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꽃길

이혼 후 꽃길

作者:  운축剛剛更新
語言: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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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簡介

현대물

부자/녀 후회물

후회물

CEO、보스

재벌

바람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권예준과 결혼한 정채윤은 고향을 떠나 먼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정채윤은 정성 들여 가정을 돌보았고 4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정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권예준의 냉대와 외도, 그리고 이혼 합의서였다. ... 고향에 있는 정채윤의 가족이 병으로 쓰러진 날, 권예준은 피가 섞이지 않은 사촌 여동생 안하린을 돌보고 있었다. 심지어 딸마저 정채윤을 버리고 안하린이 자신의 엄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채윤은 두 사람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정채윤은 이혼 합의서에 사인을 하고 양육권까지 포기한 채 홀로 떠나 다시 일을 시작했다. ... 한때 모두에게 무시당했던 전업주부 정채윤은 어느새 건축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문가로 거듭났고, 몸값은 무려 수십조 원에 달했다. 완전히 달라진 정채윤의 모습을 보고 후회한 권예준은 한쪽 무릎을 꿇고 정채윤에게 용서를 구했다. “내가 잘못했어. 나 좀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우리 예전에 좋았었잖아.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줘!” 딸 역시 정채윤에게 애원했다. “엄마, 다시 돌아와 줘요!” 하지만 정채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정채윤과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자 냉철한 군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정채윤의 허리를 감싸안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정채윤이 자신의 사람임을 선언했다. “늦었어. 채윤이는 이제 내 아이의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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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1 章

제1화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타지에서 결혼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5년째가 된 정채윤은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아빠가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네.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곧 여름방학이잖니. 너랑 예준이 시간 되면 나율이를 데리고 한 번 올 수 있겠어? 네 아빠가 너랑 나율이를 보고 싶어 하셔.”

“물론 예준이가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어쩔 수 없다고는 했지만, 엄마의 목소리에 묻어난 서운함과 조심스러움을 정채윤이 모를 리 없었다.

생각해 보면 결혼하고 이곳에서 살게 된 지 5년 동안, 첫해에 친정에 한 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지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정에 가지 못했다.

권예준은 늘 일이 바쁘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정채윤은 눈물을 삼키며 그러겠다고 대답한 뒤, 곧바로 앱을 열어 계원시로 가는 항공권 세 장을 샀다.

티켓을 예매한 뒤 잠시 망설이던 정채윤은 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한참 동안 울린 뒤에야 연결됐다.

권예준은 냉담한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른 아침부터 누구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채윤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정채윤이 기억하기로 권예준은 어젯밤 회사에 있을 거라고 했었다.

“별거 아니야.”

정채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권예준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황한 정채윤은 창백해진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권예준은 정채윤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가 결혼까지 한 인연이었다.

권예준은 정채윤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권예준이 바람을 피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몸매가 망가져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권예준은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권예준에게서 문자가 왔다.

[무슨 일 있어?]

조금 전 그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가 위독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일까지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아빠가 아프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대. 마침 나율이도 곧 여름방학이니까 셋이 같이 계원시로 가서 한동안 지내면 안 될까?]

문자를 보냈지만 권예준에게서는 한동안 답이 오지 않았다.

못 본 건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권예준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자를 보내왔었다.

정채윤은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빨개졌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정채윤은 권예준의 냉담한 태도를 견디며 혼자 참고 버티는 것에 익숙해졌다.

다음에 다시 물어보려고 마음먹은 정채윤은 속상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딸을 찾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살짝 열자 딸 권나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서인지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린 이모, 아빠가 외증조할머니를 위해서 의사를 모셨으니까 외증조할머니는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몸 잘 챙겨요. 그리고 꼭 아침 먹어야 해요...”

정채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정채윤은 권나율이 말한 외증조할머니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권나율이 말한 외증조할머니는 누구일까?

그리고 하린 이모는 또 누구일까?

