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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상속녀는 이 사랑을 관두다: Chapter 11 - Chapter 20

24 Chapters

제11화

노현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층 침실로 달려갔다.그런데 다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후들거려 계단을 오르던 중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계단 아래로 속절없이 굴러떨어졌다.온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오히려 이성이 조금 돌아왔다.이를 악물고 계단 난간에 의지해 일어선 다음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 위층으로 향했다.걸음이 느려진 탓인지 이번에는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침실로 들어왔다.방 안을 둘러보니 노현재의 물건만 남아있을 뿐 송정아와 관련된 모든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침대 양쪽 협탁 위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의 사진마저도 온데간데없이 텅 빈 액자만 덩그러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노현재가 뭔가 깨달은 듯 눈동자에 다시금 당혹감이 서렸다. 서둘러 옷장과 서랍을 열어 그의 물건들을 꺼내자 그 공간들이 전부 텅텅 비어버렸다.침실, 욕실, 서재 등 별장 안에서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들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송정아의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얼마 전 송정아가 갑자기 대청소를 하겠다며 두 사람의 커플 아이템을 모조리 갖다 버렸던 일이 떠올랐다.그제야 송정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정아야,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어? 나한테 추억을 조금도 남겨주기 싫다는 거야?’마음속의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지만 노현재는 여전히 이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꼬박 5년을 만났다. 송정아는 분명 노현재를 그토록 사랑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게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던 노현재는 머릿속에 당장 송정아를 찾아가 똑똑히 따져 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거실로 내려와 있었다. 어떻게 내려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휴대폰에서 길고 지루한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 한참을 울린 뒤에야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늦은 시간이라 자다가 깬 바람에 송정아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아직 잠이 덜 깬 몽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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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송정아가 침묵하는 사이 휴대폰 너머의 노현재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더 불렀다.그 목소리에 송정아는 저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노현재, 이제 곧 결혼하는 사람이 오해 살 만한 행동은 피해야지 않겠어? 나중에 안수진 씨가 별장에 들어와서 그 사진들을 보면 기분 나빠할 게 뻔해서 내가 다 태워버렸어.”“그리고 만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곧 다른 여자랑 결혼할 사람이 전 여자친구랑 만나서 뭐 하게?”커플 사진을 모조리 태워버렸다는 송정아의 말에 노현재는 심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 건 송정아의 단호한 거절이었다.“정아야, 난 헤어지겠다고 한 적 없어. 안수진하고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진짜 너 하나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마음대로 날 버릴 수가 있어?”마지막에는 심지어 목이 멘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송정아도 침묵했다.노현재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5년 사귀는 동안 이번을 제외하면 딱 한 번 봤다. 바로 예전에 두 사람이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였다.노현재가 훨씬 더 심하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찾자마자 송정아의 몸에 생긴 상처들을 보고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었다.사업할 때 결단력 있고 냉혹하게 일 처리를 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만약 그때 노강 그룹과 협력하는 파트너사가 그 모습을 봤다면 아마 턱이 빠질 만큼 놀랐을 것이다.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송정아는 예전에 노현재가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사랑을 부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노현재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똑똑히 보아왔기 때문에 훗날 그가 집안의 결혼 독촉을 핑계로 안수진과의 정략결혼을 받아들였을 때 그의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예리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가 여전히 송정아를 많이 사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송정아 한 명이 아니었다.그렇기에 송정아는 노현재가 저울질 끝에 가장 먼저 포기할 대상 1순위가 될 것이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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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송정아는 노현재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무표정한 얼굴로 노현재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 집어넣었다.내친김에 노현재의 다른 모든 연락처까지 철저히 차단한 뒤에야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날 밤 송정아는 아주 단잠을 잤다.다음 날은 송정아가 승리 그룹으로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낙하산 CEO로 부임하는 입장인 만큼 아침 일찍 일어났다.이 자리에서 입지를 다질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임 첫날부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만들어선 안 되었다.