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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남편이 허락한 바람: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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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둘만 약속

"그날 만난 건 우연이었습니다."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온 시혁의 단단한 음성이 적막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 예원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서늘한 눈매를 가만히 응시하며 그 말을 곱씹었다.우연. 프라이빗 바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가, 하필이면 7년 전 남편과 악연으로 얽힌 사건 피해자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만난 여자의 정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명함을 건넸다."그 말이 사실이라면,"예원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처음부터 내가 차재헌의 아내인 걸 알고 다가온 게 아니라,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내 뒷조사를 했다는 뜻이군요."짧은 정적이 일었다. 시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부정할 수 없는 정확한 논리였다. 예원은 쏟아지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차가운 추궁을 이어갔다."결국 당신이 내 정체를 확인한 뒤에 의도적으로 선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네요. 우연이든 아니든, 당신에게 내가 차재헌의 아내라는 사실은 이용 가치가 있었을 테니까.""당신이 누구인지 확인한 건 맞습니다."시혁이 담담하게 인정했다. 어설픈 변명이나 감정적인 호소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시도는 없었다."하지만 당신을 내 목적에 이용할 생각이었다면, 오늘 이렇게 먼저 내 패를 다 보여주진 않았을 겁니다.""글쎄요. 적당한 진실을 흘려서 동정심을 유발하고, 나를 차재헌을 찌를 칼자루로 쓰려는 고도의 계산일 수도 있죠."예원은 한 치의 틈도 내어주지 않았다.지난 석 달간 남편의 외도를 애써 모른 척하며 곪아갔던 시간, 그리고 어제 받아 든 모욕적인 180일 별거 계약서. 그녀는 방금 제 인생에서 가장 피곤하고 지독한 합의서에 서명하고 온 참이었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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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최종 후보사, 아크온

월요일 아침, 미온개발 사옥의 회전문 앞.예원은 손가락에 끼워진 백금 반지를 엄지로 한 번 쓸어내리고는 걸음을 내디뎠다. 주말 내내 그녀를 뒤흔들었던 혼란들, 텅 빈 서재, 남편과의 180일 별거 계약, 그리고 권시혁이라는 미지의 변수. 지금 예원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받은 아내로서의 도피처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 즉 자신의 커리어였다.오전 10시, 브랜드전략팀 회의실.거대한 스크린에는 미온개발이 하반기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대형 복합공간 브랜드, '루센(LUCEN)'의 마스터플랜 조감도가 띄워져 있었다.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큐레이션하는 혁신적인 공간. 지난 1년간 예원이 밤낮없이 매달려 기획안을 다듬고 또 다듬었던 피땀 어린 결과물이었다."루센 프로젝트가 드디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이건 본부의 명운이 걸린 핵심 사업입니다."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은 본부장이 팀원들을 한 번씩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기획 단계부터 철저하게 준비해 온 만큼, 이제부터는 현장과 브랜드를 완벽하게 조율할 수 있는 강력한 실행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에게 총괄 PM(프로젝트 매니저)을 맡기려고 합니다."회의실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팽팽해졌다. 예원은 등받이에서 허리를 뗀 채 본부장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문예원 책임.""네, 본부장님.""오늘부로 문 책임이 루센 프로젝트의 총괄 PM입니다. 설계사 선정부터 시공, 브랜드 입점까지 전권을 쥐고 제대로 한번 이끌어 보세요."그 순간, 회의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예원에게 쏠렸다. 축하와 동경, 그리고 미세한 질투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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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우연이 아닌

