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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낯선 경계 

Author: 태이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6 12:10:11

완벽한 패배였다. 거대한 장벽에 사정없이 부딪힌 절망감이 온몸의 피를 식혀버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택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멍한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어두운 거실으르 들어선 순간, 이서의 발걸음이 딱 멈추어 섰다.

소파 위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태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적막 속에서, 태준은 이서를 향해 아무런 말도 없이 몇 초간 그 짙은 눈동자로 빤히 응시했다. 마치 그녀의 옷자락에 묻어온 주차장의 흙먼지와 실패의 냄새를 한눈에 읽어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 어디 갔었어?"

메마르게 던져진 태준의 한마디. 그 나직한 음성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동안 민채린의 가면 뒤에서 차갑게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서의 가슴 깊은 곳에서,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목울대를 콱 치고 올라왔다. 통제할 수 없는 울컥함이 목구멍을 막아서며 눈시울이 시려왔다.

"법무법인에 갔어."

이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태준은 단번에 그 미세한 균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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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생을 했더니 전 남편의 현 아내가 되어있었다.   제22화. 낯선 경계 

    완벽한 패배였다. 거대한 장벽에 사정없이 부딪힌 절망감이 온몸의 피를 식혀버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택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멍한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어두운 거실으르 들어선 순간, 이서의 발걸음이 딱 멈추어 섰다. 소파 위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태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적막 속에서, 태준은 이서를 향해 아무런 말도 없이 몇 초간 그 짙은 눈동자로 빤히 응시했다. 마치 그녀의 옷자락에 묻어온 주차장의 흙먼지와 실패의 냄새를 한눈에 읽어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 어디 갔었어?" 메마르게 던져진 태준의 한마디. 그 나직한 음성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동안 민채린의 가면 뒤에서 차갑게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서의 가슴 깊은 곳에서,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목울대를 콱 치고 올라왔다. 통제할 수 없는 울컥함이 목구멍을 막아서며 눈시울이 시려왔다. "법무법인에 갔어." 이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태준은 단번에 그 미세한 균열을 알아채고는, 울컥함에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직시했다. 그리고는 피곤함이 짙게 깔린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느 법무법인." "한성진." 거실이 2초 동안 조용해졌다. 그러고 나서 태준이 일어섰다. "그 사람한테 왜 갔어?" "당신과 상관없어." "상관없어." 그가 되뇌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사람이 누구 사람인지 알고는 있어?" "알아." 이서가 말했다. "대원 사람이지. 그 말을 하는 거라면." "알면서 갔어." 그의 취조하는 듯한 말투가 이서의 남은 이성을 완전히 꺼트렸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서의 언성이 순식간에 높아졌다. " 그래. 갔어. 그리고 또 갈 거야. 내가 알고 싶은 걸 전부 알 때까지 계속 갈 거야." 태준은 그녀의 음성에 거슬림이 묻어나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눈썹 뼈 부근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심기가 매우 불편할 때 나오는 그이 오랜 습관이었다. "못 찾아."

  • 환생을 했더니 전 남편의 현 아내가 되어있었다.   제21화. 보이지 않는 벽

    쾅! 고요함을 유지하던 법무법인 대표 집무실의 문이 거친 충격음을 발산했다. 안내 직원의 경악한 비명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서늘한 마찰음을 내며 단단한 골프공 하나가 공중을 가르고 날아갔다.콰창! 변호사 책상 바로 뒤편, 벽면에 걸려 있던 거대한 원목 액자가 산산조각이 나며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방으로 튄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들이 고급 원목 책상 위와 대리석 바닥으로 비처럼 흩뿌려졌다. 민채린 특유의 오만하고 거침없는 기세를 덧씌운 이서가, 한 손에 묵직한 아이언 골프채를 쥐어잡은 채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그 표정에는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악녀다운 당당함의 서려 있었다.책상 주인의 이름은 한성진."민채린 씨."그의 말투는 평평했다. 놀람도, 당황도 없었다.이서는 골프채 끝을 바닥에 대고 그를 바라보았다."제가 왜 왔는지 아시죠.""모릅니다.""그럼 더 분명하게 말하죠."이서가 말했다. "3년 전 대원그룹의 해외 인수합병 건. 변호사님이 맡았던 그 건. 중간에 자금 하나의 행방이 불분명합니다. 지금 그 서류를 제게 주시면, 이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한성진은 그녀를 몇 초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주 옅은 표정을 지었다. 냉소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피로에 가까웠다."서류는 제게 없습니다.""그럼 어디에 있죠?""모릅니다." 그가 말했다. "3년 전 그 사건을 넘겨받은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름만 올렸을 뿐입니다. 실제로 처리한 사람이 사건이 종결되기 전에 모든 걸 가져갔습니다. 제가 받은 건 깨끗한 종결 보고서 한 장뿐입니다."이서는 그를 응시했다."누가 가져갔죠?"한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없습니다.""말할 수 없는 건가요, 모르는 건가요?""……"이번에 이서에게 대답한 것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내뱉지 않는 한 변호사의 평평한 입매뿐이었다.이서는 더 묻지 않았다.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서서 나갔다. 복도는 조용했고, 그녀의 구두