혹시 안하린인 걸까?

그러나 안하린은 권씨 가문 둘째 아들의 재혼 상대가 데려온 딸이었다.

비록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권예준의 사촌 여동생이었기에 권나율은 안하린을 고모라고 불러야 했다.

‘그런데 왜...’

정채윤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엄마, 아침밥 다 됐어요?”

문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들은 권나율이 이불 밖으로 나와 문 쪽을 바라보며 예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정신을 차린 정채윤은 손가락 끝을 꾹 누르며 복잡한 생각을 애써 떨쳐 냈다.

지금은 아빠를 만나러 계원시에 가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정채윤은 방 안으로 들어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침밥 다 됐어. 씻고 나오면 바로 먹을 수 있어.”

“밥 먹고 아빠 오면 우리 계원시에 다녀오자. 외할아버지가 아프시대. 마침 너도 곧 여름방학이니까 한동안 계원시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랑 지내자.”

권나율은 잠깐 멈칫했다. 얼굴에 번져 있던 웃음도 금세 사라졌고, 예쁜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권나율은 계원시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권나율을 예뻐했고, 평소에도 자주 맛있는 음식을 보내 주곤 했다.

하지만 계원시는 너무 멀어서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생각만 해도 힘들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아프다는 것도 권나율을 계원시로 데려가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일지도 몰랐다.

‘짜증 나.’

권나율은 잠시 뒤 안하린과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요 며칠 안하린은 가족이 아픈 탓에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고, 권나율은 안하린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채윤의 단호한 표정을 보니 차마 싫다고 할 수도 없어 그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권나율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본 정채윤은 몸을 숙여 달래듯 말했다.

“나율아, 얼른 일어나야지.”

권나율은 마지못해 몸을 뒤척이며 침대에 얼굴을 비비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옷 좀 가져다줘요. 물도 받아 주고, 치약도 짜 줘요...”

정채윤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딸이 시킨 일을 하러 갔다.

지난 몇 년 동안 정채윤은 늘 이렇게 권나율과 권예준을 뒷바라지해 왔다.

권나율은 정채윤이 등을 돌린 채 옷장에서 옷을 고르는 틈을 타 몰래 휴대폰을 집어 들어 안하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린 이모, 저 조금 있다가 일이 있어서 계원시에 가야 해요. 이모랑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해요. 꼭 빨리 돌아올게요!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이모 만나러 갈게요. 그리고 틈틈이 계속 메시지 보낼게요!]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권나율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안하린이 서운해할까 봐 걱정됐다.

“나율아, 이거 입을까?”

정채윤이 원피스 한 벌을 들고 딸에게 보여 주었다.

권나율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정채윤에게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잔소리를 많이 해요? 저는 이제 원피스 안 좋아해요. 그것도 몰라요?”

권나율은 얼마 전 안하린이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입었던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옷차림을 본 뒤로 원피스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권나율은 앞으로 안하린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처럼 가정주부가 되어 요리하고, 빨래하고, 잔소리나 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

“그럼 나율이는 뭐가 좋아? 엄마가 새 걸로 사다 줄게...”

“싫어요!”

권나율은 엄마와 자신의 취향이 다르다는 생각에 안하린에게 옷을 골라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엄마는 일단 나가 있어요!”

권나율은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맨발로 정채윤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문을 닫은 뒤 휴대폰을 들고 다시 안하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린 이모, 약속할게요. 저 내일 바로 돌아올게요!]

안하린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안해, 나율아. 이모 방금 아침을 먹고 있어서 문자를 못 봤어.]

[이모 화 안 났어. 그러니까 외할아버지 뵈러 가. 괜찮아. 이모도 나중에 계원시에 갈 거야. 그때 이모랑 만나자.]

권나율은 조금 당황했다.

[이모, 혹시 계원시에 외증조할머니 보러 가는 거예요? 아빠도 알고 있어요?]

안하린이 답장을 보냈다.

