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Capítulo 91 - Capítulo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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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라리엘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저게 마왕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사상 초유의 건국제 사태에 대해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공작부인 때문에 다 죽는 줄 알았노라고.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도 에르딘은 서린을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불편해진 서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니…… 황녀가 잘못한 거잖아.”에르딘이 눈만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아니. 옷을 벗은 게 잘못이다.”서린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치켜올렸다.“네가 쓸데없이 파인 옷을 입어서…… 하…… 됐다.”에르딘은 손에 힘을 주며 서린을 더 꽉 끌어안았다.살벌한 살기에 서린은 자신이 황녀에게 했던 말이 잘못된 건가 착각했다.자신의 옷이 도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그나저나 언제까지 안고 갈 생각인 건지.놔줬으면 하는데.“언제까지 안고 갈 건데?”에르딘이 무심하게 대꾸했다.“네 침실까지.”서린이 경기했지만 에르딘은 오히려 그녀를 더 꽉 안을 뿐이었다.그날 저택 사람들은 누에고치처럼 꽁꽁 말려 들어오는 공작부인을 금기어처럼 쉬쉬거렸다.결국 침실까지 직행한 두 사람.서린을 꽁꽁 가둔 옷은 좀처럼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갑갑해.”“안 돼.”오히려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미는 에르딘.일렁이는 눈으로 서린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안 돼.”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에르딘.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서린은 눈치가 보였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이제 어떻게 하지?”에르딘의 눈동자에 비친 서린이 초조해 보였다.“뭘.”“마왕…….”서린은 홧김에 마왕의 이름을 말해 버린 것을 후회했다.에르딘이 그토록 고생하며 숨겨 왔던 일이었는데.“리셋할까?”그 말에 에르딘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방 안에 또다시 그의 살기가 흩뿌려졌다.서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에르딘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런 모욕까지 참아 냈는지, 저 여자가 아직도 모른다는 사실에 손끝이 떨렸다.떨리는 손으로 서린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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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우걱우걱 마카롱을 씹던 아스란이 담담하게 말했다.“생각보다 먹을 만한데? 저놈은 왜 저러는 거냐.”그 순간 에르딘의 살기가 잠시 북부의 겨울을 불러온 듯 서늘하게 퍼졌다.하지만 마카롱을 들고 ‘흐음.’ 하며 행복하게 먹는 서린을 보자 살기는 거짓말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오늘도 고양이를 바라보는 집사처럼 마카롱 하나를 집어 다시 서린의 입에 넣어 주었다.아스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러다 아까부터 같은 자세로 굳어 있는 세레나를 보고 문득 깨달았다.‘아, 내가 뺏어 먹어서 그러는군.’아스란은 새 마카롱 하나를 집어 이번에는 세레나의 입 앞으로 내밀었다.세레나의 얼굴은 어느새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져 있었다.“제! 제가 먹을게요.”황급히 받아 들려던 손끝이 아스란의 손과 스치자 세레나는 화들짝 놀라 마카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몸을 숙이려는 그녀를 아스란이 가볍게 말렸다.“그냥 이걸 먹어라.”새 마카롱을 다시 건네는 아스란.분홍 마카롱이 세레나를 먹는 건지, 세레나가 분홍 마카롱을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그런데 이제 어쩌죠. 제가 계획을 다 망쳤어요.”분위기를 깨듯 서린이 갑자기 고해성사를 했다.그래.서린은 눈치가 없었다.“어쩔 수 없이 다시 원점이지. 마왕 소환법을 다시 알아보겠다.”아스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서린은 괜히 에르딘의 눈치를 보며 마카롱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미안해… 에르딘.”“됐다.”에르딘마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오히려 서린의 죄책감만 더 커졌다.“매운 거! 매운 거 먹어야겠어!”스트레스가 꼭대기까지 치솟은 서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축제의 매운 음식을 찾아 일행도 함께 움직였다.에르딘은 따라가던 중 노점상에서 네잎클로버 핀 하나를 발견했다.피식 웃은 그는 핀을 하나 사더니 성큼성큼 서린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머리에 직접 꽂아 주었다.서린은 놀라 핀을 만지작거리다 네잎클로버 모양이라는 걸 알아챘다.