이 마주쳤다.두 사람 모두 잠시 멈췄다.검사에 동의한 것은 자신들이었다.그런데 막상 이곳에서 마주하자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도운이 먼저 유나를 바라봤다.“무서워?”유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러다가 작게 덧붙였다.“조금.”도운은 잠시 망설였다.그러더니 유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도 병원 싫어했어.”유나가 눈을 크게 떴다.“아저씨도?”“응.”“근데 아저씨 어른이잖아.”“어른도 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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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친자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박서연은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내려다봤다.짧은 문장이었다.그런데 눈으로 읽고도 뜻이 들어오지 않았다.아니라고?유나와 윤도운 사이에 친자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서연은 다시 메시지를 읽었다.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았다.손에서 휴대전화가 미끄러질 것 같았다.그녀는 급히 소파에 앉았다.머릿속이 새하얘졌다.검사 결과가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유나의 아버지는 윤도운이었다.그 사실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도운과 헤어진 뒤 다른 남자를 만난 적도 없었다.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은 가장 먼저 그 사실을 떠올렸다.윤도운의 아이였다.그런데 왜.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병원 이름.검사 날짜.자신의 이름.유나의 이름.모두 맞았다.그럼에도 결과만은 믿을 수 없었다.유나가 방에서 나왔다.“엄마.”서연은 급히 휴대전화를 뒤집었다.“응.”“아저씨한테 전화 왔어?”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왜?”“검사하면 뭐 나오는지 알려준다고 했잖아.”서연은 유나의 얼굴을 바라봤다.아이는 아무것도 몰랐다.오늘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크게 흔들렸는지도.서연은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유나야.”“응?”“엄마가.”말을 꺼내려다 멈췄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검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당장 다시 검사하겠다고 나서면 모든 것이 다시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유나의 이름이 또 기사에 오르내릴지도 몰랐다.강혜원.서미란.그리고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누군가까지.이미 유나는 한 번 낯선 사람에게 끌려갔다.그 어린아이가 또다시 어른들의 싸움 한가운데 놓이는 건 견딜 수 없었다.서연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이의 등을 쓸어내렸다.“아무것도 아니야.”그 말이 가장 아팠다.한편 윤도운은 촬영장 대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그의 휴대전화에도 같은 문자가 떠 있었다.친자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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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아저씨!”복도 끝에서 유나가 두 팔을 흔들며 달려왔다.윤도운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생각했다.이제 끝이라고.검사 결과도 나왔고, 유나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그러니 더 이상 박서연의 삶에 발을 들일 이유도 없었다.그런데 아이는 그런 그의 결심을 알 리 없었다.“아저씨!”유나는 가까이 다가와 그의 앞에 멈췄다.숨이 조금 찬 듯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도운은 본능처럼 손을 내밀 뻔했다.그러다 겨우 멈췄다.“뛰지 말랬지.”유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복도에서는 뛰면 안 돼.”“아저씨가 나 안아줄 줄 알고.”그 말에 도운의 표정이 굳었다.유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평소 같았으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을 사람.곰인형도 사 줬고, 놀이터에서 자신을 구해 준 사람.그런데 오늘의 도운은 어딘가 달랐다.“검사 끝났어?”유나가 물었다.도운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응.”“그래서?”“그냥 검사 끝났어.”“뭐가 나왔는데?”그 작은 질문 하나가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도운은 유나를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내 아이가 아니다.그러니 이 아이에게 괜한 기대를 심어 줘서는 안 된다.“별거 아니야.”그는 그렇게 말한 뒤 유나의 곁을 지나쳤다.몇 걸음 걷고 나서야 뒤쪽이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평소라면 또 이름을 불렀을 아이였다.그런데 돌아보지 않았다.돌아보면 안 됐다.도운은 그대로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그날 이후, 그는 의도적으로 유나와 거리를 뒀다.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서연이 아이를 데리고 현장에 오는 날이면 일부러 다른 대기실로 들어갔다.복도에서 마주칠 것 같으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유나가 자신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윤도운 아저씨 어디 있어요?”하고 묻는다는 말을 들어도.그는 듣지 못한 척했다.며칠 뒤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사님, 유나 얘기는 진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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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빨리 나아.카드에는 단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박서연은 한참 동안 그것을 손에 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윤도운이었다.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대본 귀퉁이에 메모를 남길 때도, 서류에 사인을 할 때도, 그는 글자를 조금씩 눌러 쓰는 버릇이 있었다.특히 마지막 글자의 획을 길게 빼는 습관까지.서연은 카드를 다시 뒤집어 봤다.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익명으로 보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 확실했다.유나는 장난감을 품에 안고 물었다.“엄마, 이거 누가 보낸 거야?”서연은 아이를 바라봤다.“글쎄.”“윤도운 아저씨?”그 이름이 나오자 서연의 손끝이 굳었다.“왜 그렇게 생각해?”“그냥.”유나는 곰인형과 새 장난감을 번갈아 바라봤다.“아저씨가 나 좋아하잖아.”서연은 대답하지 못했다.친자 관계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 뒤였다.윤도운은 유나에게서 거리를 뒀다.마주쳐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일부러 바쁜 척 자리를 피했다.그런데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 하나에 약과 장난감을 보냈다.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서연은 그 모순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다음 날.그녀는 촬영장 곳곳을 돌아다니다 윤도운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발견했다.