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Capítulo 81 - Capítulo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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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에르딘이 조용히 낮게 말했다. 이깟일이라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지금. 서린의 패가 다 까였는데 서린은 억울했다. 툴툴대던 서린은 곧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는지 손바닥을 탁 치고서는, 에르딘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그럼 산책이라도 할까?”에르딘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손가락을 깍지꼈다.둘은 정원으로 나가 햇살을 만끽하며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서린은 작은 대화에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놀이공원 가봤어?”“안 가봤다.”서린은 낄낄 웃었다.“좋아! 현대에 오면 제일 먼저 데려가 보고 싶었던 곳이야. 현대 문물의 맛을 보여주마.”기사님을 불러 둘은 놀이공원으로 향했다.평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서린은 익숙하게 표를 끊어 에르딘을 데리고 입장했다.에르딘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놀란 건지, 신기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생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서린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재미없어?”“아직 모르겠다.”“흥. 조금만 기다려.”서린은 에르딘을 선물 가게로 데려갔다.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사더니 그의 머리에 툭 얹었다.아무렇지도 않게 머리띠를 쓴 에르딘의 무표정이 너무 웃겨 사진을 몇 장이나 찍어 버렸다.에르딘도 토끼 귀 머리띠를 하나 집어 서린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아마 서린을 토끼처럼 보는 사람은 에르딘뿐일 것이다.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가 간지러워진 서린은 얼른 그의 손을 잡고 롤러코스터로 향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사가 높다는 롤러코스터였다.대기하면서도 둘은 손을 놓지 않았다.서린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놀이기구를 가리키며 이것저것 설명했다.그런 서린을 에르딘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보물을 바라보듯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곧 둘은 맨 앞자리에 앉았다.롤러코스터가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진다.“꺄아아아악!”서린의 비명이 놀이공원에 울려 퍼졌다.옆을 힐끗 본 에르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내리자마자 서린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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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선배.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재현의 커다란 손이 서린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괜찮아. 학교에 소문 안 낼게.”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로 편안하게 대해주는 재현 선배에 서린의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다.“나중에 다 설명할게요. 그때 들어주세요.”재현 선배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땐 네가 술 사!”사람의 마음을 늘 편하게 해주는 재현 선배.서린은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했다.정말 밥이랑 술이라도 한 번 사야 할 것 같았다.에르딘과 재현 선배는 일이 있다며 함께 밖으로 나갔다.혼자 남은 서린은 이 넓은 집에서 할 일도 없어 냉장고를 뒤적거렸다.여러 가지 식재료를 본 서린은 팔을 걷어붙였다.둘이 돌아왔을 때 저녁을 차려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파를 썰고.양파를 울면서 썰고.계란을 풀고.“어? 이거 왜 이러지?”계란말이가 프라이팬과 한 몸이 되었다.낑낑대며 계란을 떼어보았지만 원래의 형태를 거의 잃었다. 후라이팬을 탈탈 털어 계란말이를 접시에 뚝하고 떨구었다. 계란말이를 빙자한 독 같은 음식 하나가 완성되었다.서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다시 확인했다.분명 레시피는 맞게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맛은 똑같겠지.’이번에는 된장찌개였다.두부를 썰어 넣고, 된장을 풀고.양파도 남았으니 양파랑 파도 넣고.“오?”이번에는 좀 잘되는 것 같았다.그럴싸한 된장찌개가 완성됐다.‘봐. 하면 다 된다니까.’쌀을 퍼 물을 조르륵 붓고 취사 버튼을 눌렀다.반찬을 하나 더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에르딘과 재현 선배가 돌아왔다.서린은 반짝이는 눈으로 밥상을 차렸다.