무의식적으로 세레나를 바라봤지만 세레나는 아스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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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까치발을 들어 먼저 한 번 더 입을 맞췄다.에르딘의 눈동자에 잔잔한 파문이 번졌다.오늘따라 사랑스러운 서린의 속을 하나하나 전부 들여다보고 싶은 에르딘이었다.장엄한 불꽃놀이가 끝나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인파가 뒤엉켰고, 네 사람도 서로 떨어졌다.그때.서린은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느닷없이 누군가 입을 틀어막았다.눈을 크게 뜬 순간 시야가 까맣게 꺼졌다.괴한들은 정신을 잃은 서린을 들쳐 업고 인파의 반대 방향으로 조용히 사라졌다.“델리아!!”에르딘은 사람들 사이를 미친 듯 둘러봤다.사람이 너무 많아 보이지 않았다.“델리아!!!”목이 터져라 불러 보았지만 함성에 묻혀 버렸다.에르딘은 사람들을 거슬러 뛰기 시작했다.그냥 길을 잃은 느낌이 아니었다.황녀의 반격.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이래서 붙어 있으려고 했던 건데.'멀리서 아스란과 세레나가 보였다.사정을 들은 아스란은 곧장 주문을 중얼거리며 추적 나비를 만들어 냈다.수십 마리의 나비가 사람들을 거슬러 날아가기 시작했다.에르딘은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을 밀쳐 내며 나비를 뒤쫓았다.아스란은 세레나를 안아 들고 등의 날개를 펼쳤다.단숨에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저 멀리 짐마차 위에 정신을 잃은 서린이 보였다.무방비한 서린이 함께 있었기에 함부로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아스란은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에르딘 역시 인파를 뚫고 짐마차를 발견했다.이를 악물고 미친 듯 달렸다.'그녀를 건드리면… 살점조차 남기지 않겠다.'아스란이 마차 앞을 막아 세웠다.마차를 몰던 괴한은 그의 손짓 한 번에 숲속으로 처박혔다.남은 괴한은 기절한 서린의 목에 칼을 겨눈 채 에르딘을 향해 악을 썼다.“가까이 오면 죽여 버리겠어!”에르딘의 눈에서 살기가 일었다. 서린이 정신을 잃고 무방비하게 목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목에는 살짝 피가 맺혔다. 에르딘은 아스란에게 치유술을 부탁하고는 괴한의 칼을 든 팔을 단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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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당분간 저택에 오는 걸 삼가지.”노엘은 대충 눈치로 왜 그가 저러는지 알기에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서린은 노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고 빈 화병을 꺼내 꽃을 방에 장식했다. 그래도 가져다준 성의도 있었고, 갑갑한 방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꽃다발 하나에도 행복해하는 서린을 보며 에르딘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저따위 꽃, 얼마든지 사줄 수 있는데.’그저 노엘이 준 선물을 받아 좋아한다고만 생각하는 에르딘이었다.숨 막히는 감시 속에서 서린은 침대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심장에 침대까지 같이 쓴다면 정말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서린의 간곡한 부탁에 에르딘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대신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에르딘, 그냥 방에 가서 자.”에르딘이 무심하게 대답했다.“위험하다.”“아니, 너무 신경 쓰여서 그래.”그 말에 에르딘은 의자를 끌어 방 구석으로 옮겨 앉았다.‘그 말이 아닌데….’서린은 결국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그날 밤, 생애 가장 행복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에르딘은 윤시후가 되어 있었다. 둘은 손을 잡고 한강을 걸었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서린은 까르르 웃었다. 함께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고, 시후의 팔에 기대어 행복을 느꼈다.“서린!!”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어?”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내가 왜 이렇게 오래 잠들었지?”“요새 힘들었나 보군. 식사하지.”에르딘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켰다. 식사를 하던 서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식은땀까지 흘렀다.‘왜 이러지….’대수롭지 않게 넘긴 채 에르딘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이상 징후를 먼저 알아챈 건 에르딘이었다.“열이 나는 것 같군.”“치유술사를 부르지.”비싼 치유술사를 부를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서린은 내일 세레나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그날 밤도 서린은 시후와 함께 바다를 걷는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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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산산조각 난 꽃병을 본 아스란이 말없이 시선을 보냈다.