망설이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에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잠시 뒤 옥상 문이 열렸다.도운은 난간 근처에 서 있었다.서연이 문을 닫는 소리에 그가 돌아봤다.“여긴 왜 올라왔어?”서연은 대답 대신 손에 쥔 카드를 내밀었다.도운의 시선이 카드로 향했다.그리고 아주 잠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그것으로 충분했다.“맞네.”서연이 말했다.“뭐가.”“이거 당신이 쓴 거잖아.”도운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서연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익명으로 보낸 것도 당신이고.”“서연아.”“왜?”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왜 이렇게까지 해?”도운이 시선을 피했다.“애가 아팠다니까.”“그래서 약을 보내?”“그럼 아픈 애한테 뭘 보내.”“친자 아니라면서.”그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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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옥상에서 내려온 뒤에도 박서연은 한동안 윤도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5년 전, 그가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었다.반지를 샀다고 했다.함께 살 미래를 생각했다고 했다.그런데 자신은 그 모든 걸 알지 못한 채 그의 곁을 떠났다.아니.떠났다고 믿었다.도운이 먼저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으니까.더 이상 연락하지 마.우리 여기까지 하자.그날 휴대전화에 도착했던 메시지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그런데 윤도운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서연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혹시.그 문자도 누군가가 건드린 거라면?서미란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날 자신에게 돈을 내밀던 여자.아들과 헤어지라고 말하던 여자.그리고 얼마 전, 전 비서가 남긴 말까지.그날 사모님이 시킨 건 그것 하나가 아니었어요.서연은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동시에 무서웠다.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지난 다섯 해가 전부 뒤집힐지도 몰랐다.그때 매니저가 그녀를 불렀다.“서연 씨, 감독님 찾으세요.”서연은 복잡한 생각을 밀어냈다.지금은 촬영이었다.생각할 시간도, 흔들릴 여유도 없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촬영장 분위기는 며칠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봤어요?”“시청률 또 올랐대.”스태프들이 모여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서연이 가까이 다가가자 매니저가 환하게 웃었다.“서연 씨.”그는 화면을 내밀었다.“두 자릿수 넘었어요.”서연의 눈이 조금 커졌다.드라마는 어느덧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초반만 해도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해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박서연의 하차설까지 겹치면서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했다.하지만 그녀의 복수 장면이 화제가 된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매회 시청률이 올랐다.온라인 영상 조회 수도 크게 뛰었다.무엇보다 박서연의 이름이 더 이상 스캔들이 아닌 연기와 함께 언급되기 시작했다.“축하해요.”윤도운이었다.언제 다가왔는지 알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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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오빠는 대체 언제부터 나보다 그 여자였어?”강혜원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윤도운은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언제부터였을까.박서연을 다시 만난 순간부터였는지.유나를 처음 본 날부터였는지.아니면 다섯 해 전, 그녀가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진 뒤에도마음 한구석에 끝내 지워지지 않은 자리를 남겨 둔 때부터였는지.도운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혜원아.”“아니라고 해.”강혜원이 그의 말을 끊었다.“내가 잘못 생각한 거라고 말해.”도운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 짧은 망설임이 혜원의 얼굴을 무너뜨렸다.“봐.”그녀가 허탈하게 웃었다.“예전 같았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 텐데.”도운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지금은 박서연 얘기랑 이 문제를 섞지 마.”“왜 못 섞는데?”“혜원아.”“오빠가 먼저 그 여자 편 들었잖아.”그 말에 도운의 표정이 굳었다.“편든 게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려는 거야.”“사실?”강혜원이 웃었다.그러나 눈가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오빠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었는데.”도운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그대로 대기실을 나왔다.강혜원은 혼자 남은 공간에서 한참 문 쪽을 바라봤다.박서연.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자신이 그렇게 오래 곁에 있었는데.윤도운은 단 한 번도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다.그런데 박서연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고.아이까지 데리고 돌아왔다.친자 관계가 아니라는 결과까지 나왔는데도.윤도운의 시선은 여전히 그 여자에게 향하고 있었다.강혜원은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이번에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그 시각.박서연은 조정우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무슨 일이에요?”잠시 동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평소의 조정우라면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가벼운 농담부터 던졌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정우 씨?”“미안한데.”그가 늦게야 입을 열었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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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이제 진짜 이름을 돌려줘도 될 때가 된 것 같네.”조정우의 말이 끝난 뒤에도 박서연은 한동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사람들 앞에서는 조정우의 아내처럼 불렸고.필요할 때마다 서로의 이름을 빌려 썼다.그렇게 시작한 관계였다.하지만 그 시간 동안 조정우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오히려 자신과 유나가 세상에 밀려날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그래서 서연은 그를 바라보며 쉽게 반지를 뺄 수 없었다.“정말 괜찮아요?”조정우가 웃었다.“뭐가.”“이렇게 끝내도.”“원래 계약이었잖아.”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서연은 그 미소가 평소보다 조금 더 힘겨워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그래도.”