승리 그룹은 송씨 가문의 기업으로 이미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사업 영역도 무척 광범위해서 의류 브랜드부터 하이엔드 주얼리, 향수, 가방, 뷰티 코스메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승리 그룹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심지어 진출한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사실 처음에 송정아는 승리 그룹 산하의 작은 브랜드부터 맡아서 시작할 계획이었다.그런데 송지창과 최윤경이 입을 모아 그녀라면 승리 그룹의 CEO 자리를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거라며 기어코 그 자리에 앉혔다.송정아가 취임하던 당일, 승리 그룹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 CEO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재계 전체로 쫙 퍼져나갔다.그 시각 노현재는 가흠시의 가장 큰 프라이빗 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쓴술을 삼키고 있었다.노현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송정아가 듣고 홧김에 이별을 통보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들 중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가 없었다.“송정아 걔 앞으로 아무런 명분도 없이 너랑 만나야 한다는 걸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홧김에 헤어지자고 한 거겠지.”“얼마 전에 직장도 그만뒀다며? 걱정하지 마. 수중에 돈 다 떨어지면 조만간 알아서 돌아올 거야. 안 그러면 도박에 미친 아빠랑 아픈 엄마 밑 빠진 독에 무슨 수로 물을 채우겠어?”“맞아. 걔처럼 가련한 척하는 여자를 내가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어떻게든 팔자를 고쳐보려고 너한테 들러붙은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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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양천호의 말에 노현재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눈빛에 서려 있던 섬뜩한 분노가 서서히 흩어지고 그 자리에 깊은 혼란이 내려앉았다.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친구들이 이런 말들을 수없이 했었다. 그리고 과거의 노현재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방관하기만 했었다.노현재가 황급히 기억을 더듬으며 반박할 증거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내 양천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친구들이 송정아를 깎아내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송정아가 자리에 있든 없든 그들이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로 조롱할 때면 노현재는 늘 침묵으로 일관했다.오직 그녀의 면전에서 대놓고 험한 말을 할 때만 나서서 말렸다.하지만 그런 제지를 어떻게 증거라고 내세울 수 있겠는가?그건 그저 송정아의 앞에서 보여주기식으로 어쩔 수 없이 꾸며낸 가식에 불과했다.친구들의 조롱을 묵인했던 지난날의 침묵이야말로 노현재의 마음속에 숨겨진 진짜 속마음이었던 것이었다.노현재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술만 연거푸 마셨다.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기대감도 피어올랐다.‘그래. 정아한텐 도박에 빠진 아빠랑 아픈 엄마가 있어. 직장까지 그만둔 상태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얘네 말대로 다시 자기 발로 돌아올지도 몰라.’그때 노현재의 심기를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친구들이 어느새 화제를 돌렸다.“승리 그룹에 최근에 CEO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며? 너희 뭐 들은 소식 없어?”“송씨 가문의 딸이라던데? 최근 몇 년 동안 통 소식이 없었던 이유가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홀로 타지에 있었다고 하더라고. 이번에 돌아가자마자 승리 그룹을 통째로 넘겨줬대.”“어차피 송씨 가문에 딸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 어마어마한 재산이 결국 누구 손에 가겠어. 낙하산이라고 해도 진작 후계자로 철저하게 키워져서 바로 실무에 투입된 거겠지.”“그런데 참 웃기지 않냐? 똑같이 성이 송 씨인데 사람 팔자가 어떻게 그렇게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는지 몰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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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다음 날 눈을 뜬 노현재는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관자놀이를 주무르려던 그때 자신의 품에 누군가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개를 숙이자 웨이브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머리가 상황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입에서 먼저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정아야?”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노현재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송정아는 아직 호양시에 머물고 있었고 게다가 불과 며칠 전에 매정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노현재와 한 침대에 누워있을 리 없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웨이브 펌을 한 적이 없었다.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손에 힘을 주어 품 안의 사람을 거칠게 밀어냈다.깊은 잠에 빠졌던 안수진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잠에서 깼다. 고개를 들자 노현재의 서늘하게 굳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감정이라곤 조금도 섞이지 않은 노현재의 차가운 목소리에 안수진은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바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입을 삐죽거렸다.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모습이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없었다.만약 지금 안수진의 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남자였다면, 혹은 아직 송정아와 헤어지기 전의 노현재였다면 이토록 차갑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얄궂게도 지금 그녀의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는 그녀가 어떻게 송정아를 도발하고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었는지 똑똑히 알고 있는 노현재였다.한참을 훌쩍거렸는데도 노현재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낯빛이 어두워지자 안수진이 서둘러 억울함을 억누르며 해명했다.