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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 꽃길: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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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처음 이곳을 찾은 건 결혼 전 권예준을 만나러 왔을 때였다. 당시 두 사람은 서로를 매우 사랑했다.두 번째로 찾아온 지금은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정채윤은 시선을 거두고 1층 로비로 들어가며 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한동안 들려오다가 자동으로 통화가 끊겼다.정채윤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상대가 전화를 끊어버렸다.정채윤은 휴대폰을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이번에 정채윤은 임효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임효민은 전화를 받기는 했지만 태도가 무척이나 냉담했다. 정채윤이 도시락을 가져온 줄로만 알았던 임효민은 단호히 말했다.“대표님께서는 약속이 있으시니까 그냥 돌아가세요.”정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할 말이 있어서 온 거예요. 10분이면 돼요. 그러니까 제가 왔다고 좀 전해줘요.”임효민은 정채윤이 권예준에게 접근할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했는지 비웃음을 흘렸다.“너무 허접한 핑계네요. 정채윤 씨, 대표님은 지금 정채윤 씨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이따가 안하린 씨와 중요한 업무를 논의하기로 했고 점심도 같이 먹기로 하셨거든요.”정채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임효민이 감히 자신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구는 이유를 정채윤은 잘 알고 있었다. 권예준이 정채윤을 전혀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저...”뚝.임효민은 짜증 난다는 듯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정채윤은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결국 정채윤은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몇 번이나 바뀌어 다들 정채윤을 알지 못했다.그때 갑자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안하린 씨야! 실물 보니까 정말 분위기 있네.”“...”정채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안하린은 베르사체 옷을 입고 손에는 비싼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도도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에 남다른 분위기까지 풍겼다.안하린은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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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정채윤은 임효민에게 이혼 합의서를 건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번거롭겠지만 이것 좀 권예준한테 전해 줘요. 다 읽고 나면 저한테 연락하라고 해요.”임효민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기도 모르게 서류봉투를 받아서 들었다.정채윤이 떠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임효민은 손에 들린 것을 한 번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뭐지?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이제 와서 무게를 잡네...”임효민은 정채윤이 권예준을 상대로 밀당을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서류봉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정말 뻔뻔하게 나오네. 그럼 원하는 대로 해줄게. 나중에 대표님이 어떻게 혼내는지 내가 지켜볼 거야!’정채윤은 임효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안성 그룹을 떠난 뒤 정채윤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미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으니, 월요일에 가서 절차를 밟으면 끝이었다.그런데 병실에 도착해 뜻밖의 사람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정채윤은 병실 문 앞에 그대로 얼어붙었다....한편, 대표이사실.임효민이 이혼 합의서가 들어 있는 서류봉투를 들고 문을 두드린 뒤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권예준은 안하린과 나란히 앉아 태우 그룹과 안성 그룹의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척 가까워 보였다.그 모습을 본 임효민은 입술을 깨물었다.인기척을 들은 권예준은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임효민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야?”안하린 역시 고개를 들었다.“그게...”임효민은 권예준에게 다가가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이건 정채윤 씨께서 전하라고 하신 서류입니다. 다 읽고 나서 본인에게 연락하라고 하셨어요.”권예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거기 놔. 이따가 볼 테니까 이만 나가 봐.”그러고는 다시 안하린과 이야기를 이어 갔다.안하린은 권예준이 자신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사실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임효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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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렇다. 눈앞의 남자는 며칠 전 정채윤과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자 정채윤의 선배인 최형섭이었다.최형섭이 웃으며 말했다.“서프라이즈 해주려고 얘기 안 했지.”정채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놀랍고 기뻤으며, 무엇보다 고마웠다.“고마워.”서은영도 두 사람을 바라보며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서 얘기해.”“네.”그 후 그들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최형섭은 정채윤에게 정태환의 검사 결과지를 챙기게 한 뒤, 홍유건을 만나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정채윤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최형섭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20분 후, 고급 레스토랑.두 사람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고 홍유건은 아직 오지 않았다.최형섭은 정채윤에게 물 한 잔을 따라 주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냈다.