“서연아.”조정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너,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서연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내가 시작한 일이야.”“정우 씨.”“그리고.”조정우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남겼다.“이제는 너도 네 이름으로 살아야지.”그 말에 서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조정우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오히려 그녀가 먼저 돌아설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났다.그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며칠 뒤.박서연과 윤도운의 화보 촬영이 진행되는 날이었다.두 사람이 나란히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촬영장 밖까지 관심이 쏠렸다.서연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그런데 집에서 막 나서려던 순간, 유나가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엄마.”“왜?”“오늘도 촬영 가?”“응.”“나도 가면 안 돼?”서연은 난처한 얼굴이 됐다.“오늘은 오래 걸릴 텐데.”“나 조용히 있을게.”유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진짜로.”서연은 한참 아이를 바라봤다.요즘 유나는 유난히 자신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윤도운과도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검사 결과가 나온 뒤부터였다.아이는 정확한 내용을 모르면서도 어른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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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내일 바꿀 거야.”윤도운은 그렇게 말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휴대전화 화면은 그대로였다.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진 사람들.유나가 자신을 가리키며 아저씨라고 불렀던 그림.그 옆에는 박서연이 있었고, 유나도 있었다.도운은 몇 번이나 화면을 바꾸려 했다.그러나 설정창을 열었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누르지 못했다.“진짜 안 바꾸시네요?”옆에서 매니저가 슬쩍 말했다.“조용히 해.”“아니,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도운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때였다.대기실 밖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윤도운 씨, 후보 명단 나왔습니다.”도운이 고개를 들었다.연말 시상식 후보 발표였다.그가 출연 중인 드라마는 예상보다 훨씬 큰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박서연의 연기와 두 사람의 재회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드라마는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상승세를 이어 갔다.결국 작품상 후보.그리고 남녀 주연상 후보까지.윤도운과 박서연의 이름이 나란히 올랐다.며칠 뒤.연말 시상식이 열리는 날.박서연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따라 길게 흘렀고, 메이크업을 마친 얼굴에는 평소보다 더 짙은 긴장이 어려 있었다.매니저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괜찮아요?”“응.”“긴장돼요?”서연은 작게 웃었다.“조금.”후보에 오른 것이 싫지는 않았다.오히려 배우로서 누구보다 기쁜 일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단순히 상을 받는 자리만은 아니었다.수많은 카메라 앞에 다시 서야 했다.그리고 윤도운과 함께.그 이름만 떠올려도 서연의 마음은 복잡해졌다.5년 전의 진실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친자 확인 결과 역시 믿을 수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은 지금 세상 앞에서 다시 같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서게 됐다.잠시 후.레드카펫 입구에 윤도운이 모습을 드러냈다.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그리고 조금 뒤.박서연의 이름이 호명됐다.서연은 천천히 카펫 위로 걸어 나갔다.카메라가 그녀를 향했다.사방에서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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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뭔가 이상해.”친구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박서연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는 몇 장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난 다섯 해를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흔적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검체 번호 하나가 달랐다.결과지에 적힌 날짜도 자연스럽지 않았다.그러나 그것만으로 무언가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서연은 조심스럽게 서류를 다시 내려놓았다.“확실한 건 아니잖아.”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응.”“병원에서 실수했을 수도 있고.”“그럴 수도 있어.”“그러니까 아직은.”서연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아직은 아무것도 믿지 말자고.아직은 또다시 기대하지 말자고.그렇게 말하려 했는데, 정작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을 설득하지 못했다.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다시 확인해 볼까?”서연은 눈을 감았다.그 순간 윤도운의 얼굴이 떠올랐다.유나를 바라보던 눈.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오던 모습.친딸이 아니라는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도 끝내 등을 돌리지 못했던 사람.“모르겠어.”서연이 겨우 입을 열었다.“확인하는 게 무서워.”친구의 표정이 조용히 가라앉았다.서연은 애써 웃어 보였다.“진짜면 어떡해.”그 말 뒤에 숨은 뜻을 친구는 굳이 묻지 않았다.진짜라면 윤도운은 유나의 아버지였다.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믿어 온 모든 것이 틀렸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아니라면.서연은 또 한 번 자신이 품었던 기대를 제 손으로 묻어야 했다.“일단.”친구가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병원 쪽 기록부터 다시 확인해 보자.”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장 윤도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확인되지 않은 가능성 하나를 들고 그의 마음까지 흔들 자신도 없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그날 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아직은.정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으니까.같은 시각.서미란은 시상식장에서 찍힌 사진을 다시 보고 있었다.사진 속 윤도운은 유나의 나비넥타이를 고쳐 주고 있었다.그 아이가 웃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풀려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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