“이것 때문인가?”전날 황태자가 선물한 꽃이 떠오른 에르딘이 꽃병째 박살 내버린 것이다.아스란이 담담하게 말했다.“아니다.”에르딘이 이를 악물었다.“제기랄.”서린은 그런 에르딘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저런 성격 파탄자랑 결혼을 한다고?’놀라울 뿐이었다.아스란은 저주를 탐지할 마도구를 만들기 위해 마탑으로 돌아갔다. 세레나는 부지런히 서린에게 수프와 빵, 과일 등을 먹이며 건강을 회복시켰다. 반면 에르딘은 어디로 갔는지 저택에서 보이지 않았다.모두가 분주한 이 와중에 문득 서린은 이 세계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모두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이곳의 이방인이 된 느낌. 낯선 곳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밤이 되자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은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옆방의 에르딘을 찾아갔다.똑똑.“들어오지.”슈미즈 차림의 서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에르딘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무슨 일이지?”서린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 저희는 같이 안 자나요?”에르딘의 동공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서린이 그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그… 저는 예비 공작부인이고… 그러니까… 혼자 자려니까 외롭고….”결국 에르딘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녀를 그대로 안아 침대에 눕혔다.“너 지금…… 하… 됐다. 같이 자지.”에르딘은 서린을 꼭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맡는 서린의 풀내음에 그동안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그때 서린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저희는 정말로 잠만 자나요?”에르딘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너! 그 말…… 하… 정말…… 기억 찾으면 허락받겠다.”귀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에르딘은 속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다.'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잡아먹히고 싶은 건가, 저 여자는.'기억을 잃어도 조심성은 여전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덕분에 서린이 먼저 자신을 찾아와 준 사실만은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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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해가 완전히 지자 서린은 검은 옷과 복면으로 몸을 감쌌다. 얼마 전 황태자와 함께 걷다 발견한 황궁의 개구멍을 통해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내가 가만히 있으란다고 있겠냐?’각종 무투술로 단련된 그녀는 사람의 기척을 읽는 데 능숙했다. 닌자처럼 벽을 타고 움직인 서린은 나무를 디뎌 올라 황녀의 창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다행히 창은 열려 있었다. 재빨리 방으로 몸을 옮겼다.늦은 밤인데도 황녀는 방에 없었다.속으로 쾌재를 부른 서린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언제나 느끼지만 그녀의 공간에는 모든 것이 넘쳤다.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가져야 하는 사람처럼.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자신의 방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뭔가 더 있을 텐데.’침대 밑에 공간이 있었다. 설마 저기로 기어들어가지는 않겠지? 하면서도 침대 밑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던 순간.문이 열렸다.황녀와 에르딘이 함께 들어왔다.“공, 나는 공을 믿지 않아요. 그 여자도 더욱더. 내가 왜 공을 다시 받아줘야 하죠?”황녀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오만하게 말했다.“황녀님이 자꾸 생각났습니다.”에르딘의 목소리였다.거짓인 걸 알면서도 서린은 가슴을 움켜쥐었다.‘아파…….’에르딘이 황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침대 아래까지 두 사람의 인기척이 전해졌다.에르딘의 코에 희미한 풀내음이 전해졌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찌푸렸다.‘이 여자가!’황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 다리를 에르딘의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이만 가봐도 좋아요.”에르딘은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서린이 밖으로 나갈 시간을 벌어주어야 했다.“밤공기가 좋습니다. 잠시 산책하시는 건 어떠신가요?”그의 제안에 기분이 좋아진 라리엘이 미소를 지었다.“그럼 한 바퀴만.”두 사람이 방을 나가는 순간, 에르딘의 시선이 침대 밑을 집요하게 훑고 지나갔다.‘파하.’