[응. 알고 있어.]

권나율은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문자를 보내려 했다.

한편, 문밖에서 정채윤은 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듣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마음속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씁쓸함이 밀려왔다.

권나율은 정채윤이 온 마음을 다해 키운 아이였다. 그래서 언젠가 딸에게 이렇게 냉정하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채윤은 서운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다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 저혈당 있잖아. 옷 다 갈아입으면 아래층에 내려가서 밥 꼭 먹어.”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정신을 차린 정채윤은 숨을 들이마신 뒤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권예준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아까 볼일이 좀 있었어. 알겠어. 이따가 조금 늦게 들어갈게.]

여전히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의사를 알아보겠다는 말도, 그녀의 가족을 걱정하는 말도 없었다.

정채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다 문득 우연히 들었던, 권나율이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권예준은 안하린의 가족을 위해 의사를 구해 주었으면서 정채윤의 가족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권예준과 통화했을 때 들려왔던 여자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아마 안하린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

휴대폰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에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었다.

예전이었다면 정채윤은 분명 끝까지 캐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지친 것일지도, 또는 무감각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정채윤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멍한 얼굴로 안방에 들어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짐은 대부분 권예준의 것이었다. 결벽증이 있는 권예준은 옷이나 침구류에 매우 까다로웠다.

반면 정채윤의 물건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정채윤은 권예준에게 맞춰 주고, 그냥 참고 사는 데 익숙했다. 마치 딸을 위해 이미 세월에 빛바랜 이 결혼 생활을 지금까지 억지로 이어 온 것처럼 말이다.

정채윤은 권예준이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때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옷을 모두 챙긴 뒤, 정채윤은 혹시라도 권예준이 필요할지 몰라 서재에 들어가 그의 노트북도 챙겼다.

결혼 후 첫해를 제외하면 정채윤은 몇 년 동안 서재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권예준이 정채윤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마치 부부가 아니라 남남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태도가 점점 차가워져 마지막에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원래 다들 결혼하고 나면 사람이 변하고, 상대에게 싫증 나서 처음 했던 약속과 애정을 전부 잊는 걸까?

