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모님의 입술을 적시는 셰프: Chapter 31 - Chapter 33

33 Chapters

31화. 사모님이 아닌 공동 이사장

청혼으로부터 일주일 뒤, 오베르주 드 라 루미에르 이사회 회의실에는 축하 대신 서류 더미가 쌓였다.채린은 반지를 오른손에 옮겨 끼고 긴 테이블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약혼 사실과 경영 권한이 한 문장 안에서 섞이지 않게 하려는 선택이었다.재단의 수석 이사 베르나르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채린을 살폈다.“백 이사님이 공동 이사장으로 선임된 과정에 강 셰프의 사적인 영향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회의실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도혁이 입을 열려는 순간 채린이 손을 들었다.“제 질문이니 제가 답하겠습니다.”도혁은 곧바로 말을 멈췄다. 채린은 준비해 온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선우물산의 최근 3년간 온도 이탈률, 아시아 시장 예상 매출, 공급망 장애 발생 시 대체 운송 계획이 차례로 나타났다.“제 선임안은 약혼 전에 실무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됐습니다. 평가 자료와 회의록도 여기 있습니다. 그래도 이해상충이 우려된다면 공동 이사장의 보수와 계약 승인 절차를 외부 감사위원회에 공개하겠습니다.”베르나르가 자료를 넘겼다.“강 셰프와 관련된 안건에서는요?”“저와 강 셰프 모두 의결에서 빠지겠습니다. 대신 독립 이사 세 명과 직원 대표 한 명이 결정하도록 규정을 바꾸죠.”“스스로 권한을 줄이겠다는 뜻입니까?”“감시받지 않는 권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는 이미 그런 권력이 한 회사를 어떻게 망치는지 봤습니다.”서태우의 이름을 꺼내지 않아도 의미는 분명했다. 채린은 다음 장을 열었다.“그리고 서울 지점은 단순한 브랜드 매장이 아니라 회복식 연구와 조리 교육을 함께 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겠습니다. 병원 치료를 대신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Read more

32화. 결혼식 날의 첫 번째 접시

이듬해 봄, 서울의 작은 유리 온실에 흰 라일락 향이 번졌다.채린과 도혁은 호텔 연회장도, 수백 명의 하객도 선택하지 않았다. 온실 한쪽에는 가족과 가까운 동료 스무 명이 앉았고, 반대편에는 두 사람이 직접 고른 긴 식탁 하나가 놓였다.채린은 풍성한 드레스 대신 움직이기 편한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었다. 부케는 들지 않았다. 두 손을 비워두고 싶었다. 도혁도 셰프 코트가 아닌 짙은 감청색 정장을 입었지만, 주방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평소와 같았다.“소스 온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그가 세 번째로 주방 쪽을 돌아보자 채린이 팔을 잡았다.“오늘 조리 책임자는 민재 셰프예요.”“확인만 하려는 겁니다.”“확인도 맡기는 연습을 해야죠.”도혁은 못내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린은 웃음을 참으며 그의 넥타이를 바로잡았다.결혼 서약은 짧았다. 주례도 화려한 축사도 없었다. 두 사람은 법적 절차와 재산 약정, 각자의 경영권을 이미 변호사와 함께 검토했다. 오늘 읽을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남긴 한 문장뿐이었다.도혁이 먼저 말했다.“당신이 멈추라고 할 때 멈추고, 묻기 전에 정답을 정하지 않겠습니다.”채린은 그의 눈을 보며 답했다.“당신의 사랑을 빚으로 여기지 않고,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숨기지 않겠습니다.”두 사람이 반지를 교환하자 조용한 박수가 온실을 채웠다. 채린의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딸을 대신해 대답하거나 손을 잡아끌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식사가 시작되자 첫 번째 접시가 나왔다. 채린이 직접 개발한 구운 토마토와 현미 크로켓이었다. 겉은 얇고 바삭했으며 속에는 레몬 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Read more

33화. 영원히 굶주리지 않을 우리의 식탁

2년 뒤 봄.서태우는 420억 원대 횡령·배임, 사문서위조, 납치 교사와 특수감금 혐의로 징역 18년을 확정받았다. 은닉 재산은 추징과 피해 배상 절차에 들어갔고, 태광홀딩스는 문제 사업을 정리한 뒤 채권단 관리 아래 분할 매각됐다. 범행에 가담한 임원들도 차례로 실형을 선고받았다.판결이 확정된 날, 기자들은 선우물산 본사 앞에 몰려들었다.“전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복수에 성공한 소감은 어떻습니까?”채린은 걸음을 멈추고 마이크를 바라봤다.“제 삶은 그 사람의 형량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판결은 피해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절차였을 뿐입니다.”그녀는 더 대답하지 않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유럽 운송망 개통 보고서와 서울 지점의 첫해 실적표가 기다리고 있었다.선우물산은 루미에르와의 본계약을 체결하고 초저온 물류망을 유럽까지 넓혔다. 채린은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면서 라 루미에르 재단 공동 이사장을 맡았다. 부친은 치료를 마친 뒤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았다.서울의 ‘라 타블 리브르’는 예약이 석 달 뒤까지 찼다. 모든 손님에게 같은 양을 강요하지 않고 작은 접시와 향을 낮춘 메뉴를 고를 수 있게 한 운영 방식이 입소문을 탔다. 메뉴판 아래에는 채린이 직접 쓴 문장이 인쇄돼 있었다.[한입도 한 끼입니다. 당신이 멈추는 곳에서 접시는 기다립니다.]그렇다고 모든 날이 매끈한 것은 아니었다. 재판 기사가 다시 나오는 날이면 채린의 속이 굳었고, 낯선 향이 과하면 수저를 내려놓기도 했다. 그럴 때 도혁은 이유를 캐묻거나 한입만 더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오늘은 여기까지입니까?”“네. 나중에 배고프면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Read more
PREV
123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