아직 저녁을 해주시는 이모님이 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서린이 뿌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남자 둘은 밥상을 보자마자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지옥에서 온 밥상을 본 둘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제가 저녁 해봤어요. 드세요.”재현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난 낮에 먹은 게 얹힌 것 같은데. 대표님은 점심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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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에르딘과 서린은 저녁이 차려질 때까지 손을 잡은 채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잠시 뒤 재현 선배가 식사하라며 둘을 불렀다.지옥 같던 식탁이 천국으로 바뀌자 젓가락이 절로 움직였다.그때. 에르딘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잠깐."짧게 말한 그는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묘한 정적이 식탁을 감쌌다.달그락.달그락.밥 먹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재현 선배가 서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서린아. 나 퇴근하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기다릴게."그 말에 얼굴이 화르르 달아오른 서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그 무슨 일을 본인이 저지를 것 같아서 더 민망했다."고마워요, 선배."애꿎은 흰쌀밥만 우걱우걱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잠시 뒤 통화를 마친 에르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는 서린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말없이 고기 한 점을 집어 서린의 숟가락 위에 올려놓았다."근손실 온다며."순간 서린의 얼굴은 빨갛다 못해 터질 듯 달아올랐다.급히 밥을 삼킨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전 다 먹었어요! 먼저 올라갈게요!"우당탕.계단을 뛰어오른 서린은 방문을 닫자마자 등을 기대고 주르륵 주저앉았다.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머릿속은 벌써 결혼식까지 다녀왔다.'방금도... 신혼부부 같았지…….'그 순간부터 에르딘의 말 한마디.눈빛 하나.행동 하나까지 전부 신경 쓰였다.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똑똑."나야."에르딘이었다.서린은 문을 빼꼼 열었다."문 좀 더 열지?"머뭇거리며 문을 조금 더 열자 에르딘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그는 말없이 문을 밀어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았다."책 3권 찾았다."몸을 베베 꼬며 서 있는 서린을 바라보더니 의아한 듯 덧붙였다."왜 그러고 서 있지?""…….""이리 와서 앉지."민망해진 서린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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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그녀의 생일이었다.에르딘이 선물을 들고 다가왔다.“공, 고마워요.”“가신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영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대답.라리엘은 그제야 깨달았다.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에르딘의 마음만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그날 이후 그녀의 집착은 시작되었다.그리고 북부와 황실의 관계가 악화되며 약혼이 깨지던 날.라리엘은 끝내 해서는 안 될 계약을 맺는다.마왕, 벨라트리스와.'벨라트리스?'서린이 이를 악물었다.'마탑에서 만났던 그 마왕이잖아!'계약 이후에도 라리엘은 한동안 힘을 숨겼다.벨라트리스는 파괴에는 능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빼앗지는 못했다.그러던 어느 날.세레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벌레 같은 년.'라리엘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최고의 저주를 걸어 줘.”“죽고 싶어질 만큼.”벨라트리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기다렸어요, 공주님.”“가장 강력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저주를 선물해 드릴게요.”하지만 이상했다.며칠이 지나도 세레나는 멀쩡했다.라리엘이 이유를 묻자 벨라트리스가 말했다.“실험해 보죠.”“저주가 담긴 물건을 선물하세요.”“그래도 저주가 걸리지 않는다면... 그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결과는 예상대로였다.세레나는 저주를 받지 않았다.벨라트리스는 담담하게 말했다.“저주가 다른 곳으로 샌 것 같군요.”범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세레나에게 집착하는 에르딘.라리엘은 저주가 그에게 옮겨 갔음을 확신했다.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판을 새로 짜면 된다.세레나를 먼저 죽인다.그리고 절망한 에르딘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온다.벨라트리스가 깔깔 웃었다.