정채윤은 무감각한 얼굴로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막 서재를 나서려던 순간, 살짝 열려 있는 서랍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랍 안에는 서류가 가득했고 꽤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정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무심코 서랍을 열어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 위에 놓여 있던 서류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정채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이혼 합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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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章節
제1화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타지에서 결혼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5년째가 된 정채윤은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네 아빠가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네.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곧 여름방학이잖니. 너랑 예준이 시간 되면 나율이를 데리고 한 번 올 수 있겠어? 네 아빠가 너랑 나율이를 보고 싶어 하셔.”“물론 예준이가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어쩔 수 없다고는 했지만, 엄마의 목소리에 묻어난 서운함과 조심스러움을 정채윤이 모를 리 없었다.생각해 보면 결혼하고 이곳에서 살게 된 지 5년 동안, 첫해에 친정에 한 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지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정에 가지 못했다.권예준은 늘 일이 바쁘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정채윤은 눈물을 삼키며 그러겠다고 대답한 뒤, 곧바로 앱을 열어 계원시로 가는 항공권 세 장을 샀다.티켓을 예매한 뒤 잠시 망설이던 정채윤은 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한참 동안 울린 뒤에야 연결됐다.권예준은 냉담한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이른 아침부터 누구야?”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채윤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정채윤이 기억하기로 권예준은 어젯밤 회사에 있을 거라고 했었다.“별거 아니야.”정채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권예준은 전화를 끊어버렸다.당황한 정채윤은 창백해진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사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권예준은 정채윤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두 사람은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가 결혼까지 한 인연이었다.권예준은 정채윤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권예준이 바람을 피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몸매가 망가져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권예준은 냉담해지기 시작했다.잠시 후 권예준에게서 문자가 왔다.[무슨 일 있어?]조금 전 그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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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정채윤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여 이혼 합의서를 펼쳐 보았다.이혼 합의서 마지막 페이지에는 권예준의 사인이 있었다. 남은 건 정채윤의 사인뿐이었다.누가 봐도 한참 전부터 준비해 둔 것이 분명했다.권예준은 정채윤에게 재산의 상당 부분을 나눠 주기로 했는데 유일한 조건이 바로 딸의 양육권을 자신이 갖는 것이었다.그러니까 권예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채윤에게 질려 이혼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혼한 이후에는 안하린과 결혼할 생각이었던 걸까?권예준은 안하린이 본인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안하린 모녀와 정채윤 가족 사이에 악연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걸까?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아내인 정채윤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치욕적인 일인지 모르는 걸까?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권예준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아마 결혼 2년 차쯤부터 정채윤에게 싫증을 느끼고 안하린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정채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서늘하게 식었고 마음마저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때 그 남자가 정채윤을 버리고 아무 말도 없이 군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와 사귀지도 않았다면 어땠을까?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권예준이 나타나 정채윤을 뜨겁게 사랑해 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며 어둠 속에서 꺼내 주지 않았다면 정채윤도 꼭 권예준과 결혼해야 했던 건 아니었다.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다시 한번 진동했다.권예준에게서 온 문자였다.[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들어갈 것 같아.]차가운 말투였다. 정채윤과 정채윤의 부모님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하긴, 이혼 합의서에 사인까지 한 사람이 나를 신경 쓸 리가.’정채윤은 자조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이혼 합의서를 움켜쥔 채 서재를 나왔다.그래도 정채윤은 권나율의 친엄마였다. 만약 권나율이 자신과 함께 살고 싶어 한다면, 무슨 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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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지금은 이토록 매정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남자가, 과거 자신에게 프러포즈해 성공했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훔쳤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정채윤은 한참이 지나서야 굳어 버린 손가락을 움직여 짧게 답장을 보냈다.[알겠어.]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탓인지, 생각보다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 정채윤은 잠시 감정을 추스른 뒤 병실로 향했다.