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엄마, 아빠. 결정했어요. 돌아가서 가업을 이을게요.” 딸이 드디어 고집을 꺾자 수화기 너머의 송지창과 최윤경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신분을 숨기고 만난다는 딸의 남자친구가 떠올라 조심스레 물었다. “남자친구도 같이 오는 거야? 네 정체를 아직 말 안 했지?” “같이 안 가요. 헤어질 거예요.”
View More“노강 그룹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왜 이 사람한테 안 빌고 나한테 빌어?”송정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입가에는 분명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두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그리고 우리의 옛정 같은 거 진작에 네가 다 갉아먹지 않았어?”노현재가 송정아를 기만하고 몰래 다른 여자와 약혼한 뒤 그녀를 내연녀로 곁에 두려 했을 때.그의 친구들이 프랑스어로 송정아를 마음껏 조롱하고 깎아내리는데도 말릴 생각은커녕 함께 조롱했을 때.안수진과 노현재의 친구들이 송정아에 대한 악질적인 루머를 퍼뜨리는 상황에서 그가 마음 편히 투명 인간 행세를 하며 방관했을 때 그들의 옛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뻔뻔하게 옛정을 운운하다니.그럼 그 수많은 순간들에는 왜 그들이 한때 사랑했던 사이라는 걸 떠올리지 못했단 말인가?송정아의 말에 노현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쓴맛이 밀려와 침을 삼키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정아야, 내가 다 잘못했어. 사과할게.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노강 그룹이 정말 버티지 못할 거야...”송정아는 여전히 알 바 아니라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노강 그룹이 무너지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노현재, 그 사람들은 다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렀어. 그런데 넌 무슨 자신감으로 가벼운 사과 한마디면 이 일에서 쏙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난 너한테 그런 짓들을 한 적이 없잖아.”노현재가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그런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정아의 입가에 맴돌던 억지 미소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그래. 넌 직접 하진 않았지. 그저 팔짱 끼고 구경만 했을 뿐이니까. 노현재, 너 같은 방관자가 제일 역겨운 거야.”송정아가 눈앞의 남자를 혐오감이 뚝뚝 묻어나는 시선으로 쏘아보았다.“네가 구경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 친구들이 나한테 막말을 내뱉었던 거야. 네가 수수방관했기 때문에 안수진이 날 수없이 짓밟을 기회를 얻은 거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안수진은 철저하게 버림받았다.송정아는 그 후의 일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승리 그룹 법무팀의 능력이면 그들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 굳게 믿었으니까.다만 안수진이 법정에 서게 된 날, 그녀를 위해 변호사 한 명 선임해 주는 이조차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사실 안수진이 송정아의 앞에서 자기 무덤을 파는 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노현재와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재벌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략결혼 부부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안수진은 만족할 줄을 몰랐다.송정아가 노현재의 곁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쫓아내려 안달이었고 막상 송정아가 떠나자 자신이 겪은 억울함을 그녀의 탓으로 돌리며 기어코 발밑에 짓밟으려 들었다.그러다가 결국 이런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양천호를 비롯한 노현재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출신 배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굳게 믿었던 그들은 나중에 송정아와 화해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안수진과 결탁하는 길을 택했다.그리고 끝내 다 함께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되었다.이럴 필요까지 있었을까?반면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자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노현재는 그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한 덕분에 오히려 홀로 이 진흙탕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이 사건이 일단락되던 날, 법무팀 대표가 송정아를 찾아와 결과를 보고했다.죄질이 무거운 데다 법정에서도 끝까지 잘못이 없다고 악을 쓰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여기에 송정아의 완강한 합의 거부까지 더해져 그들 모두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되었다고 했다.훗날 네티즌들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재벌가 자제들이 울고불고하며 감옥에 갇히는 꼴이 너무나도 희귀한 구경거리라 아마 평생에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거라고 입을 모았다.그들의 최종 판결을 전해 들은 후로 송정아는 더 이상 후속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차의 요란한 배기음이 점점 멀어질수록 안수진의 눈에 맺힌 원망이 더욱 깊어만 갔다.안수진이 단순히 홧김에 이 모든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이번에 호양시에서 돌아온 후 입찰도 망치고 최고 재벌의 딸까지 건드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안씨 가문에서 안수진을 가차 없이 쳐냈다.그녀는 본래 노현재와의 결혼을 방패 삼아 안씨 가문에서 입지를 굳힐 속셈이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 무섭게 부모님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아직도 노현재와의 혼사를 입에 올려? 오늘 그 자식이 오자마자 우릴 찾아와서 파혼하겠다고 했어. 어쩜 남자 하나도 제대로 못 휘어잡아? 왜 이렇게 쓸모가 없어?”안수진은 그 순간에야 깨달았다. 자신이 모든 이에게 철저히 버려졌음을.‘내가 왜 버림받아야 해? 송정아, 너 때문에 난 가문에서도 쫓겨나고 노현재한테도 버림받았어. 네가 뭔데 여전히 그 꼭대기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데?’안수진이 모든 원망을 송정아에게 쏟아부으며 양천호와 노현재까지 끌어들여 마지막 도박을 걸었다.그들은 송정아가 노현재와 함께했던 과거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다고 믿었다.심지어 그녀가 5년 연애의 증거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안수진이 더 오래전부터 사귀었다는 가짜 증거를 만들어낼 계획까지 치밀하게 세워두고 있었다.송정아가 CCTV 영상 두 개와 과거 안수진이 그녀를 도발할 때 보냈던 대화 내역을 만천하에 공개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첫 번째 영상은 한 달 전 두 사람이 송정아의 면전에서 프랑스어로 나누었던 대화였다.CCTV 영상이라 목소리가 다소 뭉개지긴 했지만 그들이 내뱉은 말의 의미만큼은 아주 또렷하게 전달되었다.노현재는 송정아를 기만하고 몰래 다른 여자와 약혼했으면서도 사랑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그녀를 숨겨진 애인으로 곁에 두려 했다.그리고 두 번째 CCTV 영상은 화장실 밖에서 안수진과 송정아가 대치하던 영상이었다.영상 속에서 송정아가 이렇게 말했다.“나 노현재랑 5년을 사귀었어. 내가 먼저 사귀었다고. 진짜 제3자를 따진다면 안수진 너지.”그때 안수
지승택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다정함과 초조함을 알아챈 송정아는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순식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고작 헛소문일 뿐인걸.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그래.”송정아의 상태가 괜찮아 보이자 지승택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전화를 끊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그만 침묵이 내려앉았다.기나긴 정적 속 휴대폰 너머로 지승택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송정아가 먼저 고요함을 깼다.“고마워, 지승택.”‘말도 안 되는 루머 때문에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걱정해 줘서 고마워.’송정아는 마음속으로 마지막 말을 덧붙이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반면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지승택은 야속하게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아까 그 순간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렇게 쥐죽은 듯 고요한 정적 속에서 그녀의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충분했다.송지창과 최윤경은 처음에 송정아가 온라인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노발대발했다.당장이라도 노현재와 안수진,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찾아갈 기세였다.“쓰레기만도 못한 놈에 빌어먹을 년 같은 것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내 딸을 모욕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우리 송씨 가문을 건드린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겠어.”송지창의 말을 듣던 최윤경이 눈을 흘기며 맞장구를 쳤다.“하룻강아지는 무슨. 그냥 짐승이지.”송정아가 두 사람을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씩씩대는 부모님의 모습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됐어요,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절대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각오도 했겠죠.”가흠시 안씨 가문.노현재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그의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있는 안수진을 내려다보았다. 두 눈에 짙은 혐오감만 가득했다.“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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