목요일 오후, 미온개발 대회의실.루센 프로젝트의 공간 설계를 맡을 파트너사 최종 프레젠테이션이 열리는 날이었다. 총괄 PM 자격으로 상석에 앉은 예원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을 응시했다.'최종 후보사에, 아크온이 있었다.'며칠 전 서류에서 확인했던 세 글자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비 내리는 바에서 마주쳤던 낯선 남자. 남편 차재헌과 7년 전 악연으로 얽혀 있다는 피해자의 아들. 사적인 우연과 껄끄러운 과거로 얽혀 있는 그 남자를, 자신이 총괄하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의 한복판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하지만 예원은 미세하게 떨리려는 숨을 곧게 가다듬었다. 이곳은 위로와 텐션이 오가던 어두운 프라이빗 바가 아닌, 철저한 평가와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였다.첫 번째와 두 번째 업체의 발표가 순조롭게 끝났다. 예상대로 흠잡을 데 없이 안정적이었지만, 루센이 지향하는 혁신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완벽하게 담아내기엔 다소 평이하고 보수적이었다."다음은 마지막 순서입니다. 아크온 건축사사무소 준비해 주십시오."진행자의 안내와 함께 대회의실 문이 열렸다.발소리와 함께 짙은 차콜 그레이 수트를 입은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권시혁이었다.비 오던 밤의 젖은 머리카락 대신, 완벽하게 정돈된 차림과 차분한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에서 보았던 낯선 남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설계를 설명하는 대표 권시혁이었다. 단상 위 프레젠테이션 화면 앞에 선 시혁은 서류를 정리하며 회의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상석에 앉은 예원과 시선이 마주쳤다.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팽팽해지는 듯한 사적인 긴장감. 숨 막히는 찰나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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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정면 승부

"이번엔 우연이 아니군요."단상을 모두 정리한 시혁이 다가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텅 빈 대회의실. 서류를 쥐고 있던 예원의 손끝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비 오던 날의 프라이빗 바, 그리고 일요일 늦은 밤의 서늘했던 전화 통화. 사적인 경계선에서만 마주쳤던 남자가 이제는 그녀의 가장 중요한 공적 영역 한복판에 서 있었다.하지만 예원은 흔들림 없이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네. 루센 프로젝트의 총괄 PM과 파트너사 대표로서 만난 자리니까요. 철저하게 업무적인 검증이었고, 아크온은 그 기준을 통과해서 이 최종 PT 자리에 선 겁니다."사적인 뉘앙스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건조하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시혁은 그녀의 철벽같은 선 긋기에도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명확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가라앉은 눈동자로 예원을 짧게 응시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문예원 PM님."그는 불필요한 사담을 덧붙이지 않고 깔끔하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넓은 등이 닫힌 문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야, 예원은 아주 작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3일 뒤. 미온개발 브랜드전략팀 회의실.최종 심사 결과, 아크온 건축사사무소가 루센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되었다. 예원의 책상 위에는 아크온과 맺을 세부 계약서 초안이 놓여 있었다."이대로 송부해도 괜찮겠어? 지연 배상금 비율도 높고, 기획안 변경에 대한 페널티도 업계 평균보다 훨씬 깐깐한데. 아크온 쪽에서 반발이 좀 있을 것 같은데."팀원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예원의 표정은 단호했다."루센은 미온개발의 하반기 핵심입니다. 퀄리티 컨트롤이 생명인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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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이번엔 내가 틀렸습니다

본계약이 체결되고 일주일 뒤. 미온개발과 아크온 건축사사무소의 첫 실무 조인트 회의가 열렸다.대회의실의 스크린에는 아크온 측이 철야를 거듭해 디벨롭해 온 루센의 1층 메인 홀 3D 렌더링이 띄워져 있었다. 단상에 선 시혁은 레이저 포인터로 도면의 중심부를 가리키며 차분하게 브리핑을 이어갔다."중앙 아트리움의 기둥을 최소화하고 천장의 채광 면적을 극한까지 넓혔습니다. 방문객이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개방감을 온전히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이 설계의 핵심입니다."회의실 곳곳에서 미온개발 실무진들의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도면 위로 펼쳐진 공간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빛과 선을 다루는 권시혁 특유의 과감함이 돋보이는, 건축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결과물이었다.하지만 스크린을 응시하는 예원의 미간은 아주 미세하게 좁혀져 있었다."브리핑은 여기까지입니다. 의견 있으십니까."시혁이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하며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 상석에 앉아 있던 예원이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설계 자체는 훌륭합니다.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개방감이라는 의도도 정확히 전달됐고요."예원의 서늘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회의실을 울렸다."하지만 저는 이 중앙 아트리움 설계안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아크온 측 실무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미온개발 팀원들조차 당황한 기색으로 예원의 눈치를 살폈다."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시혁은 불쾌한 표정없이,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이유를 물었다. 방어적인 태도가 아니라, 파트너의 이견을 정확히 마주하려는 태도였다. 예원은 준비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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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왜 하필 권시혁이야?