문을 열자 정태환이 서은영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정채윤은 허리가 굽고 반쯤 하얗게 센 엄마의 머리카락과 눈에 띄게 야윈 초췌한 아빠의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빠, 엄마...”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서은영과 정태환은 인기척을 듣고 동시에 반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채윤아, 도착하기 전에 미리 연락하지. 그러면 내가 아래까지 마중 나갔을 텐데.”서은영은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다가가 정채윤의 손을 잡고 뒤를 살펴보며 물었다.“나율이랑 예준이는?”정태환 역시 손녀가 보고 싶었던 건지 똑같은 질문을 했다.“그러게. 나율이랑 예준이는?”정채윤은 시선을 내렸다. 권나율과 권예준이 안하린을 얼마나 아끼는지 부모님이 알게 되면 화를 내실 것 같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둘러댔다.“권예준은 갑자기 일이 좀 생겼대요. 조금 있다가 나율이 데리고 올 거예요.”“그렇구나. 그럼 언제 온대? 여기 올 때쯤이면 배가 고프겠지? 내가 먹을 것 좀 사 올게. 나율이가 여기 호떡을 엄청 좋아하잖아.”정채윤은 더 이상 억지로 웃지 못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나율이랑 권예준은 신경 쓰지 마세요. 엄마, 아빠,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진 거예요? 평소에 밥 제대로 안 챙겨 드시는 거죠?”“그럴 리가.”서은영은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러고는 애틋한 눈빛으로 딸의 뺨을 쓰다듬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정채윤은 서은영에게 살이 빠졌다고 했지만, 사실 서은영 역시 딸이 전보다 훨씬 초췌해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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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권예준은 딸을 의자에 앉혀 기다리게 한 뒤,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워낙 키도 크고 다리도 길어서 한 걸음이 정채윤의 두 걸음과 맞먹어서 걷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정채윤은 권예준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얘기를 듣고 몰래 안하린의 험담을 할까 봐 걱정돼서 조심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정말 신중하네.’정채윤은 시선을 내린 채 빠른 걸음으로 권예준을 뒤따라갔다.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자 권예준이 걸음을 멈추고 바지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정채윤에게 내밀며 무심하게 말했다.“일단 이거 써. 부족하면 나한테 얘기해.”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 카드를 바라보는데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졌다.그건 정채윤이 한때 권예준에게 바라던 배려였다.하지만 당시 권예준은 정채윤을 홀로 내버려둔 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이제 정채윤에게는 그런 배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권예준이 말했다.“어떤 일들은 다른 사람과 아무 상관 없어.”그 말을 들은 순간, 정채윤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권예준을 바라봤다.그러니까 그 카드는 정채윤의 가족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채윤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권예준은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 정채윤이 두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퍼뜨려 안하린의 명예를 더럽힐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책임감 있네. 하...’정채윤은 서글프게 웃었다.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아픔을 애써 억누르며 카드를 밀어내고 이혼 얘기를 꺼내려는데 갑자기 벨 소리가 울렸다.권예준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더니 그동안 정채윤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응, 금방 갈게.”전화를 끊은 권예준은 정채윤을 무심하게 한 번 바라보았다.그러다 문득 정채윤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권예준은 입꼬리를 살짝 당기더니 정채윤의 옆 창턱에 카드를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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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병실로 돌아온 정채윤은 부모님에게 전원 수속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정태환은 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금 망설였다.정태환은 지난 몇 년 동안 딸이 시댁에서 그리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채윤아...”서은영도 말했다.“전원까지 할 필요는 없어. 네 아빠는 여기서 치료받아도 괜찮아...”정채윤이 부모님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정채윤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다가가 말했다.“이미 의사 선생님까지 다 알아봤어요. 이 일은 그냥 제가 하자는 대로 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너도 참...”입으로는 못마땅한 듯 타박했지만, 딸이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다음 날.오전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정채윤은 짐을 챙겨 퇴원 수속을 마친 뒤 부모님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공항 밖에서 권예준과 권나율, 그리고 안하린 일행을 마주쳤다.그들은 리무진에서 내렸다. 권예준은 안하린과 권나율의 곁을 지키며 차량이 다가올 때마다 두 사람을 감싸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워낙 보기 좋은 모습이라 주변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감탄했다.“와, 저 가족 진짜 부티 난다. 너무 부러워.”“그러게. 저 남자 진짜 다정하다. 분명 좋은 남편일 거야!”“나도 그렇게 생각해. 딸이랑 아내도 분위기가 남다르다니까. 사랑받는 게 딱 보여.”“...”정채윤은 숨이 턱 막혔다. 그들이 전용기 라운지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그들도 동제시로 돌아가려는 모양이었다.정채윤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안하린을 무척 사랑하는 권예준이 안하린의 외할머니가 병으로 고통받도록 내버려둘 리 없었다.분명 가장 좋은 의료진과 치료 환경을 마련해 줄 것이다.‘하지만 나는...’정채윤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그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이토록 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었다.권예준이 간단히 지시만 내려도 정채윤의 아버지는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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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정채윤은 발코니에 도착했다.