숨을 참고 있던 서린이 그제야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데굴데굴 굴러 침대 밑에서 나온 그녀는 다시 방 안을 샅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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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는 에르딘을 봐도 서린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방법을 찾았다는 기쁨에 웃음만 새어 나왔다.“헤헤.”바보처럼 웃으며 그의 목을 덥석 끌어안았다.에르딘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분명 어젯밤 그렇게까지 경고했는데도, 이 말괄량이는 또 사고를 치고도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이렇게 웃으며 안아 버리면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알고 그러는 걸까.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걸까.결국 에르딘은 화를 내지 못한 채 한숨을 삼켰다.조용히 서린의 허리를 받쳐 일으킨 그는 그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다.마차 안에서도 서린은 싱글싱글 웃으며 에르딘만 바라보고 있었다.끝내 참지 못한 에르딘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물었다.“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쳤지?”서린은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방법 찾았어!”에르딘이 미간을 좁혔다.“황녀의 욕망을 바꾸면 돼!”“설명해 봐.”“황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서 어딘가에 가둬 버리는 거야. 그러면 에르딘보다 거기서 나오고 싶은 욕망이 더 커지지 않을까?”에르딘은 잠시 말을 잃었다.생각보다 현실적인 계획이었다.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황녀를 사회적으로 몰락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사람의 욕망은 계속 바뀌잖아?”서린이 지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하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왜?”“내가 황녀 곁에 있어야 한다.”서린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그게 제일 위험해.”“네가 황녀 곁에 있는 것 자체가 나를 위험인물로 만든다고.”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린을 보며 에르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결국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들어 항복하듯 말했다.“그래서.”“사회적으로 어떻게 매장시킬 생각이지?”서린은 당당하게 팔짱을 끼며 턱을 치켜들었다.“그러니까 그건 네가 해야 되니까 부른 거지.”에르딘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하하.”웃을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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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한참을 달리던 두 사람은 곧 숲으로 들어섰다.앞서가던 에르딘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크르르르.’마물이었다.그것도 황궁 근처 숲에서 출몰할 만한 수준이 아닌, 거대한 오우거였다.에르딘이 곧장 검을 뽑았다. 서린은 칼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한 채 주변만 맴돌았다.에르딘은 오우거가 완전히 눈치채기 전에 먼저 파고들어 목덜미에 검을 찔러 넣었다.초록색 피가 튀었다.상처 입은 오우거가 발광하듯 팔을 휘둘렀다. 에르딘은 그 손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피하며 자세를 낮췄다. 곧이어 검끝이 오우거의 다리를 깊게 찍어 눌렀다.오우거가 고통에 울부짖는 순간, 빈틈이 열렸다.서걱.마물의 목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서린은 황급히 에르딘에게 달려갔다. 그의 팔이며 어깨며 허리까지 이리저리 돌려 보며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다행히 옷 곳곳에 초록색 피만 튀어 있을 뿐이었다.“에르딘... 나 결심했어.”“무엇을?”“검을 배워야겠어.”에르딘의 미간이 좁혀졌다. 안 봐도 뻔했다. 같이 전장에 나서겠다는 이야기겠지.“거절한다.”에르딘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 검집에 넣었다.“너한테 안 배울 건데?”앞서가던 에르딘이 험상궂은 얼굴로 뒤돌아봤다.“원래 인생은 실전이야.”“하...”에르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자기 전에 알려주지.”그는 이제 저 천방지축을 말로 길들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할 거라면, 차라리 제대로 알려 주는 수밖에.숲에서 야영하기에는 위험했다. 에르딘은 조금 무리해서 말을 몰아 후겔 백작저까지 향했다.오랜만에 만난 후겔 백작은 여전히 서린과 에르딘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건국제를 초토화시킨 예비 공작부인!’오늘도 잘 보여야겠다고 백작은 조용히 다짐했다.백작저에 들어서자마자 서린은 검을 품에 안고 에르딘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언제 알려 줄 건데?”“밥 먹고.”두 사람은 잘 차려진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마쳤다.