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의 엔진이 비릿한 매연을 뱉으며 공회전했다. 조타석에 앉은 도진이 서늘한 눈빛으로 갑판의 세 사람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출항 전, 각자 신분증을 제시해 주세요. 해경에 승선자 출항 신고용입니다.”성봉은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아유, 요즘 당연히 하는 절차죠?”그는 싹싹하게 자신과 인아의 신분증을 내밀었다. 도진의 시선이 인아의 이름 석 자와 증명사진에 머물다, 이내 마지막 인물에게 향했다.“그쪽 분은요?”구석에 먼바다만 보고 있던 주동치는 못 들은 척 딴전을 피웠다. 도진이 한 걸음 다가가 재차 재촉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품 안에서 낡은 여권을 꺼냈다.도진은 여권 사진과 왜소한 남자를 날카롭게 대조했다. 자신의 머리 하나보다 작아 보이는 단신, 가늘게 찢어진 눈에 특징 없는 얼굴. 하지만 도진의 냉철한 감각은 놈의 눈동자 속에 숨겨진 짐승의 기운에 순간 움찔했다.“괘도한 씨, 확인됐습니다.”도진은 앱으로 정보를 전송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동치는 안도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다. 수십 명의 여자를 유린하고 도살하면서도 단 한 번도 꼬리가 밟히지 않았던 ‘왜소한 체구, 돌아서는 순간 기억나지 않는 얼굴’. 그것이 그의 가장 치명적인 무기였다.“귀중품은 선교에 보관하겠습니다. 분실 위험이 있으니 맡겨주시죠.”성봉이 가방을 건네자, 옆에 있던 인아가 작은 손가방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냈다. 아이들이 선물했다는 손바닥 모양의 메달이었다. 물건을 건네받는 순간, 도진과 인아의 손끝이 스쳤다.‘···어디서 봤는데.’인아는 도진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도진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메달을 소중히 받아 넣었다.이윽고 출항을 알리는 짧은 경적이 울렸다. 배가 선착장에서 멀어지자, 주동치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감춰진 흉포한 본색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무심하게 바다를 보는 척했으나, 모든 신경은 오직 한 곳, 김인아에게 쏠려 있었다.‘씨팔, 보면 볼수록 물건이네.’
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5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