“완화제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대신 보름달이 뜨는 밤... 제 소원 하나를 들어 주십시오.”'이것들이 세레나와 에르딘 인생을 가지고 놀았던 거구나.''나중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린은 다음 장을 넘겼다.라리엘은 아무 생각 없이 계약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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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절벽 아래.떨어진 라리엘의 얼굴이 서서히 움직였다.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눈도 함께 휘어졌다.소름 끼치는 미소였다.에르딘의 검붉은 피가 절벽 아래를 타고 흘러내렸다.그 피가 닿은 땅이 갈라졌다.콰득.검은 균열이 벌어지더니, 마물이 기어 나오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그리고 그 중심.커다란 검은 누에고치 하나가 꿈틀거렸다.꿈틀.꿈틀.잠시 뒤.고치의 배를 안에서부터 새하얀 손 하나가 찢고 나왔다.촤악.검은 나비 날개를 등에 단 여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아스란... 오래 기다렸어.”마탑주...?마탑주의 제자라더니...스승을 만나려고 황녀와 에르딘을 전부 이용한 거였어?책은 거기서 끝이었다.뒤를 넘겨 보았다.새하얀 페이지뿐이었다.앞으로 넘겨도.뒤로 넘겨도.책을 거꾸로 들어 봐도.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건데!서린은 혼란에 빠졌다.아스란은 왜 3권을 보고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했을까.단순히 벨라트리스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자신을 그 세계로 불러들인 이유도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서린으로서는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머리가 지끈거렸다.이따 에르딘이 오면 같이 이야기해 봐야겠다.그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가만.에르딘이 나랑 상의한 적이 있었나?서린은 에르딘이 돌아오자마자 꼭 안아 주고 싶었다.하지만 재현 선배가 있는 탓에 그러지 못하고, 말없이 책만 그의 손에 건넸다.대신 눈망울에는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오구오구, 우리 불쌍한 에르딘...에르딘은 그런 시선을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아무 말 없이 책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선배도 고생하셨습니다.”꾸벅 인사하자 재현 선배는 웃으며 서린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순식간에 커다란 집 안에는 적막만 남았다.갈 곳이 없어진 서린은 자연스럽게 에르딘의 방으로 향했다.별생각 없이 문을 열어젖힌 순간.에르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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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었나?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에르딘이 서린의 손을 내려다보며 꼭 잡아 주었다.서린은 말을 잃었다.죽어야만 넘어갈 수 있는 세계라니.이제는 더 이상 에르딘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를 더 이상 피폐한 상황에 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금 무력함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는 서린.에르딘이 두 손으로 서린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혼자 하진 않겠다. 약속하지. 우리에게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지 않았나.”그 말에 서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자신답지 않게 주눅이 들어 있었다.서린이 언제부터 앞뒤를 재고 따졌던가.남은 일주일을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잠시 후, 나갔던 법률대리인이 다시 들어왔다.“긴급 기자회견 준비됐습니다. 브리핑 자료입니다, 대표님.”준비된 자료를 건네받은 에르딘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지.”서린은 에르딘을 경호하며 차까지 안내했다.에르딘은 앞자리에 앉지 말고 옆에 앉으라며 조수석을 팡팡 두드렸다.졸지에 비서는 앞좌석으로, 경호원인 서린은 대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비서는 당황했지만 몸을 돌려 일정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비서가 일정을 설명하는 동안 에르딘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서린의 손을 잡아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서린은 민망해져 어떻게든 엄지손가락이라도 빼 보려 애썼지만, 에르딘을 이길 수는 없었다.긴급 기자회견장에 도착하자 서린이 먼저 내려 차 문을 열었다.에르딘은 여전히 깍지를 풀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서린은 밀착 경호를 하는 척 두 사람의 손을 몸으로 가렸다.'아니, 좋은데 적당히 하라고!'놓아줄 생각이 없는 에르딘은 오히려 손에 힘을 더 주며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바짝 끌어당겼다.