“권예준이랑 이혼한다며. 어떻게 됐어? 남진 그룹 쪽 일은 해결될 기미가 보여?”정채윤은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쥔 채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시선을 내리뜨리고 말했다.“이혼 합의서에 이미 사인했어. 이제 절차만 밟으면 돼. 남진 그룹 쪽 일도 월요일이면 해결될 거야.”“잘 선택했어. 이혼하면 훨씬 자유로워질 거야. 너 복귀하고 나면 권예준 그 자식도 깨닫게 될 거야.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놓쳤는지 말이야.”최형섭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한 장 꺼내 정채윤에게 건넸다.“안에 지난 5년 동안 네 몫의 주식 배당금이랑 기술 특허 배당금이 들어 있어. 받아.”정채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당시 정채윤은 가정을 위해 청수 건축사무소를 포기했고, 너무 미안한 마음에 그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돈을 일종의 보상으로 여겼던 것이다.“괜찮아, 선배...”“받으라면 받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나는...”최형섭은 정채윤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어차피 곧 청수로 돌아올 거잖아. 이 돈은 원래 네 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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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정채윤은 시선을 거두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문득 곁눈질로 테이블 위에 놓인 포장 용기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정채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 포장 용기를 바라보았다.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오늘 아침, 정채윤이 권나율에게 챙겨 준 호떡이었다. 학원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직접 싸 준 것이니 못 알아볼 리 없었다.‘그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그때 권나율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포장 용기를 집어 안하린에게 건네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린 이모, 이 안에 이모가 좋아하는 호떡이 있어요. 이따가 가져가서 드세요.”정채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안하린은 웃으며 포장 용기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여 권나율의 볼에 입을 맞췄다.“고마워, 나율아. 이모도 나중에 선물 하나 줄게.”“정말요? 너무 좋아요! 저는 하린 이모가 주는 선물이 제일 좋아요!”권나율은 신이 나서 안하린의 품에 와락 안기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하린 이모, 만약 부족하면 나중에 엄마한테 더 만들어 달라고 할게요.”“그래, 고마워, 나율아. 그런데 나율아, 엄마가 네가 호떡을 나한테 준 걸 알면 화내지 않을까?”권나율은 잠시 멈칫하더니 불안한지 입술을 깨물며 권예준을 바라보았다.권예준은 새우 껍질을 벗겨 권나율의 앞접시에 놓아 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괜찮아.”권나율은 웃었다.정채윤이 권예준의 말을 잘 따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채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도 화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권나율이 말했다.“이모, 괜찮대요...”정채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동안 권예준에게 받은 냉대보다 권나율의 그 말 한마디가 오히려 정채윤의 마음을 더 깊이 후벼 팠다. 가슴이 욱신거리면서 아팠다.사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채윤은 요리는커녕 간식 하나 제대로 만들 줄도 몰랐다. 권나율을 잘 키우기 위해 정채윤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그런데 마지막에 돌아온 것이 고작 이런 결과라니.정채윤은 웃었다.그때 권나율이 포장 용기에서 호떡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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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정채윤은 언제 나갔어요?”“오전에 나가셨어요.”권예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정채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안하린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은 권예준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낮게 대답한 뒤 다시 방을 나섰다.그날 밤, 권예준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다음 날, 병원.정채윤은 아파트에서 직접 국을 끓여 아침 일찍 부모님에게 가져다드렸다. 그러고 나서는 정태환이 수액을 맞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뒤 병원을 떠나 볼일을 보러 갔다.어젯밤 정채윤은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하나 발견했다. 단지 내 환경이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꽤 괜찮아 보여 직접 분양 사무실에 가서 살펴볼 생각이었다.30여 분 후, 분양 사무실.정채윤이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정채윤은 살짝 웃었다.“일단 혼자 둘러볼게요.”“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네.”정채윤은 우선 모형을 살펴보았다. 모형에는 단지의 구조와 각종 정보가 아주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정채윤은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었기에 한눈에 채광이 좋고 방향도 괜찮은 데다 층수까지 적당한 집 한 채를 발견했다.정채윤이 직원에게 문의하려던 순간, 직원이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을 알아차리고 다가와 말했다.“죄송하지만 이 아파트는 이미 분양 완료되었어요.”‘분양됐다고?’정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아, 네.”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파트는 한 평당 1억 2천만 원이고 총액은 100억이 넘어요. 저희 단지에서도 가장 좋은 매물이라 정말 구하기 힘들어요. 대신 다른 좋은 매물도 많으니 한번 둘러보세요.”정채윤은 그 집이 그렇게 비싼 줄은 미처 몰랐다.집을 보러 오기 전 정채윤은 예산을 60억으로 잡았고 그 이상은 감당하기 어려웠다.“다른 집도 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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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정채윤은 입술을 꾹 깨물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왜, 나율아?”