루센 프로젝트의 중앙 아트리움 설계 수정안이 담긴 파일이 모니터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예원은 마우스 휠을 천천히 내리며 도면의 세부 사항을 점검했다. 시야를 분산시키는 구조물과 조경 배치가 기획안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도면 우측 하단에 적힌 아크온의 로고에 잠시 머물렀다."이번엔 내가 틀렸습니다."며칠 전 회의실에서 들었던 시혁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자신의 오류를 미련 없이 인정하고, 파트너의 기획 논리를 수용하는 태도. 자신의 판단을 제대로 듣고 받아들이는 상대와 일한다는 감각이 예원에게는 낯설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감정과 업무를 철저히 분리할 줄 아는 실력 있는 파트너. 예원은 문득 떠오른 시혁의 얼굴을 지워내듯,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엑셀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적인 감상을 덧붙이기엔 오늘 처리해야 할 결재 서류가 산더미였다.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짧은 진동을 울렸다.발신자 화면에 뜬 이름은 '차재헌'이었다.예원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업무 시간에 그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었다. 별거를 시작한 뒤 두 사람은 필요한 일이 아니면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여보세요."— "바쁜가 보네. 목소리가 건조한 걸 보니."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재헌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여유롭고 오만했다."업무 중이니까. 무슨 일이야?"— "차량 등록 명의 변경 건 때문에. 변호사 통해서 서류 보냈으니까 확인하고 서명해서 회신해 줘."단순한 행정 처리였다. 예원은 메모장에 짧게 내용을 기록하며 건조하게 대답했다."알았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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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

— "왜 하필 권시혁이야?"수화기 너머로 내려앉은 낮고 건조한 질문에, 예원은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명백하게 선을 넘은 질문이었다. 총괄 PM으로서 아크온이 루센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파트너인 이유를 객관적인 지표로 설명했음에도, 재헌은 굳이 권시혁이라는 개인의 이름을 끄집어내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예원은 서둘러 남편의 기분을 달래거나 해명하는 대신, 차분하게 되물었다."왜 그렇게 권시혁을 신경 써?"— "…….""블라인드 평가에서 1위를 한 건축사사무소 대표야. 파트너사 대표가 누구든 업무 판단에는 아무 차이가 없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어진 재헌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처럼 이성적이고 건조했다. 적어도 예원에게는, 자신의 불쾌감을 두 사람의 과거 문제로 돌리려는 것처럼 들렸다.— "그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다 아는 건 아니잖아.""내가 파트너사 대표의 개인사까지 다 알아야 할 의무는 없지."— "권시혁하고 나는 좋게 끝난 사이가 아니야. 굳이 얽혀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이야."예원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두 사람 사이에 7년 전 과거 사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헌의 태도에는 단순한 과거의 악연을 넘어선 묘한 모순이 섞여 있었다.— "업무만 해."경고처럼 덧붙여진 재헌의 말에 예원은 건조하게 대답했다."지금도 업무만 하고 있어."— "그 이상 가까워지지 마."순간, 예원의 굳어 있던 시선이 모니터 화면에서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과거 사건의 위험성을 명분으로 삼던 남자가, 돌연 '가까워지지 마'라는 직접적인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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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당신은 그럴 사람 아니잖아