수많은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에르딘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기자회견장에 앉았다.그제야 두 사람의 깍지가 풀렸다.“태성그룹에 배다른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손을 번쩍 든 기자가 질문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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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에르딘과 이것저것 데이트도 하고 싶었다.바다도 가고 싶고.영화도 보고 싶었다.하지만 아직 일이 끝난 것도 아닌데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을까.게다가 오늘은 자신이 경호를 맡은 날이었다.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렇다면 집으로 가지.”에르딘은 다 먹은 접시를 직접 정리한 뒤 먼저 카페 밖으로 걸어 나갔다.서린은 뒤늦게 남은 마카롱을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그를 따라갔다.손을 잡히지 않으려 뒷짐을 진 채 에르딘의 주변만 맴돌았다.그 모습이 너무 티가 나 에르딘이 피식 웃었다.그는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을 서린의 어깨에 둘렀다.서린이 당황해 걸음을 재촉했다.에르딘도 같이 걸음을 빨리했다.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문제는 창이 너무 강해서 방패가 속수무책이라는 점이었다.걷던 서린은 문득 네컷사진 기계 앞에서 멈춰 섰다.사진 한 장쯤은 괜찮지 않을까?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서린은 에르딘의 손목을 잡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이게 뭐지?”“사진 찍는 기계야. 초상화를 그려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야무지게 결제를 마친 서린은 멀뚱히 서 있는 에르딘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렌즈 앞으로 맞췄다.찰칵.환하게 웃는 서린과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는 에르딘의 사진이 한 장 찍혔다.이번에는 서린이 턱 밑으로 브이를 했다.에르딘이 따라 하지 않자 억지로 그의 손가락을 브이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다.찰칵.“잘 좀 해!”투닥거리던 사이 또 이상한 사진 한 장이 찍혔다.찰칵.이쯤 되자 에르딘도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숫자가 줄어드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서린의 턱을 살짝 잡았다.그리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찰칵.서린은 입을 틀어막은 채 얼굴이 새빨개졌다.촬영이 끝난 사진들이 꾸미기 화면에 떠올랐지만, 그녀는 더욱 붉어진 얼굴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연달아 '다음' 버튼만 눌렀다.잠시 뒤.툭.인화된 사진이 아래로 떨어졌다.에르딘은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집어 들고 한참 동안 바라봤다.이윽고 옅게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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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그 이름에 서린도 경악하며 달려갔다.벨라?내가 아는 그 벨라?믿을 수 없었다.“왜……?”“벨라……?”“도대체 왜 그랬어!”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벨라가 광인처럼 웃으며 외쳤다.“그분을 위하여!”그녀는 곧장 입안에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삼켰다.꿀꺽.순간 정적이 흘렀다.이내 벨라가 킥킥 웃으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에르딘은 벨라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 몸을 수색했다.곧 수상한 약병 하나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반면 서린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기어가듯 벨라의 곁으로 다가갔다.“벨라…….”“도대체 왜 그런 거야.”피를 흘리며 키득거리던 벨라가 천천히 웃음을 멈췄다.흐릿해진 눈동자가 서린을 향했다.“조심해…… 델리아.”“황녀를…… 조심해야 해.”벨라는 떨리는 손으로 서린의 손을 꼭 붙잡았다.걱정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처음 서린을 데리고 세레나의 방으로 데려가던 그 모습 그대로의 벨라였다.이내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벨라는 그대로 꺽꺽대며 숨을 거두었다.툭.서린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이 세계에서 가장 처음 만났던 사람이.자신을 죽이려 했고.결국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다.잠시 눈물을 흘리던 서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벨라…….”‘황녀.’‘찢어 죽이겠어.’벨라의 시신을 수습한 뒤 우리는 한동안 침울한 시간을 보냈다.며칠 후.아스란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서관으로 돌아왔다.그를 발견한 서린은 곧장 달려가 멱살을 움켜쥐었다.“너 때문에……!”아스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유적을 돌아다니며 유물까지 잔뜩 챙겨온 참이었다.