그 시각 권나율은 집에서 침대에 엎드린 채 퍼즐 게임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아빠와 하린 이모와 함께 놀러 갈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 아빠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린 이모와 볼일이 생겨 함께 나갈 수 없으니, 놀러 가고 싶으면 엄마에게 연락해 보라는 내용이었다.결국 권나율은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지금 어디예요?”정채윤은 굳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고 싶지 않아 담담하게 되물었다.“왜 그러는데?”“저 혼자 집에 있기가 너무 심심해요. 엄마가 저 데리고 놀러 가 주시면 안 돼요?”그제야 정채윤은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권예준은 안하린의 가족이 살 집을 알아보느라 권나율과 놀아 줄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혼자 집에 남게 되니까 나한테 연락한 거네...’정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호떡 사건이 떠오르자 선뜻 권나율을 데리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따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다.“엄마는 할 일이 있어. 경호원 아저씨한테 데려가 달라고 해.”“싫어요.”권나율이 잔뜩 응석을 부렸다.“엄마랑 놀러 가고 싶단 말이에요. 엄마, 네? 엄마...”정채윤은 미간을 꾹 눌렀다.예전 같았으면 권나율이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 순간 마음이 약해져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 줬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조금 지쳐 있었다.“나율아, 엄마는 정말 할 일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권나율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콧방귀를 뀌며 대놓고 토라진 티를 냈다. 전화 너머로도 단단히 삐친 기색이 느껴질 정도였다.“싫어요. 엄마랑 놀러 갈 거예요. 엄마, 저랑 안 놀아 준 지 한참 됐잖아요!”정채윤은 난감했다.한동안 권나율과 실랑이를 벌이던 정채윤은 결국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엄마랑 약속 하나 하자. 다 놀고 나면 엄마랑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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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스케이트를 받아 돌아오던 정채윤은 권나율이 옆에 있던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이 키링 어디서 샀어? 정말 귀엽다.”아이가 한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저기 랜덤 박스 자판기에서 샀어.”권나율은 자판기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 고마워.”“누구 주려고?”권나율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웃었다.하린 이모에게 작은 선물로 줄 생각이었지만, 굳이 누구에게 줄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그건 비밀이야.”말을 마친 권나율이 싱긋 웃으며 사람들이 줄을 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마침 스케이트를 들고 다가오는 정채윤이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엄마, 저 랜덤 박스 사고 싶어요. 하나만 사 주시면 안 돼요?”정채윤은 다소 냉랭한 얼굴로 권나율을 내려다봤다.조금 전 아이와 나눈 대화를 전부 들었기에 누구에게 선물하려는지도 짐작이 갔다.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예전에는 권나율에게서 꽃 한 송이나 직접 그린 그림 같은 작은 선물을 종종 받곤 했다.하지만 아이가 안하린과 가까워진 지난 1년 동안은 단 한 번도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마치 엄마도 선물을 받으면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렇다고 굳이 누구에게 줄 선물인지 아는 체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럴 필요도 없었다.“그래.”정채윤은 권나율을 데리고 랜덤 박스 자판기로 향했다.권나율은 신이 나서 정채윤의 손을 잡아끌었다. 랜덤 박스를 하나 뽑았는데, 운 좋게도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인형 키링이 한 번에 나왔다.권나율은 그 키링을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소중히 가방에 넣었다.“엄마, 다 샀어요. 이제 스케이트 타러 가요!”정채윤은 무심하게 대답했다.“응.”한껏 들뜬 권나율은 엄마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채 빙판 쪽으로 향했다.의자에 앉아 스케이트로 갈아 신던 권나율이 문득 정채윤을 돌아봤다.“엄마는 스케이트 못 타시잖아요. 안에 들어가시면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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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정채윤은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문득 권나율이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한 약속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닐지 걱정됐다.그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권예준이 보낸 메시지였다.[나율이는 내가 돌볼 테니까 당신은 먼저 돌아가.]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자리를 떴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부모님께 저녁쯤 권나율을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말씀드린 터였다. 권나율이 내켜 하지 않더라도 오늘만큼은 반드시 함께 가야 했다.정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부모님께 저녁에 나율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어. 나율이는 나한테 보내 줘.]그러나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동의하지 않는 건가 싶어 정채윤은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고개를 들어 세 사람이 있는 쪽을 바라보니, 권예준이 허리를 굽혀 권나율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엄마가 너 데리고 병원에 가서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뵙겠대. 이제 엄마한테 가 봐. 아빠랑 하린 이모가 다음에 또 데리고 올게.”권나율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아직 하린 이모랑 더 놀고 싶은데...’하지만 멀리 서 있는 정채윤의 굳은 표정을 보자 돌아가서 싫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서러운 마음에 눈가가 금세 붉어지더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채윤은 가슴이 조여 왔다.