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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퇴근 후 시간 돼요?

Autor: Doong_E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8 08:55:52

"차재헌 얘기 말고, 권시혁 씨는요?"

예원의 낯선 질문에 서류를 정리하던 시혁의 손이 아주 잠시 멈췄다.

그에게서 당황한 기색이나 과장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고요한 눈동자로 예원을 잠시 응시했을 뿐이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별한 취미는 없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즐기지 않아서, 일이 없을 때는 주로 혼자 걷거나 조용한 건축 전시를 보는 게 전부입니다."

식사를 챙기는 일도, 휴일을 보내는 방식도 그가 짓는 건축물처럼 군더더기 없이 건조하고 단정했다.

대단한 사연이나 거창한 포장이 없는 담백한 대답.

차재헌과 얽힌 복수나 루센 프로젝트의 무게를 모두 걷어낸 '권시혁'이라는 개인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고 고요했다.

예원은 그의 짧은 대답을 조용히 귀에 담으며, 자신도 모르게 미세하게 굳어 있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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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이 따로 있었어?"수화기를 넘어온 재헌의 목소리는 낮고 집요했다.오직 그 단 하나의 사실만을 확인하겠다는 듯이 팽팽하게 날이 선 음성이었다.예원의 귓가에 닿은 휴대전화 너머로 짧은 정적이 맴돌았다. 예원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아니,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쪽이 정확했다.과거의 문예원이라면 그 서늘한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입술부터 뗐을 것이다.현장 사람들이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다거나, 동선과 마감재를 확인하다보니 잠깐 둘만 남게 된 것뿐이라고.행여나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자신이 놓인 상황을 구구절절 해명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누구와 있었는가'를 묻는 남편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바치는 것은, 오랫동안 예원에게 굳어진 부부 사이의 당연한 의무였으니까.하지만 지금 예원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가 아니었다.'왜 이걸 묻지?'예원은 자신이 처한 물리적 상황을 변명하는 대신,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차재헌이라는 사람의 모순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동요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재헌아. 너 아까부터 묻는 게 이상한 거 알아?"— "뭐?""분명 루센 프로젝트 일 때문이라고 했잖아. 대표가 직접 남을 일이냐고, 업무 범위를 지적했고."예원은 조금 전부터 이어졌던 대화의 궤적을 차분하게 되짚었다."그런데 네 질문은 계속 권시혁 씨와 내가 몇 시까지, 얼마나 가까이, 어떤 상황에서 같이 있었는지에만 맞춰져 있어. 현장 진행 상황이 궁금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그 사람과 둘이 있었는지가 확인하고 싶은 거잖아."수화기 너머에서 흠칫 숨을 삼키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그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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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3화 현장은 도면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날카로운 기계음과 둔탁한 파열음이 뒤섞인 루센 프로젝트 시공 현장.임시 가림막 너머로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서, 예원은 안전모의 턱끈을 단단히 조이며 발걸음을 옮겼다.며칠 전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채우고 있던 고요하고 따스한 공기는 온데간데없었다.두 사람은 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완벽하게 사적인 온도를 지워내고, 미온개발의 총괄 PM과 아크온의 대표 건축가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며칠 전의 편안했던 분위기를 핑계로 친밀한 농담을 건네거나 사적인 미소를 짓는 일은 없었다.예원 역시 그를 '며칠 전 저녁을 함께 먹은 남자'가 아니라 현장을 책임지는 파트너로만 상대했다."문 PM님, 2층 메인 라운지 진입 구간 실측 결과입니다."현장 소장이 태블릿 화면을 띄우며 보고를 시작했다."도면상 설계된 대로 진입로 폭 2.5미터 정확하게 확보했습니다. 법적 소방 기준이나 통행 규격에도 전혀 문제없습니다."예원은 소장이 건넨 태블릿의 수치와, 바닥에 임시로 그어진 붉은색 마스킹 테이프의 간격을 번갈아 확인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오차가 없었다. 하지만 마스킹 테이프가 그어진 실제 공간 안에 직접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예원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소장님. 도면상 폭이 확보됐다는 것과, 실제로 사람이 쾌적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예? 하지만 기준치에 완벽하게 맞춘 건데……."예원은 현장 바닥의 한 지점을 안전화 끝으로 가리켰다."이곳은 루센의 메인 라운지로 들어가는 핵심 진입로입니다. 주말 피크 시간대 대기 인원의 동선과, 내부 F&B 매장을 오가는 대형 서비스 카트의 동선이 정확히 이곳에서 교차합니다."예원의 시선이 도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게다가 이쪽 벽면에 예정된 대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2화 생각보다 편한 사람

    —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됩니까?"로비를 감싸던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던져진 질문에, 예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데이트'라는 단어를 자신이 먼저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하지만 그 단어에 선을 긋거나 서둘러 부정하고 싶은 마음 역시 들지 않았다.잠시 침묵을 지키던 예원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가볍게 대답했다."적어도 업무 미팅은 아니죠."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절도 아니었다.그리고 약속된 금요일 저녁.예원이 고른 레스토랑은 회사에서 차로 이십 분쯤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 골목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지나치게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고, 테이블 간격이 널찍해 대화 나누기에 적당한 곳이었다.예원은 창가 쪽 자리로 안내를 받아 앉았다.메뉴판을 펼쳐 들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글자 위를 겉돌 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늘 두 사람 사이에는 도면, 예산안, 루센 프로젝트, 차재헌의 이름, 혹은 7년 전의 과거가 놓여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게 놓인 물잔과 메뉴판, 그리고 두 사람의 가벼운 옷차림뿐이었다.'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사회생활에 능숙한 30대 PM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권시혁과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 앉아 나누어야 할 대화의 결은 낯설었다.하지만 그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시혁은 분위기를 억지로 띄우려 들거나 침묵을 어설픈 말로 채우려 애쓰지 않았다.그는 메뉴판을 조용히 훑어보더니, 먼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여기로 정하신 이유가 있습니까.""조용해서요. 업무 이야기 없이 저녁만 먹기에는 적당할 것 같아서요.""좋은 기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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