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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딱그만큼
엄마는 이제 한기범에게 더할 말조차 없었다.

엄마는 차갑게 대답했다.

“자네는 설연을 볼 자격 없어.”

한기범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더는 속이지 말라고요. 설연이 나오라고 하세요.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그래요? 설연이가 죽을 리 없어요. 절대 그럴 리 없다고요.”

엄마 역시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그럴 리 없다고?”

엄마도 감정이 격해졌다.

“내 딸이 내 눈앞에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아직도 설연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해? 한기범, 난 설연이 편히 가게 해줄 거야. 다시는 네 놈의 그 추악한 얼굴을 내 딸이 보지 못하게 할 거라고.”

엄마는 전화를 끊고 떨리는 손으로 한기범의 번호를 차단했다.

한기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급히 집을 뛰쳐나갔다.

나는 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또 이지혜를 찾아가려는 줄 알았는데 한기범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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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곧 엄마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했다.이미 혼란에 빠져 있던 한기범에게 이 진실은 치명적인 일격이었다.진실을 안 뒤로 한기범은 모든 기운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변했다.낮이든 밤이든 경찰이 무슨 질문을 해도 그는 멍한 얼굴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설연이 보고 싶어요. 제발요. 설연이를 봐야 해요.”“설연이 보고 싶어요. 만나게 해주세요.”“내가 한 번만 안아 주면 안 아플 거예요. 예전에 설연이 아플 때도 늘 그랬어요.”아무도 그가 정말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믿지 않았다.경찰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한기범이 그저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뒤늦은 후회와 절절한 사랑을 연기하여 법의 심판을 피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경찰뿐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한기범과 마주한 이지혜조차 더는 연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맞아요. 설연 씨가 기범 씨를 업고 산 아래로 내려왔어요. 저는 그냥 지나가다 보고, 얼떨결에 생명의 은인인 척 좀 해 본 거고요.”“그때 설연 씨가 기범 씨 좋아하는 걸 보고, 남자 한번 뺏어 보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기범 씨가 너무 빨리 넘어와서 재미도 없었네요.”이지혜는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차갑고 악독하게 말을 이었다.“우리 집에 일만 안 생겼고, 기범 씨가 지금 돈 좀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제가 왜 다시 찾아왔겠어요?”“일부러 설연 씨를 자극하고, 설연 씨가 저를 계단에서 밀었다고 연기한 것도 맞아요. 그래도 조금 다치긴 했으니 저도 나름 아프긴 했죠.”그 말을 듣는 순간 한기범의 텅 비었던 눈동자에 얼음 같은 증오가 차올랐다.하지만 인제 와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이지혜는 그를 비웃듯 바라봤다.“남은 인생은 감옥에서 천천히 보내세요.”순간 나는 한기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에 휩싸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가면을 벗어 던진 두 남녀를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나를 위해 밤낮으로 울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웃을 수가 없었다.다행히 병원 관계자들은 엄마에게 이 일을 인터넷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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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이제 한기범에게 더할 말조차 없었다.엄마는 차갑게 대답했다.“자네는 설연을 볼 자격 없어.”한기범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거짓말하지 마세요. 더는 속이지 말라고요. 설연이 나오라고 하세요.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그래요? 설연이가 죽을 리 없어요. 절대 그럴 리 없다고요.”엄마 역시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그럴 리 없다고?”엄마도 감정이 격해졌다.“내 딸이 내 눈앞에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아직도 설연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해? 한기범, 난 설연이 편히 가게 해줄 거야. 다시는 네 놈의 그 추악한 얼굴을 내 딸이 보지 못하게 할 거라고.”엄마는 전화를 끊고 떨리는 손으로 한기범의 번호를 차단했다.한기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주먹을 꽉 쥐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급히 집을 뛰쳐나갔다.나는 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또 이지혜를 찾아가려는 줄 알았는데 한기범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중환자실이 어디냐고 묻고, 지설연이라는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제가 그 사람 남편입니다. 혹시 여기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간호사는 초조해하는 한기범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봤다.“정말 환자분 남편이세요? 남편이신데 아내분이 어느 병원에 계신지도 모르신다고요?”간호사는 그를 사기꾼이나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했다. 결국 경비를 불러 한기범을 병원 밖으로 내보냈다.한기범은 차로 돌아와 핸들을 세게 내려쳤다.나는 이 정도로 창피를 당했으니 이제는 좀 포기하는 줄 알았다.‘대체 왜 이래? 인제 그만 서로 놓아주자. 나도 조용히 떠날 수 있게 내버려 줘.’하지만 오늘따라 한기범은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안녕하세요. 신고하려고요. 제 아내가 실종됐습니다.”전화 속 한기범의 목소리만 들으면 마치 정말 내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 같았다.나는 그게 우습고도 황당했다.이혼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야 자신에게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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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추억에서 빠져나온 한기범은 피로가 몰려온 듯 침대 위에서 옷을 입은 채로 잠들었다.호텔에서는 밤마다 뒤척이던 사람이 이 침대에서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한기범은 가사도우미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찾아온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일솜씨도 빠르고 입담도 좋은 사람이었다.한기범이 부탁한 대로 썩은 음식부터 치운 뒤 아주머니는 집 전체를 청소하기 시작했다.베란다로 가서 이미 말라 죽은 화분들을 본 아주머니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아내분이 정말 생활을 사랑하셨나 봐요. 이 화초들이랑 작은 화분들 좀 보세요.”아주머니의 손길이 누렇게 말라 버린 잎사귀를 스쳐 지나가자 내 마음도 저릿하게 아팠다.한기범을 향한 미련보다 내가 온 마음을 쏟았던 이 식물들이 죽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참 아깝네요. 전에는 정말 정성으로 키우셨을 텐데.”한기범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사람은 이런 걸 가꾸는 걸 좋아했어요.”한기범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자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고 청소에 집중했다.베란다를 닦은 뒤에는 옷장을 정리하러 갔다.그런데 옷장 문을 열자 아주머니가 다시 감탄했다.“제가 이 일을 오래 했지만 이렇게 정돈 잘된 옷장은 처음 봐요.”옷장을 가득 채운 옷들은 밝은색에서 어두운색으로, 봄옷부터 겨울옷까지 한기범의 생활 습관에 맞춰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한기범은 집에서 옷을 찾느라 헤맬 일이 없었다. 오늘 무엇을 입을지, 내일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속옷부터 신발, 양말까지 내가 전부 정리하고 어울리게 맞춰 놨으니까. 그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한기범은 옷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의 흐트러진 차림새를 내려다봤다.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그는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침실 정리를 끝낸 아주머니는 주방으로 향했다.냉장고 문을 연 아주머니가 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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