휴대전화를 쥔 손에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결국 안하린이 나섰다.“내일 저녁에는 나율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가자. 이모가 약속할게.”권나율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도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강사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정채윤은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그때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권예준이었다.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율이 당신한테 보냈어. 오늘 밤은 당신이 데리고 있어. 잘 돌보고 내일 등원시켜 줘.”‘아이를 걱정해서 당부하는 걸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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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병원으로 가는 내내 권나율은 풀이 죽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고개를 숙여 휴대전화에 온 메시지만 확인할 뿐이었다.정채윤은 그런 권나율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차가 병원에 도착하자 권나율을 데리고 병실로 올라갔다.마침 옆 병실의 장씨 할머니가 손녀 민아영을 데리고 와 정태환, 서은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다들 무척 즐거워 보였다.민아영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직접 색종이로 접은 작은 꽃까지 선물해 어른들의 예쁨을 한껏 받고 있었다.병실에 들어서기 전 그 모습을 본 권나율은 민아영이 건넨 종이꽃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문득 마음이 불편해졌다.‘나는 선물도 안 가져왔는데,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가 서운해하시면 어떡하지?’가방에 든 인형 키링을 작은 선물로 드릴 수도 있었다.하지만 하린 이모에게 주려고 산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권나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정채윤의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엄마...”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정채윤이 담담한 얼굴로 권나율을 내려다봤다.“왜, 나율아?”권나율은 입술을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다음에 올 때는 저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선물 만들어 올게요. 저 아이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어요.”다음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그때까지 직접 만든 선물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권나율이 기억이나 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정채윤은 굳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다만 권나율의 마음이 이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였다.정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면 두 사람이 동시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작 찾아왔을 테니까.선물 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곁에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 주는 것만으로 두 사람은 충분히 기뻐했을 터였다.하지만 권나율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안하린의 가족에게는 이렇게 건성으로 대하지 않았다. 살갑게 곁을 지키며 몸에 좋은 것도 많이 챙겨 드시라고 당부하곤 했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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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권나율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돌렸다. 눈가는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정채윤은 권나율의 눈물을 닦아 주며 부드럽게 타일렀다.“나율아, 누구든 열심히 만든 건 소중한 거야. 다른 사람이 정성껏 만든 걸 함부로 흉보면 안 돼. 알겠지?”그러고는 차분하게 덧붙였다.“다른 친구가 나율이한테 아까처럼 말하면 나율이도 많이 속상하겠지?”권나율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아직 어린아이였지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릴 정도는 아니었다. 충동적으로 치밀었던 감정이 가라앉자 자기가 잘못했다는 점도 바로 알아챘다.그래도 조금은 서러웠다. 엄마가 다른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싫었다.권나율은 정채윤의 목을 끌어안고 민아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앞으로 아영이랑 같이 있지 마세요. 아영이가 주는 꽃도 받지 마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아주 많이요!”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아영이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질투가 났던 모양이네.’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권나율은 안하린에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함께 병원에 오는 것조차 내켜 하지 않았다.‘지금 하는 약속도 며칠 뒤 안하린을 만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정채윤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아무 말 없이 권나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몇 마디 더 달래 준 뒤에는 민아영을 다정하게 바라봤다.“아영아, 나율이는 이모 딸이야. 아까는 마음이 앞서서 실수했대. 나율이가 사과하면 받아 줄 수 있을까?”민아영은 원래 성격이 순한 데다 권나율이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네.”민아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정채윤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권나율에게 말했다.“나율아, 아영이한테 사과하자.”권나율도 잘못을 인정하고 나서까지 빼거나 머뭇거리는 성격은 아니었다.곧바로 민아영에게 사과했다.“미안해.”민아영도 금세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 다음에는 우리 같이 만들자!”권나율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그러고는 정채윤을 한 번 더 꼭 끌어안은 뒤에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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