  • 환생을 했더니 전 남편의 현 아내가 되어있었다.   제20화. 악녀의 수단

    이서는 민채린의 비밀 폰 속 오래된 파일을 뒤지다 그 이름을 발견했다.한성진. 3년 전 대원그룹의 한 해외 인수합병 건을 담당했던 변호사. 그 인수합병은 결국 '상대방 자진 철수'로 종결됐지만, 비밀 폰 안에는 암호화되지 않은 메모 하나가 남아 있었다. 한 줄뿐이었다."한성진, 해외 계좌, 사할."사할. 무엇의 사할인지 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원의 인수합병 건을 맡았던 변호사가 메모에서 '해외 계좌'와 나란히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찾아갈 이유는 충분했다.다음 날 오전 열 시, 이서는 법무법인에 도착했다. 프런트에는 젊은 여직원이 있었다. 훈련된 예의 바른 미소를 띠고 있었다."죄송합니다. 한 변호사님께서 갑작스러운 외부 미팅이 생기셔서 방금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일정을……"이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프런트를 지나 복도 끝의 유리문 너머로 향했다. 유리문 뒤, 의자 등받이에 걸린 짙은 회색 정장 재킷과 탁자 위에 놓인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보였다."언제 돌아오시나요?""그게…… 확실하지 않습니다."이서는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돌아서서 엘리베이터에 올라 지하 주차장 버튼을 눌렀다.차에 앉아 잠시 조용히 있었다. 오래전, 자신이 갤러리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너는 너무 물러. 네가 옳게 하기만 하면 남들도 너에게 잘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러면 그러할수록 남들이 너를 더 밟아."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대원에서 쫓겨나고 나서야 그 말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이서는 시동을 걸고 차를 주차장 밖으로 내보냈다. 스포츠용품점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골프채 한 자루를 샀다. 나올 때는 하늘이 흐려지고 바람이 세졌다.만약 세상이 '민채린'이라는 이름을 악녀라 부르며 멸시한다면, 굳이 그 이름을 정화하려 애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모든 악명과 오명은 '민채린'이라는 껍데기가 전부 뒤집어쓸 터였다. 진짜 영혼은 그 악

  • 환생을 했더니 전 남편의 현 아내가 되어있었다.   제19화. 같은 지붕 아래의 균형

    조용한 갤러리 안쪽, 낯익은 캔버스 앞에 이서가 멈춰 섰다.화폭 위에 내려앉은 붓 터치를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캔버스 귀퉁이에 적힌 희미한 서명을 내려다보던 이서는 곁으로 다가온 갤러리 큐레이터에게 무심한 듯 질문을 건넸다."이 그림, 꽤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소장자분은 계속 같은 분이신가요?"질문을 들은 직원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손님. 한 분께서 수년째 갤러리에 위탁 대여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개인 소장자분의 신원이나 구체적인 인적 사항은 철저히 비공개로 부쳐져 있어서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완벽한 보안. 이서는 더이상 캐묻지 않고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갤러리 문을 나서는 이서의 구두 굽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자신이 버려지고 잊힌 자리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과거를 이 공간에 영원히 박제해 두고 있었다. 그 익명의 소장자가 누구인지 지금 당장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언젠가 알게 되겠지. 그 손의 주인도.'저택으로 돌아와 고요한 거실을 지나치려돈 찰나였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태블릿을 넘기던 강태준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내일, 할아버지의 개인 만찬이 있어."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어조. 그는 시선을 태블릿에 고정한 채 말을 덧붙였다."너도 참석하라고 하셨어."이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을 툭 던졌다."알았어."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이서가 거실을 지나 2층 계단을 밟고 올라서려던 바로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묵직하게 진동했다. 화면을 켜자, 방금 전 거실을 스쳐 지나온 강태준의 이름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내일은 화려한 건 빼고 입어. 할아버지는 눈에 띄는 걸 아주 싫어하시니까.]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때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더니, 뒤돌아서자마자 날아든 무심한 경고.이서는 화면에 뜬 짧은 문장을 몇 초 동안 가만히 응시했다. 차가운 껍데기 속에 숨겨진 것이 가문의 며느리를 향한