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뺨을 스치자 그제야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정채윤은 코를 훌쩍이고 몇 차례 기침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조금 정상으로 돌아오자 다시 휴대폰을 들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는 바쁜 모양인지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채윤아, 무슨 일이야? 아까 업무를 처리하느라 전화 온 줄도 몰랐어.”정채윤은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져서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선배, 나 아빠 모시고 동제시로 와서 치료받고 있어. 주치의 선생님이 그러는데, 가능하면 홍유건 선생님한테 진료를 한번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대. 그래서 말인데...”남자는 단번에 정채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알겠어. 내가 이따가 한 번 연락해 볼게.”“고마워, 선배.”“고맙긴. 너희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으실 수 있다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다 남자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남진 그룹 쪽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랑 선생님이 나서줄까?”선생님 얘기가 나오자 정채윤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채윤은 선생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남자는 정채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차리고 위로했다.“괜한 걱정은 하지 마. 선생님 말이야. 그동안 겉으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널 신경 쓰고 계셔. 네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셔.”“어제 네가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우리 몰래 얼마나 기뻐하셨는데.”“선생님이 네가 맡기로 한 남진 그룹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다는 걸 아신다면 분명 너를 위해 기회를 되찾아 주려고 하실 거야.”정채윤은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사실 그동안 건축사무소로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은 많았다. 하지만 가족이 걱정되는 바람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전문 서적을 들여다보거나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이제 이혼을 앞두고 있으니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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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30분 후, 이든 별장.정채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방 안으로 들어서자 권나율이 잠옷 차림으로 기운 없이 침대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곁에는 장미정만 있었고, 권예준은 보이지 않았다. 정채윤은 잠시 멈칫했다.인기척을 들은 권나율이 베개에 파묻혀 있던 창백한 얼굴을 들어 정채윤을 바라보았다.그동안 꾹 참아 왔던 서러움이 그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권나율은 눈물을 흘리며 정채윤을 불렀다.“엄마, 저 너무 아파요. 왜 제 문자에 답장을 안 한 거예요...”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더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곧장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권나율을 품에 안고 달랬다.정채윤은 권예준이 아마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람을 시켜 권나율을 돌려보내고, 자신은 아주 편하게 안하린과 데이트를 즐기러 갔을 거라고 추측했다.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정채윤은 땀에 젖은 딸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부드럽게 물었다.“약은 먹었어? 아직도 많이 아파?”권나율은 이제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서러웠을 뿐이었다. 정채윤의 품에 파고들어 안겨 있으니 서러움도 한결 가셨다.그리고 머릿속에는 엄마가 아직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과, 엄마의 품이 정말 향기롭고 편안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안하린의 품보다도 훨씬 편안했다.물론 안하린의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가 화낼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지금은 그저 엄마와 사이좋게 함께 있고 싶었다.권나율은 정채윤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약 먹었어요. 이제는 별로 안 아파요. 그냥 엄마가 끓여준 죽이 먹고 싶어요.”정채윤은 알겠다고 한 뒤 딸을 위해 죽을 끓이러 가려고 했다.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차분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권예준이 돌아온 것이었다.권나율은 문 쪽을 바라보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정채윤은 잠시 당황했다.권예준은 권나율의 부름에 짧게 대답했지만 정채윤은 쳐다보지도,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권예준은 다가가 권나율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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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정채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나 이미...”이혼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권예준의 휴대폰이 울렸다.권예준은 정채윤의 말을 더 듣지 않고 곧장 전화를 받았다.정채윤은 하는 수 없이 하려던 말을 멈췄다.권예준은 전화를 건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진지하게 대답했다.“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후 권예준은 정채윤에게 마치 은혜라도 베풀 듯 힐끗 시선을 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정채윤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정채윤은 권예준의 냉담한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권예준에게 정채윤은 언제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심지어 권예준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술자리가 정채윤보다 더 중요했다.