— "나는 그냥 너한테 손해 될 일 하지 말라는 거야.""그게 내게 손해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 "문예원.""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예원의 서늘한 쐐기 앞에서, 수화기 너머의 기척이 일순간 정지했다.'계약'이라는 단어는 지금 재헌이 들이밀 수 있는 모든 얄팍한 명분을 가장 효과적으로 베어버리는 무기였다.짧은 정적 끝에, 낮게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예원에게는 당황이나 분노보다는, 짧은 헛웃음처럼 들렸다.— "…그래. 계약은 계약이지."건조한 인정. 그가 한 발 물러섰다고 생각한 순간, 재헌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서늘한 조소가 섞여 들었다.— "그래서? 계약서에 써 있다고, 정말 다른 남자라도 만날 생각이야?"예원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을 긍정으로 읽은 것인지, 애초에 답을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 재헌이 한 박자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수화기 너머에서 짧고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예원에게는 악의적인 조롱보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하는 사람의 웃음처럼 들렸다.— "문예원, 당신은 그런 사람 아니잖아."예원의 턱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내가 어떤 사람인데?"— "결혼한 상태에서, 그것도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판에서 다른 남자한테 마음 줄 사람은 아니지. 당신이 얼마나 조심성 많고 관계 깨지는 걸 두려워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재헌은 조금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난 당신 알아. 당신은 결국 그런 선택 못 해."그의 말에 예원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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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남편 얘기 말고

밤 11시 30분. 미온개발 본사 14층, 루센 프로젝트 전담 TF팀 회의실.낮 동안 수십 명의 인원이 오가며 내뿜던 치열한 열기와 소음은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텅 빈 층을 채우는 것은 낮게 웅웅거리는 공조기 소리와 규칙적인 마우스 클릭 소리뿐이었다.예원은 피로가 몰려오는 눈가를 꾹 누르며 모니터 화면에서 시선을 뗐다. 마지막으로 검토하던 예산 조정안을 저장하고 나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조금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가볍게 목을 돌리던 예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테이블 맞은편으로 향했다.넓은 회의실 테이블의 반대쪽 끝.그곳에는 파트너사 자격으로 함께 야근을 자처한 권시혁이 앉아 있었다.예원은 가만히 숨을 죽인 채 그를 관찰했다.낮의 권시혁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기계 같았다.흐트러짐 없는 슈트, 감정이 배제된 서늘한 목소리, 타인의 시선을 압도하는 단단한 눈빛.언제나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던 아크온의 대표 건축가.하지만 늦은 밤, 인적 끊긴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는 그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슈트 재킷은 일찌감치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고, 단정하게 조여져 있던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단단한 팔뚝 위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그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피곤한 듯 한 손으로 뒷목을 길게 주물렀다.테이블 한구석에는 포장지가 반쯤 벗겨진 샌드위치와 얼음이 다 녹아버린 투명한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그는 시선은 도면에 고정한 채, 기계적으로 커피를 들어 한 모금 삼켰다.그 무방비하고 일상적인 동작을 지켜보던 예원의 머릿속에 문득 기묘한 위화감이 스쳤다.'생각해 보면, 나는 저 사람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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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퇴근 후 시간 돼요?

"차재헌 얘기 말고, 권시혁 씨는요?"예원의 낯선 질문에 서류를 정리하던 시혁의 손이 아주 잠시 멈췄다. 그에게서 당황한 기색이나 과장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고요한 눈동자로 예원을 잠시 응시했을 뿐이다.이윽고 그의 입에서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특별한 취미는 없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즐기지 않아서, 일이 없을 때는 주로 혼자 걷거나 조용한 건축 전시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식사를 챙기는 일도, 휴일을 보내는 방식도 그가 짓는 건축물처럼 군더더기 없이 건조하고 단정했다.대단한 사연이나 거창한 포장이 없는 담백한 대답.차재헌과 얽힌 복수나 루센 프로젝트의 무게를 모두 걷어낸 '권시혁'이라는 개인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고 고요했다.예원은 그의 짧은 대답을 조용히 귀에 담으며, 자신도 모르게 미세하게 굳어 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누군가의 통제나 뚜렷한 목적 없이 오롯이 한 사람의 일상을 듣는 감각이 퍽 낯설면서도 편안했다.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두 사람은 야근을 마치고 텅 빈 1층 로비로 내려왔다. 회전문 밖으로 나서자 늦가을의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함께 도면을 짚어가며 치열하게 업무를 보던 시간은 끝이 났고, 이제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명확한 타이밍이었다."늦었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시혁이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언제나처럼 정중하고 깔끔한 인사였다.평소라면 예원 역시 건조하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뒤돌아 자신의 차로 향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따라 예원의 발걸음은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단단히 붙어버린 것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시혁이 몸을 돌려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예원의 시선이 그의 넓은 등에서 멈췄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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