식사가 끝나자마자 서린은 다시 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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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앞장서던 에르딘은 문득 뒤에서 따라오던 기척이 끊긴 것을 알아차렸다.급히 뒤돌아봤지만, 그곳에는 눈보라뿐이었다.“…서린.”그는 재빨리 말머리를 돌렸다.'후작의 보고에 내가 너무 서둘렀다.'희미하게 남아 있는 말발굽 자국을 따라 추적하기 시작했다.잠시 뒤.곧게 이어지던 발자국이 갑자기 방향을 틀고 있었다.에르딘의 표정이 굳었다.발자국 끝이 향하는 곳은 얼음산이었다.'저곳은..제길...'그곳은 북부에서도 마물이 자주 출몰하는 위험 지역이었다.에르딘은 망설임 없이 말에 박차를 가했다.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던 서린은 거대한 얼음산 앞에 멈춰 섰다.'여기가 어디지?'말머리를 돌리려 했지만, 추위와 눈보라에 지쳐 버린 말은 거칠게 콧김만 내뿜을 뿐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결국 서린은 말에서 내려 얼음산 자락을 따라 몸을 피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신기하게도 얼음산 근처에는 눈보라가 거의 닿지 않았다. 시야가 트이자 멀리 산허리에 움푹 파인 동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저기라면 잠깐 쉬었다가 길을 다시 찾을 수 있겠어.'언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래도 이상하게 불안하지는 않았다.에르딘이 곧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때였다.쿵.낮게 울리는 진동이 발밑으로 전해졌다.서린의 몸이 굳었다.잠시 정적.그리고.쿵.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산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서린은 숨을 죽인 채 얼음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조심스럽게 고개만 내밀었다.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털이었다.그 뒤로 나무만 한 거대한 팔.마침내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거대한 털복숭이 괴물이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서린은 본능적으로 숨을 삼켰다.'...나를 찾는 건가?'서린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좁은 동굴 안에서는 도망칠 곳도 없었다.이대로 숨어 있다간 살아남을 확률은 없었다.'그럴 바엔 먼저 공격한다.'조심스럽게 검을 뽑아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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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부.”“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는 정보면 더 좋고요.”“…하하.”레이븐은 마른웃음을 흘렸다.'저보고 목숨을 걸라는 건가.'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세레나님…. 그건 저희 정보길드도 존폐가 걸린 문제라서요.”세레나는 말없이 아스란을 바라봤다.아스란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팔지 않으면.”잠시 정적이 흘렀다.“정보길드가 먼저 없어질 뿐이다.”레이븐의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순간 세레나가 여우처럼 보였다.아니.정확히는 저 마탑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요주의 인물이 하나 더 늘었군.'레이븐은 조용히 세레나의 이름을 머릿속 위험 인물 명단에 추가했다.다시 북부 공작성에 도착한 서린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델리아가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적응해야 했던 곳.이제는 벽을 이루는 대리석마저 낯설지 않았다.에르딘은 서린을 공작성에 데려다 놓자마자 곧장 업무를 보러 향했다. 북부 전체에 이전과는 다른 긴박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방으로 돌아간 서린은 흰 제복으로 갈아입었다.제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그녀는 곧장 에르딘의 집무실로 향했다.똑똑.“들어와.”문을 열고 들어선 서린을 본 에르딘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무슨 일이지.”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사무적으로 묻는다.서린은 그의 책상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 섰다.“영지민 시찰을 다녀오겠어. 허락해 줘.”예전처럼 무작정 움직이지 않았다.이제는 먼저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불허하지.”에르딘은 짧게 답했다.“황녀의 표적이 된 걸 잊었나?”“그래서 변장하려고.”에르딘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정말 자신이 허락해 줄 거라 생각하는 걸까.무슨 말을 하든 안 된다고 할 생각이었다.“사람이 실종된다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내가 변장하면 되잖아.”마물만 아니라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에르딘은 잠시 허락을 고하는 척 서류를 덮었다.“안 된다.”하지만 서린은 개구쟁이처럼 웃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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