이 여자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아스란이 서린을 가볍게 밀어냈다.휘청거린 서린을 에르딘이 재빨리 붙잡았다.그리고 사람을 죽일 듯한 눈으로 아스란을 노려봤다.“유물도 다 쓸어왔더니.”“이게 무슨 난리지?”아스란은 공간을 갈라 주머니 하나를 내던졌다.레이븐은 이번에도 신이 나서 보물주머니에 달라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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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엘은 부채를 들고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고개를 한 번 까딱했다.“델리아 양, 오랜만에 뵙네요.”“그러게요, 황녀님. 에르딘 공작님도 오랜만에 뵈어요?”서린이 웃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에르딘 공작과 할 말이 많아서 이해해 줘요.”라리엘은 눈웃음을 치며 에르딘의 몸에 제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누가 봐도 서린을 도발하는 몸짓이었다.서린은 당연히 도발당했다.“오늘은 같이 가시죠? 공작님?”노엘의 팔짱을 빼고 에르딘의 반대쪽 팔에 손을 넣으며 서린이 말했다.에르딘은 표정 없이 서린을 털어내며 말했다.“다음에.”툭 털어내는 행동에 밀려난 서린을 노엘이 받아들었다.‘뭐야, 싸웠나?’서린은 다시 노엘의 팔짱을 끼고 으스러뜨릴 듯 손에 힘을 줬다.“델리아? 이만 우리도 따로 가는 것이 어떤가?”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노엘은 일단 자리를 피했다.에르딘의 행동이 왜 변했는지 알 길이 없는 노엘은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식은땀이 삐질 났지만 델리아를 데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 보았다.에르딘은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살기를 지운 에르딘은 다시 황녀와 정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델리아? 이게 무슨 일이지? 내 팔이 부서지겠어.”서린은 어맛, 하며 팔을 뺐다.“아, 노엘 미안해요. 에르딘이 말을 안 들어서 좀 열받았어요.”노엘이 당황해서 물었다.“말을…… 안 들어?”서린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네, 집에 오면 아주 혼을 내줘야겠어요!”“공작을……?”노엘은 이 황당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으나, 일단 서린을 진정시켜서 내보내기로 했다.“영애. 먹고 싶은 것이 있나?”서린이 씩씩하게 대답했다.“마카롱! 분홍색으로!”노엘은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고는 마카롱을 준비시켰다.노엘과 함께 그의 정원으로 넘어온 서린은 준비된 티 세트에 기분이 살짝 풀린 듯했다.‘노엘에게도 말을 해야 하나.’서린은 고개를 저었다.지금 알린다고 노엘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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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의 마음이 ‘쿵’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서린이 더듬더듬 그에게 다가갔다.“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야?”에르딘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아직 식은땀 몇 줄기가 그의 얼굴에 붙어 있었다.“이제 거의 됐어.”서린은 고개를 저었다.‘싫어. 이런 식은…… 아니야.’서린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에르딘이 엄지로 서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아직은 힘든지 한 글자씩 힘주어 말하는 에르딘.“조금만…… 기다려.”서린은 에르딘을 쳐다보았다.저를 바라보는 에르딘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내가 가질 거야.’서린이 에르딘에게 천천히 다가가 입술을 맞췄다.그의 입술에서 낯선 향기가 났다.서린의 입술이 살짝 떨려왔다.지워버리고 싶었다.그 여자의 모든 흔적을.“이건 소독.”말을 마친 서린은 눈물을 한 방울 더 흘리고 다시 에르딘의 입술을 덮었다.에르딘이 손을 올려 서린을 안으려다 허공에서 주먹을 쥐고 멈췄다.‘아직은 때가 아니다.’에르딘은 입술을 굳게 닫고 눈을 감았다.허공에서 멈췄던 주먹이 힘없이 바닥으로 내려갔다.곧 있을 건국제에 서린은 공작의 에스코트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라리엘이 당당하게 공작에게 에스코트를 받을 거라고 떠들어댔단 말이지.에르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던 서린은 이제 그저 기다리는 역할만 하기엔…… 너무 발랄했다.오늘은 어떻게 들이댈까 고민하던 서린은 꼭 에스코트를 받지 않아도 건국제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오랜만에 서린은 옷과 보석을 사러 갔다. 이번엔 가슴이 조금 깊게 파이고 등이 훤히 드러나는, 최대한 여성스러운 섹시미를 강조한 드레스를 골랐다. 힐은 전투적으로 높고 뾰족한 킬힐이었다.‘이 옷을 입고 에르딘을 꼬셔야겠다.’서린은 혹시나 싶어 세레나의 옷도 맞춰 놓았다. 적당히 여신 같은 분위기의 드레스로.건국제가 끝나면 바로 축제라니. 에르딘이 안 되면 세레나를 꼬셔서 축제나 가볼 생각이었다.그렇게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황태자의 서신이 와 있었다.“델리아 영애. 건국제에서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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