  • 환생을 했더니 전 남편의 현 아내가 되어있었다.   제18화. 수면 아래의 씨앗

    외부의 시선이 완벽히 차단된 최고급 프라이빗 골프 클럽의 VIP 라운지. 푸른 필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는 오직 스치는 바람 소리와 은은한 차 향기만이 맴돌고 있었다.테이블 맞은편에는 대원과 성운의 오랜 경쟁사인 서가그룹의 서 대표가 앉아 있었다. 사교계 만찬장에서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지 며칠 만에 성사된 비공개 회동이었다.그저 단정하고 우아한 필체로 적힌 몇 개의 회사 이름뿐이었다."성운그룹 산하에 있는 몇 개 해외 법인들이에요. 최근 회계 흐름이 묘하게 물투명해 보여서요. 서 대표님께서 한 번쯤 가볍게 들여다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가지고 나왔습니다."직접적인 고발도, 혐의에 대한 단정도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냄새만 풍겨주는 정갈한 제안.서 대표의 노련한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쪽지에 적힌 사명들을 훑어본 뒤, 턱을 괴며 이서를 흥미롭다는 듯 응시했다."왜 나한테 이런 걸 알려주는 겁니까? 아무리 대원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한들, 당신은 엄연한 성운의 민채린인데."상대의 의도를 떠보려는 날카로운 질문이었지만, 이서의 표정에는 티끌만 한 동요도 일지 않았다. 그녀는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는 성운의 미래에 대해....제 나름의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가문을 배신하겠다는 선언도, 그렇다고 노골적인 복수심을 드러내는 위험한 고백도 아니었다. 상류사회의 권력 싸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은밀한 견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지극히 모호하고 완벽한 대답이었다.서 대표는 낮게 실소를 흘리더니, 쪽지를 반으로 정갈하게 접어 재킷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흐음....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확인해보지요."작은 씨앗 하나가 경쟁사의 품 안으로 조용히 건네졌다.저택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레스룸 안에서 이서의 휴대폰이 날카롭게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은 예상대로 [아버지] 였다.이서는 숨을 고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되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민 회장의

  • 환생을 했더니 전 남편의 현 아내가 되어있었다.   제17화. 증거의 첫걸음

    노트북 화면 중앙에서 모래시꼐 아이콘이 정지하고, 100% 라는 숫자와 함께 복구된 데이터 폴더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이서는 밤을 지새운 피로도 잊은 채 마우스를 쥐었다. 메모리 카드 안에는 비밀 폰에서 추출한 음성 파일 외에도 여러 개의 텍스트 문서와 암호화된 가계정 내역이 숨겨져 있었다. 그중에는 민채린이 가문 몰래 빼돌리거나 거래했던 자금의 흔적이 담긴 비밀 장부 일부도 포함되어 있었다.이서는 숨을 죽인 채 파을들을 하나씩 파헤쳐 나갔다.음성 파일 속에서 민채린이 언급했던 '그 사고'. 문서에 담긴 정황과 날짜를 종합해 볼 때, 그 사고는 분명 자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대원그룹에서 쫓겨났던 '산업 스파이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자신의 인생을 단숨에 사지로 내몰았던 그 잔혹한 사건. 하지만 파일에 적힌 단편적인 정황만으로는 당시 그 공작의 '진짜 내막'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완벽히 파악하기 어려웠다.그러나 단 한 가지, 명백하게 입증된 사실이 있었다.녹음 속에서 강태준이 내뱉었던 짧은 한마디.'지분을 가져갔으면 그 입 다물어.'최소한 강태준과 민채린의 결합은 상류사회가 겉으로 칭송하던 다정한 재혼도, 두 사람의 정략적 욕망이 합치된 완벽한 모의도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지분과 약점을 둘러싼 차가운 '거래'에 불과했다.이서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문제의 음성 파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지분을 가져갔으면 그 입 다물어.내 인내심을 더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반복해 들을수록, 이서의 신경은 태준의 목소리 토톤과 미세하게 떨리는 음색의 디테일에 집중됐다.상대를 완전히 제압한 자의 오만함이나 배신에 성공한 자의 비열함은 그 목소리에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거대한 덫에 걸려 외통수에 몰린 자가 내지르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서늘한 방어 기제에 가까웠다. 그는 자발적으로 판을 짜고 민채린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억눌린 협박과 강제된 선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족쇄를 차고 있었다.이서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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