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은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나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늘 깡마르고 왜소했던 탓에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다.아이들은 내 작은 키를 가지고 놀리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아빠 없는 애라느니, 친아빠한테도 버림받은 꼬맹이라느니 하며 비웃었다.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묵묵히 참아내는 법만 배웠다.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커서 좋은 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마침내 더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됐다.하지만 늘 참고 맞춰 주는 성격은 이미 버릇되어 고쳐지지 않았다.나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았고, 나 자신을 숨길 때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그렇게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대학 생활을 끝내고, 평범하고 존재감 없는 그런 여자가 됐다.회사에 들어가니 나의 이런 성격은 독이 되었고, 이용당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모두가 꺼리는 힘든 일은 늘 내 몫이었고, 사교성이 없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법을 몰랐던 나는 남이 저지른 잘못까지도 내가 뒤집어쓰기 일쑤였다.한기범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그는 유일하게 대표 앞까지 찾아가 사실을 똑바로 말해 주고 내 억울함을 풀어 준 사람이었다.키가 아주 크고 덩치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남들을 압도할 만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불의를 못 참는 성격 하나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보고 넘기지 못해 나를 위해 나섰다.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억울하게 해고당할 위기에서 벗어난 그날, 한기범은 작은 케이크까지 사 와서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 줬다.“앞으로 또 억울한 일 생기면 나한테 말해. 내가 네 편 들어 줄게.”나는 아직도 한기범이 그 말을 할 때 반짝이던 눈빛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됐다.한기범이 나를 그저 친구로만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마음을 꼭꼭 숨긴 채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의 곁에 머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