만약 권나율이 없었다면 아마 권예준은 그동안 집에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예전의 정채윤이라면 아마도 뻔뻔하게 그에게 무슨 일 때문인지 물어보거나, 꾹 참고 넘어갔을 것이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더 이상 참기 싫었다.정채윤은 권예준을 따라가며 말했다.“권예준, 나 진짜 할 말 있어...”권예준은 의외라는 듯 정채윤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채윤에게 중요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일 다 끝나면 얘기해.”정채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 권예준은 정말로 급해 보였고, 지금 이혼 이야기를 꺼내도 어차피 여기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권예준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정채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위층 안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옷을 챙겨 가서 샤워를 한 뒤, 딸의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이제 곧 이혼할 사이였기 때문에 정채윤은 권예준과 조금이라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정채윤은 딸이 깨는 걸 원치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권나율은 눈을 반쯤 뜬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나율아, 몸도 안 좋으면서 왜 안 자고 있어? 뭘 보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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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정채윤과의 대화창은 맨 밑에 있었다.정채윤은 입술을 깨물며 안하린과의 대화창을 클릭해 채팅 기록을 확인했다.보면 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리고 권나율이 왜 아침부터 그렇게 신이 났었는지, 그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권나율이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 소리가 들릴 때가 되어서야 정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실을 나섰다.문을 닫는 순간, 곁눈질로 욕실에서 나오는 권나율의 모습이 보였다. 권나율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무척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안하린과 문자를 주고받는 게 틀림없었다.정채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안방 앞을 지나가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침대 시트도 깨끗하고 가지런했다. 아무래도 권예준은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안하린이 보낸 문자를 떠올린 정채윤은 어렴풋이 무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정채윤은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그렇다면 어젯밤 권예준이 말한 볼일이 안하린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을까?어젯밤 두 사람은 함께 잠을 잔 걸까?정채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권예준은 안하린과 함께할 시간은 있으면서 자신의 말 한마디를 끝까지 들어 줄 시간은 없었다.정채윤은 권예준이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따가 권예준이 돌아온다면 이번 기회에 이혼 얘기를 꺼낼 것이다.주먹을 꽉 쥐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정채윤은 주방으로 가서 권나율을 위해 아침을 준비했고, 가정부 장미정이 옆에서 도왔다.잠시 후 아침 준비가 끝났지만 권나율은 내려오지 않았다.정채윤은 직접 권나율을 부르고 싶지는 않아 장미정에게 대신 불러달라고 했다.장미정은 잠시 멈칫하면서 의아해했다. 예전의 정채윤은 권나율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직접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걸까?비록 의문이 들었지만 장미정은 별말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나율아, 밥 먹어야지. 학원에 늦겠어.”안하린과 신나게 문자를 주고받던 권나율은 방해를 받자 몹시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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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멀어져 가는 정채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권예준은 운전대 위에 손을 올린 채로 잠시 멈칫했다.예전에 정채윤은 늘 자신과 권나율을 배웅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오늘은 왜...’아마 가족이 아프기 때문인 걸까?권예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굳이 신경 쓸 생각은 없었기에 그대로 차를 타고 떠났다.권나율 역시 정채윤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며 물었다.“아빠, 엄마 혹시 화난 걸까요?”권예준이 대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화났다면 네가 걱정돼서 돌아와 널 돌보고 아침까지 해 줬겠어?”권나율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걱정 없이 신난 얼굴로 안하린에게 주려고 포장한 호떡을 가방 속에 넣어 둔 채 만져 보았다. 그러자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오늘은 호떡이 너무 적은 것 같아. 다음에는 꼭 엄마한테 몇 개 더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별장.정채윤은 위층에 있는 서재로 올라가 서랍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서류봉투에 넣었다.그리고 침실로 가서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이혼하고 나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정채윤의 짐은 꽤 많았다. 크고 작은 물건들이 뒤섞여 종류도 다양했다.결혼할 당시만 해도 정채윤은 진심으로 권예준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권예준은 그럴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마음이 변해 버렸으니 말이다.정채윤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모든 짐을 다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번거롭기만 할 테니 말이다.그래서 옷 몇 벌만 챙겼다.그리고 캐리어 지퍼를 잠갔다.정채윤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5년 동안 살았던 집을 바라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정채윤은 휴대폰을 꺼내 청소 업체에 아파트 청소를 부탁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 아파트는 정채윤이 결혼하기 전에 첫 기술 특허로 벌어들인 돈으로 마련한 집이었다.당시 정채윤은 여자라면 반드시 자기 명의의 집 한 채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바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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