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두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을 때, 이서의 시선에 가장 먼저 닿은 것은 낯선 하얀 천장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매캐하고 서늘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정체모를 기계음.이서는 지체 없이 손등에 꽂힌 바늘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사의 만류나 보호자의 동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제 몸의 주도권을 되찾자마자 서둘러 퇴원 수속을 밟은 그녀는 고요하게 저택으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던 강태준과 시선이 마주했다.하지만 이서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심히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때도, 거실 복도를 지나치며 옷깃이 스쳐 지나갈 때도,단 한 번도 서로의 눈을 맞추지 않았다.서로를 외면하는 침묵은 가시처럼 돋아나 저택의 공기를 팽팽하게 죄어왔다.방 안에 홀로 앉은 이서는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지금의 나는 너무 눈에 띄어.'민채린이라는 껍데기르르 쓰고 움직이는 순간, 모든 행벅은 대원가와 성운그룹 양쪽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강무성의 사냥개들과 강태준, 그리고 성운의 감시망이 촘촘하게 자신을 옥죄고 있었다. 이 판을 뒤흔들려면,양쪽 가문 그 누구와도 접점이 없는 '완벽하게 깨끗한 제3자'가 필요했다. 대원에서도, 성운에서도 감시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투명한 사람.이서는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몇 달 전, 그녀가 '민채린'의 신분으로 처음 만찬장을 걸었을 때, 한 그림 앞에 멈춘 적이 있었다. 그 그림은 . 액자 오른쪽 아래에 흐릿한 글씨가 있었다. 유리 너머라 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글씨가 그녀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그 그림이 예전에 자신이 일했던 거리 근처에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 보니 원래 갤러리는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새 갤러리가 들어서 있었다. 이름도 달랐고, 분위기도 달랐다.그녀는 입구에 잠시
Last Updated : 2026-10-1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