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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이들에게만 다정한 남자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7 15:29:34

 

안미래가 눈을 떴을 때는 아직 해도 완전히 밝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언제나처럼 옆자리는 차갑게 비어 있었다.

기상, 피트니스, 사우나, 아침 식사, 그리고 출근.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되어 온 남편의 견고한 루틴이었다. 미래는 이제 그 루틴을 통째로 외울 수 있었다. 시계추보다 정확한 루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정확함은 미래에게 하등의 안도감을 주지 못했다. 예측 가능한 남자는 안전했으나, 동시에 투명했다. 그리고 투명하다는 것은, 이 집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미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안방 거실의 통창 가로 느리게 걸어갔다. 2월의 도곡동 아침은 지독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주방을 나서자 고소한 냄새가 복도까지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가사도우미 박정례가 달아오른 된장국 뚜껑을 열며 살갑게 물었다.

"응."

"오늘 국이 아주 맛있게 잘 됐어요."

"조개 된장국이에요?"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정례가 생긋 웃었다. 넓은 식탁 위에는 이미 완벽에 가까운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뜨끈한 모시조개 된장국을 필두로 노릇하게 구운 쇠고기 안심구이, 부풀어 오른 달걀찜, 고등어구이와 정갈한 밑반찬들, 그리고 갓 지은 오곡밥까지.

"준원이는 일어났어?"

"방금 씻으러 화장실 들어갔어요."

"서윤이는?"

"방에서 머리 말리는 중이에요."

미래는 접시에 샐러드를 조심스레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 구석구석을 통틀어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정례였고, 그다음은 단연 성웅이었다.

그때 성웅이 주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새벽 운동을 막 끝낸 직후의 걸음이었다. 깔끔하게 샤워를 마친 얼굴과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올해로 쉰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이지적인 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타이틀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왔어요?" 미래가 입꼬리를 올려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응."

남편은 짧게 대꾸하곤 자리에 앉았다. 정례가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 밥을 그의 앞에 놓았다.

"사장님, 오늘 안심이 아주 좋아요."

"고마워요."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인 준원이가 셔츠 단추를 엉망으로 꿰맨 채 허둥지둥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빠!"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이 마법처럼 바뀌었다. 아주 자연스럽고도 신속하게, 미래가 서 있던 자리에서는 결코 보여준 적 없는 다정한 온기가 그의 안면에 차올랐다.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어. 이리 와봐." 남편은 친히 손을 뻗어 준원이의 어긋난 단추를 하나씩 다시 채워주었다. 지극히 능숙하고도 다정한 손길이었다.

준원이는 아빠의 커다란 몸 앞에 얌전히 서서 헤헤 웃었다. "아빠, 이번 주말에 농구 가요. 학교 친구들이랑 시합하기로 했는데 아빠도 같이 뛰어요."

남편이 피식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빠가 너희 같은 애송이들한테 지겠냐?"

"에이, 아빠도 요즘 전성기 지나서 많이 약해졌잖아요."

"녀석이."

준원이가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자 남편의 입가에도 호탕한 미소가 걸렸다. "이번 주말 스케줄 한번 봐서. 안 그래도 요즘 몸이 찌뿌둥해서 농구 한 판 하고 싶었거든."

"진짜요?"

"빠르게 한 쿼터만 뛰어주지."

준원이의 눈이 기대감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이어 딸 서윤이가 내려와 자리에 앉으며 아빠를 슬쩍 흘겨보았다. "아빠, 나 어제 늦게까지 서술형 대비하느라 공부했더니 지금 눈이 안 떠져. 너무 피곤해."

식탁 위에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의 따스한 온기가 가득 들어찼다.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는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눈빛의 깊이도, 목소리의 주파수도 달랐다. 준원이의 단추를 다정하게 끼워주던 손, 서윤이의 머리칼을 장난스레 쓸어내리던 그 따스한 손길.

그 손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해 뻗어왔던 게 대체 언제였는지, 미래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슬프게도,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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