“어젯밤에 현재 씨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서는 현재 씨네 집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으로 데려온 거야.”그 말을 듣고 나서야 노현재가 방 안을 둘러보았다.조금 전까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알아채지 못했다. 온통 분홍색으로 장식된 이 화려한 공주풍의 방은 그의 침실이 아니었다.노현재의 안색이 조금 누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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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이번 입찰 경쟁이 몹시 치열했다.승리 그룹과 노강 그룹뿐만 아니라 호양시에 내로라하는 일류 재벌들도 뛰어들었고 노현재처럼 타지에서 온 기업들도 있었다.참여 인원이 워낙 많았던 탓에 주최 측은 아예 연회를 열어 입찰에 참여한 모든 그룹의 관계자들을 초대했다.초대장을 건네주러 온 송미희가 송정아에게 눈을 깜빡였다.그녀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송정아는 무슨 중요한 정보를 놓쳤나 싶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고모, 다른 일 더 있으세요?”그 말을 듣자마자 송미희가 눈을 흘겼다.송정아가 며칠 전에 약속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자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그녀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내가 얼마 전에 내 친구 아들 한번 만나보라고 했었잖아. 걔도 그동안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 내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 입찰 연회에 온다지 뭐니. 둘이 같이 가면 딱이겠다.”맞선이라는 소리에 송정아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입찰 연회에서 만나는 거라 더 어이가 없었다.“고모, 우리 둘 다 이번에 입찰하러 가는 거면 결국 경쟁자라는 소리잖아요. 경쟁자끼리 입찰 현장에서 맞선을 보게 만드는 사람은 아마 고모가 최초일 거예요.”송정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송미희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그게 뭐 어때서? 일터에서나 경쟁자지, 사적으로는 또 다를 수 있잖아. 게다가 미리 얼굴 트고 친해지면 미인계를 써먹기도 좋아.”“내가 다 알아봤는데 그 녀석 여태 연애 한 번 안 해보긴 했어도 예전에 좋아했던 여자는 있었대. 딱 너 같은 스타일인 거 있지?”송정아가 흠칫 놀랐다.지난번에 그 남자와 이미 메신저 친구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친구 추가 과정을 건너뛴 탓에 그와 따로 연락하는 것도 잊어버렸고 자연스레 맞선도 까맣게 잊었던 것이었다.송미희가 다시 일깨워준 덕분에 드디어 그 사람의 존재가 다시 기억이 났다.‘좋아했던 사람이 나 같은 스타일이라고? 심지어 이미 연락처도 있었어. 설마 내가 자기 스타일이라서 추가했던 거야?’송정아가 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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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지승택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송정아는 그의 얼굴에서 이유 모를 옅은 서운함을 읽어냈다.송정아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돌아가 지승택의 팔짱을 끼고 연회장 쪽으로 함께 걸음을 옮겼다.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예전에 알던 사이였나요?”송정아의 질문을 들은 순간 지승택이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지승택이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송정아가 생각하던 찰나 그가 마침내 숨 막히는 정적을 깼다.“우리 고등학교 동창이야. 난 늘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애였고.”지승택은 뒷자리에서 말썽을 피워 선생님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불량 학생도 아니었고 앞자리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님의 예쁨을 받던 모범생도 아니었다.내성적이고 외톨이여서 늘 반에서 가장 소홀히 여겨지기 쉬운 존재였다. 심지어 지승택의 부모조차 일 년 내내 일에 치여 그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그 시절의 지승택은 매일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말을 걸어오는 동창들에게도 미적지근하게 반응했다.그래서 외모가 평범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송정아처럼.지승택은 송정아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 그녀가 처음 그에게 다가왔을 때부터였다.대충 인사만 건네고 다시는 아는 척하지 않던 다른 애들과 달리 그때의 송정아는 지승택이 말이 없다고 해서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지 않았다.어떤 문제든, 무슨 일이든 반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물었고 거기에는 지승택도 포함되어 있었다.송정아는 지승택의 인생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이자 그의 삶에 유일한 빛이 되었다.그러다가 훗날 지승택은 자신의 겁 많고 과묵한 성격을 수없이 원망했다.졸업할 때 우정 수첩에 적힌 유일한 정보로 그녀의 메신저를 추가한 뒤 단 한 번도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그처럼 평범한 사람은 송정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늘 생각했으니까.그 후 지승택이 해외에서 공부하며 심리 치료를 받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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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뒤에 선 노현재는 송정아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지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그녀가 옆에 있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쌩하니 가버리는 모습을 보자 순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곁에 있는 안수진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서둘러 송정아의 뒤를 쫓아갔다.“정아야, 이 사람 누구야? 왜 이 사람이랑 같이 있어?”안수진이 다급히 달려왔을 때 그녀보다 한발 앞서 송정아를 따라잡은 노현재가 송정아의 손목을 덥석 잡고 따져 묻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안 봐도 뻔하지 뭐. 현재 씨랑 헤어지고 다른 남자한테 들러붙은 거겠지. 안 그러면 정아 씨 신분으로 어떻게 이 입찰 연회장에 들어왔겠어?”안수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노현재의 안색이 이미 어두워지고 그녀를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송씨 가문은 호양시의 최고 재벌이었다.최고 재벌의 외동딸인 송정아가 누군가에게 들러붙어야만 연회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어디서 굴러먹다 온 멍청이들이길래 저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최고 재벌의 딸마저 남에게 의지해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면 대체 누가 자격이 있겠어?’구경거리가 생겨 아무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사람들 틈에 서 있던 송정아가 얼굴을 찌푸린 순간 그녀의 곁에 있던 지승택이 차가운 얼굴로 노현재의 손목을 잡았다.곧이어 손목에 엄청난 악력이 가해졌다. 지승택이 갑자기 손을 쓸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그럼에도 노현재가 송정아를 잡은 손을 놓지 않자 지승택의 감정 없는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놓으세요.”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노현재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는 그의 안색이 더욱 흉하게 일그러졌다.노현재가 쩔쩔매는 것을 본 안수진은 마음이 아파 즉시 지승택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우리가 누군지 알아? 감히 우리한테 이따위로 굴고도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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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우리’라는 두 글자에 노현재와 안수진이 그 자리에 멍하니 얼어붙었다.‘그러니까 지승택의 말은 지승택뿐만 아니라 송정아도 입찰에 참여하러 왔다는 뜻이야?’입찰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명백히 송정아와 맞아떨어지지 않았고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호양시 최고 재벌인 송씨 가문의 외동딸이었다.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노현재와 안수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고개를 돌려보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구경거리라도 난 듯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그들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음을 깨달았다.노현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고 입찰에 참여하러 왔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도망치듯 허둥지둥 연회장을 나갔다.그가 나가는 걸 본 안수진은 송정아를 원망스럽게 쏘아보고는 서둘러 노현재를 따라갔다.송정아는 그녀의 질투와 원망이 섞인 시선을 보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어차피 안수진이 그녀를 적대시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으니까.안수진이 믿고 설치는 구석이라야 안씨 가문, 그리고 노현재와의 허울뿐인 정략결혼이 전부였다.노현재가 아직 송정아를 사랑할 때 안수진과의 결혼에 동의할 수 있었다면 안수진이 그에게 가져다줄 이익이 바닥났을 때 그는 분명 그녀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안씨 가문은 말할 것도 없었다.송정아가 손을 쓰지 않아도 안수진이 건드린 게 송씨 가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안씨 가문에서 가장 먼저 안수진을 버릴 터.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송정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번 입찰이었다.이쪽의 구경거리가 끝났을 무렵 주최 측이 등장했다.송정아는 진작 도망친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입찰 경쟁이 무척 치열했지만 송정아가 결국 프로젝트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돌아갈 때도 지승택이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차가 앞을 향해 매끄럽게 달리던 그때 이번에는 지승택이 먼저 침묵을 깼다.“아직도 그 사람 좋아해?”뜬금없는 질문에 송정아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깨닫고는 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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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지승택은 이미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으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송정아의 말대로 당분간만 친구로 지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낯선 사람에서 친구로 관계가 발전한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이날 밤, 가흠시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두 사람과 달리 송정아와 지승택은 아주 꿀잠을 잤다.다음 날 이른 아침,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송정아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 그녀의 SNS 계정이 난리가 난 것이었다.알림음이 쉴 새 없이 울려댔고 대충 훑어봐도 온통 악플뿐이었다.바로 그때 가흠시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받고 나서야 가흠시에서 지내던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 조은영이라는 것을 알았다.“정아야, 인터넷에 뜬 글들 봤어? 사람들이 어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무턱대고 믿을 수가 있어? 재벌 딸인 네가 내연녀라는 헛소문까지 퍼뜨리다니. 빨리 해명해서 널 모함한 인간들 싹 다 처벌받게 해.”조은영이 숨돌릴 틈도 없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가쁜 숨소리에 그녀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송정아는 마침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알고 보니 어제 가흠시로 돌아간 안수진이 연회장에서 당한 수모를 삭이지 못하고 노현재와의 결혼을 방패 삼아 거짓말을 퍼뜨린 것이었다.송정아가 그녀와 노현재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우겼고 심지어 두 사람이 약혼한 이후에도 노현재와 송정아가 동거했다는 증거라며 인터넷에 뿌려버렸다.본래 네티즌들도 최고 재벌의 외동딸이 남의 관계에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않았다.그런데 안수진이 증거를 들이민 데다 노현재의 측근들까지 나서서 송정아가 끼어든 게 맞다며 입을 모아 증언했다.그러자 한밤중에 큰 구경거리를 물게 된 네티즌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믿어버렸고 즉각 송정아의 SNS 계정을 찾아내 미친 듯이 악플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집에 돈이 그렇게 많은데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도덕은 지켜야 하고 남의 가정 파탄 내면 안 된다는 거 가르쳐 준 사람 하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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